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만뢰구적(萬籟俱寂)

햇꿈둥지 2025. 6. 27. 03:37

 

#.
이제 겨우 여름의 시작일 뿐인데
비와 바람에 흔들려 조락한 나뭇잎 하나,
무너진 계절에 대한 경고로 받들어 읽는다.

#.
진료 전 의례적인 인사,
편안하셨지요?

#.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의료적 절차,

#.
편안이란,
아무 일도 없음이 아닌
무슨 일이 생기든
해결하거나
또는
해결된 상태... 라는 생각,

#.
주말이라고
우르르 모인 아이들은
이제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
엄마의 노고를 덜어 준다는 명목으로
무슨 무슨 맛 집을 찾아 예약하고

#.
이국어로 버무려진 아주 긴 이름의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대는 일,

#.
식탁의 키오스크가 
허리를 숙이지 않은 오만한 자세로 주문을 받고
서빙 로봇이 공손치 않은 몸짓으로 음식을 들고 오는
이런 노무 음식점에서 
손 맛,
사람 맛이 거두어진 한 끼를 먹고는

#.
밥 값만큼의 차를 마시는 사이
음악이 아닌
음악(音惡)이 귀를 괴롭히는 
도시,
사람의 소요,

#.
귀와 
코와
입과
머리를 
깨진 관악기처럼 울리게 하던
거리의 소음들,

#.
기산의 허유처럼
푸른 바람 한줄기를 빌려
귀와 가슴을 씻고 나면

#.
만뢰가
고요하게 가라앉은 이른 새벽,

#.
산 길
걸음 걸음마다 
이슬 방울 함초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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