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분류 전체보기 1759

좌충우돌 시골살이

#. 먼 도시 병원의 cancer center, 이런저런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던 의사는 6개월 검진 기간을 1년으로 늘였다. #. "깨끗하고 좋다"는 짧은 소견, #. 그가 정 해준 1년의 시간이 어쩔 수 없이 내 미래의 전부가 되는 아프고 우스운 오늘, #. 해도 해도 하는 사람의 노고일 뿐, 일 한 자리 표도 나지 않는 억지 이거나 안 해도 될 일...들의 끝에 어깨와 목의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으므로 묵히고 키운 후에 정형외과를 찾아 처방보다 먼저 핀잔을 들어야 했다. #. 손바닥이 온통 거칠어질 만큼 고된 일들을 잠시 접어 두고 작업복 대신 정장으로 포장을 바꾼 뒤 음악회를 간다. #. 도시의 밤 한켠이 베토벤의 선율에 젖어 있던 시간, 소토골 하늘에는 하마스의 로켓포 같은 우박이 퍼 부어졌으므로 ..

소토골 일기 2023.10.27

청출어람,

#. 상강 전부터 쏟아붓던 서리의 공습을 피해 화분들은 모두 집안으로 대피했다. #. 서리의 낭비 이거나 겨울 남용이다. #. 일찌감치 제설 장비를 점검한다. #. 이른 새벽에 쌀을 씻다 보니 반쯤 남은 고구마가 있길래 깍둑썰기 하여 밥솥에 넣었다. #. 드디어 마누라에게 배웠으나 마누라를 능가하는 밥쟁이가 되어가는구나, #. 시월 하고도 스무 나흗날 가을 깊은 새벽에 밥 익는 냄새에 취해 반가사유의 청승,

풍경소리 2023.10.24

겨울로 가는 길,

#. 추운 거미는 단풍잎과 이슬로 연명 중, #. 박제된 여름, #. 예보된 1℃에 산골짜기 하늘은 마음 놓고 무서리를 쏟아부었다. #. 뜨거웠던 여름의 기억조차 세월의 나이테에 묻혔으므로 누옥의 창문을 모두 닫는다. #. 길게 누운 산그림자 끝에 앉아 고구마 대신 줄기를 거두는 동안 #. 우르르 산비탈을 내려온 바람이 내게 겨울로 가는 길을 물었다.

소토골 일기 2023.10.18

착종 계절,

#. 연휴 뒤에 또 연휴, #. 그리하여 손님 뒤에 또 손님, #. 개울 옆을 걷는 새벽 운동 길을 햇볕 넉넉한 한 낮 가을의 사타구니로 향한 산길로 바꿨다. 나무와 바위들이 울긋불긋 말을 걸어왔다. #. 병원 대기실에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를 대기시켜 놓은 뒤에야 정우의 이빨 치료가 끝났다. #. 거울 앞에 서 서 이빨이 모두 몇 개인지 세어 보았다. 휴우~ #. 선풍기와 난로, 반팔 티셔츠와 겨울 파커가 뒤죽박죽으로 걸려 있는 바람벽, 투명한 햇살이 치렁한 한낮과 서리서리 겨울이 담겨있는 저녁의 바람결, #. 여름과 겨울이 뒤섞인 착종의 계절, #. 앞산 정수리가 고양이 걸음으로 붉은 치장을 시작했다.

소토골 일기 2023.10.10

동동 시월,

#. 문득 가슴부터 시린 시월, #. 봄은 한 걸음 늦게 오고 겨울은 열 걸음 빨리 오는 산골, 바람 모서리가 부쩍 날카롭다. #. 마지막 고추를 거두고 들깻잎을 따고 고구마를 캐고 #. 이렇게 동동거리다 보면 어느 날 불쑥 점령군 같은 겨울이 닥치곤 했었다. #. 헝클어진 바람이 추녀 끝 풍경을 함부로 걷어차고 지나가는 산골 #. 아침 안개속에 가만히 옹크려 있는 겨울을 본다.

소토골 일기 2023.10.07

열무 김치,

#. 김장 무와 배추를 솎아 붉은 청양고추 벅 벅 갈아 넣고 김치를 담갔다. #. 청양고추를 붉게 익혔던 지난여름의 더위가 독한 매움으로 입 안에 번졌다. #. 이남박 가득 비벼 든 채 삼일 굶은 풀먹이 생명처럼 배 두드려 가며 먹고는 하늘 우러러 맴 맴 맴, #. 버섯을 딴다고 산으로 드는 마을 할머니 등 뒤로 뚝 뚝 나뭇잎이 지거나 세월이 지거나, #. 문득 외롭고 자꾸 서러워지는 시월,

소토골 일기 2023.10.04

순환

#. 명절 전에 위와 장을 모두 들여다봐야 했다 그리하여 단골병원 의사는 나보다 더 내 속을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 꽃 진 자리마다 옹골진 열매가 되어 가을바람에 허공 그네 뛰기, #. 아내는 아이들 명절빔을 손수 만들겠다고 며칠의 밤이 깊도록 재봉틀 신공 중, #. 살림의 정수인 밥 짓기 설거지 하기에 집 안 청소하기를 며칠 째 임에도 보조역으로 주변 맴돌기, #. 나도 얼른 재봉틀을 배워야겠다. 장차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 오지도 말고 가지도 말자고 그래서 오롯이 나를 위한 명절을 만들자고 일찌감치 못 박아 두었지만 #. 명절 뒤의 휴일이 넉넉도 해서 하늘을 뛰어오르고 싶은 아이들이 우르르 산속으로 몰려들었으므로 천방이 갈라지고 지축이 흔들리는 날들, #. 이웃 도시의 유적지를 둘..

소토골 일기 2023.10.02

추석 마중,

#. 마을 입구에 "고향 방문을 환영" 한다는 현수막 하나 명절빔 되어 펄럭이기 시작했으므로 다시 또 내집에 누워 타관의 객창감에 젖는다. #. 송편처럼 곱던 누이의 웃음도 먼 길을 걸어 당도하던 그리운 사람들도 이제는 이승에 있지 아니하여 #. 서 산 눈시울이 붉은데 #. 추분 지난 절기에 일찌감치 겨울스러운 산골 저녁, #. 아랫목에 밥 한 그릇 묻어 놓고 밤 깊도록 따숩게 기다리시던 엄마 생각,

풍경소리 2023.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