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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가 있고
고래보다 더 큰 거북이가 있고
게도 있는 용궁의 입구
정환이가 그린 여름 바닷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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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하면
길게 또는 자주 할머니 집에 있겠다는
원대한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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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또는
자주
떡실신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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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 해
우리도 곧 방학을 한다는 쌍둥이들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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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학 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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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골목을 좋아한다
일부러
가장 복잡한 도시의 골목을 찾아
배낭 속에 물과 간식을 넣고는 두리번 어슬렁 걷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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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걸어야 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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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화려하고 사람 복잡한 거리의 이면에
엉킨 실타래처럼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도시 이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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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다는
선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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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도시의 큰 거리가 저토록 화려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온갖 것을 만들어 내고 간직해 온
곤비한 삶의 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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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곳에서
끊기듯 좁아지는 집과 집의 어깨와
딱 서너 사람이 앉아
지나 온 날들을 되짚는 수다에 그만인 만큼의
보자기 만한 그늘이 있는
골목의 여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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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비굴해 보이는 눈빛으로
쉬기보다는 경계의 시간이 더 많은 몇 마리 개와
삐뚤빼뚤
여기에 오줌 누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녹슬어 보이는 가위 하나 날을 세우고 있는
그런데도
모든 것들이 정겨워 보이는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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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저 너머로
마천의 아파트들이 우뚝 서 있지만
골목에서 시선의 높이는
바닥 이거나
지붕선을 넘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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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탯줄이었다가
다시
우리네 삶의 단편 회로 같은
질박한 한숨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