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789

3월 잡설,

#. 저녁 굶기를 한 달여쯤 속과 몸이 헐러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 이 나이쯤에 풍선 하나를 안고 다니는 것 같은 몸매 어쩐지 무책임해 보인다. #. 밤새 하고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 눈도 오고 비도 오고 풀린 듯하다가 다시 추운 거 그러다가 슬그머니 봄이 오는 거 다 자연의 이치이다. #. 배고픈 이에게 한꺼번에 왕창 먹이면 탈 나는 거 처럼 눈 빠지게 봄 기다리던 이들에게 어느 날 왕창 봄 몰아주면 탈 나기 때문이라는 거다. #. 그래서 오늘 비 끝에 다시 소슬하게 추운 거 즐겁게 견디기로 했다. #. 이 비 속에 늙은 형님이 전화해서는 부모님 선영을 둘러봐야 한다는 거다 비 오는 날 세상에 있지 아니한 엄마 아버지 생각하는 거 청개구리나 할 일이다. #. 볕 바른 자리에 우선 참나물이..

풍경소리 2022.03.27

봄 처녀 제 오시고,

#. 올 듯 말 듯... 에서 그저 눈 날림 정도로 예보가 바뀌던 날 #. 아이들 모두 봄 농사 중 제법 힘든 일을 덜어 주겠노라고 밤 길을 달려 모였으나 #. 그 밤 산 골엔 폭설이 시작됐고 그 눈은 아침 이어 한낮 한 낮 이어 종일의 퍼 부음이 되었으니 #. 겨우내 지지부진이던 눈을 춘분이 머잖은 날 이 겨울 남은 량의 모두를 한방에 퍼 붓기로 한 건지 #. 윗 밭의 사래 긴 비닐하우스가 곧 주저앉을 듯하여 비닐을 모두 잘라 버리는 난리, #. 강원도 살이 중 이런 어거지는 또 처음이다. #. 저 아래의 너른 들에서 이제 막 산골을 향해 떠났노라는 봄처녀는 어느 들판에 몸 구부려 안달을 하고 있을꼬? #. 하여 산골짜기 봄은 또 난산이다. #. 늙은 봄이 당도하여 비로소 꽃 피고 장딴지에 땀띠 솟을 ..

풍경소리 2022.03.19

각자코생,

#. 코로나 확진자가 팝콘 튀기듯 생겨나서 #. 일을 계획했던 사람 중 하나가 만난 사람 중에 확진자가 있어 일을 취소해야겠다는 일방 통보에도 일의 어그러짐이야 어찌 되었든 서로의 안부에 가슴 쓸어내려야 하는 도무지 알 수도 이해 할 수도 없는 개떡 같은 세월, #. 어디로 어떻게 피 할 수 있는걸까? #. 코로나 미로에 갇혀 맴돌고 헤매기를 3년여, #. 매일매일 친절하게 도착하는 문자 속 확진자 숫자가 몸과 목을 죄는 올가미로 느껴진다. #. 원아 중에 확진자가 생겨 급히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고자 하니 직접 유치원에 와서 데려가라는 화급한 기별에, #. 아이는 신이 나고 엄마는 심란하고, #. 일상 주변에서 손 잡아 정겹던 이들 중에 확진자가 생기기도 하니 #. 그럴 때마다 아직 안 걸려서 미안..

풍경소리 2022.02.26

착종(錯綜)

#. 우수 보내 놓은 지 사흘째 여전히 영하 행진, #. 한낮엔 예보에 없는 목화송이 눈이 내렸다. #. 거기에 더 해 산 계곡을 굴러 내려와 추녀 끝에 매달린 바람 덩어리, 들, #. 간혹 한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기도 하니 낮엔 햇살이 황홀하고 밤엔 한기에 새우처럼 오그라드는 #. 착종의 계절, #. 풍경을 뒤흔들며 지나는 바람 소리가 허둥지둥이다. #. 겨울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가는 것 같다. #. 아랫집 아우가 올라와 오랜만에 전해주는 마을 소식이 이즈음 날씨만큼이나 편치 않다. #. 전유의 과정 없이 만나진 사람들이니 기억의 공유도 가벼울 터 조심스러워야 할 관계가 내 생각 내 고집으로 소란하다. #. 사람의 만남이 따듯한 인연이라야 하는데 업보로 느껴지는 사람들을 산골 마을에서 조차 간..

풍경소리 2022.02.22

세월 변명,

#. 열흘쯤의 시간 동안 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 요즘 쓰기 시작한 운곡의 시구에 남은 것 이라곤 거문고 하나 책 세 권의 곤궁 뿐이라고 했는데 여섯 권 이라니... 산 중 사치로다. #. 책을 읽기 위해서 보다는 겨울 끝자락의 무료를 떨쳐 내기 위해 몸부림을 하는 일, #. 봄 되기 전에 아지랑이 보다 조바심이 먼저 일어선다. #. 아이들과 커다란 운동장에 나가 자전거 타고 달리기를 한다. #. 방아깨비처럼 가벼운 아이들 뒤에서 낡은 관절들이 고통스러우니 그저 멀어지는 아이들을 바라만 볼 수 밖에, #. 일 년 중 가장 달 밝은 날, 오곡밥에 나물도 부럼도 짐짓 잊어버린 채 묵묵히 어제처럼 지내는 일, #.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일러 주신 일들 조차 이제 적당히 지쳐서 나이 때문 이라고 변명을 해도..

풍경소리 2022.02.15

코로나 사잇 길,

#. 초저녁부터 서산에 걸린 상현 달빛이 제법 치렁해서 추운 뜨락에 나가 한참이나 하늘바라기를 한다. #. 여전히 빗살 무늬의 날카로운 바람이 불고 풍경이 쏟아내는 동그란 울림소리를 따라 꾸역꾸역 밀려드는 초저녁 잠, #. 백수도 이런 휴일엔 적당히 유폐감을 느끼게 된다. #. 살아온 날들이 하 어수선하니 초저녁 노루잠 꿈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의 왈가왈부가 소란스럽고 석양빛 같은 어머니 눈길은 여전히 서럽고 현실 같은 꿈도 있었고 꿈같은 현실도 있었고 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하고, #. 뭔 놈의 뉴스가 이 모냥인지 뉴스가 나오고 그 노무 뉴스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늬우스가 나오고 또 사실이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알리는 뉴스가 나오고 뉴스가 늬우스를 만들고, 만들어서 #. 나는 다만 어지..

풍경소리 2022.02.07

방학놀이,

#. 한글 공부 중인 여섯 살 정환이에게 형아의 일은 온통 관심 언제든지 라이벌, #. 형아의 일이라면 모두 참견하고 모두 기웃거리고, #. 방학 동안 마법 천자문에 빠진 형아의 한문 공부를 어깨 넘어 주워듣고 또 훔쳐 듣다가, #. 오늘도 한글 공부 시작, 기역, 니은, 디귿... 비읍 다음에 시옷이어야 하는데 사람 인 ! #. 헐러덩 헐, #. 역시 짬뽕은 해롭다. #. 다음은 단어 마법, #. 물 수 맑을 정 수정, #. 정환이가 따라 하기를 물 수 불 화, 따듯한 물, #. 물 수 불꽃 염, 뜨거운 물, #, 과연 마법 놀이로다.

풍경소리 2022.01.23

겨울 평론,

#. 심장에 동상이 걸릴 때쯤 겨울의 배후에 모서리 날카로운 바람이 있음을 알아낸다. #. 무채의 그림자가 비로소 일어서서 낮 동안의 노고를 푸념하는 시간, #. 탕진한 오늘이 아무것도 기억할 것 없는 어제가 되어 바람처럼 떠나던 시간, 하늘 가득 추위에 잠긴 별들이 초롱했으므로 나는 잠시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들춰 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기억조차 폐기되어 버린 건망의 날들, #. 아직은 조금 더 춥고 아직은 조금 더 눈이 올 것 같고 아직은 조금 더 따듯한 이의 눈빛이 필요한 시간, #. 아버지 돌아가신 날 무릎이 빠지도록 눈이 왔었는데 제사 모시고 돌아오는 밤 길에도 사뿐사뿐 눈이 내리고 있었다. #. 선영을 지나야 집으로 오는 길, 두 분을 차로 모시고 올 걸 그랬나? #. 산에서 나와 대..

풍경소리 2022.01.16

새벽 넋두리,

#. 동쪽 능선이 밝기 전에 일어나 반가사유의 헛된 궁리들, #. 아내는 지극히 발전적인 나으 궁리를 궁상으로 발음한다. #. 아직 세상이 어둠 속에 고요한 시간 붓 들어 먹물을 적신다. #. 일본의 서도로는 일곱 항아리의 물을 먹으로 갈아 써야 한다 했고 중국의 서예로는 태산의 돌을 벼루로 만든 뒤 먹으로 갈아 없애야 글씨다운 글씨가 되는거라고 일찌감치 초짜들의 넋을 빼는 뻥을 쳐 놓은 바 있지만 #. 정작 중요한 건 쓰는 이의 마음, #. 글자 수를 바꾼 전지 한 장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 #. 본디 상을 탈 재주도 아니거니와 이쯤의 나이에 무어 그리 마음 달굴 일 이겠나만, #. 말투로 그니의 내면을 들여다보게도 되니 글 또한 다듬고 다듬어 눈으로 읽히는 고운 말투가 되도록 전심을 다 해야 할 일,..

풍경소리 202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