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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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설,

#. 홀로의 점심, 아침 후 남아 있던 팽이버섯 소고기 볶음에 선사시대 부터 냉장고에 들어있던 가락국수 사리와 그렇지 봄 이로구나 윗 밭에 올라 냉이 다섯 뿌리 씻어 짬뽕하여 버무려진 맛, #. 스스로 이름하여 환장적 봄 맛 이거나 세상의 모든 맛을 지배할 전대미문의 창조적 한 끼! #. 춘분에 털썩 눈이 내렸다 겨울 가기도 힘들고 봄 오기도 힘든 산꼬댕이~ #. 새로운 환경 부적응 증세가 있는 4학년과 새로운 환경 찰떡 적응 증세가 있는 1학년이 손 잡고가는 환상의 등교, #. 앞에 가는 1학년과 뒤에 가는 4학년, 하늘 조차도 알쏭 하시도다^^ #. 묵은 밭의 마른풀들을 말끔히 걷어내고 거름을 올려서 펴고 빗질하듯 경운 하는 일, #.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농사 본능이 작동하여 배터리 새로 끼운 장난감..

소토골 일기 2024.03.22

불쑥 봄,

#. 강원도의 질기고 긴 겨울에 갇혀 있던 마을 아낙들이 네 밭 내 밭을 가릴 것 없이 냉이와 달래를 캐어 보리밥을 하겠다는 대단히 봄 스러운 결의의 불똥은 잠깐 말참견을 했던 내게로 튀어 우리집 좁은 현관을 신발로 가득 채우는 일이 되고 말아서, #. 기왕 이 꼴이 되었으니 이장도 부르고 장청회장도 부르고 지난 가을에 돌아가신 저 아랫집 아저씨도 부르고... #. 잠깐의 낮잠 끝에 허큘리스급 지대지 미사일을 다발로 맞은 꼴이 된 아내는 승깔 낼 새 읎이 보리밥 하랴 안주 장만하랴 #. 어쨌든 일 저지른 나는 그저 성실한 마당쇠가 되어 안 시키는 심부름 까지 도맡아 해 내느라 종횡과 무진의 신공, #. 아직 싹도 오르지 않은 달래를 귀신 같이 캐고 여전히 얼어 죽은듯 자줏빛으로 엎드려 있는 냉이를 후벼 ..

소토골 일기 2024.03.17

나들이 후유증

#. 50%의 매연과 48%의 소음과 2%의 한숨, #.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길, #. 낯 선 것들이 더 많아진 거리에는 낯 선 사람들만 가득했으므로 #. 나는 먼 나라의 이방인 처럼 모든것이 서툴었다. #. 안동으로 떠나는 3시 22분발 기차를 기다리는 일군의 사람들이 잠시 서울 속에 겡상도를 만들어내는 대합실, #. 그 소란의 틈새에 비둘기가 날고 바람이 휘청거리고, #. 여전히 조금 추운 대합실 의자에 앉아 창의 크기로 잘린 서울의 하늘을 본다. #. 향토 농산물 특별 매장과 회색 비니 모자를 쓴 비구니와 힘겨워 보이는 여행 가방을 끄는 이국의 처녀들과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한량의 플래카드와 #. 모두 섞여 만들어진 도시 속에 따로의 너와 홀로의 나와 우리가 아닌 우리들이 용케도 한곳으로 흐르고 ..

소토골 일기 2024.03.12

봄, 강아지,

#. 음지에는 여전히 잔설이 옹크려 있고 산골 누옥의 마당에는 꼬마회오리가 어지러운데 여린 햇볕을 공손히 받들어 냇가의 버들강아지 눈을 떴다. #. 우수 경칩이 지났으니 당연히 봄으로 가는 길 이건만 이런저런 봄 조짐들 앞에 그저 또 놀랍고 감사한 산골짜기, #. 정우는 4학년이 되고 정환이는 1학년이 되었다. #. 대견하고 경이로운 아이들의 시간 뒤에서 나는 바람 같은 세월에 덜미 잡혀 무럭무럭 늙어가고 있다. #. 혼자 비닐하우스 두 동을 정리하는 일, 간간히 산짐승이 지날 뿐인 진공의 적막 속에서 자주 쉬며 간혹 노래했다. #. 발악도 음악이 되는 적막의 긍휼, #. 지난 해와 크게 다르지 않게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온몸을 붉고 맵게 물들일 고추를 심어 먼 곳에 사는 지친들과 나누는 일, #. 시골..

풍경소리 2024.03.07

척사(擲柶)로 척사(斥邪),

#. 마을에 신발 있는 사람 모두 모여 윷놀이 한판, #. 겨우내 지붕 낮은 집안의 칩거를 떨치고 #. 추운 바람 아랑곳없이 모두들 아지랑이처럼 일어서 서 덩실 춤 한판, #. 평균 연령 70대, 많이 모일수록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이상하고 누덕진 세월, #.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마저 작은 바람에 조차 삐그덕 관절 통증을 쏟아 냈다. #. 우수 지나 경칩이 코 앞 이건만 #. 창 안에는 봄 꽃 창 밖에는 눈 꽃 #. 이제 다시 모난 돌이 지천인 산골짜기 작은 밭을 깨워야겠다.

풍경소리 2024.03.03

영농 결의 대회,

#. 동쪽 마을은 눈덩이의 피폭이었다. #. 하여 고성까지 올라가 주유(周遊)하리라는 당초 계획은 동로(凍路) 아미타불, 건봉사 입구에서 차를 돌렸다. #. 당초 계획의 차질로 시간 벌이를 한 덕분에 푸른 파도를 넘나들던 등 푸른 생명들만 더하기로 제 살을 베어야 했다 #. 푸른 하늘 한 잔, 너른 바다 한 점, #. 하늘은 여전히 파란 눈덩이로 무장하고 있었으므로 어디를 보든 눈 부시고 어디를 가든 눈 시렸다. #. 술 취한 이들이 마을 관광을 마을 강간으로 발음할 때쯤 #. 메들리 오두방정으로 멀미를 일으키던 버스는 우리 모두가 사는 지붕 낮은 집들의 마을에 도착했으므로 #. 소금 맞은 미꾸라지처럼 들 뛰던 우리 모두 봄철 농사 준비 끝,

풍경소리 2024.02.25

갈쑤록 태설(太雪)

#. 입성 고운 아나운서가 확률 60%의 눈을 예고하던 저녁, #. 하늘은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는지, #. 낮 동안 시작한 비와 눈을 밤 새 발목이 묻히도록 쌓아 놓은 채 날 밝을 시간엔 시치미 똑 뗀 채 그쳐 있었다. #. 쓸기를 포기하고 넉가래로 밀고 긁어야 하는 노고, #. 우수가 저 멀리 지나쳐 있으니 올봄은 또 난산이다. #. 그럼에도 남녘에서 들려오는 알록달록의 꽃 소식, #. 마침 앞마을 아우의 고추 싹이 돋았노라는 기별이니 아지랑이 보다 먼저 일어서 서 겨우내 묵혀 두었던 비닐하우스를 손질해야겠다.

풍경소리 2024.02.22

명절 후,

#. 극성의 시너지 효과 #. 사내아이 셋 틈에 지지배 하나, #. 극성의 핵이다. #. 장차 이 노릇을 어이할꼬 #. 세배 돈은 작년 받은 돈의 세배여야 한다는 억지, #. 아내의 지청구로는 내 발등 찍은 결과란다. #. 명절 같은 거 없어야 한다. #. 아이들은 콩나물 처럼 자라고 #. 아이들 자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는 늙어가고 있다. #. 아이들 떠난 자리 두시간 넘어의 복구 작업, #. 에고 삭신이야~

소토골 일기 2024.02.14

시나브로 봄,

#. 몇 차례 불규칙한 혈압과 맥박의 요동으로 병원 응급실을 들락여야 했다. #. 전체적으로 사용년수 도래에 따른 마모증세인 것 같다. 이쯤이면 병원엘 갈 것 없이 천수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 오랫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에서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아니한 친구 아버지의 얼굴을 본다. 그도 나도 이젠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세월을 사는 건가 보다. #. 고개 넘어 소도시에 지점을 개설한 후배가 또 일주일에 이틀의 시간으로 나를 도와주십사의 읍소가 있었으나 이제 다시는 내 남은 시간을 굴종의 시간으로 만들지 않겠노라는 퇴직 시의 결의를 다짐하고 다짐하여 기어이 고사, #. 산 깊은 곳에 들어앉은 음식점에 앉아 무슨 맛으로 무얼 먹는지 모르는 음식들을 꾸역꾸역 먹었다. #. 집 안 조리 기구에 ..

풍경소리 2024.02.08

생애 최초의 말년,

#. 정환이는 오늘도 땡땡이, #. 생애 최초의 유치원 말년, #. 말년 병장보다 더 느긋하시다. #. 초딩이 입학 준비를 위해 세 번의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데 두 번째 주사를 맞은 뒤로는 조금 거만해졌다. #. 학교 갈 때는 정우 엉아와 함께 하교 길은 당연히 할아버지가 데리러 와야 한다는 완벽한 자기 종결, #. 정우에 이어 난 뭥미? #. 무거운 눈이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정우, 정환이, 예겸이에 예온이 까지 얼기설기 만들어 세웠던 눈과 얼음으로 빚어진 하이브리드 눈사람이 입춘을 맞이하여 푸석하게 말라가고 있다. #. 겨울의 잔재,

소토골 일기 2024.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