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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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치레,

#.긴 장마 속에서 조차기어이 꽃송이를 만들어 내는하늘의 지극 정성,#. 아이들 자랄 때는 백일 치레, 첫돌 치레로 한번씩 아프고 나면 엎그레이드 된 재롱을 피우곤 했었는데#.이 나이쯤에도 치레를 하는건지툭 하면 아파서병원 접수 창구의 대기줄을 길게 하는 재롱?을 떤다.#.어수선한 일들에 등 떠밀려징검 걸음으로 7월을 건너다 보니어느새 하순,#.아이들이 방학을 했다.아이들은 너무 짧다고 이구동성 이지만,어쨌든 우리에겐태산의 무게로 느껴지는 날들, #.정우 정환이에고3이라서 특별히 한 주일만...이라는 쌍둥이들과이번 방학에는기어이 계곡의 물고기를 잡겠노라는 예겸, 예온이,#.주여 마침내 때가 되었나이다.#.알 수 없는 것이아이들 다녀 간 뒤에야 오던 몸살 감기가이제는 온다는 소리만으로도 시작되는건지#.감기..

소토골 일기 2024.07.25

비 탓이다.

#.앞 차의 번호판이 흐리게 보였으므로앵경점을 찾아가 렌즈를 바꿨다.#.조금 더 비싼 렌즈로 할걸 그랬나?여전히 안 보이길래 안과엘 갔더니백내장 수술 날짜를 정해 버렸다.#.말도 하기 싫고누굴 만나기도 싫고책도 글도 다 심드렁한데밥만 먹으면 배가 살 살 아픈 증세,#. 초로의 내과 의사는 즤 맘대로 진경제와 위염치료제에 얹어 자율신경조절제를 섞은 처방과 함께'초기 우울증'이라고 결론 지었다.#.남의 몸뚱이라고이것저것들이 온통 함부로다#.허긴 최근 뉴스 중에성실하고 푸르던 아홉 생명의 삶이뚝 끊어지듯이 길바닥에서 증발해 버리는 일과 일가족 자살 소식과이런저런 세상의 소식들이나를 우울하게 하긴 했었다.#.이딴 걸신경조절제 한알로 다스리겠다는 우리 의사 샘은참 나이브하다.#.그날 저녁재 너머 소도시의 작은 공..

풍경소리 2024.07.18

여전히 촌스럽게,

#.맛있는 음식점을 알고 있는 일이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일 보다가치 우위가 된 시대,#.티비마다먹방이 넘쳐나서그야말로 입 미어지게 먹어대는국적 불명소재 불명과정 불명의 온갖 먹을거리들,#.조리법 대신화려한 사진의 음식점 목록을 찾아 클릭 한방이면 입 앞에 당도하는 세상#.이제 주거 공간에서 주방의 기능은조리가 아닌개수 기능만을 떠맡게 될 것이다. #.어릴 적 가난한 밥상 이거니 불문율이 있었다한 음식만 여러 차례 먹지 않기수저가 그릇을 긁는 소리를 내지 않기음식을 먹는 소리 내지 않기입 안의 음식이 보이지 않도록 먹기하여거친 음식이지만 품위 있게 먹기 등 등,#.가난이 곧 배고픔이었던 시절어머니께서 자주 일러 주시던 말씀,"먹는 게 하도 귀해 탐하면 추해 보이느니"#.이 불문율과 말씀을 이 나이 ..

풍경소리 2024.07.12

장마

#.비 소리로 잠들고낙숫물 소리에 잠 깨는 아침,#.풀이 작물인지작물이 풀 인지#. 온갖 게으름의유일한 핑계는어쩔수 없이 또 비,#.그런 중에도비 틈새를 비집어농익은 자두를 따고오이와 토마토의 유인줄을 묶어주는부정기적 성실조차 썩 기특한 날들,#.일기예보와 기상도를이 나이쯤의 내공으로 완벽 분석한 뒤앞 산을 향해 걷기 시작,이제 막되돌아야 할 지점에서 비를 만났다.흠뻑 비에 젖기 딱 좋은거리와 시간,#.장마철에 한번쯤비를 쫄딱 맞아주는 일,비에 대한 예우이다.#.소슬한 추위는사은품, #.부실한 내공은내상이 되기 일쑤이다. #.해가 어디 있는지가늠할 수 없음에도꽃들은 태양을 향해 성실하게 피어 나고그래서나 또한 해바라기의 얼굴로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흐린날 속의 향일성 화려,#.비 속에화선지 한 묶음이..

소토골 일기 2024.07.05

세월 유월,

#.유월의 서른 날들이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부모님 선영 곁의 그 길을한 달 새 세 번이나 지나쳐 다녔다.#.아내와 번갈아여기가 아프고저기가 걱정되고... 하여대처의 병원을 다녀야 했다.#.그리하고도재넘어 시내의 점 점 흐려지는 눈 때문에 안과와열흘 너머의 어깨 통증으로 정형외과를 오전 오후로 찾아다니는 길,#.열흘이 넘도록 어깨 통증을 견딘 이유는한의원을 순례하며부항을 하고뜸을 하고침을 맞았으나그니들의 말로 이름은 한방치료이나 한 방에 낫지를 않고 두 방, 세 방, 다섯 방... 열 방 하여나날이 거북이 등에 부항을 뜬 꼴이 되고 말아서#.뒤늦게 수정하여 정형외과,#.열흘 가량 통증을 키운 대가로엄청 아픈 주사를 아무 소리 못하고 견뎌야 했다.#.소염진통제항생제항경련제로 버무린 약 한 봉지를 들고 ..

소토골 일기 2024.06.29

옛다 비,

#.건강 검진을 마친 아내는다소 쫄은 모습으로 '큰 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다.#.  허위허위 당도하여 만난큰 병원 의사는 이건 이러하고 저건 저러하여 아무 문제없는걸무엇하러 예까지 왔느냐는 반문,#.病院이病原이다.제기럴~#.아랫집 할아버지배배 돌아가는 옥수수 대궁처럼나날이 시원찮은 관절을 채근하여시도 때도 없이 밭에 물을 주셨으므로이를 가엾게 여기신 하늘이오늘 이른 아침부터 무겁게 열리더니#.천둥에 더하여 비번개에 옵션으로 또 비를 내리심으로써#. 긍휼 하시도다 하늘이여아랫집 할아버지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고혼곤한 낮잠에 드시도다#.지난 4일 연휴 뒤로폐렴성 감기를 시작한 1학년은입원을 할똥 말똥하여주위 모든 이들을 애타게 하더니만#.어찌어찌 집에 남게 된 아기 고양이 더불어하룻밤 이틀 낮 외가 스테이를..

소토골 일기 2024.06.22

전화 또는 전화기

#.열 번 전화하면열한 번 안 받는 친구가 있다.#. 열흘 전쯤의 전화를 뭉개고 있다가오늘 불쑥 전화 해서는왜 전화했느냐?... 고 묻는통신 문명에 지극히 냉소적인 사람,#.그저 안부가 궁금하여전화해야지전화해야지염불을 하다가이제는 전화를 했는데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너도 나도 중증으로 망가져 가고 있다.#.아내는 전화기를 어디다 두었는지 찾아 헤매기를하루에 25시간일주일에 8일씩,#.하이빅스비라는 것이 있다더라알라딘 램프의 요정처럼"하이빅스비 전화기 찾아줘"하고 주문을 하면특정음으로 위치를 확인해 주는 기능인데언젠가는 냉장고 안에서 출토된 일도 있었다.#.숨 쉬는 횟수보다 더 많이찾아줘~ 찾아줘~ 하였으므로주문을 견디다 못한 가엾은 하이빅스비가과로로 인해 홀연히 까무러친 일도 있었다..

풍경소리 2024.06.17

12년 만의 미사

#.젊은 신부, 수녀님이산속 누옥을 찾아왔던 날딱 10분만...으로 못 박았던 방문 시간이근 한 시간 가량의 수다로 이어졌다.#.그니들의 얘기 속에서나는 자주 냉담 신자가 되었으나진짜 냉담은교회안에 있다는 여전한 고집,#.마음 정리...가 늘어져3개월 가량 늦은 이행이 되었다#.그리하여12년 만의 미사,#.더러의 낯 익은 신자들이세월의 낙진에 뒤덮여더러는 환자로 바뀌어 있었고#.주님의 어린양 대신늙은 양들만 빼곡히 들어앉아 만들어내는#.여전히막연한 경건, #.다시 생각해봐도신자 정년제가 필요하다.#.120년이 넘은 성당 첨탑에 종소리 대신 새소리 은은한 한 낮,거룩도 하여라~

풍경소리 2024.06.11

신성한 새벽,

#. 정기적 병원 순례,정밀 검사라 이름하여몸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고#.몸 안에서 화염병이 터지는 것 같은의료적 테러,그리고자발적 물고문으로 마무리 되는CT 검사,#. 젊어서는 돈을 위해 건강을 버리고이제는 건강을 위해돈을 버리는 일,#.병원은 이제나이든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건지곳곳에 차고도 넘치는 노인 행렬,#. 그신앙적 분위기,#.어렵지 않게펭귄 걸음을 걷는 이들과 마주친다.#.저 상황은 피했으면... 하지만누군들 이런 일들을스스로 끌어안은 이가 있을까?#.멀어진 젊음무너진 권위,#.잘 먹고잘 사는 일을 넘어이제잘 늙고잘 죽는 일에 곰곰해야 할 때이다.#.치유의 마지막 처방처럼새벽 산 길을 걷는다.#.인위의 소리가 아닌새소리와물소리그리고바람의 등에 얹혀 소근소근 들려오는숲의 전설들,#.참신성한 새벽,

풍경소리 2024.06.06

껍데기와 알맹이

#. 수업 끝났다고교문 밖으로 뛰어나온 1학년은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 학교 앞 놀이터로 달려갔다.#.역시아이의 즐거움은학교 밖에 있고가방 밖에 있고교과서 밖에 있는 것,#. 멀뚱하게 기다린 사정 아랑곳없이 뛰고 구르고 벌레 잡아 주머니에 넣고... 하다가목이 마르니 음료수 사 오라는 심부름까지,#.말년 팔자가어이 이 모냥인지, #. 그러나 또저토록 연한 알맹이들이 있어나는 쭉정이가 되지 않은 껍데기로 살 수 있는 것 일 테니#.음료수에 옵션으로아이스크림 하나 얹어 사는이 비굴한지극정성,#.유월이 되었다.#.뻐꾸기 울음소리허공 가득하고#.초록은 저토록무성하니#.꽃 진 자리마다 울울창창한 햇볕들이유월의 서른 날들로 달게 익어 갈 것이다.

풍경소리 2024.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