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세 시간 농사,

햇꿈둥지 2023. 6. 20. 06:36

 

#.
재너머 작은 도시의 거리에는
덩치 큰 열 덩어리들이
뜨거운 바람과 함께 굴러 다니고 있었다.

#.
더위가 아니라
태양의 피폭이다.

#.
가방 속에 차가운 물과
양산과
부채와
손수건을 넣었다.

#.
마스크와 뒤바뀐
이 계절의 필수품이다.

#.
사람들 모두
하늘의 지나침을 성토했지만
사람의 지나침에 대해서는
그저
묵묵히 입 닫은 채 

#.
냉방기 가동으로 조금은 소슬하게 느껴지는 건물,
거리로 나서면
그 열기가 곱에 곱으로 느껴지는
인위와 무위의 부단한 충돌,

#.
더군다나
몇몇 상점의 열린 문 밖으로 흐르는 냉기는
더운 거리에서
징검다리를 밟는 느낌이 들게 했다.

#.
이 더위 속에 소금 난리가 났다.
가격은 나날이 치솟는데
줄을 서서도 구 할 수가 없노라는 풍문들,

#.
맘 놓고
싱거운 사람이 되어 살아야 하나?

#.
내일쯤
당나귀 두 마리 구해 가지고
조로서도(鳥路鼠道)의 차마고도를 지치도록 걸어
티베트 옌징의 소금 우물로 가서 
티벳 처녀의 고단함이 가득 배인 소금 백만 가마쯤 싣고 와야겠다.

#.
아침에 세 시간쯤을 움직여
고추 밭을 손질하고
감자 밭에 키 자란 풀을 뽑고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튼실한 오이 두 개를 얻고,

#.
그리고 낮이면
열도를 잠행하는 용병처럼
그늘 아래 가만히 엎드려 하늘을 관음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맞고,

#.
아랫집이고 내 집이고 가릴 것 없이
옥수수들이 몸을 비틀기 시작했으나

#.
"넉넉하게~" 비를 내려 줄 것이라는
복음 같은 일기예보가
성급한 마음 속에 낙수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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