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916

8월의 바람,

#. 옥수수를 모두 베었다. 한 겹의 여름을 벗겨낸 것, #. 1. 고랑에 잡초억제용 비닐막을 깔지 않았고 2. 옥수수 곁에 들깨를 심었고 3. 옥수수 거둔 후 빈대궁을 삼등분으로 잘라 고랑에 깔았고, #. 날라리 농사꾼의 내공이다. #. 다시 포트에 김장용 배추 씨앗을 넣어야 하느니... #. 떨어진 나뭇잎 속에 봄과 여름과 가을이 뒤엉켜 있었다. #. 앞 마을 아우가 덜커덕 고장이 났다. #. 일주일에 8일, 2월 달력에 조차 31일까지 채워 넣은 뒤 쉴 새 없이 깰 새 없이 술을 마셨으므로 신장이 탈이 나서 의사는 술과 담배를 모두 끊든지 아니면 치료를 끊든지 결정하라고 말 했다는 것이다. #. 나는 거기에 더 해 성당을 끊으라고 권유했다. #. 성당내 이런저런 일로 사람의 모임이 번잡하다 보니 주..

소토골 일기 2023.08.01

뜨락에 신발 넘치나이다.

#. 긴 장마로 호미는 녹슬고 심긴 작물들은 더북한 풀 속에 유기되었다. #. 비 속에 책 몇 권을 들고 올라선 택배 총각에게 시원한 음료 하나를 건네는 일로 마음속 미안함을 덜어낸다. #. 장마 틈새 잠자리 날고 하늘과 땅 사이 잠시 공간이 열렸다 #. 집 주변 밭 주변 더북한 풀을 베려고 예초기 가동, 기계조차 주인 따라 늙어 버려서 힘 안 써도 될 때는 왕왕 돌아가고 힘써야 될 때는 멈춰 버리는 증세 #. 수시로 고쳐야 하는 고행적 노고를 벗기로 하여 새 예초기로 바꾼 뒤 쓰던 예초기를 중고로 사겠다는 이가 있어 전화했더니만 제법 먼 길을 찾아왔다길래 받은 돈 한쪽을 뚝 떼어 기름값 이라고 건네줬다. #. 주말에 몰려온 아이들, 정우 가족과 예겸이 가족과 쌍둥이 가족과, #. 내 뜰에 신발 넘치나이..

소토골 일기 2023.07.27

그렇게 여름,

#. 성냥갑 만한 제습기 한대 연일 산골 누옥을 쥐어짜는 중, #. 호우가 위험하니 역류가 예상되니 산사태와 축대 붕괴가 우려되니 등 등, #. 비로 인한 온갖 걱정과 근심을 버무려 담은 손 전화기 속의 구까적 문짜 폭탄, #. 문짜청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 사방에 물이 넘쳐나고 잠자리에 누우면 비가 오든 안 오든 빗소리의 환청, #. 낮은 자리의 급수 펌프가 작동을 멈췄다. 연일의 비로 온갖 눅눅을 견디며 고군분투 중이더니 그예 절명하셨으므로 #. 비와 물속의 갈증, #. 장마는 집 안과 밖으로 다양한 백수의 일거리들을 만들어 놓았다. #. 연일 비가 내리고 비 속에서도 온 우주의 힘으로 꽃을 피우고 햇빛이 아닌 물로 옥수수가 영글고, #. 도시의 식구들은 그 옥수수를 탐하고 #. 우주는 단순 명..

소토골 일기 2023.07.20

복합 손님의 계절,

#. 몇 번의 비로 산속 계곡물들은 명랑하고 찰랑하다. #. 때때로 햇볕 아래의 매미소리들, #. 한입 베어 문 자두에서 붉은 태양맛이 흘렀다. #. 눈 닿는 어디든 초록 무성한 칠월, #. 산 그늘에 숨어 나리꽃이 피고 #. 흑백의 기억 속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걷다가 걷다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먹던 붉은 산딸기, #. 고양이 식구들이 우르르 늘어난 후 뜻 하지 않은 횡액들, #. 제발 뱀 잡아 들고 자랑질 좀 하지 말았으면, #. 7월 하늘의 높이는 옥수수의 높이와 같다. 우쭐 키 세워 더운 햇볕들로 알알이 익어가고 있음으로 방학이라고 옥수수가 먹고 싶다고 하여 #. 때 맞춘 날들을 손꼽아 아이들이 아이들의 친구들이 더러는 아이들의 친구들의 엄마들 까지 #. 복합 손님이 되어 몰려오겠다는 기별들, #...

소토골 일기 2023.07.06

산골 홀로 밥상,

#. 며칠째 앞산 뻐꾸기가 말을 걸어왔으나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 확률 60%의 비소식은 또 헛소문이 되어 예보는 질척하고 하늘은 뽀송하였다. #. 다음 달에는 야유회 겸 바깥 모임을 하자고 하여 달력을 살펴보니 초복과 중복과 소서와 대서가 빼곡히 누워 있었다 마음껏 더울 모양이다. #. 밭 둑과 길 둑과 어디든 더북한 풀밭을 예초기 초식으로 몽땅 제압한 뒤, #. 흐르는 샘물에 땀을 씻고 받아 든 아침 상 앞에서 모처럼 의기양양 하였다. #. 자두나무 아래 감겨있는 바람 속에 단내가 뭉근하니 곧 태양빛으로 익을 모양이다. #. 유월의 서툰 그늘에 앉아 누구와 더불어 저 붉은 단맛을 나눌꼬? #. 오늘 아침 걷기 길에는 잠깐 다람쥐 두 마리가 동무해 주었다 수줍게 엎드려 있..

소토골 일기 2023.06.16

처락적 3학년과 철학적 일곱살,

#. 학교를 왜 매일매일 가야 하는가? 엄마 말대로 꼭 가야 하는가? 이를 심오하게 궁구하던 정우가 이미 수업을 시작한 학교 문 앞에 홀로 앉아 이토록 심오한 의문에 대한 하늘의 답을 꽃점으로 얻고자 하여 꽃 하나에 학교 간다 꽃 둘에 학교 안간다...로 간다 안 간다... 열심 중인데 교실 창문 너머를 째려보던 선생님에게 껄림으로써 현장에서 압송되었다는 거다. 처락적 3학년과 햄버거 집에 마주 앉아 땡땡이 불발의 비운을 아이스크림으로 위무하였다. 다음엔 점을 치는 꽃송이를 줄이고 핵교에 가냐 안가냐를 점 치기 전에 선생님께 껄릴건지 안 껄릴건지를 먼저 점 쳐 보도록 권고 하였다. #. 유별나게 곤충을 좋아하는 일곱 살 정환이는 주머니마다 이 곤충 저 곤충 심지어는 지렁이에 도마뱀이 튀어나오기도 함으로써..

소토골 일기 2023.06.10

신장개업,

#. 10년 넘은 노트북의 부팅 속도가 점 점 점 점 느려졌으므로 아항~ 이 컴터는 충청도에서 만든 건가 보다... 했었는데 이노무 기계조차 노쇠 증세였다는 거였다. #. 미학일 수 없는 느림에 더 해 가끔씩 발라당 누워 버린 뒤 꼼짝달싹 할 수 조차 없는 파업을 하기도 했으므로 #. 아들에게 전화하여 물었다. "노트북을 바꿔야겠는데 문방구에서 사면되니?" #. 전화기 너머의 한숨과 탄식, "아 아~! 산속에서 늙어버린 나으 아부지~" #. 서울 사는 아이가 늦은 밤 길을 달려와 새것으로 바꿔 주었다. #. 새 노트북은 그 새 이렇게 저렇게 진화하여 손전화와 함께 입 벌어지는 재간을 부렸으므로 모처럼 자식 키운 흥복을 누릴 수 있었다. #. 아내가 여름용 자작 패션으로 변신한 뒤 이런저런 뽐새로 자랑을 ..

소토골 일기 2023.06.04

무던하거나 때론 미련하게,

#. 며칠의 비 끝에 밭고랑의 풀들은 맘껏 품 벌려 겨우 제 힘으로 일어서는 작물들을 끌어안을 기세이므로 게으름의 근육을 모두 채근하여 괭이 하나 들고 풀 뽑기, #. 땀방울 방울이 영글어 고른 치열 같은 옥수수 알갱이가 될 것이다. #. 꼼수 없는 성실한 미련, #. 무던하거나 때론 미련하게, #. 지붕과 반자 사이에서 태어 난 꺼뭉이의 새끼들은 밤 눈 어두운 녀석들인지 하필이면 내부장식용 벽 틈새로 빠져 밤 깊은 시간의 SOS, #. 유월 맞이가 제법 소란했다. #. 감자는 꽃을 피우고 고추는 별빛으로도 자라기 시작했으므로 날라리 농사꾼의 밭에도 찰진 초록이 무성 하겠다. #. 농사는 되짚어 보는 일이 아니다 작물도 사람도 함께 자라는 일이다. #. 그러므로 지난해 게으름으로 망친 이런저런 일들은 그..

소토골 일기 2023.06.01

오월 냉면은 서울로 간다

#. 공작이 꼬리깃을 펴는 일은 목숨을 거는 행위이다. 구애를 위한 그 짧은 시간 동안 포식자가 나타나도 즉각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체통에 새끼를 키우고 있는 작은 딱새는 알이었을 때는 문이 열리면 호로록~ 날아갔지만 부화한 뒤에는 온몸으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 우주보다 더 큰 사랑과 모성 본능, #. 자연은 모든 잉간의 교과서이다. #. 감자를 심은 이후 다시 고추를 심고 옥수수를 심고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고 심고... 하다가 저문 강물에 삽을 씻듯 이제 어둠 속으로 흐르는 샘물에 발을 닦고 집으로 들던 시간, #. 재채기 한 열 번쯤, 그리고 오한과 미열, 콧물과 기침, 온통의 고뿔 증세를 일거에 동원하여 한 밤의 꿈길이 제법 울퉁불퉁하였으므로 해열제와 진통제를 한 사발쯤 마셨으나..

소토골 일기 2023.05.20

봉쇄 농법,

#. 운동 길에 마주치는 펭귄 걸음의 할아버지 한 분, 일주일 넘게 인사를 드려도 못 본 척 일관 이시더니만 어제 처음으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셨다. #. 비로소 온 산이 환해졌다. #. 마당 주변으로 돌나물부터 온갖 먹을거리들이 넘쳐 나더니 한 사흘 내린 비로 온통 풀밭, 예초기 돌려 모두 베어 버렸다. #. 부모님 선영 오름 길이 지난해 비로 망가졌으므로 머리를 맞대고 정리와 정비를 도모했으나 모두들 몸의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한 왈가왈부뿐, #. 어느 날 조용히 홀로 가서 팔뚝지 걷어 부치고 해결하고자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 #. 아이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들어 선 새 집 현장 체험을 하겠다고 우르르 몰려 올 기세다. #. 알 낳고 들어앉지 못하도록 일찌감치 쫓아 버릴걸... ..

소토골 일기 2023.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