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5

빈둥낙도,

#. 비 보다 먼저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추녀 아래 비 젖은 봄바람이 꽃잎 더불어 옹송옹송, #. 하여 이 봄은 또 전설이 될 것이다. #. 지난 1월의 여행은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겨서 한 겨울부터 새기 시작한 수도파이프는 꼼수의 미봉책으로 이날까지 졸 졸 졸 물을 흘리고 있었으므로 #. 재 넘어 도회의 도사님께 문의한 바 더도 덜도 말고 이십오마넌을 내라는 흰소리, #. 일에 비해 터무니 없는 비용도 그렇거니와 '가급적 셀프' 정신에 위배되는 바 #. 인터넷을 뒤지고 뒤진 끝에 제법 만만한 방법 하나를 얻었다. #. 구닥다리 동 파이프를 잘라 버린 뒤 자른 부위를 용접으로 마무으리~ #. 마누라 붙들고 한 삼일 자랑질을 해도 될 일이건만 아침에 집 나간 아내는 여전히 무소식, #. 우선 급..

풍경소리 2023.04.16

서울 잠입,

#. 감기 곁에 붙어있던 이런저런 증세들이 어지간하길래 #. 철 지난 책 몇 권을 구 하고자 헌 책방 많은 서울에 잠입했다. #. 미로같은 도시의 내장을 헤매고 헤매다가 히잡을 쓴 이국의 여인네와 세번을 마주쳤다. #. 너도 맴돌고 나도 맴돌고, #. 하여 촌놈의 머쓱함도 털어버릴 겸 경칩 맞은 개구리 처럼 땅 위로 올라섰다. #. 스무해 넘도록 짱박아 살던 내 나라 산꼬댕이는 이제 이국 이거나 외계에 속 하는 것 같다. #. 청계천 옆에서 호시절을 구가하던 헌책방들은 손 꼽아 셀 수 있을 정도로 쇠락해서 쌓인 책들 만큼이나 늙어버린 주인의 표현으로는 독한 것들 몇 만 남았다고 했다. #. 천변을 어슬렁 걸어 동묘 시장 둘러보기, #. 어느 귀신 붙은건지 백동 문진 두 개와 바즈라 하나를 가방에 담았다...

풍경소리 2023.02.28

2월 잠꼬대,

#. 침 뱉다가 뜨끔 허리 통증이 생겼다. #. 낡아 갈수록 툭하면 어딘가가 아파져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 쉬는 날에도 진료하는 한의원을 찾아 침 삼만 개쯤 맞았다 역시 침으로 빚어진 일은 침으로 다스려야 하는 거시다. #. 한방 치료라 하니 한방에 나을 것이라는 나이브한 기대, #. 매양 드나들던 아이들 문 앞에서 현관문 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잠시의 시간을 서성 거렸다. #. 기억의 골다공증, 막연하지만 몸의 안팎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이 자꾸 부서져 내리는 느낌, #. 초딩이 손주가 블로그를 개설했다고 기어이 첫 번째 친구 신청이 되었다. #.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구요~♬ 한 동안 초딩이 처럼 놀아줘야 될 일, #. 정우와 목욕 다녀온 뒤 기어이 정환이도 함께 가겠다고 한다. 난 이제 ..

풍경소리 2023.02.21

세월의 속도,

#. 무르팍에 앉아 옛날 얘기를 듣던 아래의 아래 처제가 환갑이 되었다고 모두들 한자리에 모여 소만큼 먹고 왁자하게 수다하였다. #. 산속으로 서식처를 옮기기 전 오랜 시간 살았던 도시의 거리조차 세월의 공습에 조금씩 낡아가고 있었으므로 우리 모두도 적당히 늙어가고 있었다. #. 세월보다 더 빠른 우리들, 나이, #. 다음엔 누가 칠순이고 누가 또 환갑임을 손꼽아 상기하다가 흥 많은 처가의 여섯 남매가 기어이 노래방을 찾아가서는 소금 맞은 미꾸라지처럼 들 뛰었으나 #. 나는 그저 그리운 소토골, #. 도시에서의 귀가는 늘 탈출이었다. #. 그런 뒤에 쉴 새 없이 들이닥친 정우와 정환이 열 살의 반항과 일곱 살의 저항과 나날이 쉽지 않다. #. 저희들 필요한 것이 있는 경우에도 전처럼 손잡아 동행하는 게 ..

풍경소리 2023.02.06

싸바이디 라오,

#. 영하의 첫새벽에 야반도주하듯 집을 떠나 도착한 곳은 영상 30도쯤의 더운 나라, #. 3홉 소주 세 박스쯤을 나누어 장전? 한 열여덟 명의 술꾼 속에 끼어진 억지 여행이었다. #. 잠시 먼 나라 순박한 사람들의 일상에 별스러울 것 없는 백수의 일상을 휘저어 담아서 건들건들 5일의 밤과 낮을 탕진하는 일, #. 놀기 위해서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빈한한 백수의 주머니를 자주 기웃거렸다. #. 먼 나라 도시 가운데에 차려진 평양식당, #. 기예와 음식 팔기와 이런저런 일로 뭉떵거려진 바비 인형처럼 고운 사람들이 신명나는 가락을 쏟아 내었으므로 모두들 손뼉 치고 흥겨워하였으나 홀로의 눅눅했던 느낌들은 또 뭐였을까? #. 일행을 버려둔 채 이른 야시장을 어슬렁 거리다..

풍경소리 2023.01.25

새 해, 헌 몸,

#.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창구의 바비인형 같은 직원의 물음으로 기억 깊숙이에 압착되어 있던 숫자들을 세상 고갱이의 언저리에서 힘들게 끌어내는 일, #. 늙고도 낡았구나... #. 병원 혈액 채취실 앞의 장사진, 그리고 안내판에 뜨는 '고객'이라는 단어의 혼란스러움, #. 내 몸에 꽂힌 채 요지부동인 빨대들, 그 통로로 술값 아닌 대가를 지불하고 은밀해야 할 온몸의 구석구석을 공손하게 내 보이는 일, #. 조영제가 몸 깊은 곳에서 화염병 처럼 터졌다. #. 새해 벽두를 병원 순례로 열었다. #. 다시 두 시간 넘어의 운전으로 병원과 도시 탈출, #. 비로소 숨통이 트였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산이 약이고 자연이 명의다. #. 뒷 산 등떼기에 매달린 산사의 범종 소리 은은한 저녁, 개님들 공양 올려..

풍경소리 2023.01.06

접촉에서 접속으로

#. only on-Line을 전제한 물건 하나를 사는 일에 단단히 혼쭐이 나기를 5일쯤 예쁘장한 꼬맹이 차 한 대를 만났다. #. 그 꼬맹이 차 한대에 보험부터 뭔 노무 블랙박스 하고도 선팅 더 하기에 더 더 더... #. 온통의 일들이 목장 풀밭에 쇠똥처럼 널렸음에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 채 손전화 한 대만 불나게 바빴었다. #.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저 경이롭고도 어지러우니 나는 과연 늙었고나··· #. 마지막 번호판 하나를 매다는 일로 또로록 문자 하나 왔길래 첫새벽 컴퓨터를 열고 확인해 보니 산속 고치처럼 꼬부려 잠들었던 밤 새 그 작은 물건 하나를 건네주기 위해 #. 깊은 밤 추운 시간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다시 또 어디로 가고··· #. 얼굴도 모르는 그니들의 추운 노고들이 문득 눈물겨워..

풍경소리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