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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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의 맛,

#. 여전히 아프다는 사람을등 떠밀듯 퇴원시키고는연결해 준 협력 병원이란 곳이 영 미덥지 않아#. 매일통원 치료 방식에 더 해휴일엔 자가 드레싱 하여 견디기로 했으므로#.간병 전담가사 전담농사 전담몽땅 전담,#.그리하여나날이 진땀,#. 이제야 깨우치는 것들,나는이때까지 세탁기 사용법을 모르고 살았구나#.내친김에대오각성의 자세로김치 담그기,#.등 뒤에 버티어 선 아내의 이건 이렇게저건 저렇게로 설정되는 길을 따라배추 준비해서 절이고윗 밭에 쪽파 뽑고 다듬어 썰고냉장고에 모셔 두었던 붉은 고추와 마늘과 생강을 정갈하게 준비한 뒤액젓 조금조금... 하였으니#.이 정성이면 됐지따로 맛을 따져 무삼 하리오#. 창 밖에 찬비 내리는 한 낮,할미꽃 보다 더 붉은어중떼기 가사 실습,

소토골 일기 2025.05.01

며느리 밥상,

#.산골 새벽은 여전히 겨울과 내통 하였으므로오늘 아침 또서리가 내렸다.#.그런 속에서도꽃이 피고 연두의 잎이 솟고,#. 주말 시간에 잠깐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결국며느리가 급히 내려와 세끼의 밥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어설프고낯 선 중에도기꺼운 맛,#. 먼 곳에 있는 사람들... 정도였는데일체 된 가족애를 느낀다.#. 지난해처럼앞 마을 아우가 커다란 트랙터를 끌고 올라와서아래 윗 밭 속살을 곱게도 갈아 놓았다#.아내 입원 후농사 일들은온통 홀로의 일이 될 것이다.#. 다만 안도하기는푸르게 일어서는 새 순들처럼아내도 푸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어떻게든고쳐 쓰기로...

풍경소리 2025.04.27

수난 사월,

#. 부처 사 후 개혁파와 상좌부의 분열에 의한Samgha bheda(상가 분열)로 소승과 대승으로 부파 된 이야기들을마음 가득 담고 #.몇 달간 빠져 있던 밀린다왕문 경을 덮고다시아육왕 경으로 바꾸기로 결의했으므로우리 모두 소만큼씩 먹고 헤어 진 오후,#. 집에 거의 이를 무렵아내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이게 발단이 되어두 곳의 병원을 헤맨 끝에 한밤중의 긴급 수술,#.우리 주변의 중요한 것들은 모두 한 글자의 이름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물, 밥, 해, 달, 별... 등 등 등,#. 변비를 미련스럽게 견딘 결과장 안에 수 일을 갇혀 있던 숙변의 내란이 있어결국은천공으로 이어진 것,#.똥조차한 글자로 된 중요함을 새삼 깨닫고#.이 새삼스런 깨우침의 결과는밥 하기청소하기빨래하기에트쎄터러의 온갖 집안일..

소토골 일기 2025.04.24

기습적 계절,

된서리 내린 다음 날,기습적으로 여름이 되었다오들오들 떨던 꽃들은작은 바람에도 잎을 떨구었으므로산골 누옥의 뜨락엔여전히 향기 싱싱한 꽃잎들이아무렇게나 누워 웅성거리고그 틈새농기계에 얻어맞은 옆구리를 끌어안고작은 병원을 찾았더니만맘 놓고 엑스레이팡 팡 팡뤤트겐 사진 속의 나는이미 형해가 분리된 저승의 몸으로구부정한 통증을 끌어안고 있었다산에는들에는온통 연두 연두 소란하건만스멀스멀 낡은 몸을 갉아대는이런저런 통증들봄이몸이아프다.

풍경소리 2025.04.19

사월의 만행,

#. 사월 하고도 열사흘이 지나는 날,눈이 내렸다.#.변화무쌍하게도싸락눈이었다가함박눈이었다가진눈깨비가 되었다가...그리하고도아주 센 바람까지,#.절기로 곡우가 멀잖은 날이니배후에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이 있다는 풍문은어불성설이다.#.그럼으로써배꽃보다자두꽃 보다먼저눈꽃이 피었다.#.밤 새누옥의 창밖을 서성이던 소리들은꽃들의 신음이었을까?#.섶에 붙은 불길처럼활 활 타 오르던 농사 본능조차잠시 주저앉아 버려서#.고물딱지 농기계도늙다리 농사꾼도맘 놓고 게으름 중,

소토골 일기 2025.04.14

춘몽,

#.겨우 내 녹슬었던삽과 괭이 끝에서 잠시 흙먼지가 일더니만대번 겨울의 녹을 벗어던지고 내 땀을 양식으로 하여 성실하게 빛나기 시작했으므로#.드디어 푸석한 밭의 속살을 뒤집었다.#.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 꽃 봉오리그러나산골의 아침은아직도 미덥지 못하다.#.달래가 제법 키를 키웠고냉이도살금살금 꽃을 준비하는 날#. 오랫동안 머릿속을 뒤흔들던어지러운 세상사 하나가 매듭지어졌다고더러는 환호하고더러는 탄식하는 사람과 사람들,#.많이 배우고도여전히 어리석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산 아래너른 저잣거리에 피식 웃음 한 자락 던져두고그저 묵묵히 감자를 심고옥수수 씨앗을 넣었다.#.들판 여린 초록이제법 윤기 나게 자라거든푸른 밥상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배를 반쯤 내놓은 채햇볕 아래 곤한 낮잠에 들어야겠다.#.세상만사..

소토골 일기 2025.04.07

감자를 위하여

#.밖에서 식사를 하게 될 경우, 식탁에 감자 반찬이 놓일 때면어김없이 주인에게 얘기 했었다.- 강원도 사람에게 감자 먹이는 건 실례입니다-#.그럼에도날 풀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감자를 놓는 일이다.#.겨우 내 푸석하게 메말랐던 땅의 속살을 뒤집어공손하게 씨 감자를 넣는 일,#.제 몸을 조각 지어야비로소 통감자로 거두어지는 감자의 일은#.곤비한 몸으로도기어이생명을 길러내는세상의 어머니 같아 숙연하다.#.이번 감자를 넣는 일에는자발적 응원군이 있다.정우 정환이가 팔을 걷어 부친 것,그래봤자 군일만 하나 더^^#. 4월이 되었는데도아침마다 서리 내려서한낮의 시간 변덕 같은 햇살에 홀린 작은 꽃망울들은 제 색으로 화들짝 피기도 전에누런 색으로 절명해 버렸으니#.차라리 여름 같은 늙은 봄이 늘어질 때까지꽃도사..

풍경소리 2025.04.03

봄덧,

#. 오늘쯤은지금쯤은 꺼졌겠거니문 창호지를 뚫고 몰래 밖을 내다보는 심정으로뉴스를 기웃거리지만매번 가슴 무너지는 소식들, #.그렇게 3월이 가고세월이 가고산골짝 이거니 꽃이 피고...#.아득한 마음으로밭에 건성으로 남겨진 지난해 흔적들은 거두고다시거름을 내고 밭을 갈고,#.반장도 늙고이장도 늙고주민도 늙어 빠진 늙다리 마을에서는지난해 신청한 씨 감자에 문제가 있어걷어들여 바꾸는데 한 열흘,이제야 씨 감자 한 보따리를 받았다.#.공손하게 늙은 경운기와 관리기를 깨우고그 힘을 빌어 모난 돌이 지천인 따비밭을 가는 일,#. 바람이 지날 때 마다춥고 어수선했던 겨울의 상처들이 치유되고산 새들은 또 명랑하게 수다하겠지만,#.몽니처럼 다시날 선 바람이 불고 얼음이 어는 아침,#.한 낮엔 어쩐 함박눈이 쏟아지기도 했..

소토골 일기 2025.03.29

난산의 봄,

#.개 한 마리가각선미 고운 아가씨를 끌고 가고#. 개 두 마리가할아버지 한 분을 끌고 가고#.개 세 마리가관절이 시원찮은 할머니 한 분을 끌고 가는#.봄날의 천 변에#.날카롭던 모서리를 부드럽게 손질한 봄바람이겨울의 잔재들을 쓸고 닦는 일로 분주한 정오의 봄날,#.드디어 강원도 살기도썩 괜찮은 날들이 되었는데#.봄맞이는언제나놀이가 아닌일 이어야 하느니라고#.산꼬댕이 마당 가득비료가 쌓이고포대 거름이 쌓여서동동걸음을 하게 하는#.봄은일이로소이다.#.여전히겨울잠에 빠져 있는괭이 호미를 깨워야겠는데#.다시 눈 소식,#.겨울 잘 난 거지가꽃바람에 얼어 죽는다디만...

소토골 일기 2025.03.14

1년보다 긴 겨울,

#.조바심 탓 이겠지만지난 해 보다 두 곱쯤으로 느껴지는 겨울의길이와 강도,#. 경칩이 지난 날내 집 마당에 쌓인 눈에 미끄러져꼬맹이 차를 빠트리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길고 긴 겨울 동안수묵화 같은 풍경 속작은 애벌레처럼 꼬물꼬물 견뎌내던 나는#.3월 하고도여드레가 지나는 날에도 여전히장작 쪼개어 난로 불을 피워야 하는#.난리 법석의 3월,#.우수와 경칩을 앞세워 나돌던봄소식조차불신으로 심드렁한데#.씨 감자 한 박스가 배달되었다.#.그리하고도꼬맹이 트럭에 얹혀 올라온 스무 포대의 비료를겨울의 송곳니처럼 버티고 있는눈 위에 쌓아 놓을 수 밖에 없어서그저 딱하기 그지 없는 춘삼월,#.봄 걸음은 지지부진인데어떻게든 농사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사람의 극성,#.어쨌든모난 돌이 지천인 밭의 속살을 빌려우..

소토골 일기 2025.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