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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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틈새,

#. 풀숲으로 사라지는 뱀의 꼬리처럼 시간의 숲속으로 가만히 사라지는 오월의 꼬리, #. 종일토록 초록비가 내렸다. #. 모든 물들이 서쪽으로 흐르는 곳을 지나 모든 냇물과 구름이 동쪽으로 흐르는 마을로 들어왔다. #. 허공 가득 등 푸른 비린내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 먼 도시 친구는 둘째 아이 늦은 결혼이 그저 감지덕지하여 이것도 저것도 온통 고맙기만 한데 시끌번쩍한 무대 풍경에는 그저 무심한 채 빼곡한 하객들 모습을 넋없이 바라본다. #. 모두들 평생의 시간을 걸어 걸어 얼굴과 어깨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성실한 세월의 흔적들, #. 구구절절의 주례사가 왜 필요할고? #. 그니들과 손 잡고 눈 맞추어 따듯하게 바라보았으면 됐지, #. 예식이 막 끝날 때쯤 또로록 문자 하나, #. 가슴에 쌓았던 ..

풍경소리 03:17:01

소만 넋두리,

#. 아침 문안차 공손하게 문 열어 보니 모두 허공의 심장이 되어 떠나고 빈집만 휑하니 남았다. #. 세상이 텅 빈 듯 서운하다. #. 허튼 인사라도 나누고 갈 일이지··· #. 그리고도 다시 도자 장승 안에 여덟 마리, #. 서운한 정 나눌새 없는 숱한 이별들이 가슴속 바람이 된다. #. 하필이면 쥐오줌풀 꽃이라 이름 지었는지 올망졸망한 꽃과 꽃술을 엮은 한 송이 꽃을 보며 연기(緣起)라는 거 오랜 궁구 끝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님을 깨우친다. #. 마당가 백선이 꽃피웠다. 초선의 속눈썹처럼 요염한 꽃술의 모습, #. 오래된 만년필에 잉크를 넣었다. 오랫동안 잊었던 그리운 이에게 엽서 한 장을 써야겠다. #. "그리움조차 꽃으로 피는 계절입니다" #. 작은 씨앗을 뿌려 온 밭이 푸르게 채워졌으니 과연 ..

풍경소리 2023.05.24 (12)

오월 냉면은 서울로 간다

#. 공작이 꼬리깃을 펴는 일은 목숨을 거는 행위이다. 구애를 위한 그 짧은 시간 동안 포식자가 나타나도 즉각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체통에 새끼를 키우고 있는 작은 딱새는 알이었을 때는 문이 열리면 호로록~ 날아갔지만 부화한 뒤에는 온몸으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 우주보다 더 큰 사랑과 모성 본능, #. 자연은 모든 잉간의 교과서이다. #. 감자를 심은 이후 다시 고추를 심고 옥수수를 심고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고 심고... 하다가 저문 강물에 삽을 씻듯 이제 어둠 속으로 흐르는 샘물에 발을 닦고 집으로 들던 시간, #. 재채기 한 열 번쯤, 그리고 오한과 미열, 콧물과 기침, 온통의 고뿔 증세를 일거에 동원하여 한 밤의 꿈길이 제법 울퉁불퉁하였으므로 해열제와 진통제를 한 사발쯤 마셨으나..

소토골 일기 2023.05.20 (19)

아기새 꽃,

#. 소곤소곤 밤 새 내리고도 봄비가 되지 않는 비가 내리고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잠 깨어 일어나는 황홀의 계절을 건넜다. #. 그런데도 여전히 봄 병인가? 아침잠에서 깨어나고도 다시 졸린 증상, #. 마을 꼬부라진 사람들이 모여 빨강 하양 분홍 그리고 노랑 각각 색색의 꽃을 심었다. #. 삭막한 가심팍에 무지갯빛 바람이 불 것이다. #. 들락과 날락으로 며칠을 바쁘더니 여덟 개의 알을 여덟 심장으로 바꿔 놓은 어미새의 마술, #. 하늘 우러러 입 벌린 아기새들은 기어이 꽃이다. #. 요즘들어 사진을 찍으면 자주 초점이 흐려진다. #. 내 눈도 흐리고 세상도 흐리고, #. 신새벽 뜡국 사극에 빠져 며칠째 선잠 깨어 한 시간 반쯤을 티비에 헌납하고 나면 한낮에도 비몽과 사몽의 경계를 넘나드는 증세, #...

풍경소리 2023.05.15 (18)

봉쇄 농법,

#. 운동 길에 마주치는 펭귄 걸음의 할아버지 한 분, 일주일 넘게 인사를 드려도 못 본 척 일관 이시더니만 어제 처음으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셨다. #. 비로소 온 산이 환해졌다. #. 마당 주변으로 돌나물부터 온갖 먹을거리들이 넘쳐 나더니 한 사흘 내린 비로 온통 풀밭, 예초기 돌려 모두 베어 버렸다. #. 부모님 선영 오름 길이 지난해 비로 망가졌으므로 머리를 맞대고 정리와 정비를 도모했으나 모두들 몸의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한 왈가왈부뿐, #. 어느 날 조용히 홀로 가서 팔뚝지 걷어 부치고 해결하고자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 #. 아이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들어 선 새 집 현장 체험을 하겠다고 우르르 몰려 올 기세다. #. 알 낳고 들어앉지 못하도록 일찌감치 쫓아 버릴걸... ..

소토골 일기 2023.05.12 (22)

5월은 오월이다.

#. 장하게 일어 선 풀들과 연두와 초록의 숲 사이로 오월이 들어섰다. #. 찔끔의 비 속에 송홧가루가 노랗다. #. 며느리의 생일에 건성의 케잌 하나 보내며 #. 두 사람의 생일을 만든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썼다. #. 5월 햇볕으론 조금 너무하다 싶은 더위 속에 느릿느릿 밭을 간다. 흙 속에 엎드려 있던 게으름조차 정갈하게 경운 하는 일, #. 뒤집어진 흙살 속에서 열심히 벌레를 물어 나르는 딱새들, #. 이제 막 힘을 써야 할 관리기가 고집 센 당나귀 처럼 일어날 기미가 없어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아랫집 관리기를 내 물건처럼 써서 마무리 하고는 #. 사람의 행복 참 별 것 아니지 싶다. #. 700의 옥수수 모종을 심고도 여전히 빈자리가 남은 밭을 노려보며 아내는 또 옥수수 욕심, #. ..

소토골 일기 2023.05.04 (24)

산드위치,

#, 가는 비 속에 주변 산들 초록 윤기가 찰랑하다. #. 마당 주변에서 두서없이 얻어지는 먹을거리들, #. 딱 둘이 먹을 만큼만 선을 정 하고도 여전히 남아도니, #. 심뽀 가득 담긴 욕심을 언제쯤 비울 수 있으랴, #. 앞 마을에서 고이 자란 고춧모가 이제 옮겨 심을 때가 되었다는 기별을 진작에 듣고도 이제야 부랴부랴 고추 심을 준비를 한다. #. 고운 흙살을 뒤집어 밭이랑 짓고 물 뿌림 장치를 하고 그 간의 게으름을 걷어내는 일, #. 게으른 사람이 비 오는 날 일 한다더니만··· #. 심고 키우고 거두어 일일이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 #. 음식의 맛은 온통의 과정이 손 맛이고 애쓴 맛이다. #. 산 마다 새소리와 비닐하우스를 두드리는 빗소리와 더러는 바람소리, #. 아직 여린 채소들과 참나물과 민..

소토골 일기 2023.04.29 (23)

연두 세상,

#. 올 봄 꽃들은 몹시도 허망했다. #. 변덕의 햇볕에 홀려 화들짝 피었다가 며칠의 된서리에 우르르 얼어 버린 뒤로 #. 주변의 산들이 온통 연두하여 그윽히 푸르다. #. 떨어진 꽃잎처럼 떨어져 누운 사월의 스무날들, #. 눈부시게 하늘을 우러르지 않고 다만 땅을 굽어 피는 꽃, #. 햇볕을 무심한듯 관조하여 조심스럽게 때를 가릴 줄 아는 할미꽃의 내공이다. #. 아침에 서리 내리고 한 낮엔 30도에 육박하는 변덕 무쌍한 날들, #. 낮에 잠깐 비닐하우스 안 모종을 돌보던 중에 땀 바가지가 되어 되돌아 나왔다. #. 꼬맹이 차 에어컨이 나날이 바쁘니 기후 변화 탓만이 아닌 체질 변화의 탓도 또 한 부분이다. #. 몇 달 전 부터 계획한 일이 있어 한 주일째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중, #. 재 너머 시내..

소토골 일기 2023.04.21 (25)

빈둥낙도,

#. 비 보다 먼저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추녀 아래 비 젖은 봄바람이 꽃잎 더불어 옹송옹송, #. 하여 이 봄은 또 전설이 될 것이다. #. 지난 1월의 여행은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겨서 한 겨울부터 새기 시작한 수도파이프는 꼼수의 미봉책으로 이날까지 졸 졸 졸 물을 흘리고 있었으므로 #. 재 넘어 도회의 도사님께 문의한 바 더도 덜도 말고 이십오마넌을 내라는 흰소리, #. 일에 비해 터무니 없는 비용도 그렇거니와 '가급적 셀프' 정신에 위배되는 바 #. 인터넷을 뒤지고 뒤진 끝에 제법 만만한 방법 하나를 얻었다. #. 구닥다리 동 파이프를 잘라 버린 뒤 자른 부위를 용접으로 마무으리~ #. 마누라 붙들고 한 삼일 자랑질을 해도 될 일이건만 아침에 집 나간 아내는 여전히 무소식, #. 우선 급..

풍경소리 2023.04.16 (15)

우체부님전상서,

#. 겨우 겨우 꽃 피운 토종 목련은 서리 한 방에 우르르 무너져 버렸다. #. 세월은 무상하고 산골의 봄날은 유상(有霜) 하도다 #. 아랫집 할머이가 막내아들 대동하고 허위허위 올라와서는 넓힌 길을 이용하여 집 앞의 밭을 돋우고자 하였으나 마을 이장과 몇몇이 시끄럽고 먼지가 난다는 이유로 브레끼를 걸었다는 거다. #. 그런데 왜? 나한테 오셨댜? #. 어쨌거나 틀니 빠지게 할 말 많으신 할머이의 중재 요청을 오지랖에 감싸 안고 마을회의 끝판에 들어가서는 #. 길은 길이다 길 만드느라고 고생한 이를 포함해서 누구든지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도 길 하나 제대로 만들자고 평생의 시간을 들여 책 보고 공부하는 거다. 이게 뭐냐 씨발~ #. 아랫 집 할머이 다시 공사 시작 했다고 신났다. #. 그래서 다시 ..

소토골 일기 2023.04.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