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5

가을 절명,

#. 어깨 통증이 제법 가벼워진 날 치통이 시작되었다. #. 위로 아래로 안으로 밖으로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다. #. 뽑기를 각오하고 병원엘 갔더니 '그래도 본래 이빨이 제일 좋은 것'이라며 그냥 씌워서 더 쓰시라는 젊은 의사, #. 중단했던 새벽 책 읽기를 살곰 살곰 다시 시작, #. 또 비 오시고 바람 불더니 한파주의보가 발령되었다. #. 가을은 변변한 인사도 나눌새 없이 절명해 버려서 마당 가득한 나뭇잎들의 순교, #. 서리는 기본 때때로 살얼음, #. 여전히 알록달록 흐드러진 뜨락의 국화꽃을 어이할꼬

풍경소리 2023.11.11

청출어람,

#. 상강 전부터 쏟아붓던 서리의 공습을 피해 화분들은 모두 집안으로 대피했다. #. 서리의 낭비 이거나 겨울 남용이다. #. 일찌감치 제설 장비를 점검한다. #. 이른 새벽에 쌀을 씻다 보니 반쯤 남은 고구마가 있길래 깍둑썰기 하여 밥솥에 넣었다. #. 드디어 마누라에게 배웠으나 마누라를 능가하는 밥쟁이가 되어가는구나, #. 시월 하고도 스무 나흗날 가을 깊은 새벽에 밥 익는 냄새에 취해 반가사유의 청승,

풍경소리 2023.10.24

추석 마중,

#. 마을 입구에 "고향 방문을 환영" 한다는 현수막 하나 명절빔 되어 펄럭이기 시작했으므로 다시 또 내집에 누워 타관의 객창감에 젖는다. #. 송편처럼 곱던 누이의 웃음도 먼 길을 걸어 당도하던 그리운 사람들도 이제는 이승에 있지 아니하여 #. 서 산 눈시울이 붉은데 #. 추분 지난 절기에 일찌감치 겨울스러운 산골 저녁, #. 아랫목에 밥 한 그릇 묻어 놓고 밤 깊도록 따숩게 기다리시던 엄마 생각,

풍경소리 2023.09.26

가을이 아프다.

#. 서울 한복판에서 잘 살고 있던 소꿉 동무의 아내가 덜커덕 고장이 났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병과 같은 병이 시작되어 여섯 차례 Chemo' 후에 비니 모자를 썼다는 전화, #. 재너머 소도시에서 인문 모임으로 매일을 명랑하던 K선생이 여자만의 깊은 병이 생겨 일상과 주변을 모두 정리한 채 천당 다음의 분당으로 치료를 위해 떠났다. #. 하필이면 꽃도 지고 잎도 지는 이 가을에 덜컥 아파지고 문득 떠나야 하는 일, 사는 일이 살아 있는 일이 자꾸 눈물겹다. #. 나무 아래에서 한껏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데 팔랑~ 나뭇잎 하나 이마를 스치며 떨어지는 진공의 산 속, #. 이 가을이 통째로 아프다.

풍경소리 2023.09.21

이제 가을입니다.

#. 글 올린게 한 이틀 되었나?... 하고 들여다보면 훌쩍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 호랑이 등 같은 세월의 등짝에 얹혀 있는거다. #. 아내가 절간 스테이를 떠났다 바닷가의 어느 절에 잠시 머물러 도피안을 꿈꿀 모양이다. #. 하여 산 중 절간 같은 집에 홀로 남아 맴 맴 맴, 매미의 독경 소리에 취한 채 혼몽지경의 반가사유, #. 귓 전에 모기 소리가 들렸지만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내버려 두었더니만 이노무 모기, 삐뚤어진 입으로 삐뚜로 물고 달아났으므로 삐뚜로 붓고 삐뚜로 가렵고 삐뚜로 억울하고, #. '어제는 어째 운동을 안 하셨수?' "백수도 일요일엔 쉰다우~" #. 마을 만수무당댁 문간에 붉은색 서낭기가 세워졌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풍경소리 2023.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