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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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가벼움,

#. 입동 지나고 소설도 지났지만 어쨌든 첫눈이 내려야 겨울이다. #. 하늘 깊이에서 그리웠던 이의 엽서 같은 눈이 내리면 아직도 설렐 수 있다는 것, 잠시 또 메말랐던 가슴이 촉촉해지고 #. 저 아랫 집에서 넉가래로 눈 치우는 소리가 이승의 가장 낮은 바닥을 긁는 것 처럼 갈비뼈 사이로 들려오면 산골짜기 적막한 겨울이 시작되는 거다. #. 정우와 정환이는 당초 1박 2일의 계약 사항을 2박 3일로 변경한 채 점령군 처럼 몰려왔었다. #. 아이들은 우리를 참 많이 움직이게 했다. 밥 줘 목말라 호떡 먹고 싶어 술래잡기 놀이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워쩐 싸움 놀이에 말타기와 오만가지 에트쎄더러, #. 나는 기진과 동시에 맥진 증세, #. 저녁 잠자리에서 두 아이가 말했다 - 할머니 내일은 차돌박이..

풍경소리 2022.11.30 (22)

고라니 배추,

#. 초저녁에 잠들어 세 번의 마디로 깨기를 반복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 난 시간, #. 미명의 세시쯤이었고 창가의 감자, 제주의 하르방 그리고 어린양 한 마리가 낮은 스탠드 불빛에 선하품을 쏟아낸다. #. 器物조차 氣物이 되는 시간이다. #. 논어부터 노자와 장자와 성서와 주역과 금강경이 모두 한 목소리로 같은 곳을 향해 가자는데 사람들이 저 마다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옳네 왈가왈부하고 있을 뿐, #. 그렇게 새벽에 잠 깨어 두 시간여, 이제 동창이 밝을 모양이니 책 덮고 쌀 씻어야겠다. #. 고라니가 남겨 둔 배추 아홉포기를 거두었다. 300 모종을 심어 아홉을 거두었으니 황송하기 그지 없다. #. 평상시 같으면 밭에 버려졌을 볼품새 없는 배추 마져 기꺼이 거두었으니 이 또한 고라니 은덕이다. #...

풍경소리 2022.11.26 (17)

소설 雨,

#. 김장 끝나고 이런저런 뒷 일을 대략 정리한 날부터 오래 덮어 두었던 책을 펼쳐 들고는 3일 만에 다섯 권, #. 눈에 박힌 활자들이 모래알처럼 껄끄러우니 눈 들어 사물을 보는 일이 온통 고행이다. #. 무릇 때를 가려해야 하는 일들을 억지 부린 결과이다. #. 추울 때 까지만으로 선을 정한 바깥 설거지는 도대체 추워지지 않는 날씨 탓에 오늘도 여전히 발등 찍는 일이 되었다. #. 하느님 지금이라도 빨리 추워져야지 주부 습진을 떨칠 수 있사옵니다~ #. 딸이 제안했다. 한 달에 딱 한번 아이들을 맡아주면 즈이 부부끼리 1박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 주중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 내 대답, 너희들로부터 해소된 스트레스 우리에겐 스텐레스로 쌓일 거다. #. 나무들 제 몸의 잎을 ..

풍경소리 2022.11.23 (18)

어쩌다 증조,

#. 손 윗 동서의 큰 아이가 대학을 다니던 중 결혼했고 다시, 그 아이의 아이가 대학 졸업 전 장가를 가서는 지난주에 아이를 낳았으므로 어쩌다 증조가 되는 왕뻘쭘 상황이 빚어졌다. #. 그러나 나는 좀 괜찮다. 결혼 늦게 한 막내 처제의 아이들은 시집 장가도 안 간 새파란 청춘들이 어느날 문득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으므로, #. 백두가 집에서 나와 낙엽 수북한 곳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낭만 좀 아는 똥개, #. 늦가을 인색한 햇볕에 몸을 뒤척이던 마지막 고추는 결국 건조기로 들어갔다. 진작 이럴 것이지... 의 잔소리를 빠뜨리지 않는 아내의 내공, #. 김장을 했고 김장 뒤의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정리했고 했고 하고 또 하였으므로 이제 약 취한 바퀴벌레처럼 발라당 드러누워 쉴 수 있어야 마땅한 일..

풍경소리 2022.11.15 (20)

김장 후,

#. 김장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이다. #. 따라서 김치도 필수가 아닌 선택의 식품이다. #. 고춧가루와 양념들로 화장을 마친 배추들은 땅속에 묻힌 항아리가 아닌 김치냉장고에 모두 수감되었다. #. 그리고 동치미 대파 김치 섞박지... 등 등, #. 김장을 하는 이도 김장을 돕는 나도 서로의 고단한 몸이 소금에 절은 배추보다 더 무겁다. #. 내년엔 우리도 김치 사 먹기로... 마음먹었다. #. 이박삼일 동안 정비 공장에 누워 있던 차를 찾으러 가는 시간, 시골 버스 안에는 늦은 오후의 햇살만 가득 흔들리고 11월의 몇 날들이 서툴게 춥고, #. 초로의 여인네 둘이서 햇살보다 더 끈적한 수다를 늘어놓는 끄트머리 "뭘 먹어야 아픈데 읎이 오래 산대유?..." #. 뱀에게 불로초를 빼앗긴 길가메시의..

소토골 일기 2022.11.10 (18)

함께 가는 길,

#. 바람처럼 시월이 비워졌다. #. 달력은 헐렁하고 세월은 묵직하고 #. 나뭇잎들이 허공에서 쏟아져 내려 보도의 삭막을 점묘하고 있었다. #. 그걸 한사코 사진에 담겠다고 발걸음 멈춘 채 이리 째려보고 저리 찍어 보고 #. 새로 정한 걷기의 산길은 가을의 사타구니로 향해 있었다 #. 아이의 돌날, 하루 전 시간을 여벌로 얹어 손 윗 동서 댁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아침상 준비 과정이 이채롭다. #. 처형이 달걀을 꺼내면 동서는 프라이팬을 대령하고 고기를 꺼내면 칼과 도마를 대령하고 #. 입 속의 혀 처럼 혀 끝의 꿀 처럼, #. "···떨어진 은행나무 잎은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이라고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내뱉은 요절한 시인의 구시렁 때문인지 가로 청소원이 아주 힘센 송풍기로 나무 아래의 낙엽..

소토골 일기 2022.10.30 (22)

가을 박제,

#. 연일 서리의 강습, 시들어 가는 꽃송이를 화병에 담아 식탁에 놓아두는 일로 내 기억의 갈피에 또 한 번의 가을이 있었음을 나이테로 둘러둔다. #. 가만히 생각해보니 백수가 무었 때문에 어두운 새벽 길에 운동을 나서야 하나? 추운 날의 새벽 운동 이거 상당히 신경 써야 되는 일이다. 말하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중무장을 한 뒤에야 집 나서기가 가능하다는 것, 어둡기는 또 어떻고, #. 하여 점심 전 시간으로 바꿨더니만 햇볕은 따사롭지요 산길은 상쾌 하지요 보이는 사방이 알록달록 단풍빛이지요 #. 이 버릇 하나 고치는데 근 30년, #. 급행열차가 거만하게 지나가던 산골의 철길이 폐선된 뒤 시골마을 곳곳의 허공이 열리고 있으니 실개천과 어울어진 또 다른 개천(開天)이다 #. 통행 제한 높이 ♣.♠m..

풍경소리 2022.10.26 (24)

이모티콘에 대하여,

#. 참 독하기도 하지, 며칠의 서리로 주변의 푸르렀던 잎들 모두 주저앉았건만 이 맘 때 쯤에야 향기 가득한 꽃으로 피는 들국화, #. 이제 제법 겨울 준비가 된 듯하여 그만 좀 누워야겠다... 마음먹을 때쯤 김장할 때 써야 할 바깥 수도가 덜커덕 고장이 나서 허리가 얼큰하도록 삽질하는 동안 머리, 어깨 위로 깃털처럼 가볍게 뛰어내리던 나뭇잎들, #. 가을은 깊고 통증도 깊고녀~ #. 외할머니 품에서 키워진 예온이는 갖은 아양과 굴종에도 불구하고 그저 멀뚱 새침하다. #. 아이 돌잔치를 정리하는 시간, 아이의 외할머니께 정중히 인사했다, "아이들 키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 처가 밀착도가 더 큰 아이들이 외가 친밀도가 훨씬 더 큰 아이들로 키우는 일, 장차 이 세상은 모계 중심으..

소토골 일기 2022.10.2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