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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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자리,

#. 말을 타고 달리던 인디언은 잠시 뒤 돌아보며 쉬는 시간을 만든다고 한다. 헐떡이며 쫓아 오는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 #. 하루종일 내 뒤를 헐떡이며 쫓아다녔을 영혼을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를 마련한다. #. 말도 차도 없이 영혼과 손잡고 도란도란 걷는 일, #. 자기 문명을 가꾸는 일이다. #. 발목이 묻힐 만큼의 눈이 내렸다. 봄 꽃 앉을 자리마다 소담한 눈 꽃들, #. 여전히 꼬 끝 매운 바람인데 마을 반장의 알림이 있었다. #. 고추 영농 교육이 있으니 참가하라고, #. 사람의 손으로 고추를 조장하기보다는 고추의 필요에 맞추어 사람이 부지런하면 됐다... 싶구먼, #. 한 주 뒤의 입춘을 위해 입춘첩을 준비하자고 했지만 꼼지락 조차 귀찮은 날들, #. 그저 입춘날 절입 시간 각자의 문간에..

소토골 일기 2023.01.30 (20)

싸바이디 라오,

#. 영하의 첫새벽에 야반도주하듯 집을 떠나 도착한 곳은 영상 30도쯤의 더운 나라, #. 3홉 소주 세 박스쯤을 나누어 장전? 한 열여덟 명의 술꾼 속에 끼어진 억지 여행이었다. #. 잠시 먼 나라 순박한 사람들의 일상에 별스러울 것 없는 백수의 일상을 휘저어 담아서 건들건들 5일의 밤과 낮을 탕진하는 일, #. 놀기 위해서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빈한한 백수의 주머니를 자주 기웃거렸다. #. 먼 나라 도시 가운데에 차려진 평양식당, #. 기예와 음식 팔기와 이런저런 일로 뭉떵거려진 바비 인형처럼 고운 사람들이 신명나는 가락을 쏟아 내었으므로 모두들 손뼉 치고 흥겨워하였으나 홀로의 눅눅했던 느낌들은 또 뭐였을까? #. 일행을 버려둔 채 이른 야시장을 어슬렁 거리다..

풍경소리 2023.01.25 (19)

새 해, 헌 몸,

#.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창구의 바비인형 같은 직원의 물음으로 기억 깊숙이에 압착되어 있던 숫자들을 세상 고갱이의 언저리에서 힘들게 끌어내는 일, #. 늙고도 낡았구나... #. 병원 혈액 채취실 앞의 장사진, 그리고 안내판에 뜨는 '고객'이라는 단어의 혼란스러움, #. 내 몸에 꽂힌 채 요지부동인 빨대들, 그 통로로 술값 아닌 대가를 지불하고 은밀해야 할 온몸의 구석구석을 공손하게 내 보이는 일, #. 조영제가 몸 깊은 곳에서 화염병 처럼 터졌다. #. 새해 벽두를 병원 순례로 열었다. #. 다시 두 시간 넘어의 운전으로 병원과 도시 탈출, #. 비로소 숨통이 트였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산이 약이고 자연이 명의다. #. 뒷 산 등떼기에 매달린 산사의 범종 소리 은은한 저녁, 개님들 공양 올려..

풍경소리 2023.01.06 (32)

겨울 건너기,

#. 동지 지난지 닷새째 낮의 길이가 쌀알 다섯 톨만큼 길어졌겠다. #. 예보에 관계없이 어떻게든 눈을 뿌리는 하늘, 사방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온통 흰색으로 아득하다. #. 나뭇가지엔 산새들 모습 간데없고 헝클어진 삭풍만 치렁한 산 속, #. 새로이 맞을 새해 첫 달에는 최소한 바람 불어서 최대한 추운 소한 대한이 옹크려 있다 #.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아이가 내민 카드에는 이야기해 줘서 고맙고 밥 줘서 고맙고 장난감 고쳐줘서 고맙고 마트 가 줘서 고맙고... #. 때론 억지 강짜를 부리던 그 작은 속에 이렇게 예쁜 기억의 그릇이 있어서 올올이 펼쳐지기도 하는 것, #. 나는 다만, 네가 있어서 고맙고, #. 아침마다 최강한파가 올 예정이니 알아서 잘 살아내라는 국가적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잔뜩 끼어 입..

소토골 일기 2022.12.27 (25)

접촉에서 접속으로

#. only on-Line을 전제한 물건 하나를 사는 일에 단단히 혼쭐이 나기를 5일쯤 예쁘장한 꼬맹이 차 한 대를 만났다. #. 그 꼬맹이 차 한대에 보험부터 뭔 노무 블랙박스 하고도 선팅 더 하기에 더 더 더... #. 온통의 일들이 목장 풀밭에 쇠똥처럼 널렸음에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 채 손전화 한 대만 불나게 바빴었다. #.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저 경이롭고도 어지러우니 나는 과연 늙었고나··· #. 마지막 번호판 하나를 매다는 일로 또로록 문자 하나 왔길래 첫새벽 컴퓨터를 열고 확인해 보니 산속 고치처럼 꼬부려 잠들었던 밤 새 그 작은 물건 하나를 건네주기 위해 #. 깊은 밤 추운 시간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다시 또 어디로 가고··· #. 얼굴도 모르는 그니들의 추운 노고들이 문득 눈물겨워..

풍경소리 2022.12.21 (20)

눈 쓸어 득도하다.

#. 밤 새 눈 내린 뒤 하늘은 시침이 똑 뗀 채 정지한 듯 푸르러서 진공의 허공에 가느다란 철사줄을 휘두르면 쨍그랑 깨질 것 같은 산골 아침, #. 도시에서 느끼던 소란하고 끈적한 추위가 아닌 명료하고 청량한 산골 추위, #. 추위는 투명하게 전도된다. #. 올 겨울 들어 처음 사용 탓인지 송풍기 시동으로 잠시 용을 썼더니 손바닥에 대번 물집이 잡히고도 아릿한 통증, #. 백수의 손이 참 까탈도 많다. #. 도회 형제의 일로 하룻 밤 이틀 낮 동안 집 비운 사이 집안으로 잠입한 고양이 두 마리가 구석에 모아 두었던 습자 뭉치를 헤집어 놓은 채 찢고 뭉개고··· #.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두 손 들고 무릎 끓려 앉혀 놓고는 반성문 열장쯤 받으려 했으나 요놈들 짐짓 모른척 즈이덜끼리 시시덕 장난질, #. ..

풍경소리 2022.12.15 (26)

취미와 취로,

#. 어떤 이가 신 누구누구를 좋아하면 공산주의자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니의 책이 서가에 세 권쯤 있음에도 다시 새로운 책을 구해 펼쳐 들었으니 이 정도면 새빨간 공산주의자가 될 일이다. #. 마을 저녁 모임에선 날 선 목소리로 신누구누구를 성토하며 거나해지도록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 신누구누구가 쓴 "처음처럼" 여러 병이 빈 몸이 되어 깔깔깔 함부로 나뒹굴던 저녁, #. 산골짜기 늙어가는 부부의 일과란 것이 아내는 집안에 들인 화초를 돌보거나 돌돌돌 재봉틀 돌려 옷을 짓거나 가끔 고양이를 어루만져 밥을 주거나의 우아틱한 취미 생활이고, #. 집 밖으로 동선이 큰 강아지 돌보기와 이런저런 허드렛일들, 말하자면 찬바람 맞아가며 해야 하는 일들은 몽땅 내 일이니 내게는 취로 생활쯤 되겠다. #. 이장부..

소토골 일기 2022.12.09 (25)

12월의 가벼움,

#. 입동 지나고 소설도 지났지만 어쨌든 첫눈이 내려야 겨울이다. #. 하늘 깊이에서 그리웠던 이의 엽서 같은 눈이 내리면 아직도 설렐 수 있다는 것, 잠시 또 메말랐던 가슴이 촉촉해지고 #. 저 아랫 집에서 넉가래로 눈 치우는 소리가 이승의 가장 낮은 바닥을 긁는 것 처럼 갈비뼈 사이로 들려오면 산골짜기 적막한 겨울이 시작되는 거다. #. 정우와 정환이는 당초 1박 2일의 계약 사항을 2박 3일로 변경한 채 점령군 처럼 몰려왔었다. #. 아이들은 우리를 참 많이 움직이게 했다. 밥 줘 목말라 호떡 먹고 싶어 술래잡기 놀이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워쩐 싸움 놀이에 말타기와 오만가지 에트쎄더러, #. 나는 기진과 동시에 맥진 증세, #. 저녁 잠자리에서 두 아이가 말했다 - 할머니 내일은 차돌박이..

풍경소리 2022.11.30 (22)

고라니 배추,

#. 초저녁에 잠들어 세 번의 마디로 깨기를 반복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 난 시간, #. 미명의 세시쯤이었고 창가의 감자, 제주의 하르방 그리고 어린양 한 마리가 낮은 스탠드 불빛에 선하품을 쏟아낸다. #. 器物조차 氣物이 되는 시간이다. #. 논어부터 노자와 장자와 성서와 주역과 금강경이 모두 한 목소리로 같은 곳을 향해 가자는데 사람들이 저 마다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옳네 왈가왈부하고 있을 뿐, #. 그렇게 새벽에 잠 깨어 두 시간여, 이제 동창이 밝을 모양이니 책 덮고 쌀 씻어야겠다. #. 고라니가 남겨 둔 배추 아홉포기를 거두었다. 300 모종을 심어 아홉을 거두었으니 황송하기 그지 없다. #. 평상시 같으면 밭에 버려졌을 볼품새 없는 배추 마져 기꺼이 거두었으니 이 또한 고라니 은덕이다. #...

풍경소리 2022.11.2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