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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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또는 전화기

#.열 번 전화하면열한 번 안 받는 친구가 있다.#. 열흘 전쯤의 전화를 뭉개고 있다가오늘 불쑥 전화 해서는왜 전화했느냐?... 고 묻는통신 문명에 지극히 냉소적인 사람,#.그저 안부가 궁금하여전화해야지전화해야지염불을 하다가이제는 전화를 했는데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너도 나도 중증으로 망가져 가고 있다.#.아내는 전화기를 어디다 두었는지 찾아 헤매기를하루에 25시간일주일에 8일씩,#.하이빅스비라는 것이 있다더라알라딘 램프의 요정처럼"하이빅스비 전화기 찾아줘"하고 주문을 하면특정음으로 위치를 확인해 주는 기능인데언젠가는 냉장고 안에서 출토된 일도 있었다.#.숨 쉬는 횟수보다 더 많이찾아줘~ 찾아줘~ 하였으므로주문을 견디다 못한 가엾은 하이빅스비가과로로 인해 홀연히 까무러친 일도 있었다..

풍경소리 2024.06.17

12년 만의 미사

#.젊은 신부, 수녀님이산속 누옥을 찾아왔던 날딱 10분만...으로 못 박았던 방문 시간이근 한 시간 가량의 수다로 이어졌다.#.그니들의 얘기 속에서나는 자주 냉담 신자가 되었으나진짜 냉담은교회안에 있다는 여전한 고집,#.마음 정리...가 늘어져3개월 가량 늦은 이행이 되었다#.그리하여12년 만의 미사,#.더러의 낯 익은 신자들이세월의 낙진에 뒤덮여더러는 환자로 바뀌어 있었고#.주님의 어린양 대신늙은 양들만 빼곡히 들어앉아 만들어내는#.여전히막연한 경건, #.다시 생각해봐도신자 정년제가 필요하다.#.120년이 넘은 성당 첨탑에 종소리 대신 새소리 은은한 한 낮,거룩도 하여라~

풍경소리 2024.06.11

신성한 새벽,

#. 정기적 병원 순례,정밀 검사라 이름하여몸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고#.몸 안에서 화염병이 터지는 것 같은의료적 테러,그리고자발적 물고문으로 마무리 되는CT 검사,#. 젊어서는 돈을 위해 건강을 버리고이제는 건강을 위해돈을 버리는 일,#.병원은 이제나이든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건지곳곳에 차고도 넘치는 노인 행렬,#. 그신앙적 분위기,#.어렵지 않게펭귄 걸음을 걷는 이들과 마주친다.#.저 상황은 피했으면... 하지만누군들 이런 일들을스스로 끌어안은 이가 있을까?#.멀어진 젊음무너진 권위,#.잘 먹고잘 사는 일을 넘어이제잘 늙고잘 죽는 일에 곰곰해야 할 때이다.#.치유의 마지막 처방처럼새벽 산 길을 걷는다.#.인위의 소리가 아닌새소리와물소리그리고바람의 등에 얹혀 소근소근 들려오는숲의 전설들,#.참신성한 새벽,

풍경소리 2024.06.06

껍데기와 알맹이

#. 수업 끝났다고교문 밖으로 뛰어나온 1학년은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 학교 앞 놀이터로 달려갔다.#.역시아이의 즐거움은학교 밖에 있고가방 밖에 있고교과서 밖에 있는 것,#. 멀뚱하게 기다린 사정 아랑곳없이 뛰고 구르고 벌레 잡아 주머니에 넣고... 하다가목이 마르니 음료수 사 오라는 심부름까지,#.말년 팔자가어이 이 모냥인지, #. 그러나 또저토록 연한 알맹이들이 있어나는 쭉정이가 되지 않은 껍데기로 살 수 있는 것 일 테니#.음료수에 옵션으로아이스크림 하나 얹어 사는이 비굴한지극정성,#.유월이 되었다.#.뻐꾸기 울음소리허공 가득하고#.초록은 저토록무성하니#.꽃 진 자리마다 울울창창한 햇볕들이유월의 서른 날들로 달게 익어 갈 것이다.

풍경소리 2024.06.01

삽 한자루,

#.딱히 정한 일거리가 있어서 보다도그저뒷짐에 삽 한 자루 든 채논과 밭을 한바퀴 둘러보는 새벽 농부의 풍경그 상비적 자세,#. 요즘 그 짓을 한다.#.감자가 너른 잎을 펼치고옥수수 정강이가 제법 튼실해졌고고추가 꽃을 피우는 사이속절없이 5월이 가고 #.한 낮 햇볕 속에선단내가 물씬하다#.뻐꾸기 소리가뻐꾹 뻐꾹 들려야 하는데자꾸딸꾹 딸꾹으로 들리는 증세,해장술을 한 잔 해야 할 것 같다.#. 홀로의 적막에 발악을 하듯 기타 치고 노래하고...#. 초록으로 변한 주변 산들연두는 또 한 겹 숲의 나이테가 되었다.#.딱새 한마리개 집 주변을 종종거리며연신 개털을 물어 나르고 있다가장 은밀한 곳을 빌어개털 집 한 채를 어리고그 안에 창공을 꿈꾸는새알 다섯 개,#.흐린 저녁어둠 속에서 더욱 증폭되어 들리는 개구리..

풍경소리 2024.05.26

없그레이드,

#.새벽 청량한 바람에 꽃 피운 백선의 모습이참 요염도 하다.#.아주 가끔이런저런 옷가지들을 가방 가득 싣고 내려오는 아이들,철이 지나고유행에 맞지 않는다며 작업복으로 쓰시라는 배려?#.그리하여 즈이들 옷매무새는 업그레이드 하고내 꼴은 자꾸 없그레이드 되는천생 마당쇠 패션,#.늘 그랬듯이장모님 기일을 택해 처가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내의 살짝 들뜬 모습,젊어서도 늙어서도친정은 여전히어머니로 존재하는 것인지,#.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셨던 등 굽은 시간 위에 얹혀사는 것,기어이 아픈 형제가 있어불참의 가슴 구멍을 만들어낸다.#.결혼 무렵에는하염없이 덜컹이며 다녔던 비포장의 친정 가는 길은#.내비게이션조차 혼돈스러울 지경으로새로운 길들이 많아졌음에도길은 예전보다 더 밀리고 어지러..

풍경소리 2024.05.17

초록 호흡,

#.이른 아침 산에 들어 살찐 고사리를 얻는 동안고요한 새소리와아주 정숙한 바람과그리고 아름다운 공기,#.폐포 가득초록 물감이 번진다.#.낮 동안 아이들 놀이 같은 농사일에 매달려 있다가해 질 녘에는재 너머 음악회에 가야 한다는 것,#.편한 작업복을불편한 정장으로 바꿔 입어야 하는 일,#.인위는 불편하다.#. 처음으로 함께 간 정우의"베토벤 교향곡"은 베토벤이 직접 연주하느냐는 예쁜 궁금,#.매년의 농사임에도고추모종 심기의 작은 실수가많지 않은 두 번 일을 만들었다.#.고춧모를 다시 사고그 초록 틈새에아이스께끼 한 개 숨겨 주었다.#.아이스께끼의 시원함을 능가하는아내의 호들갑,#.시골살이참 별거 아닌 일로 시원해진다^^

소토골 일기 2024.05.12

5월 풍경

#.앞 동네 아우가고춧모를 실어 주며 들꽃 모종을 따로 담아 주었다.#.비 속에 노란 송홧가루가 둥 둥 떠다니고 있었다.#.반 건달 농사꾼조차 아침부터 고요하게 가라앉은 여유로움,#. 어린이날이 있고다시어버이날이 있는 오월,#.싸움 나도 말릴 사람 하나 없이 적막하던 촌동네 삼거리가광화문 네거리 찜 쪄 먹게 밀리고 있었다#.어린이날을 위하고어버이날을 위해 푸른 오월이가정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빗소리가 곱에 곱으로 증폭되는 비닐하우스에 들어정우 정환이와 함께 고추를 심었다.#.한 고랑 끝날 때마다하이파이브를 하며 즐거운 아이들과의 놀이,#.역시비닐하우스는비일하우스로다.

소토골 일기 2024.05.06

늙은 고양이를 위하여,

#. 늙은 친구와 둘이먼 동쪽 바닷가 찻집에 앉아오래도록 차 한잔을 마셨다.#.그와는 따로 말을 나누지 않아도같이 있는 것 만으로 충분한 대화가 된다.#.반팔 티에배꼽을 내놓은 아이들 조차 추워 보이지 않는 날씨임에도우리는지나치게 두꺼운 옷을 입고지나치게 과묵한 시간을 끌어안고 있었다#.바다와 하늘의 딱 한가운데 누워 있는 수평선처럼이승과 저승의 경계선 같은 오늘을 다독거리고멀게 지나가 버린 시간의 언어들로내일의 절망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바다를 떠나 설악에 들고나는 감자와 옥수수와 온갖 작물들과 풀들과이제 막 극성을 떨기 시작한 다섯 마리의 강아지와지난달 귀촌한 늙은 고양이의 집을 짓기 위하여조금씩 그러나 아주 왕성하게 풀 밭이 되어 가는산골짜기로 돌아왔다.#.노란 송홧가루가 날리기 ..

풍경소리 2024.05.02

젖은 봄날

#. 찰박 찰박 젖은 걸음으로 하루종일 비 오시더니 #. 심긴 작물들은 여전히 소식이 없는데 껑충 까치발로 자란 밭고랑의 풀들, #. 알록달록 흐드러졌던 꽃잎들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떨어져 밭고랑을 분홍색으로 점묘했다. #. 비틀걸음으로 봄빛 속에 흔들리는 나비가 꽃잎인지 허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꽃잎이 나비인지, #. 새 싹 보다 먼저 꽃향기 부터 올올이 자라 오를 듯, #. 이 산골 저 골짜기에 둥지 틀어 사는 세 부부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있다. #. 많지 않은 세 집의 모임조차 날 정하기가 여의치 않아 이렇게 저렇게 상의를 한 끝에 결국 아침 모임이 되었다. #. 이 산꼬댕이에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음식점이 있다는 거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있다는 거 경이롭다. #. 사람 ..

소토골 일기 2024.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