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789

싸바이디 라오,

#. 영하의 첫새벽에 야반도주하듯 집을 떠나 도착한 곳은 영상 30도쯤의 더운 나라, #. 3홉 소주 세 박스쯤을 나누어 장전? 한 열여덟 명의 술꾼 속에 끼어진 억지 여행이었다. #. 잠시 먼 나라 순박한 사람들의 일상에 별스러울 것 없는 백수의 일상을 휘저어 담아서 건들건들 5일의 밤과 낮을 탕진하는 일, #. 놀기 위해서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빈한한 백수의 주머니를 자주 기웃거렸다. #. 먼 나라 도시 가운데에 차려진 평양식당, #. 기예와 음식 팔기와 이런저런 일로 뭉떵거려진 바비 인형처럼 고운 사람들이 신명나는 가락을 쏟아 내었으므로 모두들 손뼉 치고 흥겨워하였으나 홀로의 눅눅했던 느낌들은 또 뭐였을까? #. 일행을 버려둔 채 이른 야시장을 어슬렁 거리다..

풍경소리 2023.01.25 (19)

새 해, 헌 몸,

#.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창구의 바비인형 같은 직원의 물음으로 기억 깊숙이에 압착되어 있던 숫자들을 세상 고갱이의 언저리에서 힘들게 끌어내는 일, #. 늙고도 낡았구나... #. 병원 혈액 채취실 앞의 장사진, 그리고 안내판에 뜨는 '고객'이라는 단어의 혼란스러움, #. 내 몸에 꽂힌 채 요지부동인 빨대들, 그 통로로 술값 아닌 대가를 지불하고 은밀해야 할 온몸의 구석구석을 공손하게 내 보이는 일, #. 조영제가 몸 깊은 곳에서 화염병 처럼 터졌다. #. 새해 벽두를 병원 순례로 열었다. #. 다시 두 시간 넘어의 운전으로 병원과 도시 탈출, #. 비로소 숨통이 트였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산이 약이고 자연이 명의다. #. 뒷 산 등떼기에 매달린 산사의 범종 소리 은은한 저녁, 개님들 공양 올려..

풍경소리 2023.01.06 (32)

접촉에서 접속으로

#. only on-Line을 전제한 물건 하나를 사는 일에 단단히 혼쭐이 나기를 5일쯤 예쁘장한 꼬맹이 차 한 대를 만났다. #. 그 꼬맹이 차 한대에 보험부터 뭔 노무 블랙박스 하고도 선팅 더 하기에 더 더 더... #. 온통의 일들이 목장 풀밭에 쇠똥처럼 널렸음에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 채 손전화 한 대만 불나게 바빴었다. #.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저 경이롭고도 어지러우니 나는 과연 늙었고나··· #. 마지막 번호판 하나를 매다는 일로 또로록 문자 하나 왔길래 첫새벽 컴퓨터를 열고 확인해 보니 산속 고치처럼 꼬부려 잠들었던 밤 새 그 작은 물건 하나를 건네주기 위해 #. 깊은 밤 추운 시간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다시 또 어디로 가고··· #. 얼굴도 모르는 그니들의 추운 노고들이 문득 눈물겨워..

풍경소리 2022.12.21 (20)

눈 쓸어 득도하다.

#. 밤 새 눈 내린 뒤 하늘은 시침이 똑 뗀 채 정지한 듯 푸르러서 진공의 허공에 가느다란 철사줄을 휘두르면 쨍그랑 깨질 것 같은 산골 아침, #. 도시에서 느끼던 소란하고 끈적한 추위가 아닌 명료하고 청량한 산골 추위, #. 추위는 투명하게 전도된다. #. 올 겨울 들어 처음 사용 탓인지 송풍기 시동으로 잠시 용을 썼더니 손바닥에 대번 물집이 잡히고도 아릿한 통증, #. 백수의 손이 참 까탈도 많다. #. 도회 형제의 일로 하룻 밤 이틀 낮 동안 집 비운 사이 집안으로 잠입한 고양이 두 마리가 구석에 모아 두었던 습자 뭉치를 헤집어 놓은 채 찢고 뭉개고··· #.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두 손 들고 무릎 끓려 앉혀 놓고는 반성문 열장쯤 받으려 했으나 요놈들 짐짓 모른척 즈이덜끼리 시시덕 장난질, #. ..

풍경소리 2022.12.15 (26)

12월의 가벼움,

#. 입동 지나고 소설도 지났지만 어쨌든 첫눈이 내려야 겨울이다. #. 하늘 깊이에서 그리웠던 이의 엽서 같은 눈이 내리면 아직도 설렐 수 있다는 것, 잠시 또 메말랐던 가슴이 촉촉해지고 #. 저 아랫 집에서 넉가래로 눈 치우는 소리가 이승의 가장 낮은 바닥을 긁는 것 처럼 갈비뼈 사이로 들려오면 산골짜기 적막한 겨울이 시작되는 거다. #. 정우와 정환이는 당초 1박 2일의 계약 사항을 2박 3일로 변경한 채 점령군 처럼 몰려왔었다. #. 아이들은 우리를 참 많이 움직이게 했다. 밥 줘 목말라 호떡 먹고 싶어 술래잡기 놀이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워쩐 싸움 놀이에 말타기와 오만가지 에트쎄더러, #. 나는 기진과 동시에 맥진 증세, #. 저녁 잠자리에서 두 아이가 말했다 - 할머니 내일은 차돌박이..

풍경소리 2022.11.30 (22)

고라니 배추,

#. 초저녁에 잠들어 세 번의 마디로 깨기를 반복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 난 시간, #. 미명의 세시쯤이었고 창가의 감자, 제주의 하르방 그리고 어린양 한 마리가 낮은 스탠드 불빛에 선하품을 쏟아낸다. #. 器物조차 氣物이 되는 시간이다. #. 논어부터 노자와 장자와 성서와 주역과 금강경이 모두 한 목소리로 같은 곳을 향해 가자는데 사람들이 저 마다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옳네 왈가왈부하고 있을 뿐, #. 그렇게 새벽에 잠 깨어 두 시간여, 이제 동창이 밝을 모양이니 책 덮고 쌀 씻어야겠다. #. 고라니가 남겨 둔 배추 아홉포기를 거두었다. 300 모종을 심어 아홉을 거두었으니 황송하기 그지 없다. #. 평상시 같으면 밭에 버려졌을 볼품새 없는 배추 마져 기꺼이 거두었으니 이 또한 고라니 은덕이다. #...

풍경소리 2022.11.26 (17)

소설 雨,

#. 김장 끝나고 이런저런 뒷 일을 대략 정리한 날부터 오래 덮어 두었던 책을 펼쳐 들고는 3일 만에 다섯 권, #. 눈에 박힌 활자들이 모래알처럼 껄끄러우니 눈 들어 사물을 보는 일이 온통 고행이다. #. 무릇 때를 가려해야 하는 일들을 억지 부린 결과이다. #. 추울 때 까지만으로 선을 정한 바깥 설거지는 도대체 추워지지 않는 날씨 탓에 오늘도 여전히 발등 찍는 일이 되었다. #. 하느님 지금이라도 빨리 추워져야지 주부 습진을 떨칠 수 있사옵니다~ #. 딸이 제안했다. 한 달에 딱 한번 아이들을 맡아주면 즈이 부부끼리 1박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 주중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 내 대답, 너희들로부터 해소된 스트레스 우리에겐 스텐레스로 쌓일 거다. #. 나무들 제 몸의 잎을 ..

풍경소리 2022.11.23 (18)

어쩌다 증조,

#. 손 윗 동서의 큰 아이가 대학을 다니던 중 결혼했고 다시, 그 아이의 아이가 대학 졸업 전 장가를 가서는 지난주에 아이를 낳았으므로 어쩌다 증조가 되는 왕뻘쭘 상황이 빚어졌다. #. 그러나 나는 좀 괜찮다. 결혼 늦게 한 막내 처제의 아이들은 시집 장가도 안 간 새파란 청춘들이 어느날 문득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으므로, #. 백두가 집에서 나와 낙엽 수북한 곳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낭만 좀 아는 똥개, #. 늦가을 인색한 햇볕에 몸을 뒤척이던 마지막 고추는 결국 건조기로 들어갔다. 진작 이럴 것이지... 의 잔소리를 빠뜨리지 않는 아내의 내공, #. 김장을 했고 김장 뒤의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정리했고 했고 하고 또 하였으므로 이제 약 취한 바퀴벌레처럼 발라당 드러누워 쉴 수 있어야 마땅한 일..

풍경소리 2022.11.1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