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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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뢰구적(萬籟俱寂)

#.이제 겨우 여름의 시작일 뿐인데비와 바람에 흔들려 조락한 나뭇잎 하나,무너진 계절에 대한 경고로 받들어 읽는다.#.진료 전 의례적인 인사,편안하셨지요?#.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의료적 절차,#.편안이란,아무 일도 없음이 아닌무슨 일이 생기든해결하거나또는 해결된 상태... 라는 생각,#.주말이라고우르르 모인 아이들은이제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엄마의 노고를 덜어 준다는 명목으로무슨 무슨 맛 집을 찾아 예약하고#.이국어로 버무려진 아주 긴 이름의 음식을꾸역꾸역 먹어대는 일,#.식탁의 키오스크가 허리를 숙이지 않은 오만한 자세로 주문을 받고서빙 로봇이 공손치 않은 몸짓으로 음식을 들고 오는이런 노무 음식점에서 손 맛,사람 맛이 거두어진 한 끼를 먹고는#.밥 값만큼의 차를 마시는 사이음악이 아닌..

풍경소리 2025.06.27

마음만 농부,

#.비가 올 거라고,그리하여비가 온다고몸을 비틀던 옥수수들이불끈 허리를 펴고 있는데#.비는옥수수들만의 축복이 아니라온갖 풀들 조차 머리를 산발한 채 까치발로 일어섰으므로삼천리 잡초 강산,#.어디 어디가 가고 싶다든가무엇 무엇이 먹고 싶다는 류의불쑥아이들을 앞 세운 은근한 강압,#.다만 아이들이 앞장섰다는 것 하나 때문에우리는여지없이 무너진 채극기 훈련 같은 나들이를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산 넘고 물 건너다시 산속의 자리에연당원이란 정원을 만들어 놓고알록달록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아무렇게나 흐드러졌을 들꽃을 몰아낸 자리마다이국의 이름으로 명찰 반듯한 꽃들이이마를 부딪히며 희희낙락하는 곳,#.인공과유위의 공간,#. 오래전 시간,산골의 질박한 삶을 지탱하던쟁기며 소쿠리, 멍석 같은 것들이거..

풍경소리 2025.06.23

제비꼬리 유감,

#.태생적으로 제비꼬리 머리이다.#.부모님께서 만들어 주신 대로 받았으니내 탓은 하나도 없지만사용상의 불편은 오로지 내 몫이다.#.머리를 자르고 난 뒤 열흘쯤이 지날 무렵부터뒤 꼭지 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하는 제비 꼬리는본인의 불편에 더 해#.보는이로 하여금성실하고 건전한 의식과 방식에도 불구하고제비족으로 의심받을 개연성이 상당히 농후하다는 지레짐작,#.오죽하면아이들 둘을 키우면서얼굴보다 뒤꼭지를 더 자주 보아야 했다.#. 다행히딸 녀석이 제비꼬리인데지지배 머리야 길게 기르면 그만이니딱히 염려 할 일은 아닐테고,#.하여 어느 날 부턴가스스로 이발 가위를 준비해서는#.왼손으로 가늠하고바른 손의 가위로더듬 더듬~셀뿌 커팅,#.고도로 숙련된 이가 이발을 해도맘에 들고 안 들고 할 때가 있는데볼 수 없는 곳을 그..

풍경소리 2025.06.19

불량 고양이 동거기,

#.막 청소 끝낸 집안에 난입하여빚 받으러 온 복덕방 영감처럼 집 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밥 달라고밥 달라고또밥 달라고울고다리에 감기고눈곱 덕지로 매단 채애절한 눈빛 발사하기에눈치도 염치도 없는 자세로오로지 밥,#.쥐두더지다람쥐옵션으로 박쥐,#.뱀나비새사은품으로 나방,#.눈에 띄고 움직이는 건 모조리 잡아 놓는이상한 쉐끼#.개과 고양이 인지졸 졸 졸 졸한 없이 쫓아다니고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가도즤 이름이 됐든 뭐이가 됐든소리만 나면 귀신보다 빠르게 나타나는 놈,#.즤 밥이 무단으로 바뀌었다고 개 밥 훔쳐 먹으며 시위하는 놈,#.그리곤별삼각형타원형 모양이 섞인 사료 중에별 모양만 골라 먹는중증의 스타 증후군 식성을 가진☆ 이상한 놈,#.무위도식 하며얹혀 사는 주제에때때로 도둑고양이들을 불러즤 밥 나눠..

소토골 일기 2025.06.14

꽃잎을 위하여,

#.뻐꾸기 구성지게 울고#.한낮에는문 밖 더운 열기들이거친 숨결로 들이닥치는 날들,#.늦은 걸음으로 오는 산골 계절이지만꽃들 피고 지니,#.유월이 중순으로 익어가는 날 아침,불두화 꽃잎들이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쏟아져 내렸다#.산 중 하릴없는 백수,#.그 꽃잎들손바닥 비로 쓸어본디의 자리에 고이 묻어 주기로 한다.#.순백의 꽃잎들이햇볕에 삭아 말라가는 것을 버려두고 보기에는그 화려함에 대한 무례일 듯도 하거니와#.산골 유월의 며칠을순백으로 밝히던 그 노고에 대한예우이기도 하다. #.주말마다몸 아픈 할머니를 위해 모여드는 아이들은떠난 자리마다내 몸살을 위한 일거리들을 남겨 놓았다.#.기도 하기를아내가 빨리 낫든지아이들이 그만 지치든지...#.마당에 차가 넘치고현관에 신발이 넘치고그늘마져초록 넘치는 날들,

풍경소리 2025.06.10

유월 바람,

#. 유월이 되었다#.풀,풀들,그리고도 또풀,#.새벽 산공기에 섞인환청 같은 뻐꾸기 소리,#.아내가기동을 시작했다.#.밥상이따듯해지기 시작 했다는 것,#.하여시리고 아픈 손가락 관절을 다독이기 위해기꺼이정형외과 행,#. 엑스레이 사진 속손가락 뼈 마디 마다누덕한 세월의 이끼들이 끼어 있었다.#.젊은 의사는"가급적 사용을 금 하라..."고 처방 하였으나가급적 사용을 금 할 수 없는밭과풀과일상들,#.어쨌거나당의정 몇 알의 힘으로 다소 통증을 덜어 낸 손아귀 힘을 모아#.아침 저녁햇살을 피 할 수 있는 두어 시간쯤 풀을 뽑아야 하는 요즘,#.밤 새머리카락 쥐어뜯는 꿈을 꾼다.#.곧 장마가 시작될 텐데그 비 속에 나무도막들을 버려두는 일은어쩐지스테파노를 비 맞히는 일인 듯하여#. 쌓아 놓은 10톤가량의 통나무들..

풍경소리 2025.06.05

무릉화원

#.사람의 손으로 심어진 꽃 이거나본디 제자리로 피는 꽃 이거나어우러 더우러 꽃 향기 그윽한 중에#. 재 넘고 물 건너 이곳으로 옮겨진백선,#.초선의 속 눈썹 같은 꽃술들이허공을 어루만져향기 깊고 그윽한 날들,#.봄 여름은 한 걸음쯤 늦게 오고겨울은 열 걸음쯤 일찍 오는 산골짜기,#.유월을 준비하는 요즘은나날이 안개 깊다.#.안개와 이슬 속에서초록 생명을 준비하는 작물들,감자는 뿌리가 굵어지고푸르게 영글고 있는 고추에 더 해,#.옥수수는 이제껑충 자라 올라유월의 햇볕과 바람으로 잉태한 고른 치열 같은 아이들을온몸으로 안고 엎고 할 기세이다.#.아내의 일로온통의 내 일상이 헝클어진 듯 한 중에도빠뜨리고 밀린 것 없이집 안팎의 일들을 정리해 가고 있으니#.세상에 보기 드문마당쇠로다^^#.일주일에 8일쯤을 술..

소토골 일기 2025.05.29

불쑥 ☎ 하기를,

☎ 1,스테파노였다.어느 어느 산속 토목공사 현장에서참나무 5톤 가량을 차에 실어 놨는데내가 일 끝내고 가져갈까요? 가지러 오실래요?그는자기 일을 하는 중에도남의 필요에 의한 시선으로 사물을 보고 상황을 읽는다.병이다.다시 얘기하건대신세를 지는 게 아니라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그리하여5월의 며칠을이른 겨울 준비로 탕진 중,☎ 2,이웃 도시에 사는 친구의 불쑥 전화,- 뭐 해?- 전화받고 있다네· · ·☎ 3,어느 낯 선 사람의 전화,- 누구누구시지요?- 아닙니다. 잘못 걸으셨어요끊으며 전화기 너머로 들려 오는 소리,- 잘 못 걸려 온 전화 뭣 하러 받는댜? · · ·갑자기전화 멀미 1인분,☎ 4,며칠 동안휴대전화가 먹통의 고장 증세를 보였으므로유선 전화로 전화를 한 친구,뭐시가 바쁜지'내가 금방 다시 ..

풍경소리 2025.05.25

세상 엿보기,

#. 아직 어두운 시간에 일어나면먼저 컴퓨터 앞에 앉아 산골 허공에 손구멍을 내어 세상 엿보기,#.제법 농사꾼답게일기 예보를 보고제한적으로 세상 소식 몇 개를 들추어 보는 정도,#.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화면에는 숱하게 많은 광고들이 팝업으로 돋을새김을 하여오늘은 이걸 사라이걸 사면 행복해진다...#.이걸 사면 뽀인트를 곱으로 줄 것이요쌓인 뽀인트가 다시 너희를 낚을 것이리니...#.집어등 불빛 아래 몰려드는동해바다 오징어 같은 날들,#.그저 넋없이 그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내가 기어이 이거 사고 말지...#.새벽 산행에 고양이 방울이가 동행했다저 만큼의 거리를 두고 가끔 눈을 마주칠 뿐임에도가슴 따듯해지는 이따우 인연,#. 펄떡거리던 가심팍조차이제늙어 쪼그라들었나 보다.#.오늘 밤 부터또비..

소토골 일기 2025.05.20

세월의 힘,

#. 아내의 일은병 이기보다는 사건이었다.#.놀라고 허둥대던 파행의 시간들이흐른 만큼 치유되어이제 아내는 다시 운전을 하고 싶어 할 만큼철없는 상태로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손가락 사이마다 습진이 생기고별스럽지 않은 내 일상이번잡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이 헝클어졌으나#.우리가 보험이예요그러므로이제부터는 저희들 손을 잡고 가시면 돼요...라고고도 지능의 사기꾼처럼 말하는아이들과의 관계 밀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더더구나매주 멀고 불편한 길을 달려와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그리고그 음식을 먹는 우리 곁에서 맛있죠?라고 강압적? 확인을 거듭하던며느리의 노고에도 따듯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 역시전화위복 이란전화로만 되는 일이 아님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문둥이 한밤중에 애 낳아 ..

소토골 일기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