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953

세상 엿보기,

#. 아직 어두운 시간에 일어나면먼저 컴퓨터 앞에 앉아 산골 허공에 손구멍을 내어 세상 엿보기,#.제법 농사꾼답게일기 예보를 보고제한적으로 세상 소식 몇 개를 들추어 보는 정도,#.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화면에는 숱하게 많은 광고들이 팝업으로 돋을새김을 하여오늘은 이걸 사라이걸 사면 행복해진다...#.이걸 사면 뽀인트를 곱으로 줄 것이요쌓인 뽀인트가 다시 너희를 낚을 것이리니...#.집어등 불빛 아래 몰려드는동해바다 오징어 같은 날들,#.그저 넋없이 그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내가 기어이 이거 사고 말지...#.새벽 산행에 고양이 방울이가 동행했다저 만큼의 거리를 두고 가끔 눈을 마주칠 뿐임에도가슴 따듯해지는 이따우 인연,#. 펄떡거리던 가심팍조차이제늙어 쪼그라들었나 보다.#.오늘 밤 부터또비..

소토골 일기 2025.05.20

세월의 힘,

#. 아내의 일은병 이기보다는 사건이었다.#.놀라고 허둥대던 파행의 시간들이흐른 만큼 치유되어이제 아내는 다시 운전을 하고 싶어 할 만큼철없는 상태로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손가락 사이마다 습진이 생기고별스럽지 않은 내 일상이번잡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이 헝클어졌으나#.우리가 보험이예요그러므로이제부터는 저희들 손을 잡고 가시면 돼요...라고고도 지능의 사기꾼처럼 말하는아이들과의 관계 밀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더더구나매주 멀고 불편한 길을 달려와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그리고그 음식을 먹는 우리 곁에서 맛있죠?라고 강압적? 확인을 거듭하던며느리의 노고에도 따듯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 역시전화위복 이란전화로만 되는 일이 아님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문둥이 한밤중에 애 낳아 ..

소토골 일기 2025.05.15

부지깽이 농사,

#. 이파(입하) Day,일손을 돕겠노라고 아이들이 우르르 내려왔다.#.5학년2학년과 함께 옥수수와 고추 모종을 심고#. 천방과 지축의 유치원생 둘과 더불어오이와 토마토를 심었다.#.뿌리를 땅에 심은 건지아니면하늘에 심은 건지,#. 아침 이른 시간이슬이 함초롬한 산 밑 고사리 밭 까지 쫓아 온다섯 살 예온이의 고사리 체험,#.고사리 손에 들린진짜 고사리,#.5학년의 어린이날 선물은'내가 알아서 살 테니 얼마를 주면 된다'는 일방 요구,#.산골 누옥조차 연휴 동안 화들짝 하여아픈 아내와 정신없는 나는잠시 화양연화의 시간을 보냈다.#.위태로운 비틀 걸음이거니산꼬댕이 비탈진 밭에는이제 빈자리 없이 빼곡히 심어졌으므로#. 올 농사는과연부지깽이들의 힘을 빌어거룩한 농사가 될 것이다.

소토골 일기 2025.05.06

훈수의 맛,

#. 여전히 아프다는 사람을등 떠밀듯 퇴원시키고는연결해 준 협력 병원이란 곳이 영 미덥지 않아#. 매일통원 치료 방식에 더 해휴일엔 자가 드레싱 하여 견디기로 했으므로#.간병 전담가사 전담농사 전담몽땅 전담,#.그리하여나날이 진땀,#. 이제야 깨우치는 것들,나는이때까지 세탁기 사용법을 모르고 살았구나#.내친김에대오각성의 자세로김치 담그기,#.등 뒤에 버티어 선 아내의 이건 이렇게저건 저렇게로 설정되는 길을 따라배추 준비해서 절이고윗 밭에 쪽파 뽑고 다듬어 썰고냉장고에 모셔 두었던 붉은 고추와 마늘과 생강을 정갈하게 준비한 뒤액젓 조금조금... 하였으니#.이 정성이면 됐지따로 맛을 따져 무삼 하리오#. 창 밖에 찬비 내리는 한 낮,할미꽃 보다 더 붉은어중떼기 가사 실습,

소토골 일기 2025.05.01

수난 사월,

#. 부처 사 후 개혁파와 상좌부의 분열에 의한Samgha bheda(상가 분열)로 소승과 대승으로 부파 된 이야기들을마음 가득 담고 #.몇 달간 빠져 있던 밀린다왕문 경을 덮고다시아육왕 경으로 바꾸기로 결의했으므로우리 모두 소만큼씩 먹고 헤어 진 오후,#. 집에 거의 이를 무렵아내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이게 발단이 되어두 곳의 병원을 헤맨 끝에 한밤중의 긴급 수술,#.우리 주변의 중요한 것들은 모두 한 글자의 이름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물, 밥, 해, 달, 별... 등 등 등,#. 변비를 미련스럽게 견딘 결과장 안에 수 일을 갇혀 있던 숙변의 내란이 있어결국은천공으로 이어진 것,#.똥조차한 글자로 된 중요함을 새삼 깨닫고#.이 새삼스런 깨우침의 결과는밥 하기청소하기빨래하기에트쎄터러의 온갖 집안일..

소토골 일기 2025.04.24

사월의 만행,

#. 사월 하고도 열사흘이 지나는 날,눈이 내렸다.#.변화무쌍하게도싸락눈이었다가함박눈이었다가진눈깨비가 되었다가...그리하고도아주 센 바람까지,#.절기로 곡우가 멀잖은 날이니배후에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이 있다는 풍문은어불성설이다.#.그럼으로써배꽃보다자두꽃 보다먼저눈꽃이 피었다.#.밤 새누옥의 창밖을 서성이던 소리들은꽃들의 신음이었을까?#.섶에 붙은 불길처럼활 활 타 오르던 농사 본능조차잠시 주저앉아 버려서#.고물딱지 농기계도늙다리 농사꾼도맘 놓고 게으름 중,

소토골 일기 2025.04.14

춘몽,

#.겨우 내 녹슬었던삽과 괭이 끝에서 잠시 흙먼지가 일더니만대번 겨울의 녹을 벗어던지고 내 땀을 양식으로 하여 성실하게 빛나기 시작했으므로#.드디어 푸석한 밭의 속살을 뒤집었다.#.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 꽃 봉오리그러나산골의 아침은아직도 미덥지 못하다.#.달래가 제법 키를 키웠고냉이도살금살금 꽃을 준비하는 날#. 오랫동안 머릿속을 뒤흔들던어지러운 세상사 하나가 매듭지어졌다고더러는 환호하고더러는 탄식하는 사람과 사람들,#.많이 배우고도여전히 어리석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산 아래너른 저잣거리에 피식 웃음 한 자락 던져두고그저 묵묵히 감자를 심고옥수수 씨앗을 넣었다.#.들판 여린 초록이제법 윤기 나게 자라거든푸른 밥상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배를 반쯤 내놓은 채햇볕 아래 곤한 낮잠에 들어야겠다.#.세상만사..

소토골 일기 2025.04.07

봄덧,

#. 오늘쯤은지금쯤은 꺼졌겠거니문 창호지를 뚫고 몰래 밖을 내다보는 심정으로뉴스를 기웃거리지만매번 가슴 무너지는 소식들, #.그렇게 3월이 가고세월이 가고산골짝 이거니 꽃이 피고...#.아득한 마음으로밭에 건성으로 남겨진 지난해 흔적들은 거두고다시거름을 내고 밭을 갈고,#.반장도 늙고이장도 늙고주민도 늙어 빠진 늙다리 마을에서는지난해 신청한 씨 감자에 문제가 있어걷어들여 바꾸는데 한 열흘,이제야 씨 감자 한 보따리를 받았다.#.공손하게 늙은 경운기와 관리기를 깨우고그 힘을 빌어 모난 돌이 지천인 따비밭을 가는 일,#. 바람이 지날 때 마다춥고 어수선했던 겨울의 상처들이 치유되고산 새들은 또 명랑하게 수다하겠지만,#.몽니처럼 다시날 선 바람이 불고 얼음이 어는 아침,#.한 낮엔 어쩐 함박눈이 쏟아지기도 했..

소토골 일기 2025.03.29

난산의 봄,

#.개 한 마리가각선미 고운 아가씨를 끌고 가고#. 개 두 마리가할아버지 한 분을 끌고 가고#.개 세 마리가관절이 시원찮은 할머니 한 분을 끌고 가는#.봄날의 천 변에#.날카롭던 모서리를 부드럽게 손질한 봄바람이겨울의 잔재들을 쓸고 닦는 일로 분주한 정오의 봄날,#.드디어 강원도 살기도썩 괜찮은 날들이 되었는데#.봄맞이는언제나놀이가 아닌일 이어야 하느니라고#.산꼬댕이 마당 가득비료가 쌓이고포대 거름이 쌓여서동동걸음을 하게 하는#.봄은일이로소이다.#.여전히겨울잠에 빠져 있는괭이 호미를 깨워야겠는데#.다시 눈 소식,#.겨울 잘 난 거지가꽃바람에 얼어 죽는다디만...

소토골 일기 2025.03.14

1년보다 긴 겨울,

#.조바심 탓 이겠지만지난 해 보다 두 곱쯤으로 느껴지는 겨울의길이와 강도,#. 경칩이 지난 날내 집 마당에 쌓인 눈에 미끄러져꼬맹이 차를 빠트리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길고 긴 겨울 동안수묵화 같은 풍경 속작은 애벌레처럼 꼬물꼬물 견뎌내던 나는#.3월 하고도여드레가 지나는 날에도 여전히장작 쪼개어 난로 불을 피워야 하는#.난리 법석의 3월,#.우수와 경칩을 앞세워 나돌던봄소식조차불신으로 심드렁한데#.씨 감자 한 박스가 배달되었다.#.그리하고도꼬맹이 트럭에 얹혀 올라온 스무 포대의 비료를겨울의 송곳니처럼 버티고 있는눈 위에 쌓아 놓을 수 밖에 없어서그저 딱하기 그지 없는 춘삼월,#.봄 걸음은 지지부진인데어떻게든 농사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사람의 극성,#.어쨌든모난 돌이 지천인 밭의 속살을 빌려우..

소토골 일기 2025.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