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5

5월 앙꼬,

#. 오랫동안 코로나에 갇혀 있던 산골 이웃의 점심 모임이었다. #. 어머니 살아생전에 늘 말씀하시던 '사람이 도를 넘지 말고 살아야...'의 유훈을 어긴 채 강원도 넘어 충청도에서 만났다. #. 밥 먹는 시간 30분, 식후 수다 두 시간, #. 복마지전을 뛰쳐나오는 수호지의 108 마왕처럼 쉬지 않고 수다 수다하였다. #. 코로나에 걸렸던 얘기, 코로나에 못 걸렸던 얘기, #. 방법을 분명히 알아 예방을 한 경우 안 걸린 것이 맞는데 도대체 피 할 방법을 알 수 없었던 긴 시간 그저 무덤덤 지나왔으니 못 걸린 것이 맞다. #. 돌아오는 길, 잠시 빗발 목마른 작물들 갈증만 키운 것 같다. #. 땅 속에 스며든 것 없이 몽땅 비닐 위에 누워 방울방울마다 눈꼽만큼씩의 송화가루를 붕어빵의 팥소처럼 끌어안고 ..

풍경소리 2022.05.15

황제의 똥배짱,

#. 코로나 확진자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데 주변으로는 여전히 코로나 확진 소식, #. 어제 이어 오늘도 무려 두 차례나 코로나 문병을 위한 문코 전화, #. 담 주부터는 마스크 무장조차 해제하겠다는데 서랍 가득 쌓여 있는 저노무 마스크를 장차 어찌해야 하는 건지, #. 국가적 반품이 가능한건지? #. 여전히 복짝지근한 산 아래 세상을 뒷짐 걸음으로 관조하며 새벽 자락을 들춰 청구도 계산도 없는 장을 본다. #. 두릅 한 줌, 참나물 다섯 잎과 오가피 순 조금, 그리고 쑥, 꽃잎 몇장은 덤, #. 한 백일 열심히 먹고 나면 조금 사람다워지려는지, #. 옛날 임금이 무얼 먹었는지 알 바 없지만 이 봄마다 온갖 풀들로 뱃고래 두둑하니 황제의 똥배짱 이다. #. 하여 날마다 배짱 농사, #. 봄 비 내린 뜨락,..

풍경소리 2022.04.29

낙망을 낭만으로,

#. 참나물과 돌 틈에 자란 취나물과 머위잎 몇 장에 더불어 된장찌개 하나로 차려진 산골 밥상, #. 오늘 복작이는 도시살이를 택한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폐기한 우리들 본래의 밥상이다. #. 일에 일 그리고 또 일, 일거리가 있으면 그 일을 하기 위해 일거리가 없으면 일거리를 만들기 위해, #. 어깨 위에도 등에도 심지어는 발등에 조차 온통 일, #. 제법 농사꾼의 농사철 이므로, #. 10년 낡은 비닐하우스에 새 옷을 입히기 위해 이것저것으로 분주한 한낮, 아내가 내어준 새참 그릇에 팔랑~ 내려앉은 #. 바람 한줄기 꽃잎 하나, #. 소꿉장난 같은 시골살이, #. 함부로 꽃잎 흩날리고 어떻게든 향기로운 사월의 날들,

풍경소리 2022.04.22

세상 연두,

#. 나처럼 늙어가는 경운기와 관리기를 더러는 달래고 때로는 겁 주어 밭 갈아 감자를 넣었다. #. 심어 가꾸는 사람 둘에 나누어 먹어야 할 사람들은 줄 줄 줄, #. 이 골짜기에 들어 고요히 살며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거 #. 가꿈도 나눔도 즐거운 일이다. 아직은, #. 모두들 붓을 잠시 뉘워두고 소풍길, 산길에 함부로 깔깔거리며 아이처럼 즐거웠다. #. 평균 연령 60대 정신 연령 20대, #. 역시 공부보다 즐거운 일이 밖에 나가 노는 일이다. #. 헤어져 돌아오는 길, 싸움나도 말릴 사람 하나 없는 진공의 시골길에 털푸덕 주저앉아 아득한 시선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고요하고 무량한 행복, #. 본디 이렇게 살아야 했거늘, #. 새벽녘 뜨락에 나가 보니 꽃 속에 이슬이 스며들고 이슬 속에 꽃송이 뛰..

풍경소리 2022.04.13

화양연화(花樣年華)

#. 3월의 서른 하루가 추웠다가 풀렸다가, 맑았다가 눈, 비 오다가... 를 뒤섞어 바쁘게 혼란스럽더니 #. 4월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해도 다 용서 된다는 만우절, #. 그리하여 진실한 거짓말 1인분쯤 엮어 볼까 했었는데 오늘은 거룩하게도 아내의 생일이었으므로 참기로 했다. #. 어떻게 모의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올 생일엔 며느리와 아들이 사위와 딸이 각자의 획기적 구상과 조리법을 동원하여 한 끼씩의 식사를 준비 하기로 했다는 거다. #. 그동안 얻어먹기만 했으므로 보은적 차원에서 고로케 하기로 했다는 거시다. #. 물론 밥상이 차려지기 까지의 모든 과정은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된다는 것, #. 하여 나는 기꺼이 깍두기가 되어 뒷 밭 냉이와 달래와 씀바귀를 캐어 하이브리드 연두 반찬 딱 ..

풍경소리 2022.04.02

3월 잡설,

#. 저녁 굶기를 한 달여쯤 속과 몸이 헐러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 이 나이쯤에 풍선 하나를 안고 다니는 것 같은 몸매 어쩐지 무책임해 보인다. #. 밤새 하고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 눈도 오고 비도 오고 풀린 듯하다가 다시 추운 거 그러다가 슬그머니 봄이 오는 거 다 자연의 이치이다. #. 배고픈 이에게 한꺼번에 왕창 먹이면 탈 나는 거 처럼 눈 빠지게 봄 기다리던 이들에게 어느 날 왕창 봄 몰아주면 탈 나기 때문이라는 거다. #. 그래서 오늘 비 끝에 다시 소슬하게 추운 거 즐겁게 견디기로 했다. #. 이 비 속에 늙은 형님이 전화해서는 부모님 선영을 둘러봐야 한다는 거다 비 오는 날 세상에 있지 아니한 엄마 아버지 생각하는 거 청개구리나 할 일이다. #. 볕 바른 자리에 우선 참나물이..

풍경소리 2022.03.27

봄 처녀 제 오시고,

#. 올 듯 말 듯... 에서 그저 눈 날림 정도로 예보가 바뀌던 날 #. 아이들 모두 봄 농사 중 제법 힘든 일을 덜어 주겠노라고 밤 길을 달려 모였으나 #. 그 밤 산 골엔 폭설이 시작됐고 그 눈은 아침 이어 한낮 한 낮 이어 종일의 퍼 부음이 되었으니 #. 겨우내 지지부진이던 눈을 춘분이 머잖은 날 이 겨울 남은 량의 모두를 한방에 퍼 붓기로 한 건지 #. 윗 밭의 사래 긴 비닐하우스가 곧 주저앉을 듯하여 비닐을 모두 잘라 버리는 난리, #. 강원도 살이 중 이런 어거지는 또 처음이다. #. 저 아래의 너른 들에서 이제 막 산골을 향해 떠났노라는 봄처녀는 어느 들판에 몸 구부려 안달을 하고 있을꼬? #. 하여 산골짜기 봄은 또 난산이다. #. 늙은 봄이 당도하여 비로소 꽃 피고 장딴지에 땀띠 솟을 ..

풍경소리 2022.03.19

각자코생,

#. 코로나 확진자가 팝콘 튀기듯 생겨나서 #. 일을 계획했던 사람 중 하나가 만난 사람 중에 확진자가 있어 일을 취소해야겠다는 일방 통보에도 일의 어그러짐이야 어찌 되었든 서로의 안부에 가슴 쓸어내려야 하는 도무지 알 수도 이해 할 수도 없는 개떡 같은 세월, #. 어디로 어떻게 피 할 수 있는걸까? #. 코로나 미로에 갇혀 맴돌고 헤매기를 3년여, #. 매일매일 친절하게 도착하는 문자 속 확진자 숫자가 몸과 목을 죄는 올가미로 느껴진다. #. 원아 중에 확진자가 생겨 급히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고자 하니 직접 유치원에 와서 데려가라는 화급한 기별에, #. 아이는 신이 나고 엄마는 심란하고, #. 일상 주변에서 손 잡아 정겹던 이들 중에 확진자가 생기기도 하니 #. 그럴 때마다 아직 안 걸려서 미안..

풍경소리 2022.02.26

착종(錯綜)

#. 우수 보내 놓은 지 사흘째 여전히 영하 행진, #. 한낮엔 예보에 없는 목화송이 눈이 내렸다. #. 거기에 더 해 산 계곡을 굴러 내려와 추녀 끝에 매달린 바람 덩어리, 들, #. 간혹 한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기도 하니 낮엔 햇살이 황홀하고 밤엔 한기에 새우처럼 오그라드는 #. 착종의 계절, #. 풍경을 뒤흔들며 지나는 바람 소리가 허둥지둥이다. #. 겨울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쫓겨가는 것 같다. #. 아랫집 아우가 올라와 오랜만에 전해주는 마을 소식이 이즈음 날씨만큼이나 편치 않다. #. 전유의 과정 없이 만나진 사람들이니 기억의 공유도 가벼울 터 조심스러워야 할 관계가 내 생각 내 고집으로 소란하다. #. 사람의 만남이 따듯한 인연이라야 하는데 업보로 느껴지는 사람들을 산골 마을에서 조차 간..

풍경소리 2022.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