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초록비 틈새,

햇꿈둥지 2023. 5. 29. 03:17

 

#.
풀숲으로 사라지는 뱀의 꼬리처럼
시간의 숲속으로 가만히 사라지는
오월의 꼬리,

#.
종일토록
초록비가 내렸다.

#. 
모든 물들이 서쪽으로 흐르는 곳을 지나
모든 냇물과 구름이 동쪽으로 흐르는 마을로 들어왔다.

#.
허공 가득
등 푸른 비린내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
먼 도시 친구는
둘째 아이 늦은 결혼이 그저 감지덕지하여 
이것도 저것도 온통 고맙기만 한데
시끌번쩍한 무대 풍경에는 그저 무심한 채
빼곡한 하객들 모습을 넋없이 바라본다.

#.
모두들 평생의 시간을 걸어 걸어
얼굴과
어깨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성실한 세월의 흔적들, 

#.
구구절절의
주례사가 왜 필요할고?

#.
그니들과
손 잡고 눈 맞추어 따듯하게 바라보았으면 됐지,

#.
예식이 막 끝날 때쯤
또로록 문자 하나,

#.
가슴에 쌓았던 시간을
외롭게 헐어내던 친구의 모친께서
아흔의 생애를 마치셨노라는 전갈,

#.
온 길을 다시 되짚어 
이번엔 문상 길,

#.
이승의 백수 살이가
이렇게 허겁지겁 황망할 때도 있다.

#.
부처님 오신 날,
그 무거웠던 생의 짐을 내려놓으시고
곤비했던 세월의 강을 건너셨구나,

#.
조그만 장례식장이
소란하고 북적였으므로

#.
늘 헤어져 있던 우리 모두
잠시 손잡아 수다 하였다.

#.
그 소란한 만남 뒤의 헤어짐,
우리 언제 또
누구를 보내는 자리에서 만나지랴

#.
산다는게
살아 있다는게
이토록 자꾸 눈물겨우니
우리 모두 어디로 가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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