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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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던하거나 때론 미련하게,

#. 며칠의 비 끝에 밭고랑의 풀들은 맘껏 품 벌려 겨우 제 힘으로 일어서는 작물들을 끌어안을 기세이므로 게으름의 근육을 모두 채근하여 괭이 하나 들고 풀 뽑기, #. 땀방울 방울이 영글어 고른 치열 같은 옥수수 알갱이가 될 것이다. #. 꼼수 없는 성실한 미련, #. 무던하거나 때론 미련하게, #. 지붕과 반자 사이에서 태어 난 꺼뭉이의 새끼들은 밤 눈 어두운 녀석들인지 하필이면 내부장식용 벽 틈새로 빠져 밤 깊은 시간의 SOS, #. 유월 맞이가 제법 소란했다. #. 감자는 꽃을 피우고 고추는 별빛으로도 자라기 시작했으므로 날라리 농사꾼의 밭에도 찰진 초록이 무성 하겠다. #. 농사는 되짚어 보는 일이 아니다 작물도 사람도 함께 자라는 일이다. #. 그러므로 지난해 게으름으로 망친 이런저런 일들은 그..

소토골 일기 2023.06.01 (17)

초록비 틈새,

#. 풀숲으로 사라지는 뱀의 꼬리처럼 시간의 숲속으로 가만히 사라지는 오월의 꼬리, #. 종일토록 초록비가 내렸다. #. 모든 물들이 서쪽으로 흐르는 곳을 지나 모든 냇물과 구름이 동쪽으로 흐르는 마을로 들어왔다. #. 허공 가득 등 푸른 비린내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 먼 도시 친구는 둘째 아이 늦은 결혼이 그저 감지덕지하여 이것도 저것도 온통 고맙기만 한데 시끌번쩍한 무대 풍경에는 그저 무심한 채 빼곡한 하객들 모습을 넋없이 바라본다. #. 모두들 평생의 시간을 걸어 걸어 얼굴과 어깨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성실한 세월의 흔적들, #. 구구절절의 주례사가 왜 필요할고? #. 그니들과 손 잡고 눈 맞추어 따듯하게 바라보았으면 됐지, #. 예식이 막 끝날 때쯤 또로록 문자 하나, #. 가슴에 쌓았던 ..

풍경소리 2023.05.29

소만 넋두리,

#. 아침 문안차 공손하게 문 열어 보니 모두 허공의 심장이 되어 떠나고 빈집만 휑하니 남았다. #. 세상이 텅 빈 듯 서운하다. #. 허튼 인사라도 나누고 갈 일이지··· #. 그리고도 다시 도자 장승 안에 여덟 마리, #. 서운한 정 나눌새 없는 숱한 이별들이 가슴속 바람이 된다. #. 하필이면 쥐오줌풀 꽃이라 이름 지었는지 올망졸망한 꽃과 꽃술을 엮은 한 송이 꽃을 보며 연기(緣起)라는 거 오랜 궁구 끝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님을 깨우친다. #. 마당가 백선이 꽃피웠다. 초선의 속눈썹처럼 요염한 꽃술의 모습, #. 오래된 만년필에 잉크를 넣었다. 오랫동안 잊었던 그리운 이에게 엽서 한 장을 써야겠다. #. "그리움조차 꽃으로 피는 계절입니다" #. 작은 씨앗을 뿌려 온 밭이 푸르게 채워졌으니 과연 ..

풍경소리 2023.05.2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