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7

산골 행복놀이

#. 왜 손이 없지? 너무 추워서 쏙 집어넣었어요 그림에 대한 정우의 대답, #. 한 시간쯤의 눈썰매 끝에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가 아닌 물감 놀이를 했다. #. 모양새를 다듬어 그린 정우 그림과 맘대로의 그림에 맘대로의 설명을 붙인 피카소 풍의 정환이 그림, #. 늘 발 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했던 아이들이 맘 놓고 뛰고 구르며 보낸 하루 낮 동안 여전히 아기 티를 벗지 못한 고양이 꺼뭉이 까지 기꺼이 뛰고 구름으로써 #. 내 정신도 몸 밖에서 뛰고 구르기를 한나절, #. 두 시간쯤의 함께 놀이는 몸 곳곳의 결림으로 끝이 났다. #. 카레 두 그릇 호떡 다섯 개쯤? #. 망아지처럼 들 뛰고 소 만큼 먹은 뒤에 젖은 옷을 갈아입은 아이들, #. 추운 산골 겨울이 모처럼 따듯하고 행복했다.

풍경소리 2020.12.21

백수월령가

#. 며칠 호되게 추웠다. #. 함실아궁이 구들방은 하루 한번 불 들임으로 하루를 넉넉히 견디더니만 자고 일어나면 방바닥 가득 냉기가 흥건했으므로 아침 저녁으로 군불을 넣어야 했다 #. 어떻게든 얼어 죽지 않고 겨울 건너기, #. 굴뚝 가득 우윳빛 청솔가지 연기를 봉화처럼 올려 살아 있음의 안부를 마을 곡곡에 알린다. #. 이런 중에 팁으로 새벽 눈이 오셨다. 송풍기로 불어 낸 눈은 다시 바람을 타고 온 몸을 뒤덮어서 눈 치우기를 끝 낼 쯤에는 눈사람 한 마리가 되어 있었다. #. 아내가 출타한 산 속 홀로의 시간, 종이 펴고 먹 갈아 글 한 줄 쓰려고 준비 중인데 불쑥 올라 선 이장이 건네준 달력에는 1월 추운 날들 조차 이걸 해야한다. 저걸 하도록 해라. #. 정작 이걸 당해야 하고 저걸 당해야 하는..

풍경소리 2020.12.19

한겨울 푸른 놀이

#. 하늘을 몇 번쯤 보시나요? #. 한 밤에 눈 내리고 아침 하늘은 시침이 똑 뗀 채 푸르게 맑아서 진공의 허공에 가느다란 철사줄을 휘두르면 쨍그랑 깨질 것 같은 날, #. 아침 하늘이 그랬다. #. 추워서 겨울답고 겨울 다우니 다행이다. #. 연휴의 주말에 우르르 꼬맹이 손님들이 온다는 기별 눈 치우며 윗 밭 오름길을 남겨 둔 것이 이제 빛을 발 할 시간, #. 눈 밭에 깔깔깔 아이들의 푸른 웃음소리가 흥건하면 #. 나는 잉걸불에 고구마 굽고 이런저런 따듯한 음식들을 준비해야겠다. #. 오래 전 기억, 명절 연휴의 반 시간을 떼어 깊은 산 눈밭에 들었고 우리는 2박 3일의 날들을 옷이 다 젖도록 뛰고 뒹굴었었다. #. 그 때 목젖이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깔깔깔 웃고 떠들던 녀석들이 엄마 되고 아빠 되어..

풍경소리 2020.12.17

일상, 흔들림

#. 정우네 가족이 가까이로 옮겨 온 후부터의 변화들, #. 아이들 일로 내가 조금 힘들기도 하니 아이들도 나 때문에 힘들 수 있겠거니 가급적 거리 두기를 하려고는 하나 #. 멀리 살던 그 때 보다는 조금 더 자주 보게 되는 일, #. 웃읍게도 내 집 밥상의 반찬과 딸아이 집 반찬이 같아지고 있다. #. 병참선의 일치, #. 코로나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스테파노를 만났다 둘째의 혼사 얘기를 물었는데 혼사 날 받아 놓고 아픈 수술을 두 번씩이나 했다는 숨겨 두었던 얘기들, #. 그가 거듭 비우는 술잔의 수 만큼 가슴 한 복판이 아리다. #.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한숨으로 버무려진 그의 한탄을 들으면서 백번 이해하고 말고 그 마음이 이 마음인 거... #. 늦은 밤 허정 걸음으로 내 집에 들어 아궁이..

풍경소리 2020.12.06

겨울 동화

#. 1년 넘어의 분주함이었다 #. 주어진 글을 달달 외워 아이들에게 들려주기를 하던 아내는 기어이 이야깃거리를 직접 생산하기로 하였으므로 #. 지역 작가 모임에 뛰어들어 동화와 단편의 소설을 묶어 동인지를 발행했다고 #. 발표회에 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은밀한 강요가 있었다. #. 시골살이 참 요란뻑쩍 하시다. #. 두 마리 개집을 햇볕 바른 자리로 옮겨주고 강원도 목두꾼처럼 산발한 소나무 가지를 정리해 주고 안 해도 그만인 일들로 동동거리던 손길을 잠시 쉰 채 꽃 한 다발 들고 가야지... #. 나로 인한 원망들이 책으로 묶어지기 전에... #. 낭독회와 뒤풀이 자리가 모두 끝난 시간 내일은 메주를 쑤어야 한다고 손가락 꼽음을 하고 있으니 #. 나는 또 뭔 일로 뒷덜미를 잡히게 될 건지...

풍경소리 2020.12.05

겨울 마중

#. 겨울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추녀 끝 풍경 고자질이 소란스러운 아침, #. 밭에 남겨진 못난이 배추들을 거두고 이제 단풍빛으로 잎이 변해 갈 참인 갓을 알뜰하게 거두어 김장 끝 여벌의 파김치를 담금으로써 가을은 끝이 나고 겨울이 자주 문 틈새를 엿보기 시작한 날, #. 네팔 여행의 도반님들이 코로나 갑갑증을 견디다 못해 이렇게 라도... 떠나 보자는 제안이 있어 우리 모두는 기꺼이 이웃 도시의 마애불을 뵙기로 했다. #. 양각되거나 선각되어 돌 밖으로 자비로운 걸음을 시작하신 돌이되 참 따듯하게 느껴지는 품, #. 의도하지 않게 일일 문화해설사가 되어 삭풍의 가림막 노릇을 했다. #. 노을이 내리고 겨울이 뒹구는 황량한 폐사지 사람의 일은 숱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눈물겨우니 #. 어..

풍경소리 2020.11.28

식사 하세요

#. 매일 그렇고 그런 백수의 날들 바쁠게 뭐 있나?... 어정 걸음으로 절대 뛰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는데 #. 첫 번째, 이곳으로 이사를 결심한 딸아이는 살던 집을 비우고 이사할 집에 들기까지 한 달의 공백을 만든 뒤에 온 가족이 전국 캠핑 여행을 하다가 일주일쯤은 함께 지내기로 하는 풀 행복? 기간을 준비해 놓았다. #. 두 번째, 덫에 치였던 고양이는 아내의 지극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만에 곱게 묻어주어야 했다. 49재가 며칠 남지 않았다... #. 세 번째, 보낸 고양이에 대한 슬픔을 위로한다고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했는데 며칠 뒤 급한 전화가 왔다 그 집의 어미 고양이가 덫에 치어 죽었다는 것, 이놈의 동네... #. 네 번째, 이 정신 사나운 통에 바둑..

풍경소리 2020.11.18

혼재 계절

#. 해 넘이부터 아침이 되기까지는 겨울, #. 금빛 햇살이 찰랑대는 한낮은 가을, #. 어수선한 산 속, 겨울의 머리와 가을의 꼬리에 매달려 흔들리는 동안 #. 하염없이 낙엽 지고 속절없이 세월 가고, #. 문자 하나 도착 할 때 마다 코로나 환자 한명씩이 늘고 있다. #. 가만히 산 중에 들어 앉아 나날이 세상에 대한 경계를 키우는 일, 사람의 일들은 오늘도 불안하다. #. 코로나에 갇히고 노환의 영감님 수발로 발이 묶인 붓글씨 도반님 댁을 찾아 김장 김치 한통을 나누어 드렸다. #. 어수선 난국이라고 문간마다 체온을 재기만 할게 아니라 체온 담긴 사람의 정이 나누어져야 할 때다. #. 푸른 바다를 떠나 푸른 하늘 아래 몸을 매달아 가을처럼 건조하게 말라가는 #. 명태 였다가 코다리 였다가 이제는 북..

풍경소리 2020.11.15

聖, 俗의 무의미한 경계

#. 뒷 산 능선이 헐렁해져서 산 너머 갈기 세운 바람이 맘 놓고 넘나드는 날들, 나날이 표창 같은 서리가 내리고 있으니 두서없는 일들에 발만 동동 거리다가 #. 일탈이다. 마늘 밭을 다독이고 고추를 다듬어 김장 준비가 여전히 진행 중 임에도 흙 묻은 손을 씻고 잠시 바람의 길을 오른다. #. 긴 세월 땅 속에 묻혀 세상을 관조하시던 오백나한을 기어이 햇볕 아래로 모셔 놓고는 천상의 표정으로 여전히 온화한 석상 사이로 철없는 관람객들만 분주했다. #. 오로지 먹고사는 일 하나를 위해 온몸으로 성실해야 했던 민초들의 삶을 굳이 속(俗)으로 구분하면 깨달음은 훨씬 더 성스러운 경지가 되는 걸까? #. 그 무의미한 경계, #. 석상의 표정마다 스며들어 있는 오랜 시간 석공의 공력은 신앙보다 거룩하다. #. 때..

풍경소리 20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