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산골 홀로 밥상,

햇꿈둥지 2023. 6. 16. 04:27

 

#.
며칠째
앞산 뻐꾸기가 말을 걸어왔으나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
확률 60%의 비소식은
또 헛소문이 되어
예보는 질척하고 하늘은 뽀송하였다.

#.
다음 달에는
야유회 겸 바깥 모임을 하자고 하여 달력을 살펴보니
초복과 중복과
소서와 대서가 빼곡히 누워 있었다
마음껏 더울 모양이다.

#.
밭 둑과
길 둑과
어디든 더북한 풀밭을 
예초기 초식으로 몽땅 제압한 뒤,

#.
흐르는 샘물에 땀을 씻고 받아 든 아침 상 앞에서
모처럼
의기양양 하였다.

#.
자두나무 아래 감겨있는 바람 속에
단내가 뭉근하니
곧 태양빛으로 익을 모양이다.

#.
유월의 서툰 그늘에 앉아
누구와 더불어
저 붉은 단맛을 나눌꼬?

#.
오늘 아침 걷기 길에는
잠깐 다람쥐 두 마리가 동무해 주었다
수줍게 엎드려 있는 순박한 마을을 지나면
이내 숲이 되는 홀로의 길,

#.
쉰 목소리로 산비둘기 울고
방울소리처럼 투명한 새소리들,
도회의 거리는
출근이라는 이름으로 막히고 밀리기를 거듭할 시간,

#.
홀로 누리는 고요한 행복이
자꾸 미안 하였다.

#.
오이지 한 그릇과
찬밥 한 그릇을 물에 말아 마련한 점심상
가난했던 내 어머니가
불쑥 밥 상 앞으로 당겨 앉으셨다.

#.
서실 동무들이 우르르 전화하여
"안 나오면 쳐 들어간다"고 하였으나
이제 내 자리는 객석,
무대에 선 푸른 사람들을 관조하며
응원하고 격려만 할 수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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