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불쑥 봄,

햇꿈둥지 2024. 3. 17. 05:04

 

#.
강원도의 질기고 긴 겨울에 갇혀 있던 마을 아낙들이
네 밭 내 밭을 가릴 것 없이 냉이와 달래를 캐어
보리밥을 하겠다는 대단히 봄 스러운 결의의 불똥은
잠깐 말참견을 했던 내게로 튀어
우리집 좁은 현관을 신발로 가득 채우는 일이 되고 말아서,

#.
기왕 이 꼴이 되었으니
이장도 부르고 장청회장도 부르고 
지난 가을에 돌아가신 저 아랫집 아저씨도 부르고...

#.
잠깐의 낮잠 끝에 
허큘리스급 지대지 미사일을 다발로 맞은 꼴이 된 아내는 
승깔 낼 새 읎이 
보리밥 하랴
안주 장만하랴

#.
어쨌든 일 저지른 나는
그저 성실한 마당쇠가 되어 
안 시키는 심부름 까지 도맡아 해 내느라
종횡과 무진의 신공,

#.
아직 싹도 오르지 않은 달래를 귀신 같이 캐고
여전히 얼어 죽은듯 자줏빛으로 엎드려 있는 냉이를 후벼 파서는

#. 
밥상 가득
봄 

봄,

#.
입안 가득
초록
초록
하였으므로

#.
코딱지 간이역을 거만하게 지나치는 급행열차처럼
그 노무 봄이 우리 곁을 거만하게 지나친 들
까짓거
얼어 죽지 않고 굳세게 겨울을 건넌 우리 모두
다시
저 들과 땅을 일궈가며 노래하리라

#.
♪가암~자 시~임꼬 
수수 시임~는♬
두메 산꼴 내 고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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