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916

5월은 오월이다.

#. 장하게 일어 선 풀들과 연두와 초록의 숲 사이로 오월이 들어섰다. #. 찔끔의 비 속에 송홧가루가 노랗다. #. 며느리의 생일에 건성의 케잌 하나 보내며 #. 두 사람의 생일을 만든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썼다. #. 5월 햇볕으론 조금 너무하다 싶은 더위 속에 느릿느릿 밭을 간다. 흙 속에 엎드려 있던 게으름조차 정갈하게 경운 하는 일, #. 뒤집어진 흙살 속에서 열심히 벌레를 물어 나르는 딱새들, #. 이제 막 힘을 써야 할 관리기가 고집 센 당나귀 처럼 일어날 기미가 없어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아랫집 관리기를 내 물건처럼 써서 마무리 하고는 #. 사람의 행복 참 별 것 아니지 싶다. #. 700의 옥수수 모종을 심고도 여전히 빈자리가 남은 밭을 노려보며 아내는 또 옥수수 욕심, #. ..

소토골 일기 2023.05.04

산드위치,

#, 가는 비 속에 주변 산들 초록 윤기가 찰랑하다. #. 마당 주변에서 두서없이 얻어지는 먹을거리들, #. 딱 둘이 먹을 만큼만 선을 정 하고도 여전히 남아도니, #. 심뽀 가득 담긴 욕심을 언제쯤 비울 수 있으랴, #. 앞 마을에서 고이 자란 고춧모가 이제 옮겨 심을 때가 되었다는 기별을 진작에 듣고도 이제야 부랴부랴 고추 심을 준비를 한다. #. 고운 흙살을 뒤집어 밭이랑 짓고 물 뿌림 장치를 하고 그 간의 게으름을 걷어내는 일, #. 게으른 사람이 비 오는 날 일 한다더니만··· #. 심고 키우고 거두어 일일이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 #. 음식의 맛은 온통의 과정이 손 맛이고 애쓴 맛이다. #. 산 마다 새소리와 비닐하우스를 두드리는 빗소리와 더러는 바람소리, #. 아직 여린 채소들과 참나물과 민..

소토골 일기 2023.04.29

연두 세상,

#. 올 봄 꽃들은 몹시도 허망했다. #. 변덕의 햇볕에 홀려 화들짝 피었다가 며칠의 된서리에 우르르 얼어 버린 뒤로 #. 주변의 산들이 온통 연두하여 그윽히 푸르다. #. 떨어진 꽃잎처럼 떨어져 누운 사월의 스무날들, #. 눈부시게 하늘을 우러르지 않고 다만 땅을 굽어 피는 꽃, #. 햇볕을 무심한듯 관조하여 조심스럽게 때를 가릴 줄 아는 할미꽃의 내공이다. #. 아침에 서리 내리고 한 낮엔 30도에 육박하는 변덕 무쌍한 날들, #. 낮에 잠깐 비닐하우스 안 모종을 돌보던 중에 땀 바가지가 되어 되돌아 나왔다. #. 꼬맹이 차 에어컨이 나날이 바쁘니 기후 변화 탓만이 아닌 체질 변화의 탓도 또 한 부분이다. #. 몇 달 전 부터 계획한 일이 있어 한 주일째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중, #. 재 너머 시내..

소토골 일기 2023.04.21

우체부님전상서,

#. 겨우 겨우 꽃 피운 토종 목련은 서리 한 방에 우르르 무너져 버렸다. #. 세월은 무상하고 산골의 봄날은 유상(有霜) 하도다 #. 아랫집 할머이가 막내아들 대동하고 허위허위 올라와서는 넓힌 길을 이용하여 집 앞의 밭을 돋우고자 하였으나 마을 이장과 몇몇이 시끄럽고 먼지가 난다는 이유로 브레끼를 걸었다는 거다. #. 그런데 왜? 나한테 오셨댜? #. 어쨌거나 틀니 빠지게 할 말 많으신 할머이의 중재 요청을 오지랖에 감싸 안고 마을회의 끝판에 들어가서는 #. 길은 길이다 길 만드느라고 고생한 이를 포함해서 누구든지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도 길 하나 제대로 만들자고 평생의 시간을 들여 책 보고 공부하는 거다. 이게 뭐냐 씨발~ #. 아랫 집 할머이 다시 공사 시작 했다고 신났다. #. 그래서 다시 ..

소토골 일기 2023.04.11

불변 공식,

#. 토종 목련나무가 통째로 꽃등이 되었다. #. 그 아래 분분한 순백의 향기, #. 따로 화엄을 얘기할 것 없는 아름다움 겹겹의 날들, #. 오늘까지 살아있길 참 잘했다. #. 새들이 분주하다. 왼갖 것 물어다가 사방이 집자리다. #. 기계도 도구도 없이 작은 부리 하나 수고롭게 하여 곡선과 곡선을 잇대어 만들어내는 보금자리, #. 기계와 도구를 사용하여 직선과 직각을 만들어내는 우리 모두 내 몸 받아 주고 다시 이 몸 담아 줄 자연의 품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해져야겠다. #. 겨우 겨우 감자를 넣고 난 다음 날, 아랫집 할머니 말씀처럼 약비가 내렸다. #. 약 감자 싹이 날 것이다. #. 눈개승마가 울울하게 치솟던 날 손님이 오셨고 그들의 환호작약 속에 고운 순들은 모두 베어지는 수난을 당했다. #. ..

소토골 일기 2023.04.07

관성적 농사,

#. 본격 농사 전 경운기와 관리기를 가동하는 일에 온 힘을 다 소진해 버렸다. #. 늙고 순한 소 한 마리 키우는 게 낫겠다. #. 고집 불통의 늙다리 기계뭉치들을 깨우는 일에 구렁이 알 같은 사흘의 날들을 탕진하고 나니 #. 마당가 목련이 팝콘처럼 피어나서 앞뒤 순서 따질 것 없이 우르르 피는 꽃들, #. 낮 동안은 한 여름 땡볕이다. #. 감자 심고 이런저런 채소들의 씨앗을 뿌리거나 #. 느릿느릿 밭을 가는 새 비틀비틀 나비 한 마리, #. 농사란 다분히 관성적 행위이다. #. 그 몽환적 반복, #. 점심엔 연두 순과 초록 잎을 쥐어 뜯어 봄 햇살 한 끼로 받들었다. #. 은총 이거나 기적 말고는 이해도 설명도 불가능한 날들, #. 뒷 산 싸리나무꽃이 포말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소토골 일기 2023.04.02

어쨌든 농사 중,

#. 산 중에 매화가 피었으니 산골의 봄은 절정이다. #. 게을러 터진 농사일이 살짝 내린 봄비를 핑계로 며칠째 휴업 중, #. 힘들어도 죽자고 일에 매달려해야 하는 이유가 연속성의 문제도 그러려니와 게으름의 속성상 누우면 일어나기 싫어지는 것, #. 어슬렁 주변을 기웃거려 냉이도 캐고 씀바귀도 캤으니 봄을 누릴 만큼 누리는 중이다. #. 먼 도시에 사는 친구가 덜컥 병이 났다는 전갈, #. 어느 님의 글 이었는지 멀어서 나를 꽃으로 피게 하는 사람아 그저 향기 되어 다가갈 수밖에, #. 정우의 아홉 번째 생일 친, 외를 불문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탈 탈 털리기, #. 정환이가 말하길 "씨 뿌려보고 싶어~" 이를 위해 거름 펴고 밭 갈아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는 나, #. 사랑도 병인양 하여··· #. ..

소토골 일기 2023.03.25

추운 삼월

#. 설거지 장소를 집 밖의 개수대로 옮겼다. #. 부분적이며 가외적이기는 해도 봄맞이 맞다. #. 작은 도시의 거리에는 아주 가끔 반팔 차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걸 보는 것 만으로 추운 산골짜기에서 금방 내려온 나, #. 이래도 되는건가 싶다. #. 아이들 들어 사는 시내의 아파트에 흰 꽃송이가 조롱조롱한데 그 풍경이 어찌 그리 비현실적으로 보이든지 #. 도시의 시절은 춘삼월 산골의 시절은 추운 삼월, #. 째려보며 마음 다짐 하기를 여러 날 째 #. 포대 거름 200개쯤을 밭에 올리고, 펴고... #. 본격 농사의 준비 작업일 뿐인데 이 부분이 가장 힘든 건 무슨 조화 속일까 #. 시작이 반 이란 마음속 엄두의 선을 넘어서는 일이다. #. 다시 주말, 내려오겠다는 아이들을 겨우 막아 두었더니 애먼..

소토골 일기 2023.03.17

불녁나코~

#. 지난해 첫추위 부터 잠시 쉬기로 했던 걷기 운동은 겨우내 이런저런 핑곗거리로 중무장하여 아직도 춥고 아직도 외롭고 아직도 서러워서 여전히 달팽이처럼 옹크려 있다. #. 겨울 동안 자주색으로 낮게 엎드려 있던 냉이들이 이젠 제법 눈에 띄니 입맛 먼저 봄 이다. #. 깊은 겨울 중에 팔뚝지 걷어 부치고 한번 더 담갔던 동치미가 환장하게 맛있길래 토라진 여인네 눈길처럼 톡 쏘는 국물에 국시를 말아 덜덜 떨어가며 한 그릇 먹은 뒤에 #. 앞동네와 재 넘어 아우를 세트로 불러 놓고는 백 관쯤의 국수를 삶아 소만큼 먹었다. #. 재 넘어 아우가 여전히 입맛 다시며 하는 소리, 다음엔 우리 집에서 할 테니 동치미 항아리를 내 등에 얹어주쇼 #. 평생에 사람다운 이 하나 만나는게 소원 이었건만, #. 아주 오랜만..

소토골 일기 2023.03.05

세미 봄,

#. 시베리아 고기압쯤은 이제 무시하자고 아직 봄볕 이른 날 마을에 신발 있는 사람들 모두 모여 윷놀이를 했다. #. 그저 건성으로 낑겨 일찍 지고 말리라... 의 마음이었는데 어쩌다 1등을 했으므로 복합비료 두 포대나 탔다. #. 역쉬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거시다. #. 그리하여 결국 또 농사다. #. 명절 무렵 독감 후 목의 통증과 콧속의 종기와 다시 입 천정의 화농과 허리 통증과 후렴으로 코감기 까지를 앓는다. #. 내 몸이 연일 항생제 장아찌가 되고 있다. #. 아이들은 한 번씩 아프며 자라고 나는 한번씩 아프며 늙는다. 자연스럽도다. #. 여기에 더 해 구들방 쪽 전등 라인의 차단기가 툭하면 떨어졌으므로 전체적으로 교체를 했음에도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 애쓰고 고생한 이..

소토골 일기 2023.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