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젖은 봄날

햇꿈둥지 2024. 4. 23. 05:14

 

#.
찰박 찰박 젖은 걸음으로
하루종일 비 오시더니

#.
심긴 작물들은 여전히 소식이 없는데
껑충
까치발로 자란 밭고랑의 풀들,

#.
알록달록 흐드러졌던 꽃잎들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떨어져
밭고랑을 분홍색으로 점묘했다.

#.
비틀걸음으로 봄빛 속에 흔들리는 
나비가 꽃잎인지
허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꽃잎이 나비인지,

#.
새 싹 보다 먼저
꽃향기 부터 올올이 자라 오를 듯,

#.
이 산골
저 골짜기에 둥지 틀어 사는 세 부부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있다.

#.
많지 않은 세 집의 모임조차
날 정하기가 여의치 않아
이렇게 저렇게 상의를 한 끝에
결국 아침 모임이 되었다.

#.
이 산꼬댕이에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음식점이 있다는 거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있다는 거
경이롭다.

#.
사람 사는 일들이
점 점 점 점
상식 밖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
성의 없이 밭 갈아
두서없이 씨 뿌리다가
종일토록 비 오신 어제 하루
일도 덮고
책도 덮은 채
실신한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
혼곤한 낮 꿈속에도
더러 비 내리고
산 비둘기 울고
꽃 잎이 날리고... 하여

#.
꿈조차 향기롭던
젖은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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