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34

비 탓이다.

#.앞 차의 번호판이 흐리게 보였으므로앵경점을 찾아가 렌즈를 바꿨다.#.조금 더 비싼 렌즈로 할걸 그랬나?여전히 안 보이길래 안과엘 갔더니백내장 수술 날짜를 정해 버렸다.#.말도 하기 싫고누굴 만나기도 싫고책도 글도 다 심드렁한데밥만 먹으면 배가 살 살 아픈 증세,#. 초로의 내과 의사는 즤 맘대로 진경제와 위염치료제에 얹어 자율신경조절제를 섞은 처방과 함께'초기 우울증'이라고 결론 지었다.#.남의 몸뚱이라고이것저것들이 온통 함부로다#.허긴 최근 뉴스 중에성실하고 푸르던 아홉 생명의 삶이뚝 끊어지듯이 길바닥에서 증발해 버리는 일과 일가족 자살 소식과이런저런 세상의 소식들이나를 우울하게 하긴 했었다.#.이딴 걸신경조절제 한알로 다스리겠다는 우리 의사 샘은참 나이브하다.#.그날 저녁재 너머 소도시의 작은 공..

풍경소리 2024.07.18

여전히 촌스럽게,

#.맛있는 음식점을 알고 있는 일이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일 보다가치 우위가 된 시대,#.티비마다먹방이 넘쳐나서그야말로 입 미어지게 먹어대는국적 불명소재 불명과정 불명의 온갖 먹을거리들,#.조리법 대신화려한 사진의 음식점 목록을 찾아 클릭 한방이면 입 앞에 당도하는 세상#.이제 주거 공간에서 주방의 기능은조리가 아닌개수 기능만을 떠맡게 될 것이다. #.어릴 적 가난한 밥상 이거니 불문율이 있었다한 음식만 여러 차례 먹지 않기수저가 그릇을 긁는 소리를 내지 않기음식을 먹는 소리 내지 않기입 안의 음식이 보이지 않도록 먹기하여거친 음식이지만 품위 있게 먹기 등 등,#.가난이 곧 배고픔이었던 시절어머니께서 자주 일러 주시던 말씀,"먹는 게 하도 귀해 탐하면 추해 보이느니"#.이 불문율과 말씀을 이 나이 ..

풍경소리 2024.07.12

전화 또는 전화기

#.열 번 전화하면열한 번 안 받는 친구가 있다.#. 열흘 전쯤의 전화를 뭉개고 있다가오늘 불쑥 전화 해서는왜 전화했느냐?... 고 묻는통신 문명에 지극히 냉소적인 사람,#.그저 안부가 궁금하여전화해야지전화해야지염불을 하다가이제는 전화를 했는데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너도 나도 중증으로 망가져 가고 있다.#.아내는 전화기를 어디다 두었는지 찾아 헤매기를하루에 25시간일주일에 8일씩,#.하이빅스비라는 것이 있다더라알라딘 램프의 요정처럼"하이빅스비 전화기 찾아줘"하고 주문을 하면특정음으로 위치를 확인해 주는 기능인데언젠가는 냉장고 안에서 출토된 일도 있었다.#.숨 쉬는 횟수보다 더 많이찾아줘~ 찾아줘~ 하였으므로주문을 견디다 못한 가엾은 하이빅스비가과로로 인해 홀연히 까무러친 일도 있었다..

풍경소리 2024.06.17

12년 만의 미사

#.젊은 신부, 수녀님이산속 누옥을 찾아왔던 날딱 10분만...으로 못 박았던 방문 시간이근 한 시간 가량의 수다로 이어졌다.#.그니들의 얘기 속에서나는 자주 냉담 신자가 되었으나진짜 냉담은교회안에 있다는 여전한 고집,#.마음 정리...가 늘어져3개월 가량 늦은 이행이 되었다#.그리하여12년 만의 미사,#.더러의 낯 익은 신자들이세월의 낙진에 뒤덮여더러는 환자로 바뀌어 있었고#.주님의 어린양 대신늙은 양들만 빼곡히 들어앉아 만들어내는#.여전히막연한 경건, #.다시 생각해봐도신자 정년제가 필요하다.#.120년이 넘은 성당 첨탑에 종소리 대신 새소리 은은한 한 낮,거룩도 하여라~

풍경소리 2024.06.11

신성한 새벽,

#. 정기적 병원 순례,정밀 검사라 이름하여몸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고#.몸 안에서 화염병이 터지는 것 같은의료적 테러,그리고자발적 물고문으로 마무리 되는CT 검사,#. 젊어서는 돈을 위해 건강을 버리고이제는 건강을 위해돈을 버리는 일,#.병원은 이제나이든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건지곳곳에 차고도 넘치는 노인 행렬,#. 그신앙적 분위기,#.어렵지 않게펭귄 걸음을 걷는 이들과 마주친다.#.저 상황은 피했으면... 하지만누군들 이런 일들을스스로 끌어안은 이가 있을까?#.멀어진 젊음무너진 권위,#.잘 먹고잘 사는 일을 넘어이제잘 늙고잘 죽는 일에 곰곰해야 할 때이다.#.치유의 마지막 처방처럼새벽 산 길을 걷는다.#.인위의 소리가 아닌새소리와물소리그리고바람의 등에 얹혀 소근소근 들려오는숲의 전설들,#.참신성한 새벽,

풍경소리 2024.06.06

껍데기와 알맹이

#. 수업 끝났다고교문 밖으로 뛰어나온 1학년은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 학교 앞 놀이터로 달려갔다.#.역시아이의 즐거움은학교 밖에 있고가방 밖에 있고교과서 밖에 있는 것,#. 멀뚱하게 기다린 사정 아랑곳없이 뛰고 구르고 벌레 잡아 주머니에 넣고... 하다가목이 마르니 음료수 사 오라는 심부름까지,#.말년 팔자가어이 이 모냥인지, #. 그러나 또저토록 연한 알맹이들이 있어나는 쭉정이가 되지 않은 껍데기로 살 수 있는 것 일 테니#.음료수에 옵션으로아이스크림 하나 얹어 사는이 비굴한지극정성,#.유월이 되었다.#.뻐꾸기 울음소리허공 가득하고#.초록은 저토록무성하니#.꽃 진 자리마다 울울창창한 햇볕들이유월의 서른 날들로 달게 익어 갈 것이다.

풍경소리 2024.06.01

삽 한자루,

#.딱히 정한 일거리가 있어서 보다도그저뒷짐에 삽 한 자루 든 채논과 밭을 한바퀴 둘러보는 새벽 농부의 풍경그 상비적 자세,#. 요즘 그 짓을 한다.#.감자가 너른 잎을 펼치고옥수수 정강이가 제법 튼실해졌고고추가 꽃을 피우는 사이속절없이 5월이 가고 #.한 낮 햇볕 속에선단내가 물씬하다#.뻐꾸기 소리가뻐꾹 뻐꾹 들려야 하는데자꾸딸꾹 딸꾹으로 들리는 증세,해장술을 한 잔 해야 할 것 같다.#. 홀로의 적막에 발악을 하듯 기타 치고 노래하고...#. 초록으로 변한 주변 산들연두는 또 한 겹 숲의 나이테가 되었다.#.딱새 한마리개 집 주변을 종종거리며연신 개털을 물어 나르고 있다가장 은밀한 곳을 빌어개털 집 한 채를 어리고그 안에 창공을 꿈꾸는새알 다섯 개,#.흐린 저녁어둠 속에서 더욱 증폭되어 들리는 개구리..

풍경소리 2024.05.26

없그레이드,

#.새벽 청량한 바람에 꽃 피운 백선의 모습이참 요염도 하다.#.아주 가끔이런저런 옷가지들을 가방 가득 싣고 내려오는 아이들,철이 지나고유행에 맞지 않는다며 작업복으로 쓰시라는 배려?#.그리하여 즈이들 옷매무새는 업그레이드 하고내 꼴은 자꾸 없그레이드 되는천생 마당쇠 패션,#.늘 그랬듯이장모님 기일을 택해 처가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내의 살짝 들뜬 모습,젊어서도 늙어서도친정은 여전히어머니로 존재하는 것인지,#.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셨던 등 굽은 시간 위에 얹혀사는 것,기어이 아픈 형제가 있어불참의 가슴 구멍을 만들어낸다.#.결혼 무렵에는하염없이 덜컹이며 다녔던 비포장의 친정 가는 길은#.내비게이션조차 혼돈스러울 지경으로새로운 길들이 많아졌음에도길은 예전보다 더 밀리고 어지러..

풍경소리 2024.05.17

늙은 고양이를 위하여,

#. 늙은 친구와 둘이먼 동쪽 바닷가 찻집에 앉아오래도록 차 한잔을 마셨다.#.그와는 따로 말을 나누지 않아도같이 있는 것 만으로 충분한 대화가 된다.#.반팔 티에배꼽을 내놓은 아이들 조차 추워 보이지 않는 날씨임에도우리는지나치게 두꺼운 옷을 입고지나치게 과묵한 시간을 끌어안고 있었다#.바다와 하늘의 딱 한가운데 누워 있는 수평선처럼이승과 저승의 경계선 같은 오늘을 다독거리고멀게 지나가 버린 시간의 언어들로내일의 절망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바다를 떠나 설악에 들고나는 감자와 옥수수와 온갖 작물들과 풀들과이제 막 극성을 떨기 시작한 다섯 마리의 강아지와지난달 귀촌한 늙은 고양이의 집을 짓기 위하여조금씩 그러나 아주 왕성하게 풀 밭이 되어 가는산골짜기로 돌아왔다.#.노란 송홧가루가 날리기 ..

풍경소리 2024.05.02

봄, 강아지,

#. 음지에는 여전히 잔설이 옹크려 있고 산골 누옥의 마당에는 꼬마회오리가 어지러운데 여린 햇볕을 공손히 받들어 냇가의 버들강아지 눈을 떴다. #. 우수 경칩이 지났으니 당연히 봄으로 가는 길 이건만 이런저런 봄 조짐들 앞에 그저 또 놀랍고 감사한 산골짜기, #. 정우는 4학년이 되고 정환이는 1학년이 되었다. #. 대견하고 경이로운 아이들의 시간 뒤에서 나는 바람 같은 세월에 덜미 잡혀 무럭무럭 늙어가고 있다. #. 혼자 비닐하우스 두 동을 정리하는 일, 간간히 산짐승이 지날 뿐인 진공의 적막 속에서 자주 쉬며 간혹 노래했다. #. 발악도 음악이 되는 적막의 긍휼, #. 지난 해와 크게 다르지 않게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온몸을 붉고 맵게 물들일 고추를 심어 먼 곳에 사는 지친들과 나누는 일, #. 시골..

풍경소리 202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