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952

겨울 안부,

#.눈 더하기 눈 더하기 또 눈그리하여눈 쓸기 또 눈 쓸기 자꾸 눈 쓸기,#.팔삭둥이 2월이쌓인 눈 아래 묻혀 버렸는데#. 겨우내 안부가 궁금했던 산 새들이종종걸음으로 추녀 끝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으니기어이봄이 올 모양이다.#.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낙수 져 흐르는 한낮,겨울의 낙태,#.어떻게든 경로당 출입을 하시던 할머니 한분이겨울을 나는 새요양병원으로 가셨다는 늦은 소식,#.그리하여마을 내 빈집 하나가 또 늘어났으니#.따로따로 늙음의 합으로마을 전체가 늙어 가고 있다.#.겨울 건넌 밭은 자꾸 넓어지는 것 같고그 밭을 가꿀 이들은 자꾸 줄어들고 있으니봄이 온들꽃이 핀들,

소토골 일기 2025.02.15

별빛으로 눈,

#.깊은 밤,보자기 만한 창 문을 열면이마를 맞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쯤의 수 많은 별들,#.별들이 가슴속으로 뛰어들어 청량한 숨길이 된다.#.이 집 지을 때집 안에서 술래잡기가 가능 하도록이리저리 여러가지 구조를 궁리 했었으나아내도 나도다시 아들 딸도단 한 번의 집안 술래잡기를 한 일은 없었으나푸른 시간이 지나고 흘러예쁜 네 마리의 아이들이작은 물고기처럼 뛰어다니며술래잡기를 하거나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하거나눈 밭을 굴러 눈 강아지가 되어 들어 오거나...참따듯한 소란,#.2학년 꼬맹이의 제안으로초밥을 만든단다.#.연어와문어와차돌박이를 동원하여무자격 셰프들이 셀프 초밥을 만드는 일,어느손 크고 마음 넉넉한 꼬마 셰프에 의해커다란 고추냉이가 들어간 초밥 한 덩이는함정 이거나고초가 되기도 하는 ..

소토골 일기 2025.01.28

설, 雪, 說,

#. 건너 마을 아우의 집 현관 손질하는 일에오지랖 넓은 훈수를 했다가스스로 멱살 잡힌 꼴이 되어한 일주일 두서없는 잡부 일로 바빴다.#. 시골살이변변찮은 재주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참 흔쾌한 일이다.#.앞 뒤로 너무 긴 설 연휴를 삼등분하여하나는 이쪽으로다른 하나는 저쪽으로남은 하나는 오로지 즈이 가족끼리를 위해 알찬 계획을 짠 아이들은세배 돈은지난해 받은 것의 세배라고 정한 뒤친가와 외가를 홀랑 벗기기로 모의한#.이제5학년과 2학년그리고두 마리의 유치원 생,#.세월 갈수록 강적이 되어가고 있다.#.설 연휴에는많은 눈(雪)이 내릴 거라는 얘기들(說)로 미리 걱정 이건만#.아이들보다 전화 먼저 당도하여 이르기를집 오르는 길,눈 치우지 마세요#.눈썰매장을개장할 모양이다.#.새 해의새 한 달이 비워져 ..

소토골 일기 2025.01.25

겨울 치하,

#.섣달 열나흘치렁한 달빛에 잠 깨인 새벽,#.마당 가득한 서리꽃,보이는 모든 것들이 꽁 꽁 얼어붙는 날들인데#.방학 맞은 아이들은상하의 먼 이국에서깔 깔 깔 물놀이 중,#.어려서 헤어진 동무들을늙어서 만난다#.밖으로 휘감긴 나이테 같이얼굴마다 음각된골 깊은 주름들,#.먼 길을 돌아 만났거니여전히 손 잡은 채까까머리 흑백의 기억들을 들추어오랫동안 수다 하였다.#.마을 방송으로이제 그만 허리를 펴고 영농 교육을 받으라는 독려,#.모두들겨울 갑갑증을 털어내기 위한 몸부림,#.그러나 아직도성냥갑 만한 난로 곁에따개비처럼 들러붙어온통의 책을 늘어놓은 채짬뽕으로 책 파먹기 놀이 중인데#.내일쯤에는다시 눈이 내리겠다는 확률 60%의 예보,#.그리하여산골짜기 내 집은여전히겨울치하,

소토골 일기 2025.01.13

희망 씨앗,

#. 딱히 옹크린 몸으로 종종걸음 칠 것 없는조금은 느슨한 겨울날들이 바람처럼 흘러새 해의 닷새를 비워내고 있다.#. 비워져 더러는 기울고 부서져 가던 외갓집을홀로의 고투 끝에 제법 전문가처럼 되살려 놓은 S교수는그 집을 강의 장소로 활용하여  불교 철학 강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강의가 끝나는 연말쯤20일의 일정으로 네팔 현장 학습 까지를 한 묶음으로 하고#.늙은 수강생들 중에는격주로 서울에서 충주까지의 길을 왕복해야 하는열혈 학생들도 끼워소수정예의 구성을 마쳤다#. 수년 전 카트만두 H 호텔의 순박한 사람들과 약속했던'기어이 다시 만남'을 실천하게 되었다#.일찌감치그니들에 나누어 줄 선물을 궁리해야 하는행복한 고민,#. 한 동안 모둠 공부로 익혔으나 잊어 먹은 것이 태반인 데바나가리를 곁드리 수업으로 ..

소토골 일기 2025.01.04

겨울 건너기,

#.달력에 남아 있는 며칠의 날들이자꾸 위태롭다.#.면장과농협 조합장과심지어는 마을 이장까지마을 내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마을 발전'을 부르짖더니만#.드디어 현실적 발전 행동에 나선태양광 설비 업자께서마을 안에 마을 보다 더 큰 태양광 발전 설비를 만들겠다고 한 날부터#.코딱지 마을 신발 있는 사람들 모두눈에다 불을 켜고 반대를 외쳤으나그중에 더러 찬성하는 이들이 있어이 쪼끄만 마을이 반쪽으로 나뉘는 불상사가 생겼다#.그리하여서로서로 안 하겠다고 발뺌하던 반장 자리를 놓고투표를 하자커니사다리를 타자커니산골 작은 마을이 냄비 속 죽 끓듯 하여#.대동회를 하던 날,마을 전입 순의 잣대로 싹둑 잘라 정리해 버리고 말았다#.우리는왜이렇게 흔들리며 살아야 하나?#.나이 들어가면서도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달린..

소토골 일기 2024.12.26

부등가 사랑,

#.아이들 시린 손으로 만들어진오리가 줄지어 태어나고어설프게 만들어진 눈사람이 번쩍 눈을 뜬 날,#.아파트 에서 처럼 함부로 밀쳐지지 않은 순백의 눈 위에 첫 발자국을 찍고  그 위에 깔 깔 깔 하얀 웃음을 덮으며마음껏 뛰어 노는 아이들,#. 눈 치우는 노고 뒤에아이들의 놀이를 위해눈썰매를 닦아 준비하는 일,함부로 날아오는 눈덩이에 기꺼이 맞아 주는 일,추운 몸을 쉴 수 있도록 따순 음식을 준비하는 일,#.풍경과 놀이로는 낭만적이겠으나치우고 놀아 주는 일로는 낙망적인 눈,#.아이들에 대한 사랑은늘부등가적 이다.#.밤 늦은 잠자리가 행여 추울까 하여내 잠 길을 수시로 도막 내어벽난로의 뜨거운 숨길을 다독거리다가문득 창 밖을 보니투명하게 명멸하는 별들,#.그리하고도 예쁜 꿈 길로 혼곤한내 가슴속별두 마리,

소토골 일기 2024.12.01

달콤한 게으름,

#.첫눈의 피폭,#.아득한 회색빛 하늘은 하염없이 눈을 퍼부었다.#. 첫새벽에 진주한 순백의 겨울 틈새아직 마무리 하지 못한 가을의 붉은 잎새 하나,#.첫눈 내리는 날,기억의 갈피에 압착되어 있던 사람들의문득 전화,#.아직도비우지 못한 감성이 남아 있어이렇게 눈 오는 날이면쪼금씩 외로워지는걸까?#.오랜만의 전화래봐야여기 저기가 아파서 병원엘 다녔고봄날 산새처럼 명랑했던 어느 친구가 홀로 되었고...#.가을 끄트머리의 여러 날을진공 상태로 끌어안고그저 아무 말 없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의식의 마비 상태,모든 일들이 그저 심드렁 하여꼼짝도달싹도 하기 싫었던 날들,#.몸도 마음도 일으켜 세워야겠다.눈이 내렸으므로,

소토골 일기 2024.11.28

가을 별리,

#.아흔 일곱 생의 끝은요양병원이었다.#.병원으로 떠나는 구급차에서자꾸영안의 그림자를 본다.#.마을에서 제일 먼저 불을 밝히던 할머니의 창은어둠 속의 어둠,다시마을 안 빈집 하나로 남았을 뿐,#.하필이면 바람 불고 추워지는 계절에손 흔들던 모두의 가슴에 찬바람 한줄기 서리서리 감겨든다.#.제 발아래 그늘을 지던 나뭇잎들이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져여름의 전설을 도란거릴 때하늘은 맘껏 푸르고맑은 허공 가득 추위만 빼곡했다.#. 그리하여 나날이맘 놓고 된서리,#.뒷 산에 올라 누워 마른나무 한 짐을 져 내리는 일,#.숲 속 조차 삶과 죽음은수직과 수평으로 구분되었다.사람의 일 또한...#.잎도 가지도 없으니나무 본디의 성품을 알 수 없는 일, 어중 떼기 나무꾼 노릇의 결과로팔과 목에 번진 옻 알레르기를 끌어..

소토골 일기 2024.11.12

단풍 등고선,

#.아침마다 시린 이슬 내리고허공은 셀로판지처럼 투명하다.#. 이슬이 내리고나뭇잎이 떨어지고온갓 것들이 떨어져 내리는 겸손한 계절,#.폐포 가득허공을 담고작은 계곡의 물소리를 담고이제 막 떠 오르는 햇볕을 담고세월을 담고도그저 텅 빈 걸음으로 바람처럼 걸을 뿐인 새벽 운동 길,#.가을 둘러 볼새 없이겨울 준비에 등 떠밀려나날이 동동걸음,#.뒷 산 정수리가 어느새 헐렁해지고고양이 걸음으로 산을 내려오던 단풍은잠시시골 누옥의 마당마저 채색 중,#.얼마 남지 않은 화살촉 홑잎들이태양빛보다 붉다.#. 기대보다 형편 없이 자란 무 배추거니알뜰히 거두어 김장을 하기로 한다.처가 형제들이 우르르 모여밤 깊도록 도란거릴 일이니김치 맛 관계없이 행복할 수 있겠다.#.아궁이 옆에 땔감이 차곡하고사람의 등이 사람으로 따듯할..

소토골 일기 202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