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47

며느리 밥상,

#.산골 새벽은 여전히 겨울과 내통 하였으므로오늘 아침 또서리가 내렸다.#.그런 속에서도꽃이 피고 연두의 잎이 솟고,#. 주말 시간에 잠깐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결국며느리가 급히 내려와 세끼의 밥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어설프고낯 선 중에도기꺼운 맛,#. 먼 곳에 있는 사람들... 정도였는데일체 된 가족애를 느낀다.#. 지난해처럼앞 마을 아우가 커다란 트랙터를 끌고 올라와서아래 윗 밭 속살을 곱게도 갈아 놓았다#.아내 입원 후농사 일들은온통 홀로의 일이 될 것이다.#. 다만 안도하기는푸르게 일어서는 새 순들처럼아내도 푸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어떻게든고쳐 쓰기로...

풍경소리 2025.04.27

기습적 계절,

된서리 내린 다음 날,기습적으로 여름이 되었다오들오들 떨던 꽃들은작은 바람에도 잎을 떨구었으므로산골 누옥의 뜨락엔여전히 향기 싱싱한 꽃잎들이아무렇게나 누워 웅성거리고그 틈새농기계에 얻어맞은 옆구리를 끌어안고작은 병원을 찾았더니만맘 놓고 엑스레이팡 팡 팡뤤트겐 사진 속의 나는이미 형해가 분리된 저승의 몸으로구부정한 통증을 끌어안고 있었다산에는들에는온통 연두 연두 소란하건만스멀스멀 낡은 몸을 갉아대는이런저런 통증들봄이몸이아프다.

풍경소리 2025.04.19

감자를 위하여

#.밖에서 식사를 하게 될 경우, 식탁에 감자 반찬이 놓일 때면어김없이 주인에게 얘기 했었다.- 강원도 사람에게 감자 먹이는 건 실례입니다-#.그럼에도날 풀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감자를 놓는 일이다.#.겨우 내 푸석하게 메말랐던 땅의 속살을 뒤집어공손하게 씨 감자를 넣는 일,#.제 몸을 조각 지어야비로소 통감자로 거두어지는 감자의 일은#.곤비한 몸으로도기어이생명을 길러내는세상의 어머니 같아 숙연하다.#.이번 감자를 넣는 일에는자발적 응원군이 있다.정우 정환이가 팔을 걷어 부친 것,그래봤자 군일만 하나 더^^#. 4월이 되었는데도아침마다 서리 내려서한낮의 시간 변덕 같은 햇살에 홀린 작은 꽃망울들은 제 색으로 화들짝 피기도 전에누런 색으로 절명해 버렸으니#.차라리 여름 같은 늙은 봄이 늘어질 때까지꽃도사..

풍경소리 2025.04.03

추운 삼월,

#.낮 동안 비워 두었던 산속 누옥에지난해 주문했던 비료 포대가 쌓여 있고#.이제 목에 둘러도 좋을 만큼사뭇 부드러워진 바람결에쌓였던 눈도 녹아 내리는데#.벽에 걸려 있는달력 한장을똑떼어내니#.3월이 되는 날부터다시 눈 소식,#.하여춘삼월은 또추운 삼월의 줄임 말이다.#.마을 안에서는농사일 시작 전에 관광을 다녀와야 한다고이구동성 왈가왈부 하였으므로손 없는 날을 잡아 기어이 한바탕 난리를 겪어야 하는#.내겐 여전히극기훈련,#.겨우내 안부가 궁금하던 산새들이봄의 척후처럼 나타나추녀 끝을 기웃거리는 날들,#.봄이 온다는풍문만 무성하다가어느 날 불쑥메뚜기 이마빡 만한 산골 마당에 쇠잔한 기색이 역력한 늙은 봄을 만나곤 했었으니올 해도 예외 없는 상황이 되겠지만#.어쨌든 봄,#.산골 누옥의 뜨락을 정갈하게 닦고..

풍경소리 2025.03.01

꿈 속에 길 떠나듯,

#. 재 너머 맛집 할머니께서 가게를 닫으셨다여기저기가 아픈 탓에 몸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아음식에 정성을 다 할 수 없음이 이유,#. 집 보다 병원에 있던 시간이 더 많던 날들,겨우 겨우 몸을 추슬러 집에 오는 길에그저 안부 인사차 잠시 들리면많은 손님 젖혀 둔 채 옆에 앉아 내 등을 두드리며 말씀하셨었다.많이 먹어뱃고래에 힘이 생겨야 산다니께~#.이 넓은 세상천지또 하나의 의지처를 상실한 셈,#. 하여할머니의 퇴직을 위로하고자 동쪽 바다를 한 바퀴 둘러 오기로 했다#.일부러뺀도롬한 고속도로를 버려두고강원도 속살의 핏줄 같은 옛길을 돌아 돌아할머니 어린시절 고향 마을도 지나고그 오랜 기억의 갈피를 들추어 지나는 길,#. 우리는 자주 쉬어 망연한 눈빛이 되곤 했었다.#. 구룡령 마루에 자리 잡아마른 산나..

풍경소리 2025.02.12

겨울 놀이,

#.서울 여기저기에 숨어 있던 헌책방들이대동단결하여송파에 있는 한 창고를 개수하여 모였단다#.이름을책보고라고 하였다더라#.한켠에는 차 한잔이 가능한 카페도 있어서흥미 있는 책 한 권을 빼 들고한 없이 앉아 있어도 좋은 곳,#. 여전히극성의 여력이 남아 있는 걸까?정우, 정환이 손 잡고 책들의 밀림 속을 잠시 유영했다#.아직 개장 준비 중 이어서4월에나 책을 살 수 있다는 안내문,#.두 번째 불교 강의,밀린다 왕과 나가세나는이제무아와 윤회를 놓고이러 왈 저러 왈 난문과 난답이 무성한데#.머리를 쥐어뜯던 불량 학생 하나난로 위 김치볶음밥에 정진 하던 중일갈하기를#.밥 먹고 하세#.대중 모두 합장하여 공손히 따르더라#.두 번째 강의가 끝났다만만하던 밀린다 왕은절세 난문의 파상 공세를 이어감으로써우리 모두를 아..

풍경소리 2025.02.03

다시 새롭게

#. 급히 마련된 고옥의 강의실에서성냥갑만한 난로 하나에 매달려이번에는그리스의 밀린다 왕과 나선 비구의 날 선듯부드러운듯 무수한 난문과 현답 사이를 헤쳐육바라밀을 만나고色, 受, 想, 行, 識을 다시 정리하고이것과 저것으로 보일듯 보이지 않는연기(緣起) 속을 헤맨다 #. 나이 먹었으되아무도 늙지 않은 철없는 일곱 학생들이 모여세상살이 관계없는수많은 우문과 현답을 늘어 놓으며추운 하루를 희희낙낙 했다.#....절 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시려도 불 생각을 하지 않고주린 창자 끊어져도 먹을 생각 말지어다백년이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며일생이 얼마이기 닦지 않고 방일하랴...(원효의 발심수행장 중)

풍경소리 2025.01.19

스테파노 불꽃,

#. 아주 오래전,같은 시골살이가 이유되어 모인사람의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도어제 만났던 것처럼 가슴 따듯한 사람들,#.이제 얘기의 중심에는 몸뚱이 이곳저곳의 아픔이 있고 병원이 있고그리고무성의한 의사들에 대한 성토가 있었다.#.훨씬 더 많은 세월이 지나우리 모두 저승 모임이 가능하다면성토되는 의사들 속에 장의사도 낄 것 같다.#.싸움 나도 말릴 사람 하나 없던산골 마을이조금씩 부산스러워져서소 머리를 삶고이런 저런 음식들을 만드는 일,#. 올해는대동계 한가운데서온갖 일들을 준비하고 내남 일 구분없이 도와야 하는 자리에 있다.#.먹고마시고더러 싸우고의 반복되는 틀을 깨고올해 처음마을 내 착한이를 골라 시상하기로 하였으므로#.우선연세 많으신 어르신 두 분을 골라평생의 신산했던 날들을마을 주민 일똥..

풍경소리 2024.12.16

무채 겨울

#.송년을 핑계한 동창 모임이 있었다.#.얼굴마다살아온 날들이 깊은 주름으로 음각 되어 있었다.#. 반 백의 이전 시간 속에우리는빡빡머리 악동들이었다.#.이토록 가슴 따듯한 동무들을사람의 거리 구석구석에 묻어둔 채바람 같은 세월의 등에 업혀 정신없이 살았구나#.추녀 끝에 엉긴모서리 날카로운 바람들,#.뜨락을 쓰는 잠시의 노고는난장의 바람으로 쉽게 헝클어져 버리고 #. 바람에 구르는 낙엽이 새 인지새가 낙엽인지...#.해 질 녘처마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몇몇 집에서 안부를 가득 담아 봉화처럼 오르는 연기#. 너울거리는 연기들이유일한 동사가 되는적막의 산골#.무채색의겨울 풍경,

풍경소리 2024.12.12

가는 세월,

#. 산속에 여름 며칠을 제외하고는늘 비어 있는 집,#.이른 아침 걷는 시간에어여쁜 여인네로 둔갑한 여우가 나와 손목을 잡아 끌 것 같은느낌상의 느낌,#. 사진으로 보다는 조금 더 어두운 미명의 시간,아이 같은 생각으로 허위허위 걷다 보면#.요란한 첫눈에쓰러져 누운 나무를 베어 낸 자리마다아픈 향기들이 허공에 분분하다.#.몸도 웬만하다 하니산속 칩거를 끝내고 사람의 거리로 나서서사람의 일을 돕기로 했다.#.나보다 더 늙고 불편한 이들을 돌보는 봉사 활동접수하는 이가 물었다"봉사 활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봉사처럼 눈 딱 감고 하면 되는 일' 아니겠느냐는 반문,#. 올 한 해마을 안 두 분의 어른이 돌아가셨다#.하여올해 부터는대동계가 아닌 연세 드신 어른들을 위한잔치 마당으로 만들 계획,#.우리 ..

풍경소리 2024.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