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소만 넋두리,

햇꿈둥지 2023. 5. 24. 04:58

 

#.
아침 문안차 공손하게 문 열어 보니
모두 허공의 심장이 되어 떠나고
빈집만 휑하니 남았다.

#.
세상이
텅 빈 듯 서운하다.

#.
허튼 인사라도 나누고 갈 일이지···

#.
그리고도 다시
도자 장승 안에 여덟 마리,

#.
서운한 정 나눌새 없는
숱한 이별들이
가슴속 바람이 된다.

#.
하필이면
쥐오줌풀 꽃이라 이름 지었는지
올망졸망한 꽃과 꽃술을 엮은
한 송이 꽃을 보며
연기(緣起)라는 거
오랜 궁구 끝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님을 깨우친다.

#.
마당가 백선이 꽃피웠다.
초선의 속눈썹처럼
요염한 꽃술의 모습,

#.
오래된 만년필에 잉크를 넣었다.
오랫동안 잊었던 그리운 이에게
엽서 한 장을 써야겠다.

#.
"그리움조차
꽃으로 피는 계절입니다"

#.
작은 씨앗을 뿌려
온 밭이 푸르게 채워졌으니
과연
소만(小滿)이로다.

#.
대학 중용을 재탕 삼탕으로 읽은 뒤
다시 논어
魚와 漁가 아닌 語라고 했음에도
생선회가 먹고 싶으다.

#.
어둠이 아주 얇게 벗겨지는 신 새벽에 깨어
한자와 한자와 한자 속을 헤매다 보면
댓 병 소주 두어 병쯤을 마시고 난 뒤의 숙취처럼
두눈이 몽롱츠레 하였다.

#.
해장으로
다시
주역 한잔,

#.
눈 비비고
감자 밭에 풀 뽑아야겠다.

#.
전기 한 사발 먹여주면
즤가 알아서 약 뿌리는 기계가 있다 하여
두말없이 신청,

#.
배추잎 마다 구멍을 내고 있는 녀석들
혼쭐을 내줘야겠다.

#.
비 올 듯 말 듯 흐린 하늘 아래
아랫집 할아버지
밭에 물 뿌릴 듯 말 듯 엉거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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