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951

자유 가을,

#. 한 동안 아프다. 자주 아프고 길게 아프다. #. 이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눈이 아프고 종합쩍으로 아프고 복합쩍으로 우울하다. #. 엄마의 줄을 끊어 나를 사람의 세상으로 보내면서 문신같은 꽃 한 송이 몸 가운데 놓아주셨다. #. 그래서인지 몸이 아픈 밤 이면 살곰살곰 배꼽이 아팠다. #. 몸의 통증이 잠시 쉬는 사이 글씨를 쓰고 벌초를 했다. #. 아이들은 서해 바다에서 놀고 또는 수목원의 맨발 걷기를 하며 무럭무럭 자라는 새 #. 나는 무럭무럭 늙었으므로 가을은 제법 소슬한데도 #. 나날이 고추 뒤집어 주기, 얼른 저 홀로 뒹굴 뒹굴 굴러 다니며 마르는 신품종 고추가 나와야 한다 #. 서실을 버리고 홀로 쓰는 글씨, #. 무슨 일이든 매이지 않은 채 소소하여 자유하고 싶다.

소토골 일기 2023.09.11

여름 결산,

#. 장마 뒤의 뒤풀이 장마로 2박 3일 비 오신 후 반짝 해님, #, 고추 백오십근쯤 따서 건조기로 반 햇볕으로 반 말려가는 중, #. 고추가 말라가는 만큼 이 몸도 바삭하게 말라가고 있다. #. 감자를 열다섯 박스쯤 거두고 고추를 따서 말리고 옥수수 거둔 자리에 심은 들깨가 푸르게 자라고 김장 배추 150 모종을 심고 벌에 일곱방 쏘여서 된장 열 사발쯤 바르고 깔따구에 다섯방쯤 물려서 피부과 한 사흘 다니고 감기 앓기에 뒤 늦은 코로나 치레며 안과와 치과 덤으로 한의원 이러다가 산부인과까지 가야 할 지도... #. 올 여름 흘린 땀들이 흐르고 모여 바닷물은 저토록 푸르게 넘실거릴 수 있겠고녀 #. 햇살이 힘을 잃는 칠석이 지나고 풀들이 자라기를 멈춘다는 처서가 지났으므로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를..

소토골 일기 2023.08.25

8월 넋두리,

#. 오로지 걷기를 위한 신발 하나를 샀다. #. 셀프 생일 선물, #. 불쑥 먼 도시에 사는 친구 부부가 들어섰다. 일요일인 오늘 잠시 아이들로부터 벗어났음을 알겠다. #. 장이 고장 나는 바람에 병원 고생을 잠깐 했노라는 하소연과 손주들 돌보는 일로 힘들고 행복한 얘기들이 수다되어 질펀했으므로 #. 뒤늦은 위로 겸, 고개 너머 작은 음식점에 앉아 소만큼 먹었다. #. 병원 일도 아이들 일도 동병상련이 된 셈, #. 다만, 사랑에 빠진 잠시의 게으름이 죄목 되어 은하수 동쪽과 서쪽을 그리움으로 채워야 하는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통을 즈려밟아 만나는 날, #. 견우화라는 이명을 가진 나팔꽃이 울타리에 조롱조롱 매달린 산골 아침, #. 새벽 잠자리에선 이불깃을 당겨 덮어야 했다. #. 그런데도..

소토골 일기 2023.08.21

여름 건너記,

#. 예겸이 가족이 엄마의 휴가에 맞춰 일주일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 아이들의 소동과 일상의 소요를 늘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그저 끌어 안기, #. 데크 위 그늘 막 설치를 위해 끈 묶을 나뭇가지를 헤치던 중 우르르 덤벼 든 벌떼, 대번 손 등이 얼큰하다. #. 이 또한 내 겪음이니 다행, #. 소나기 내리기 전 바람은 에어컨 바람보다 시원했으므로 가만히 나뭇 그늘에 앉아 바람 섞인 비에 몸 적시기, #. 그리하여 어떻게든 여름 건너기, #. 결혼 후 처음 손수 운전으로 내려온 며느리의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막국수를 먹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멱살 잡혀 생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했다. #. 잠시 눈을 감으면 88 청룡 열차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하필이면 구비 많은 영월길을 돌고 돌아 휴가로 집..

소토골 일기 2023.08.06

8월의 바람,

#. 옥수수를 모두 베었다. 한 겹의 여름을 벗겨낸 것, #. 1. 고랑에 잡초억제용 비닐막을 깔지 않았고 2. 옥수수 곁에 들깨를 심었고 3. 옥수수 거둔 후 빈대궁을 삼등분으로 잘라 고랑에 깔았고, #. 날라리 농사꾼의 내공이다. #. 다시 포트에 김장용 배추 씨앗을 넣어야 하느니... #. 떨어진 나뭇잎 속에 봄과 여름과 가을이 뒤엉켜 있었다. #. 앞 마을 아우가 덜커덕 고장이 났다. #. 일주일에 8일, 2월 달력에 조차 31일까지 채워 넣은 뒤 쉴 새 없이 깰 새 없이 술을 마셨으므로 신장이 탈이 나서 의사는 술과 담배를 모두 끊든지 아니면 치료를 끊든지 결정하라고 말 했다는 것이다. #. 나는 거기에 더 해 성당을 끊으라고 권유했다. #. 성당내 이런저런 일로 사람의 모임이 번잡하다 보니 주..

소토골 일기 2023.08.01

뜨락에 신발 넘치나이다.

#. 긴 장마로 호미는 녹슬고 심긴 작물들은 더북한 풀 속에 유기되었다. #. 비 속에 책 몇 권을 들고 올라선 택배 총각에게 시원한 음료 하나를 건네는 일로 마음속 미안함을 덜어낸다. #. 장마 틈새 잠자리 날고 하늘과 땅 사이 잠시 공간이 열렸다 #. 집 주변 밭 주변 더북한 풀을 베려고 예초기 가동, 기계조차 주인 따라 늙어 버려서 힘 안 써도 될 때는 왕왕 돌아가고 힘써야 될 때는 멈춰 버리는 증세 #. 수시로 고쳐야 하는 고행적 노고를 벗기로 하여 새 예초기로 바꾼 뒤 쓰던 예초기를 중고로 사겠다는 이가 있어 전화했더니만 제법 먼 길을 찾아왔다길래 받은 돈 한쪽을 뚝 떼어 기름값 이라고 건네줬다. #. 주말에 몰려온 아이들, 정우 가족과 예겸이 가족과 쌍둥이 가족과, #. 내 뜰에 신발 넘치나이..

소토골 일기 2023.07.27

그렇게 여름,

#. 성냥갑 만한 제습기 한대 연일 산골 누옥을 쥐어짜는 중, #. 호우가 위험하니 역류가 예상되니 산사태와 축대 붕괴가 우려되니 등 등, #. 비로 인한 온갖 걱정과 근심을 버무려 담은 손 전화기 속의 구까적 문짜 폭탄, #. 문짜청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 사방에 물이 넘쳐나고 잠자리에 누우면 비가 오든 안 오든 빗소리의 환청, #. 낮은 자리의 급수 펌프가 작동을 멈췄다. 연일의 비로 온갖 눅눅을 견디며 고군분투 중이더니 그예 절명하셨으므로 #. 비와 물속의 갈증, #. 장마는 집 안과 밖으로 다양한 백수의 일거리들을 만들어 놓았다. #. 연일 비가 내리고 비 속에서도 온 우주의 힘으로 꽃을 피우고 햇빛이 아닌 물로 옥수수가 영글고, #. 도시의 식구들은 그 옥수수를 탐하고 #. 우주는 단순 명..

소토골 일기 2023.07.20

복합 손님의 계절,

#. 몇 번의 비로 산속 계곡물들은 명랑하고 찰랑하다. #. 때때로 햇볕 아래의 매미소리들, #. 한입 베어 문 자두에서 붉은 태양맛이 흘렀다. #. 눈 닿는 어디든 초록 무성한 칠월, #. 산 그늘에 숨어 나리꽃이 피고 #. 흑백의 기억 속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걷다가 걷다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먹던 붉은 산딸기, #. 고양이 식구들이 우르르 늘어난 후 뜻 하지 않은 횡액들, #. 제발 뱀 잡아 들고 자랑질 좀 하지 말았으면, #. 7월 하늘의 높이는 옥수수의 높이와 같다. 우쭐 키 세워 더운 햇볕들로 알알이 익어가고 있음으로 방학이라고 옥수수가 먹고 싶다고 하여 #. 때 맞춘 날들을 손꼽아 아이들이 아이들의 친구들이 더러는 아이들의 친구들의 엄마들 까지 #. 복합 손님이 되어 몰려오겠다는 기별들, #...

소토골 일기 2023.07.06

산골 홀로 밥상,

#. 며칠째 앞산 뻐꾸기가 말을 걸어왔으나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 확률 60%의 비소식은 또 헛소문이 되어 예보는 질척하고 하늘은 뽀송하였다. #. 다음 달에는 야유회 겸 바깥 모임을 하자고 하여 달력을 살펴보니 초복과 중복과 소서와 대서가 빼곡히 누워 있었다 마음껏 더울 모양이다. #. 밭 둑과 길 둑과 어디든 더북한 풀밭을 예초기 초식으로 몽땅 제압한 뒤, #. 흐르는 샘물에 땀을 씻고 받아 든 아침 상 앞에서 모처럼 의기양양 하였다. #. 자두나무 아래 감겨있는 바람 속에 단내가 뭉근하니 곧 태양빛으로 익을 모양이다. #. 유월의 서툰 그늘에 앉아 누구와 더불어 저 붉은 단맛을 나눌꼬? #. 오늘 아침 걷기 길에는 잠깐 다람쥐 두 마리가 동무해 주었다 수줍게 엎드려 있..

소토골 일기 2023.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