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789

유월 몌별,

#. 엉거주춤 오리걸음으로 느릿느릿 풀을 뽑거나 #. 씨 뿌렸던 초롱무와 얼갈이를 솎아 새소리 버무려 담담한 김치 한 통을 만들고 #. 여기에 더해 봄에 씨 뿌렸던 감자 몇개 배추 부침 한 접시가 비 속의 점심이 되었다. #. 히말라야 유목인 창파족의 삶을 다큐 프로그램으로 잠깐 본 일이 있다. #. 갈색의 주름 깊은 얼굴과 고단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 #. 기르는 염소와 양을 끌어 안아 사람과 짐승의 살이가 반듯하게 구분 되지 않는 질박한 삶, #. 곰곰 생각해 보니 그들의 삶이 피폐한 것이 아니라 내 사는 방식이 사람 본연의 굴레 밖에 있는 것, #. 굴레 밖의 일들을 문명 또는 문화라고 이름한 뒤 #. 우리 너무 흥청망청 살고 있는거 아닌지··· #. 평일에 늘 보던 아이들이 엄마의 연수 때문에 휴일..

풍경소리 2022.06.29

세월 중력,

#. 사람의 한 평생 당연한 귀결일까? #. 아니면 우리 살아온 날들이 이제 온통 무게로 얹혀 오기 때문일까? #. 코로나로 생긴 3년쯤 비워졌던 시간을 건너 모두 반갑게 손잡기는 했으나 #. 더러는 조금씩 등 굽고 팔랑 걸음, 또는 걸음의 패턴을 종종 걷기 방식으로 바꾸었거나 계단을 오르 내리는 일에 발 모음이 잦거나, #.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망라된 노인성 퇴행의 몸태, #. 점진, 또는 급진적 늙음에 의한 낡음, #. 총무의 인원 보고가 있었다 총원 00명 사고 0명 사고내용 사망 0명 이 병, 저 병으로 입원 0명 장차 요양원 예약 중 0명 하여 현재원 00명, #. 현재원 00명이 모이기는 했으되 모두들 세월의 피격으로 성한 것들이 없음, #. 빡빡머리 때로 현실을 오인하여 과격한 지뢀을 삼..

풍경소리 2022.06.26

에뮤의 날개,

#. 하늘바라기의 마음으로 매일매일 일기예보 기웃거리기, #. 소나기 조차 청어 떼처럼 종적을 가늠하기 어려워서 #. 하루 종일 흐렸다가 10초쯤 비 뿌리기, #. 베적삼이 다 젖도록 풀 매어 가꾸던 일련의 과정들이 삐그덕 어긋나서 호미는 벽에 걸려 녹슬어 가고 오로지 물 주기, #. 이러다가 제대로 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낮게 엎드려 있던 풀들은 온통 떨쳐 일어나서 허공 춤을 출 것이다. #. 갑작스러운 처가 어르신의 부음이었다. 노인정과 요양원과 그리고 코로나의 카메오 뒤에 홀연히 장례식장, #. 젊은 시절의 권위는 영정 사진 속에 박제되어 버리고 구십의 연세 때문이었을까? 상주도 가족 누구도 특별히 애통함이 보이지 않는다. #. 에뮤의 날개처럼 그 기능을 상실해 가는 우리 안의 것들 또는 일상의 ..

풍경소리 2022.06.11

가뭄 탓,

#. 이 또한 가뭄 탓이겠거니 뜨락의 돌나물도 마당가의 달래도 온 힘을 다해 목마른 꽃을 피웠다. #. 가물거나 말거나 그저 묵묵히 자기 일에 성실한 자연, #. 새벽 자락을 들춰 상추 다섯잎 쑥갓 조금 겨자채 세잎으로 아침 상을 차린다. #. 주린 몸에 매달려 한사코 젖을 빨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중에도 송구한 마음, #. 아침 저녁으로 밭에 물 주는 일이 주요 일과가 되었다. #. 그런 중에도 아침마다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함초롬 이슬들, #. 모두들 이슬 연명체로 진화 중, #. 치매 어머니 간병으로 휴일이 없는 이웃 도시의 친구 둘이 불쑥 들이닥쳤다. 주홍 글씨처럼 가슴 깊이 각인된 효의 주술에 얽혀 더불어 살기를 고집하는 사이 부부는 나날이 날카롭고 스스로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 #..

풍경소리 2022.06.05

5월 앙꼬,

#. 오랫동안 코로나에 갇혀 있던 산골 이웃의 점심 모임이었다. #. 어머니 살아생전에 늘 말씀하시던 '사람이 도를 넘지 말고 살아야...'의 유훈을 어긴 채 강원도 넘어 충청도에서 만났다. #. 밥 먹는 시간 30분, 식후 수다 두 시간, #. 복마지전을 뛰쳐나오는 수호지의 108 마왕처럼 쉬지 않고 수다 수다하였다. #. 코로나에 걸렸던 얘기, 코로나에 못 걸렸던 얘기, #. 방법을 분명히 알아 예방을 한 경우 안 걸린 것이 맞는데 도대체 피 할 방법을 알 수 없었던 긴 시간 그저 무덤덤 지나왔으니 못 걸린 것이 맞다. #. 돌아오는 길, 잠시 빗발 목마른 작물들 갈증만 키운 것 같다. #. 땅 속에 스며든 것 없이 몽땅 비닐 위에 누워 방울방울마다 눈꼽만큼씩의 송화가루를 붕어빵의 팥소처럼 끌어안고 ..

풍경소리 2022.05.15

황제의 똥배짱,

#. 코로나 확진자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데 주변으로는 여전히 코로나 확진 소식, #. 어제 이어 오늘도 무려 두 차례나 코로나 문병을 위한 문코 전화, #. 담 주부터는 마스크 무장조차 해제하겠다는데 서랍 가득 쌓여 있는 저노무 마스크를 장차 어찌해야 하는 건지, #. 국가적 반품이 가능한건지? #. 여전히 복짝지근한 산 아래 세상을 뒷짐 걸음으로 관조하며 새벽 자락을 들춰 청구도 계산도 없는 장을 본다. #. 두릅 한 줌, 참나물 다섯 잎과 오가피 순 조금, 그리고 쑥, 꽃잎 몇장은 덤, #. 한 백일 열심히 먹고 나면 조금 사람다워지려는지, #. 옛날 임금이 무얼 먹었는지 알 바 없지만 이 봄마다 온갖 풀들로 뱃고래 두둑하니 황제의 똥배짱 이다. #. 하여 날마다 배짱 농사, #. 봄 비 내린 뜨락,..

풍경소리 2022.04.29

낙망을 낭만으로,

#. 참나물과 돌 틈에 자란 취나물과 머위잎 몇 장에 더불어 된장찌개 하나로 차려진 산골 밥상, #. 오늘 복작이는 도시살이를 택한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폐기한 우리들 본래의 밥상이다. #. 일에 일 그리고 또 일, 일거리가 있으면 그 일을 하기 위해 일거리가 없으면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 #. 어깨 위에도 등에도 심지어는 발등에 조차 온통 일, #. 제법 농사꾼의 농사철 이므로, #. 10년 낡은 비닐하우스에 새 옷을 입히기 위해 이것저것으로 분주한 한낮, 아내가 내어준 새참 그릇에 팔랑~ 내려앉은 #. 바람 한줄기 꽃잎 하나, #. 소꿉장난 같은 시골살이, #. 함부로 꽃잎 흩날리고 어떻게든 향기로운 사월의 날들,

풍경소리 2022.04.22

세상 연두,

#. 나처럼 늙어가는 경운기와 관리기를 더러는 달래고 때로는 겁 주어 밭 갈아 감자를 넣었다. #. 심어 가꾸는 사람 둘에 나누어 먹어야 할 사람들은 줄 줄 줄, #. 이 골짜기에 들어 고요히 살며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거 #. 가꿈도 나눔도 즐거운 일이다. 아직은, #. 모두들 붓을 잠시 뉘워두고 소풍길, 산길에 함부로 깔깔거리며 아이처럼 즐거웠다. #. 평균 연령 60대 정신 연령 20대, #. 역시 공부보다 즐거운 일이 밖에 나가 노는 일이다. #. 헤어져 돌아오는 길, 싸움나도 말릴 사람 하나 없는 진공의 시골길에 털푸덕 주저앉아 아득한 시선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고요하고 무량한 행복, #. 본디 이렇게 살아야 했거늘, #. 새벽녘 뜨락에 나가 보니 꽃 속에 이슬이 스며들고 이슬 속에 꽃송이 뛰..

풍경소리 2022.04.13

화양연화(花樣年華)

#. 3월의 서른 하루가 추웠다가 풀렸다가, 맑았다가 눈, 비 오다가... 를 뒤섞어 바쁘게 혼란스럽더니 #. 4월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해도 다 용서 된다는 만우절, #. 그리하여 진실한 거짓말 1인분쯤 엮어 볼까 했었는데 오늘은 거룩하게도 아내의 생일이었으므로 참기로 했다. #. 어떻게 모의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올 생일엔 며느리와 아들이 사위와 딸이 각자의 획기적 구상과 조리법을 동원하여 한 끼씩의 식사를 준비 하기로 했다는 거다. #. 그동안 얻어먹기만 했으므로 보은적 차원에서 고로케 하기로 했다는 거시다. #. 물론 밥상이 차려지기 까지의 모든 과정은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된다는 것, #. 하여 나는 기꺼이 깍두기가 되어 뒷 밭 냉이와 달래와 씀바귀를 캐어 하이브리드 연두 반찬 딱 ..

풍경소리 202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