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789

가을 박제,

#. 연일 서리의 강습, 시들어 가는 꽃송이를 화병에 담아 식탁에 놓아두는 일로 내 기억의 갈피에 또 한 번의 가을이 있었음을 나이테로 둘러둔다. #. 가만히 생각해보니 백수가 무었 때문에 어두운 새벽 길에 운동을 나서야 하나? 추운 날의 새벽 운동 이거 상당히 신경 써야 되는 일이다. 말하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중무장을 한 뒤에야 집 나서기가 가능하다는 것, 어둡기는 또 어떻고, #. 하여 점심 전 시간으로 바꿨더니만 햇볕은 따사롭지요 산길은 상쾌 하지요 보이는 사방이 알록달록 단풍빛이지요 #. 이 버릇 하나 고치는데 근 30년, #. 급행열차가 거만하게 지나가던 산골의 철길이 폐선된 뒤 시골마을 곳곳의 허공이 열리고 있으니 실개천과 어울어진 또 다른 개천(開天)이다 #. 통행 제한 높이 ♣.♠m..

풍경소리 2022.10.26 (24)

가을 연가,

#. 처음, 설거지를 시작 했을 때 아내는 거듭 고마워했었다. #. 한 달쯤이 지난 지금, 그릇을 씻을 때 곡면 부분과 오목한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써서 닦아라 씻은 그릇은 엎어 놓아야 물기가 빨리 마른다... 등 등의 비급을 전수하는 일로 직접 설거지하실 때 보다 훠얼씬 바쁘시도다. #. 어떻게 사람의 일이 요다지도 쉽게 뒤집어 질 수 있을까? #. 사주팔자에 나와 있던 일이었을까? #. 전화 통화 이거나 영상을 통한 친구넘들의 술주정도 고역 이건만 어제는 이웃 도시에 사는 아우 녀석이 회갑을 맞아 댓병 딱 한 병만 마셨노라고 꼬부라진 혀를 통해 팔다리가 몽땅 잘려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의 주정을 주장으로 늘어 놓았다.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로 마시고 취해서 주정하며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

풍경소리 2022.10.11 (26)

눈을 위한 말투,

#. 비 그치기를 목 빼어 기다리던 8월의 서른 하루, #. 손 흔들어 보내야 할 끝날에 조차 씻김굿 같은 비가 내린다. #. 이제 그만 내 글씨를 쓰리라고 집안에 들어앉은 한 달새 파지만 수북하다. #. 누군가 그랬었다. 남자의 손으로 여자의 글씨를 쓴다고, #. 쓰고 있는 붓이 여성용 인가?^^ #. 아무리 써 봐도 써 놓은 글씨가 맘에 들지 않으니 병 중의 병이다. #. 앞 선 이들의 글씨를 흉내내기보다는 이제 내 손으로 내 글씨를 써야겠다. #. 눈으로 들을 수 있는 말투를 위해, #. 다듬고 또 다듬어봐도 #. 파지 또 파지, #. 그렇거니 또, #. 변변찮은 재주에 끈기라도 있어야지, #. 팔월이 다 젖도록 내린 비는 팔월 건너 구월의 날들까지 질척하게 이어질 모양이다. #. 하늘이 조금 가벼..

풍경소리 2022.08.31 (31)

징검 비,

#. 내리다가 쉬다가 더러는 햇볕 이기도 했다가 그렇게 징검징검 비가 내렸으므로 #. 해바라기는 마땅히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그만 땅에 눕고 말았다. #. 이도 저도 해법이 없을 때 발라당 디비지는 거 간혹 사람살이 중에 있다고는 들었으나, #. 비 오는 날 마다 가심팍조차 질척해 지는 증세, 자가 진단 결과 우(雨)울증 전조 증상이 분명해 보인다. #. 백수의 단순다망 하신 일들 조차 심드렁하여 그 틈새 풀들만 한 발도 넘게 산발, #. 아이들이 묶음으로 코로나에 걸려 제 집 안에 위리안치된 지 수일째, 먹고 싶다는 것들을 대략 카트에 담아 종합 배송을 했다. #. 꼭 안아 뽈떼기를 비벼도 시원찮은 예쁜 녀석들을 그저 현관문 사이로 멀뚱히 바라만 보고 돌아서야 하는 일, #. 꿈속에 본 듯하다. #..

풍경소리 2022.08.14 (23)

서울 쥐,시골 쥐,

#. 기차안에 가득 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지만 그저 너른 바닷물에 물 한잔 더한 듯 도시는 여전한 흐름으로 도도하다. #. 도시의 내장을 흐르는 지하철 안에는 모두들 스마트 경전에 이마를 묻은 채 경건하게 묵도 중, #. 오륙 년쯤 지났나? 세월의 무게 위에 노쇠의 덕지가 더 해진 기억은 기어이 인사동 거리를 세 번쯤 헤매게 한 뒤 겨우 겨우 단골 필방을 찾아 주었다. #. 그리고 탑골 공원, 그늘마다 무리 지어 시국을 성토하거나 바둑 장기의 훈수에 여념없던 분위기는 간데없고 #. 비둘기 똥구멍을 모두 꿰매어 버린건지 아니면 꽁 꽁 얼어붙은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으로 강제 이주를 한 건지 비둘기 똥을 피해 유리 막 안에 갇혀 있던 탑과 동상은 이제 햇볕 아래 늠름 하시다. #. 공원 안에 가득했..

풍경소리 2022.08.08 (23)

백수연가,

#. 서실 정리 일상 정리 백수의 날들이 조금 더 헐렁해지도록, #. 그렇게 비워진 시간에 엉금엉금 고추를 땄다. #. 둘이 땀 흘려 열 넘어 나눔이 되는 부등가적 시골살이, #. 결혼한 아이가 도시에 살 때 그 아파트 안에서 가끔 이고 진 시골 노인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되어 있었고 #. 이른 오전에 시골 버스에 듬성하게 앉아 병원을 찾아가는 노인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지만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되어 있었다. #. 저 아래 마을 길에 이제 막 손주를 본 누구 아버지가 백일 지난 아이를 등에 업고 느릿느릿 걷고 있다. #.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지난날 우리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 흐린 하늘이 여전히 비 뿌리는 새볔..

풍경소리 2022.08.04 (24)

태풍 8월,

#. 두 개의 태풍이 비와 바람을 몰고 올라온다는 풍문에 앞 서 #. 다시 비 오시는 새벽, #. 그렇게 태풍 더불어 8월이 당도했다. #. 태풍이 세월 같기도 세월이 태풍 같기도, #. 서실 나다니는 일을 정리했다. 이제 산 중에 가만히 들어앉아 저기 산 아래 저자를 관조하면서 가만히 마음 수양을 하기로 한다. #. 정해진 틀 안에 갇혀 필사처럼 글을 쓰는 일에서 이제 정도에 매이지 않는 내 글을 쓰고 싶다. #. 몽골의 초원 이거나 히말라야의 척박한 마을을 찾아 한 동안 떠돌았으면 좋겠으나 여전히 코로나, #. 제사를 모셔야 할 형님 댁이 온통 코로나에 갇히는 바람에 어머니 기제사 마저 포기해야 했다. #. 제상 앞에 엎드리지 못하는 이 서운한 마음마저 귀신같이 아시겠거니··· #. 비 그치면 홀로 ..

풍경소리 2022.08.01 (19)

할머니와 엄마,

#. 본격 방학철, 딸아이의 이러저러 그러한 사정으로 두 아이들과 1박의 일정이 만들어졌다. #. 아랫집 눈치로 발뒷굼치를 들고 다니던 도시의 정숙 보행 의무가 해제된 아이들은 산토끼 처럼 뛰었으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 땀 땀, #. 강아지 더불어 마을 산책, 감자 캐기, 청개구리 붙잡아 손 등에 올려 보기, 벌집 소동, 고양이 놀이,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또 또 또, #. 해넘이 무렵 몸을 씻기던 아내의 놀란 소리, 정환이 엉덩이 아래쪽에 진드기가 붙어 있어 떼었다는 것, #. 전화를 받은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은 조치를 할 것이 없으니 일주일 가량 지켜봐야 한다는 것, #. 그 심란한 시간들, #. 저녁 무렵 퇴근한 엄마가 이 얘기를 듣고 상처 부위를 살펴본 끝에 일갈 하기를, #..

풍경소리 2022.07.21 (14)

da絶 이주,

#. 장대비 이거나 빗발 이거나 예기치 않은 소나기 속에 이제 밭의 풀들은 손질할 수 있는 경계를 벗어났으므로 게으르기에 딱 좋은 날들, #. 그 틈새 주말 잠시의 물놀이에 한껏 즐거웠던 아이들은 작은 도시의 친구들을 품 가득 안고 오겠다는 기별, #. 무조건적 애정의 끈을 쥐고 있는 아이들은 언제나 의기양양 하니 좋고 싫고 하고 말고의 선택지는 애초에 내게 없다. #. 내 집인 줄 알았던 블로그는 눈치 없는 더부살이였음을 새롭게 알게 하는 일, #. 몸뚱이는 가되 답글과 방명록을 버려야 한다니 시시껄렁한 본글마다 아기자기하던 답글들을 어이할꼬 #. 꼬리 잘린 도마뱀의 심경이 이러했을까? #. 도마뱀은 자절(自絶)인데 이번 일은 다절(da絶)이다. #. 준비라고 해봤자 특별할 것이 없으니 그저 일없이 지..

풍경소리 2022.07.0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