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분류 전체보기 1759

갈쑤록 태설(太雪)

#. 입성 고운 아나운서가 확률 60%의 눈을 예고하던 저녁, #. 하늘은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는지, #. 낮 동안 시작한 비와 눈을 밤 새 발목이 묻히도록 쌓아 놓은 채 날 밝을 시간엔 시치미 똑 뗀 채 그쳐 있었다. #. 쓸기를 포기하고 넉가래로 밀고 긁어야 하는 노고, #. 우수가 저 멀리 지나쳐 있으니 올봄은 또 난산이다. #. 그럼에도 남녘에서 들려오는 알록달록의 꽃 소식, #. 마침 앞마을 아우의 고추 싹이 돋았노라는 기별이니 아지랑이 보다 먼저 일어서 서 겨우내 묵혀 두었던 비닐하우스를 손질해야겠다.

풍경소리 2024.02.22

명절 후,

#. 극성의 시너지 효과 #. 사내아이 셋 틈에 지지배 하나, #. 극성의 핵이다. #. 장차 이 노릇을 어이할꼬 #. 세배 돈은 작년 받은 돈의 세배여야 한다는 억지, #. 아내의 지청구로는 내 발등 찍은 결과란다. #. 명절 같은 거 없어야 한다. #. 아이들은 콩나물 처럼 자라고 #. 아이들 자라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는 늙어가고 있다. #. 아이들 떠난 자리 두시간 넘어의 복구 작업, #. 에고 삭신이야~

소토골 일기 2024.02.14

시나브로 봄,

#. 몇 차례 불규칙한 혈압과 맥박의 요동으로 병원 응급실을 들락여야 했다. #. 전체적으로 사용년수 도래에 따른 마모증세인 것 같다. 이쯤이면 병원엘 갈 것 없이 천수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 오랫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에서 이제는 세상에 계시지 아니한 친구 아버지의 얼굴을 본다. 그도 나도 이젠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세월을 사는 건가 보다. #. 고개 넘어 소도시에 지점을 개설한 후배가 또 일주일에 이틀의 시간으로 나를 도와주십사의 읍소가 있었으나 이제 다시는 내 남은 시간을 굴종의 시간으로 만들지 않겠노라는 퇴직 시의 결의를 다짐하고 다짐하여 기어이 고사, #. 산 깊은 곳에 들어앉은 음식점에 앉아 무슨 맛으로 무얼 먹는지 모르는 음식들을 꾸역꾸역 먹었다. #. 집 안 조리 기구에 ..

풍경소리 2024.02.08

생애 최초의 말년,

#. 정환이는 오늘도 땡땡이, #. 생애 최초의 유치원 말년, #. 말년 병장보다 더 느긋하시다. #. 초딩이 입학 준비를 위해 세 번의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데 두 번째 주사를 맞은 뒤로는 조금 거만해졌다. #. 학교 갈 때는 정우 엉아와 함께 하교 길은 당연히 할아버지가 데리러 와야 한다는 완벽한 자기 종결, #. 정우에 이어 난 뭥미? #. 무거운 눈이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정우, 정환이, 예겸이에 예온이 까지 얼기설기 만들어 세웠던 눈과 얼음으로 빚어진 하이브리드 눈사람이 입춘을 맞이하여 푸석하게 말라가고 있다. #. 겨울의 잔재,

소토골 일기 2024.02.03

사람 포근 마을,

#. 마을 일에 발 들여놓은 뒤부터 이런저런 사람의 일로 백수의 일상이 조금 번잡해지기 시작했다. #. 기어이 마을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여러 의견에 멱살 잡혀 부수고 새로 짓기를 여러 날, #. 주민 모두에게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자꾸자꾸 고치고 덧 붙이기를 하는 대신 기어이 이놈의 규정을 없애 버리는 날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 다분히 정치색으로 느껴지는 화합과 친목을 없애 버린 뒤 그저 웃자고 매년 끄트머리에는 주민 모두 대동단결하여 사다리 타기를 한 끝에 사다리 제일 꼭대기에 이른 사람에게 푸짐한 상품을 주자고 쌩고집하여 관철하기에 이르렀다. #. 어느 의심 많은 이가 연세 많으신 할아버지에게 좋은 상품이 뭐가 있겠느냐는 의문에 아주 간단히 "정력 빤쓰"를 얘기했으므로 곧 마을에서 추방될 ..

풍경소리 2024.01.30

봄 기다림,

#. 네팔을 떠돌고 있는 이들이 꾸샤풀(吉詳草)로 만든 방석 위에 석가모니처럼 앉아 해맑은 얼굴의 사진을 보내고 산골엔 또 눈이 내리고 나는 우익지욱이 쓴 오래 전의 주역선해를 읽고, #. 그리고 눈 부시지 않은 새벽이 왔다. #. 그럭저럭 새 해 첫 달도 어느새 하순의 날들, #. 춥다가 덥다가 눈이 오다가 맑기를 두서없이 반복하던 아득한 허공에 다시 바람이 일고 낯 선 발자국 소리로 눈이 내린다. #. 깡총 소한도 대한도 건너뛰었으니 이제 곧 입춘, #. 그렇게 봄이 온다는데 나는 또 무엇을 하고 누구를 기다려야 하나 #. 겨우내 게을렀던 손을 정갈하게 씻고 공손하게 먹 갈고 붓 들어 입춘첩 몇 장을 쓰고자 한다. #. 입춘대낄 하여 그냥다정 하고자,

풍경소리 2024.01.22

만두 법석,

#. 예겸이 가족의 일주일 북새통 뒤에는 사은품으로 감기가 남아 있었다. #. 덕분에 정들어 궁금했던 시내 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 병원 다니면 일주일 그냥 버티면 7일쯤 앓게 된다는 이노무 감기, 몸 안의 체액이 몽땅 콧물로 흘렀다. #. 며칠째 콧구멍이 얼큰하다. #. 그리고도 극성왕성 하신 아내의 모의로 시작된 처가 식구들의 2박 3일 만두 법석, #. 온갖 수다를 만두소 삼아 산골 한밤이 뜨끈하고 왁자하였으므로 #. 홀로 저 먼 구석에 낑겨 긴 긴 겨울밤 감기 앓기에 좋았다.

소토골 일기 2024.01.13

겨울 무늬,

#. 아득한 하늘에서 분분한 눈송이들 올려다보고 있으면 눈송이 보다 먼저 현기증이 쏟아져 내렸다. #. 추위의 현신, 허공 조차도 간혹 제 모습을 흘려 놓을 때가 있어 저토록 예쁜 문양을 만난다. #. 동지가 지나면 하루에 쌀알 한 톨만큼씩 낮이 길어진다고 했다. 느리지만 봄으로 그리고 여름으로 가는 시간들, #. 갑진년이라 하니 뭔 일을 하든 값진 일이 될 것 같은, #. 허튼 소리에 할머니 한 분 틀니가 빠질 만큼 웃더니 매일매일 한 번씩 들려 요 딴 얘기를 한 가지씩 해야 한다는 거다. #. 스무 장 너머의 입춘첩을 쓰기로 한다 마을 안 많은 이들의 이구동성, 이 또한 오지랖이다. #. 맘 놓고 눈 내리던 날 제 키 만큼의 높이로 우뚝하던 꼬마눈사람들이 더러는 눕거나 엎드려서 겨울의 잔재로 녹아내리..

소토골 일기 2024.01.05

겨울 연가,

#. '주역은 미신 아닌가요?' '태극기를 보고 경례는 하시나요?' '그럼요 우리나라 국기인데요' '다음부턴 하지 마세요 주역 덩어리입니다' #. 많지 않은 주민 의견을 묵살한 채 멋대로 전횡을 일삼던 대동회 몇 사람에게 일을 할 줄 모르거든 정직하기라도 하라...는 호통 끝에 마을 대동회장 일을 끌어 안음으로써 내 발등을 찍었다. #. 예보된 기온은 -10℃ 산골짜기 인심으로 예보된 기온에 4~5℃쯤을 덤으로 얹어 두었을 터이니 온도계는 보나 마나 얼어 죽었을게다. #. 아주 오래 전의 햇볕이 밤새 성냥갑 만한 난로에서 올올이 풀어지기 시작했으므로 옛날 또 옛날 따듯한 나무들의 말씀을 덮어 추운 한 밤을 징검징검 건넜다. #. 이 겨울 풍찬노숙 중인 두 마리 강아지 안부가 궁금하여 내다보니 지난밤 추위..

풍경소리 2023.12.29

낭만과 낙망 사이,

정환이의 크리스마스 카드 #. 기온이 곤두박질하여 사위에 백설이 만건곤하니 고치 속 애벌레처럼 집안에 들어앉아 겨울 속을 표류하는 중, #. 새벽 눈 위에 종 종 종 · · · 새와 짐승들이 남긴 춥고 정직한 행선지, #. 방학을 하면 눈썰매 눈 사람 눈싸움...을 하겠노라는 부리 노란 아이들의 합창, 집 오름 길의 눈은 누가 치우나? #. 눈 쓸어 길을 열고 눈썰매 준비하고 눈싸움으로 기꺼이 맞아주고 눈 뭉치 하나 번쩍 들어 올려 눈사람 머리를 만드는 일과 오만 잡동사니 허드레 일들을 떠맡을 것이 뻔하니 #. 내리는 눈은 잠시 낭만, 내린 뒤의 온갖 일들은 낙망 뿐인 이런 겨울, #. 겨울의 바닥인 동지도 지나 어느새 성탄 전야, 다녀 가신 모든 님들께 평화를 드립니다~

소토골 일기 202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