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47

이제 가을입니다.

#. 글 올린게 한 이틀 되었나?... 하고 들여다보면 훌쩍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 호랑이 등 같은 세월의 등짝에 얹혀 있는거다. #. 아내가 절간 스테이를 떠났다 바닷가의 어느 절에 잠시 머물러 도피안을 꿈꿀 모양이다. #. 하여 산 중 절간 같은 집에 홀로 남아 맴 맴 맴, 매미의 독경 소리에 취한 채 혼몽지경의 반가사유, #. 귓 전에 모기 소리가 들렸지만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내버려 두었더니만 이노무 모기, 삐뚤어진 입으로 삐뚜로 물고 달아났으므로 삐뚜로 붓고 삐뚜로 가렵고 삐뚜로 억울하고, #. '어제는 어째 운동을 안 하셨수?' "백수도 일요일엔 쉰다우~" #. 마을 만수무당댁 문간에 붉은색 서낭기가 세워졌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풍경소리 2023.08.28

가을 예감,

#. 정우 정환이와 하룻밤 잠자리 가장 따듯한 생일 선물이었다. #. 여전히 하도 더워서 아무도 오지 말기 아무것도 받기 싫기 그래도 또 축하 한다고 카톡, 아프지 말라고 카톡 여기저기서 카톡 카톡, #. 과연 스마트 세상 이로고, #. 더위를 핑계하여 거르고 거르던 아침 운동길 #. 나뭇잎 새는 조금 헐렁하고 발악 같은 매미 소리들로 문득 가을 예감, #. 나무 아래로 뛰어내린 칡꽃 향기가 달보드레 하다. #. 일곱 권의 책을 열세 번쯤 읽다가 기어이 여섯 권을 다시 사 들였다. #. 새벽 세시에 일어나 책과 글에 빠져 있다 보면 손수건 만한 창문으로 햇 밝음이 물감처럼 번져 들었다. #. 그리하고도 여전히 알듯도 하다가 다시 모를 듯도 한 이노무 주역, #. 길었던 장마가 있었고 태풍이 있었고 잠깐씩..

풍경소리 2023.08.15

입추와 처서 사이,

#. 고추가 맘 놓고 붉었으므로 #. 넋 놓고 고추 따기, #. 사은품으로 비짓 땀 한 동이, #. 태양초는 이제 언감생심, 건조기 반, 뙤약볕 반, #. 하이브리드 짬뽕 태양초가 될 것이다. #. 재 너머 장날 넉넉한 근으로 고추를 팔아 늙은 마담이 창 가 쪽볕 아래 졸고 있는 시골 다방에 들러 도라지 위스키 백만 잔쯤 때려야겠다. #. 일주일 시간 동안 아이들이 난장을 치고 떠난 자리에 쏟아져 있던 감기 1인분, #. 인후부 통증으로 날이 갈수록 예리해지더니 기어이 염증이 되어 항생제 한 사발에 항히스타민제 두 사발, #. 병을 낫게 하는 게 아니라 몸을 항생제 장아찌로 만드는 거다. #. 먼 남쪽 바다에서 지르박에 부르스 스텝으로 맴돌기를 하던 태풍이 기어이 이 나라 전체를 감싸 안을 넉넉한 품으로..

풍경소리 2023.08.10

고양이 인연,

#. 장마라는 이름은 이제 전설이 되어서 집중 호우 지역적 폭우에 더 해 극한 폭우라는 다분히 위협적인 언론 중심의 날 선 표현들, #. 많은 비, 정도로도 충분히 질척하다. #. 오늘도 내일도 또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하여 #. 하늘에선 빗방울이 전화 속에는 문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 여러 날 지나도록 노을을 보지 못했으나 꽃들은 노을빛으로 화창하다. #. 곧 옥수수를 벨 것이므로 옥수수 아래에 들깨를 심었다. #. 날라리 농사거니 시골살이 여러 해 동안의 내공인 셈이다. #. 심은 자리에 관계없이 어쨌든 깨 쏟아질 것이다. #. 저 앞, 보이는 곳까지만 심으면 끝이 날듯 할 무렵 무거웠던 하늘은 기어이 비를 쏟아냈으나 #.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나... #. 제법 낭만스러운 낙망..

풍경소리 2023.07.15

어슬렁 골목길

#. 해마가 있고 고래보다 더 큰 거북이가 있고 게도 있는 용궁의 입구 정환이가 그린 여름 바닷속이었다. #. 방학하면 길게 또는 자주 할머니 집에 있겠다는 원대한 포부? #. 길게 또는 자주 떡실신할 일만 남았다. #. 여기에 더 해 우리도 곧 방학을 한다는 쌍둥이들 전화, #. 나는 개학 이로다, #. 유난히 골목을 좋아한다 일부러 가장 복잡한 도시의 골목을 찾아 배낭 속에 물과 간식을 넣고는 두리번 어슬렁 걷기를 한다. #. 오로지 걸어야 하는 길 #. 불빛 화려하고 사람 복잡한 거리의 이면에 엉킨 실타래처럼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도시 이전의 길, #. 길보다는 선이 맞다. #. 사실은 도시의 큰 거리가 저토록 화려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온갖 것을 만들어 내고 간직해 온 곤비한 삶의 내장이다...

풍경소리 2023.07.12

붉은 유혹,

#. 버리듯 묵혀 두었던 낙관 도구들을 꺼내 먼지를 털었다. #. 접부채 30개를 주문하여 먹고사는 일과 아득한 얘기들을 써넣고는 눈 위의 발자국처럼 꼭 꼭 눌러 낙관을 찍은 뒤에 마을 어울림 동무들에게 일일이 나눌 생각이다. #. 더운 날들 맘껏 바람피우시라... 는 당부와 함께, #. 열개쯤 심은 오이가 온 힘을 다 해 오이를 매달기 시작했으므로 #. 아침 밥상에도 오이 점심 밥상에도 오이 저녁 밥상에도 오이, #. 온 힘을 다 해 오이 먹어치우기, #. 뿐 인가? 보리수와 자두가 맘껏 익었으므로 아이들에게 전화, 하늘의 붉은 베풂을 미끼 하여 유혹에 또 유혹, #. 그래봤자 내 발등 찍는 노고가 되겠지만, #. 아내의 도시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이박 하고도 삼일째, 산골 누옥을 거점 삼아 주변..

풍경소리 2023.06.26

세 시간 농사,

#. 재너머 작은 도시의 거리에는 덩치 큰 열 덩어리들이 뜨거운 바람과 함께 굴러 다니고 있었다. #. 더위가 아니라 태양의 피폭이다. #. 가방 속에 차가운 물과 양산과 부채와 손수건을 넣었다. #. 마스크와 뒤바뀐 이 계절의 필수품이다. #. 사람들 모두 하늘의 지나침을 성토했지만 사람의 지나침에 대해서는 그저 묵묵히 입 닫은 채 #. 냉방기 가동으로 조금은 소슬하게 느껴지는 건물, 거리로 나서면 그 열기가 곱에 곱으로 느껴지는 인위와 무위의 부단한 충돌, #. 더군다나 몇몇 상점의 열린 문 밖으로 흐르는 냉기는 더운 거리에서 징검다리를 밟는 느낌이 들게 했다. #. 이 더위 속에 소금 난리가 났다. 가격은 나날이 치솟는데 줄을 서서도 구 할 수가 없노라는 풍문들, #. 맘 놓고 싱거운 사람이 되어 ..

풍경소리 2023.06.20

공동 육묘,

#.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주머니 곳곳에서 마스크가 출토되고 있다. #. 재너머 소도시의 이비인후과 의원은 대학병원을 방불케 하는 장사진, #. 감기인지 코로나인지 독감인지... 정체불명의 고뿔을 끌어안고 너도 나도 병원 순례 중, #. 낫는 듯 하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세 번쯤, 아무래도 뜨끈한 콩나물 국에 청양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코로 마셔야겠다. #. 부처 모양의 향꽂이에 인도산 샐비어 향을 하나 피웠더니 시바의 미소 가네샤의 위용이 너울거리고 박타푸르의 어느 작은 식당에서 먹던 탈리의 기억, 향불의 연기 속에서 진한 커리향이 느껴졌다. #. 옥수수 밭고랑에 잡초 억제용 비닐막을 까는 대신 괭이를 휘둘러 한나절 신공을 펼친 끝에 몽땅 제압한 뒤, 의기양양 돌아 선 등 뒤에서의 한마디, 비 온 뒤에 한..

풍경소리 2023.06.08

초록비 틈새,

#. 풀숲으로 사라지는 뱀의 꼬리처럼 시간의 숲속으로 가만히 사라지는 오월의 꼬리, #. 종일토록 초록비가 내렸다. #. 모든 물들이 서쪽으로 흐르는 곳을 지나 모든 냇물과 구름이 동쪽으로 흐르는 마을로 들어왔다. #. 허공 가득 등 푸른 비린내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 먼 도시 친구는 둘째 아이 늦은 결혼이 그저 감지덕지하여 이것도 저것도 온통 고맙기만 한데 시끌번쩍한 무대 풍경에는 그저 무심한 채 빼곡한 하객들 모습을 넋없이 바라본다. #. 모두들 평생의 시간을 걸어 걸어 얼굴과 어깨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성실한 세월의 흔적들, #. 구구절절의 주례사가 왜 필요할고? #. 그니들과 손 잡고 눈 맞추어 따듯하게 바라보았으면 됐지, #. 예식이 막 끝날 때쯤 또로록 문자 하나, #. 가슴에 쌓았던 ..

풍경소리 2023.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