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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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해, 헌 몸,

#.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창구의 바비인형 같은 직원의 물음으로 기억 깊숙이에 압착되어 있던 숫자들을 세상 고갱이의 언저리에서 힘들게 끌어내는 일, #. 늙고도 낡았구나... #. 병원 혈액 채취실 앞의 장사진, 그리고 안내판에 뜨는 '고객'이라는 단어의 혼란스러움, #. 내 몸에 꽂힌 채 요지부동인 빨대들, 그 통로로 술값 아닌 대가를 지불하고 은밀해야 할 온몸의 구석구석을 공손하게 내 보이는 일, #. 조영제가 몸 깊은 곳에서 화염병 처럼 터졌다. #. 새해 벽두를 병원 순례로 열었다. #. 다시 두 시간 넘어의 운전으로 병원과 도시 탈출, #. 비로소 숨통이 트였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산이 약이고 자연이 명의다. #. 뒷 산 등떼기에 매달린 산사의 범종 소리 은은한 저녁, 개님들 공양 올려..

풍경소리 2023.01.06 (32)

겨울 건너기,

#. 동지 지난지 닷새째 낮의 길이가 쌀알 다섯 톨만큼 길어졌겠다. #. 예보에 관계없이 어떻게든 눈을 뿌리는 하늘, 사방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온통 흰색으로 아득하다. #. 나뭇가지엔 산새들 모습 간데없고 헝클어진 삭풍만 치렁한 산 속, #. 새로이 맞을 새해 첫 달에는 최소한 바람 불어서 최대한 추운 소한 대한이 옹크려 있다 #.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아이가 내민 카드에는 이야기해 줘서 고맙고 밥 줘서 고맙고 장난감 고쳐줘서 고맙고 마트 가 줘서 고맙고... #. 때론 억지 강짜를 부리던 그 작은 속에 이렇게 예쁜 기억의 그릇이 있어서 올올이 펼쳐지기도 하는 것, #. 나는 다만, 네가 있어서 고맙고, #. 아침마다 최강한파가 올 예정이니 알아서 잘 살아내라는 국가적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잔뜩 끼어 입..

소토골 일기 2022.12.27 (25)

접촉에서 접속으로

#. only on-Line을 전제한 물건 하나를 사는 일에 단단히 혼쭐이 나기를 5일쯤 예쁘장한 꼬맹이 차 한 대를 만났다. #. 그 꼬맹이 차 한대에 보험부터 뭔 노무 블랙박스 하고도 선팅 더 하기에 더 더 더... #. 온통의 일들이 목장 풀밭에 쇠똥처럼 널렸음에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 채 손전화 한 대만 불나게 바빴었다. #.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저 경이롭고도 어지러우니 나는 과연 늙었고나··· #. 마지막 번호판 하나를 매다는 일로 또로록 문자 하나 왔길래 첫새벽 컴퓨터를 열고 확인해 보니 산속 고치처럼 꼬부려 잠들었던 밤 새 그 작은 물건 하나를 건네주기 위해 #. 깊은 밤 추운 시간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다시 또 어디로 가고··· #. 얼굴도 모르는 그니들의 추운 노고들이 문득 눈물겨워..

풍경소리 2022.12.2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