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6

착종(錯綜)

#. 우수 보내 놓은 지 사흘째 여전히 영하 행진, #. 한낮엔 예보에 없는 목화송이 눈이 내렸다. #. 거기에 더 해 산 계곡을 굴러 내려와 추녀 끝에 매달린 바람 덩어리, 들, #. 간혹 한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기도 하니 낮엔 햇살이 황홀하고 밤엔 한기에 새우처럼 오그라드는 #. 착종의 계절, #. 풍경을 뒤흔들며 지나는 바람 소리가 허둥지둥이다. #. 겨울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가는 것 같다. #. 아랫집 아우가 올라와 오랜만에 전해주는 마을 소식이 이즈음 날씨만큼이나 편치 않다. #. 전유의 과정 없이 만나진 사람들이니 기억의 공유도 가벼울 터 조심스러워야 할 관계가 내 생각 내 고집으로 소란하다. #. 사람의 만남이 따듯한 인연이라야 하는데 업보로 느껴지는 사람들을 산골 마을에서 조차 간..

풍경소리 2022.02.22

세월 변명,

#. 열흘쯤의 시간 동안 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 요즘 쓰기 시작한 운곡의 시구에 남은 것 이라곤 거문고 하나 책 세 권의 곤궁 뿐이라고 했는데 여섯 권 이라니... 산 중 사치로다. #. 책을 읽기 위해서 보다는 겨울 끝자락의 무료를 떨쳐 내기 위해 몸부림을 하는 일, #. 봄 되기 전에 아지랑이 보다 조바심이 먼저 일어선다. #. 아이들과 커다란 운동장에 나가 자전거 타고 달리기를 한다. #. 방아깨비처럼 가벼운 아이들 뒤에서 낡은 관절들이 고통스러우니 그저 멀어지는 아이들을 바라만 볼 수 밖에, #. 일 년 중 가장 달 밝은 날, 오곡밥에 나물도 부럼도 짐짓 잊어버린 채 묵묵히 어제처럼 지내는 일, #.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일러 주신 일들 조차 이제 적당히 지쳐서 나이 때문 이라고 변명을 해도..

풍경소리 2022.02.15

코로나 사잇 길,

#. 초저녁부터 서산에 걸린 상현 달빛이 제법 치렁해서 추운 뜨락에 나가 한참이나 하늘바라기를 한다. #. 여전히 빗살 무늬의 날카로운 바람이 불고 풍경이 쏟아내는 동그란 울림소리를 따라 꾸역꾸역 밀려드는 초저녁 잠, #. 백수도 이런 휴일엔 적당히 유폐감을 느끼게 된다. #. 살아온 날들이 하 어수선하니 초저녁 노루잠 꿈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들의 왈가왈부가 소란스럽고 석양빛 같은 어머니 눈길은 여전히 서럽고 현실 같은 꿈도 있었고 꿈같은 현실도 있었고 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하고, #. 뭔 놈의 뉴스가 이 모냥인지 뉴스가 나오고 그 노무 뉴스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늬우스가 나오고 또 사실이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알리는 뉴스가 나오고 뉴스가 늬우스를 만들고, 만들어서 #. 나는 다만 어지..

풍경소리 2022.02.07

방학놀이,

#. 한글 공부 중인 여섯 살 정환이에게 형아의 일은 온통 관심 언제든지 라이벌, #. 형아의 일이라면 모두 참견하고 모두 기웃거리고, #. 방학 동안 마법 천자문에 빠진 형아의 한문 공부를 어깨 넘어 주워듣고 또 훔쳐 듣다가, #. 오늘도 한글 공부 시작, 기역, 니은, 디귿... 비읍 다음에 시옷이어야 하는데 사람 인 ! #. 헐러덩 헐, #. 역시 짬뽕은 해롭다. #. 다음은 단어 마법, #. 물 수 맑을 정 수정, #. 정환이가 따라 하기를 물 수 불 화, 따듯한 물, #. 물 수 불꽃 염, 뜨거운 물, #, 과연 마법 놀이로다.

풍경소리 2022.01.23

겨울 평론,

#. 심장에 동상이 걸릴 때쯤 겨울의 배후에 모서리 날카로운 바람이 있음을 알아낸다. #. 무채의 그림자가 비로소 일어서서 낮 동안의 노고를 푸념하는 시간, #. 탕진한 오늘이 아무것도 기억할 것 없는 어제가 되어 바람처럼 떠나던 시간, 하늘 가득 추위에 잠긴 별들이 초롱했으므로 나는 잠시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들춰 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기억조차 폐기되어 버린 건망의 날들, #. 아직은 조금 더 춥고 아직은 조금 더 눈이 올 것 같고 아직은 조금 더 따듯한 이의 눈빛이 필요한 시간, #. 아버지 돌아가신 날 무릎이 빠지도록 눈이 왔었는데 제사 모시고 돌아오는 밤 길에도 사뿐사뿐 눈이 내리고 있었다. #. 선영을 지나야 집으로 오는 길, 두 분을 차로 모시고 올 걸 그랬나? #. 산에서 나와 대..

풍경소리 2022.01.16

새벽 넋두리,

#. 동쪽 능선이 밝기 전에 일어나 반가사유의 헛된 궁리들, #. 아내는 지극히 발전적인 나으 궁리를 궁상으로 발음한다. #. 아직 세상이 어둠 속에 고요한 시간 붓 들어 먹물을 적신다. #. 일본의 서도로는 일곱 항아리의 물을 먹으로 갈아 써야 한다 했고 중국의 서예로는 태산의 돌을 벼루로 만든 뒤 먹으로 갈아 없애야 글씨다운 글씨가 되는거라고 일찌감치 초짜들의 넋을 빼는 뻥을 쳐 놓은 바 있지만 #. 정작 중요한 건 쓰는 이의 마음, #. 글자 수를 바꾼 전지 한 장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 #. 본디 상을 탈 재주도 아니거니와 이쯤의 나이에 무어 그리 마음 달굴 일 이겠나만, #. 말투로 그니의 내면을 들여다보게도 되니 글 또한 다듬고 다듬어 눈으로 읽히는 고운 말투가 되도록 전심을 다 해야 할 일,..

풍경소리 2022.01.02

하세월 글 공부,

#. 병원을 나와 제법 몸을 가눌 수 있을 때쯤 글쓰기를 시작했었다. #. 그렇게 7년여, #. 숱한 공모전에서 받은 이런저런 상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 사람마다 자기 필적이 있듯이 결국은 내 글씨를 쓰게 되기까지, #. 참 쉽지 않다. 아주 가끔 글씨를 써 달라는 부탁에는 조심 또 조심스럽다. #. 촌동네 초딩이 시절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남대문과 창덕궁과 남산 등 등을 돌아보는 일, #. 그러나 돌아와서 한동안 눈에 남은 풍경은 선생님의 뒤통수뿐이었다. #. 선생님의 체본을 따라 쓰는 일, #.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체본을 만나면 체본을 죽이고, #. 결국은 궁체도 판본체도 아닌 잘난체를 쓰겠지, #. 그러나 또 가르쳐 주신 이와 DNA가 같은 글씨를 쓰고 있다는 것, #. 쓰기는 ..

풍경소리 2021.12.19

과연 12월,

#. 마을 안에 제법 정들었던 동갑내기가 갑자기 이사를 한다고 했다. 서울 언저리 도시로 집을 옮기는 연유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라는데, #. 산천에 방생하여 노닐던 몸을 스스로 대처의 아파트에 가두는 형벌 같은 일, #. 허긴 뭐 아이들 옆댕이로 쫓아가서 돌보기 수를 만들거나, 아이들이 옆댕이로 옮겨와서 돌보기 수에 걸리거나 그게 그거, #. 하필이면 나날이 추워지는 계절의 헤어짐이니 떠나고 남는 서로가 쓸쓸하기 짝이 없다 #. 당분간 항우울제를 한 사발씩 마셔줘야겠다. #. 마침 그가 살던 집을 토굴 삼아 노스님 한분이 오신다 하니 이제 그만 뒷산 신령님은 방생해 드리고 스님과 더불어 꼼수 장기나 때리며 겨울나기를 도모해야겠다. #. 사람도 떠나고 세월도 떠나서 어느새 12월, #. 첫날부터 강 추..

풍경소리 2021.12.01

겨울로 가는 길,

#. 기어이 보내야 할 가을과 서운한 인사도 나눌 새 없이 털썩 눈이 내렸다. #. 별리 아닌 격리, #. 그렇게 겨울이 되었다. #. 입동 지났으니 눈이 오든 얼음이 얼든 겨울의 적법 통치이다. #. 선홍색 단풍잎 위에 쌓인 하얀 눈의 대비 그저 춥고, #. 이제부터 산골짜기는 겨울 치하, #. 하늘은 여전히 흐린 채 일기예보의 비를 언제든지 눈으로 바꿔 뿌릴 수 있도록 채비가 탄탄도 하여 #. 적사장의 모래도 제법 임전태세를 갖추어 가는 날들, #. 먼 곳의 소리들이 이승의 가장 낮은 곳에서 들리는듯한 이명 같은 징후들, #. 여전한 철딱서니 결핍 증상으로 넉가래 보다 눈썰매 먼저 찾아 놓았으니 #. 겨울과는 또 이렇게 냉랭한 동거를 시작할 것이다.

풍경소리 202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