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48

가는 세월,

#. 산속에 여름 며칠을 제외하고는늘 비어 있는 집,#.이른 아침 걷는 시간에어여쁜 여인네로 둔갑한 여우가 나와 손목을 잡아 끌 것 같은느낌상의 느낌,#. 사진으로 보다는 조금 더 어두운 미명의 시간,아이 같은 생각으로 허위허위 걷다 보면#.요란한 첫눈에쓰러져 누운 나무를 베어 낸 자리마다아픈 향기들이 허공에 분분하다.#.몸도 웬만하다 하니산속 칩거를 끝내고 사람의 거리로 나서서사람의 일을 돕기로 했다.#.나보다 더 늙고 불편한 이들을 돌보는 봉사 활동접수하는 이가 물었다"봉사 활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봉사처럼 눈 딱 감고 하면 되는 일' 아니겠느냐는 반문,#. 올 한 해마을 안 두 분의 어른이 돌아가셨다#.하여올해 부터는대동계가 아닌 연세 드신 어른들을 위한잔치 마당으로 만들 계획,#.우리 ..

풍경소리 2024.12.06

벗어나다.

#.가을 징검비 탓에비가 새던 창고 지붕 교체 작업은 연기 또 연기를 해야 했었다.#.하필이면병원을 가기 바로 전날앞 동네 뒷 동네 내 동네의 친구들이 우르르 모여하루종일을 뚝딱인 끝에 새 지붕 씌우는 일이 마무리는 됐으나몸은 천근,#.저녁 잠자리에 누우니온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다시 1년 만에PET 영상 자료를 한참 훑어보던 의사가 말했다"깨끗합니다 이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습니다""병원에 안 오셔도 됩니다"#.의사의 표현에도 불구하고그 병,내 안 본래의 자리에 가만히 옹크려 있음을 안다#.병도 나도12년 세월은 서로를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니까#.그럼에도 아내는 기어이1년 후의 검사와 진료를 예약했다 #. 병원에서 병으로 정들었던 이들 중아직도 아프거나더러 세상에 있지 아니한 인연들을..

풍경소리 2024.10.30

일탈,

#.아내는 아직도친정 설레임을 가지고 산다.#.모 처럼처가 여섯 형제들의1+1 모임,#.늙고 낡기는 했으되빈자리 만든 사람 없으니됐고 말고,#.황소 뒷걸음질에 개구리 밟듯 찾아들어간바닷가 꼬딱지 음식점에서음식맛보다 더 맛있는 사람의 맛에 취해우리 모두는 조금 더 왁자하고 행복했었다.#.해가 뜨는 시간,여전한 모두의 깊은 잠 곁을 조심조심 빠져나와석모도 아침 길을 바람처럼 걷기,#.일탈하여 산골 뜨락을 비웠던 사이기온은 곤두박질하고벼락같은 가을이 뒹굴고 있더라.

풍경소리 2024.09.23

그저 모를 뿐,

#.일주일 넘어 더북했던 머리를흐르는 샘물로 씻었다.#. 면도하고 거울 앞에 서서말끔하고 낯 선 이와 인사했다누구세요?#.10년의 시간이일곱번 흘렀다.#.그러나30의 입지도60의 이순도모두 불영(不盈)한 채넋없이 세월 따라 흐르기만 했기에#.오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또한그저 책 속의 글 한 줄 일 뿐,#.어느 한 곳옹골지게 채워진 곳이 없으니오늘까지그저 허방걸음을 한 걸까#.축하조차 민망하여홀로 바람처럼 남도의 낯 선 길들을 둘러보려 했으나이도 공염불,#.이른 새벽향 하나 피워 놓고남은 시간들이조금 더 진정한 시간들이 되도록가만히끌어 안아 볼 일이다.#.어제처럼이르게 나뭇잎이 떨어지는 새벽 숲길을걷는다.#.얼마나 더내 발로 걸을 수 있는 앞길이 있고내일이 있을지,#.그저모를 뿐,

풍경소리 2024.08.17

비 탓이다.

#.앞 차의 번호판이 흐리게 보였으므로앵경점을 찾아가 렌즈를 바꿨다.#.조금 더 비싼 렌즈로 할걸 그랬나?여전히 안 보이길래 안과엘 갔더니백내장 수술 날짜를 정해 버렸다.#.말도 하기 싫고누굴 만나기도 싫고책도 글도 다 심드렁한데밥만 먹으면 배가 살 살 아픈 증세,#. 초로의 내과 의사는 즤 맘대로 진경제와 위염치료제에 얹어 자율신경조절제를 섞은 처방과 함께'초기 우울증'이라고 결론 지었다.#.남의 몸뚱이라고이것저것들이 온통 함부로다#.허긴 최근 뉴스 중에성실하고 푸르던 아홉 생명의 삶이뚝 끊어지듯이 길바닥에서 증발해 버리는 일과 일가족 자살 소식과이런저런 세상의 소식들이나를 우울하게 하긴 했었다.#.이딴 걸신경조절제 한알로 다스리겠다는 우리 의사 샘은참 나이브하다.#.그날 저녁재 너머 소도시의 작은 공..

풍경소리 2024.07.18

여전히 촌스럽게,

#.맛있는 음식점을 알고 있는 일이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일 보다가치 우위가 된 시대,#.티비마다먹방이 넘쳐나서그야말로 입 미어지게 먹어대는국적 불명소재 불명과정 불명의 온갖 먹을거리들,#.조리법 대신화려한 사진의 음식점 목록을 찾아 클릭 한방이면 입 앞에 당도하는 세상#.이제 주거 공간에서 주방의 기능은조리가 아닌개수 기능만을 떠맡게 될 것이다. #.어릴 적 가난한 밥상 이거니 불문율이 있었다한 음식만 여러 차례 먹지 않기수저가 그릇을 긁는 소리를 내지 않기음식을 먹는 소리 내지 않기입 안의 음식이 보이지 않도록 먹기하여거친 음식이지만 품위 있게 먹기 등 등,#.가난이 곧 배고픔이었던 시절어머니께서 자주 일러 주시던 말씀,"먹는 게 하도 귀해 탐하면 추해 보이느니"#.이 불문율과 말씀을 이 나이 ..

풍경소리 2024.07.12

전화 또는 전화기

#.열 번 전화하면열한 번 안 받는 친구가 있다.#. 열흘 전쯤의 전화를 뭉개고 있다가오늘 불쑥 전화 해서는왜 전화했느냐?... 고 묻는통신 문명에 지극히 냉소적인 사람,#.그저 안부가 궁금하여전화해야지전화해야지염불을 하다가이제는 전화를 했는데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너도 나도 중증으로 망가져 가고 있다.#.아내는 전화기를 어디다 두었는지 찾아 헤매기를하루에 25시간일주일에 8일씩,#.하이빅스비라는 것이 있다더라알라딘 램프의 요정처럼"하이빅스비 전화기 찾아줘"하고 주문을 하면특정음으로 위치를 확인해 주는 기능인데언젠가는 냉장고 안에서 출토된 일도 있었다.#.숨 쉬는 횟수보다 더 많이찾아줘~ 찾아줘~ 하였으므로주문을 견디다 못한 가엾은 하이빅스비가과로로 인해 홀연히 까무러친 일도 있었다..

풍경소리 2024.06.17

12년 만의 미사

#.젊은 신부, 수녀님이산속 누옥을 찾아왔던 날딱 10분만...으로 못 박았던 방문 시간이근 한 시간 가량의 수다로 이어졌다.#.그니들의 얘기 속에서나는 자주 냉담 신자가 되었으나진짜 냉담은교회안에 있다는 여전한 고집,#.마음 정리...가 늘어져3개월 가량 늦은 이행이 되었다#.그리하여12년 만의 미사,#.더러의 낯 익은 신자들이세월의 낙진에 뒤덮여더러는 환자로 바뀌어 있었고#.주님의 어린양 대신늙은 양들만 빼곡히 들어앉아 만들어내는#.여전히막연한 경건, #.다시 생각해봐도신자 정년제가 필요하다.#.120년이 넘은 성당 첨탑에 종소리 대신 새소리 은은한 한 낮,거룩도 하여라~

풍경소리 2024.06.11

신성한 새벽,

#. 정기적 병원 순례,정밀 검사라 이름하여몸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고#.몸 안에서 화염병이 터지는 것 같은의료적 테러,그리고자발적 물고문으로 마무리 되는CT 검사,#. 젊어서는 돈을 위해 건강을 버리고이제는 건강을 위해돈을 버리는 일,#.병원은 이제나이든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는 건지곳곳에 차고도 넘치는 노인 행렬,#. 그신앙적 분위기,#.어렵지 않게펭귄 걸음을 걷는 이들과 마주친다.#.저 상황은 피했으면... 하지만누군들 이런 일들을스스로 끌어안은 이가 있을까?#.멀어진 젊음무너진 권위,#.잘 먹고잘 사는 일을 넘어이제잘 늙고잘 죽는 일에 곰곰해야 할 때이다.#.치유의 마지막 처방처럼새벽 산 길을 걷는다.#.인위의 소리가 아닌새소리와물소리그리고바람의 등에 얹혀 소근소근 들려오는숲의 전설들,#.참신성한 새벽,

풍경소리 2024.06.06

껍데기와 알맹이

#. 수업 끝났다고교문 밖으로 뛰어나온 1학년은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 학교 앞 놀이터로 달려갔다.#.역시아이의 즐거움은학교 밖에 있고가방 밖에 있고교과서 밖에 있는 것,#. 멀뚱하게 기다린 사정 아랑곳없이 뛰고 구르고 벌레 잡아 주머니에 넣고... 하다가목이 마르니 음료수 사 오라는 심부름까지,#.말년 팔자가어이 이 모냥인지, #. 그러나 또저토록 연한 알맹이들이 있어나는 쭉정이가 되지 않은 껍데기로 살 수 있는 것 일 테니#.음료수에 옵션으로아이스크림 하나 얹어 사는이 비굴한지극정성,#.유월이 되었다.#.뻐꾸기 울음소리허공 가득하고#.초록은 저토록무성하니#.꽃 진 자리마다 울울창창한 햇볕들이유월의 서른 날들로 달게 익어 갈 것이다.

풍경소리 2024.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