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953

단풍 등고선,

#.아침마다 시린 이슬 내리고허공은 셀로판지처럼 투명하다.#. 이슬이 내리고나뭇잎이 떨어지고온갓 것들이 떨어져 내리는 겸손한 계절,#.폐포 가득허공을 담고작은 계곡의 물소리를 담고이제 막 떠 오르는 햇볕을 담고세월을 담고도그저 텅 빈 걸음으로 바람처럼 걸을 뿐인 새벽 운동 길,#.가을 둘러 볼새 없이겨울 준비에 등 떠밀려나날이 동동걸음,#.뒷 산 정수리가 어느새 헐렁해지고고양이 걸음으로 산을 내려오던 단풍은잠시시골 누옥의 마당마저 채색 중,#.얼마 남지 않은 화살촉 홑잎들이태양빛보다 붉다.#. 기대보다 형편 없이 자란 무 배추거니알뜰히 거두어 김장을 하기로 한다.처가 형제들이 우르르 모여밤 깊도록 도란거릴 일이니김치 맛 관계없이 행복할 수 있겠다.#.아궁이 옆에 땔감이 차곡하고사람의 등이 사람으로 따듯할..

소토골 일기 2024.11.06

변검적 기후,

#.지독히도 덥던 여름은어느 날 비 한 번에 후닥닥~가을이 되었고,#.시월 깊은 날에요란한 뇌우가 내리더니만기온은 곤두박질 하여가을이되 겨울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다.#.듕국 변검술사의휘리릭 한 바퀴에 가면이 바뀌고 색깔이 바뀌는 것 같은#.간절의 날도 완충의 시간도 사라져 버려#.노을빛으로 멀어져 가는 세월과손 잡아 서운한 이별을 할 새 조차 없는어수선한 시절,#.국화꽃이화들짝 피기까지아직 순한 가을의 햇볕이 더 필요할 일인데#.서리 내리고얼음이 얼지도 모른다는서슬 퍼런 풍문들,#.하여산골은 지레 겨울이다.#.벽난로의 나무를 들여 공손하게 쌓아 놓고누옥의 안팎을 둘러온 여름내 열어 두었던북풍의 길을 미리미리 막는 일로종일토록 종종걸음 이지만#.그래봤자어느 날 불쑥 점령군처럼 들이닥치는 겨울이#.노을빛 능..

소토골 일기 2024.10.19

안개 유영,

#.날마다 안개,#.안개 자락을 들춰 밭에 들었다가다시안갯속을 걸어 나오면불끈해가 솟아 오른 한낮이 되었다.#.한로가 지난 날 부터나날이 푸석해지는 나뭇잎 마다겨울만큼 시린 가울이조롱조롱 맺히기 시작하고도#.앞산 능선은맘 놓고붉어타.#.발육 지진의배추와 무 밭을 둘러보며일찌감치 김장에 낙담해 있는데#. 산 아래 저잣거리에서는배추 한 포기에 이만 원쯤이라는 풍문,#.손 전화가 며칠째 치매 증세를 보이더니만결국속내를 알 수 없는 이런 저런 짬뽕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이름은 손전화기 이되전화는 부속 기능이 되어 버려서#.이것과 저것저것과 이것들을 본래대로 옮기는 일로용을 쓰다가 문득 생각 하기를,#.늙어빠진 이 몸에 스스로 빨대를 꽂거나최소한 멱살 잡혀 주기,#.폐기된 손 전화의 기능을십 분의 일도 모른..

소토골 일기 2024.10.13

그리고 시월,

#.바람 모서리가어제보다 조금 더 날카롭다.#.작은 바람결에도팔랑어깨 위로 쏟아져 내리는#.먼 하늘의 별이 된 그니가노을빛 가슴으로 또박또박 써 놓은연서 같은 나뭇잎···들 ···#. 무를 솎아 김치를 담그고고구마 줄거리를 다듬는 일,#.줄거리만 창대하고고구마는 미약한 이런 농사그렇거니가을 햇살에 윤기 나는 줄거리를 아름 넘치게 거두었다.#.열번 백번 손질을 해야입에 넣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되니음식의 손맛이란참 고단한 일이다.#.아내가 만들어내는어머니 맛과 겹쳐지는 음식들은다만 음식으로만이 아니라이승과 저승으로 나뉜 뒤에도 여전히 교감되는영혼의 언어이다. #.혼곤한 새벽잠을 깨우는찌개 냄새 이거나등 푸른 생명 한토막이 꼬숩게 익어가는 냄새 이거나더러는젓국 냄새로 전해지는 언어들,#.엄마의 엄마와다시 엄..

소토골 일기 2024.10.04

가을 안녕?

#. 진작부터 기후 변화라는 말을 들어왔으니이쯤에서계절 변화를 얘기하는 일쯤은다소 늦은 감이 있다.#.며칠 전 늦더위 속 종일 내린 비 끝에기온은 곤두박질을 했고그리고짧은 옷을 긴 옷으로 바꿔 입을 새 없이추웠다.#.꼬맹이 차의 에어컨은망설임 없이히터로 바뀌었다.#.준비할 새 없이 계절이 바뀌니이젠봄이 오기 전에 여름을 걱정하고가을이 오기 전에 겨울준비를 해야 한다.#.이제봄과 가을은멸종위기종이다.#.노을빛에 취해온 산과 들이 불콰해지던 당연한 일들조차전설이 될 것 같은 위태로움,#.허공에서 뛰어내린 밤과 도토리들이 마음 놓고 굴러 다니는이른 아침의 산길을 걸으며#.가을의 안녕을 위해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소토골 일기 2024.09.27

몰더바래,

#.곧명절이 된다고평균 연령 70쯤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풀 베고 청소했다.#.백로 지난 절기에폭염 주의보,#.허수아비 등짝에도땀띠가 솟을 것 같다.#.확률 60%의 비 예보를 건성으로 들었는데이른 새벽부터장맛비만큼의 기세로 비가내리고 있다.#.역천은(亦天恩)이샷다.#.덕분에 자랄똥 말똥 하던 김장 채소들이푸르게 일어서는 아침,#.몰 더 바래,#.가는 일도 막고오는 일도 막았다.#.그래도 · · · 라고 멸종 위기에 놓인 며느리의 의무를 며느리적 자세로 얘기했으나고통 분담?을 위해친정에서 명절을 지내도록 간곡히 일러 두었다.#.그리하여우리는 아무도 모르게캠핑을 떠나기로 했다.#.마을 집들이 송편을 찌고 전을 부치는이른 새벽에살곰살곰 까치발로· · ·

소토골 일기 2024.09.12

불쑥 가을,

#.양쪽 눈을 모두 건드려 놓은 채젊은 의사는2주간,세수 금지의 교지를 내렸다.#.근시에서 원시로홀라당 뒤바뀐 눈의 상태,#.눈을뒤집어 놓았나?#.안과와 치과를 번갈아 다닌 탓에안과에 가서는 이가 아프다고 하고치과에 가서는 눈이 아프다고 하는치매적 상황,#.덥고 길어진 여름을 두고모두들 기후 위기를 말했으나더위 때문에두 번, 세 번 씨앗을 뿌리면서누구도밥상 위기를 말하지는 않았다.#.9월이 되던 날부터산골의 새벽은 소슬하게 추웠다.#. 허공에 박제된 여름,#.음울한 기억의 골짜기에지독히 더웠던 여름의 위패 하나를 세웠다.#.그렇게가을맞이,#.그래봤자붉은 고추를 따서 말리고다시 밭 갈아김장을 심고· · ·#.어차피세월,

소토골 일기 2024.09.05

미망(迷妄)의 미망(未亡)

#.아침 운동길이 서늘하다.지독했던 여름의 절명,#.사람 적은 마을 안곤비했던 한 생을 마감한 이가 있었다.#.몸을 땅에 묻고한 생애 공과 과는 남은 이들의 기억에 묻고,#. 기어이 옆댕이 공간을 만들어 가묘를 짓고는미망의 자리,라고 하였다.#.절반의 순장,#.위로 인사차 맞잡은남은 이의 거친 손마디들이촉수처럼 내 몸에 감겨 들어슬펐다.#.그리고 눈 수술,오십 년 넘는 세월 동안내 몸의 한 부분으로 붙어살던앵경이 떨어져 나갔다.#.콧등부터 시원하다.#.아프지 않았느냐? 는 1학년의 전화,젊은 의사가 처방 보다훨씬 더 약발 있는 진통제가 되었다.#.낮달이 되어 떠도는손톱 끝 만큼의 반달,#.내 생애 서른 하루의 시간들이낙태되어 사라져 버렸다.

소토골 일기 2024.08.30

좌충우돌 농사 일기,

#.고추를 따서씻어서건조기 채반에 고이 눕혀 모시기를 사흘,이제 그만 건조기를 가동하리라고전기 스위치, 건조기 스위치를 아무리 눌러봐도묵묵부답, #.자세를 최대한 공손히 하여다시 또 다시 작동해 봐도여전히 요지부동,#.에이에쑤를 해 준다는 곳에 전화를 했더니만된통 바뻐서 4일 뒤에도 될똥 말똥 하다는갑의 갑쯤으로 느껴지는 거드름이전화기 너머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이런 분위기들이가끔은 시골살이 청맹과니를 두드려 깨우는 회초리가 되기도 한다.그리하여인터넷 과외를 해가며건조기 쭈무르기를 한나절,#. 나는 땀에 절었거니건조기는 뽀송하게 살아나서 다시 펄떡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땅에 하늘이 열려고추 건조기가 보급된 이래최고의 장한 일이로다.그런 뒤로#.배추모종 150쯤을 사서 비짓땀을 쏟아가며 심었..

소토골 일기 2024.08.23

산골 복병,

#. 마당가 꽃밭을 정리하던 아내가풀 숲에 숨어 있던 쌍살벌 집을 건드려무료로 세 방의 봉침 시술을 받았다.#. 즉시 무장하고 달려 가벌집을 제거 한 뒤뭉념하고 말하길,#.임자 있는 여자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는 거 널리 알리시게나,#.이 소식을 전해 들은 1학년의벌침은 꼭 카드로 뽑아야 한다는주옥 같은 훈수,#.시골살이를 하겠다고 스무 해 넘도록 마을에 살던 이가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했다.아픈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는 절박한 문제,#.사람 사는 일,참 헛 되고도 헛 되도다.#.이제 느낌의 강도가 더욱 커져서우리 모두의 내일을 보는 것 같다.#.재 너머 작은 도시를 드나드는 길,나날이 늘어나는 요양병원, 들,#.늙어가고 낡아가는 몸이세상의 일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소토골 일기 2024.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