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6

돈벼락,

#. 얼어 죽었다 살아나기를 두 해에 죽은 척으로 두 해쯤을 버텨 낸 능소화는 올해 겨우 꽃을 피운 뒤에야 마데인 뜡국이 아닌 머나 먼 미쿡산 임을 알았다. #. 어쨌든 꽃, 장하기도 하지, #. 기저귀 서른 번쯤을 갈아 놓은 뒤 아이는 제 집으로 돌아갔다. 진이 빠져서 만세 삼창 할 기운도 없다. #. 베거나 뽑거나 이노무 풀, #. 온몸을 적신 땀에서 짠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 이 여름 가기 전에 나트륨 제로 상황이 될 것 같다. #. 생일이라고 저토록 엄청나게 많은 돈을 선물로 받았다. #. 옆댕이 쪼끄만 도시에서 치매 어머니 간병으로 골병이 들어가는 친구 불러 늙은 마담 더불어 쌍화차 3조 원어치쯤 사줘야겠다. #. 어머니 제사였다. 코로나를 핑계하여 늙은 형제 둘만 모이기로 모의한 뒤,..

풍경소리 2021.08.08

가을 씨앗,

#. 주문한 책이 이 깊은 산 꼬댕이 까지 당도하는데 이틀, 아니 딱 스물한 시간 걸렸다. #. 우리 사는 거 너무 숨 가쁘다. #. 아들과 며느리의 휴가 일정이 제 각각 이어서 며느리와 아이만 일주일간 집으로 왔다. 어머니의 집안 노고를 덜어 주고자 오늘 하루는 이웃 도시의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으므로 내 새끼의 다시 내 새끼를 봉의 알처럼 품에 안은 채 한 시간여의 운전, #. 행복하여 고단하고 고단하여 행복하고 #. 아이들은 마징가제트처럼 지칠 줄 모르는데 나는 수시로 방전되어 틈만 나면 휴게용 간이 의자에 쪼그린 채 노년의 고단함을 졸음으로 떨쳐내야 하는 수행 이거나 고행, #. 푸른 하늘을 흔들던 꽃술과 얽히고설킨 풀들 속에서 영근 옥수수는 하늘 맛 반, 흙의 맛 반의 참 맛으로 익어졌다. #...

풍경소리 2021.08.05

전투형 도락꾸

#. 복날이라고 무슨무슨탕이란 간판 아래의 줄이 지나치게 길다 어차피 나날이 더운 여름 내일 먹어도 되고 모레 먹어도 되고, #. 복달임 하라고 먼데 친구가 카톡 보신탕과 개가 물어 잡았다는 삼계탕을 보내왔다 누까리부터 얼큰하다. #. 고물딱지 도락꾸의 정기검사일이 되었으므로 빨리빨리 확인하라고 엽서 오고 문자 오고 관공서에서도 오고 공장에서도 오고 도대체 없는 돈에 과태료까지 내게 될까 봐 하도 볶아대는 통에 아주 오랜만에 부르릉 시동 걸어 검사장에 도착했는데 #. 이곳저곳 이것저것을 꼼꼼하게 째려보고 뚜디려 보면서 엔진룸의 뚜껑을 열던 검사원 둘이 갑자기 공손하고도 신속한 자세로 몸을 낮추더니 광속의 속도로 검사대를 빠져나가더라 #. 갑자기 바뀐 검사 방법이 의아하여 물었더니 제기럴~ 엔진실 안에 대..

풍경소리 2021.07.21

금족오(禁足午)

#. 지젝의 "나날의 삶이 너무도 비참한 나머지 코로나 바이러스를 그나마 사소한 위협으로 여겨 모른 체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259쪽에 달하는 팬데믹의 사유들을 읽던 새벽, #. 잠시 쪽잠이 들었었나? 창밖에 어른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 일어나 보니 앞 동네 베드로가 혼자 비닐하우스 일을 하고 있었다. #. 남의 집 일을 내 집 일처럼 하는 것 참 깊은 병이다. #. 그렇게 새벽에 시작한 일은 정오가 되기 전 끝을 내야 한다. 온몸의 땀을 샘물로 씻고 초록 그늘 아래 산바람을 두르는 호사, #. 하여 이 땡볕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한 계명으로 禁足午 하기로 한다. #. 코로나가 창궐하는 도시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효행? 나들이를 했다. #. 기꺼이 환호하여 온갖 수고를 감내하리니 해 넘어 남기..

풍경소리 2021.07.18

하늘 풍경,

#. 산 깊은 곳에 초록 터전을 마련한 아우가 있어 산 넘고 물 건너는 길을 다녀왔다. #. 이제 늙어가는 여섯 남매가 놀이처럼 지었다는 숲 속 둥지 하나가 소근소근 예쁘다. #. 예쁜 사람들끼리 모여 살며 늙어 가는 일, 남은 시간의 마지막 희망이다. #. 집 아래에 농막 하나 들인 이를 위해 사람 다닐 길 열어주고 뒷산 넘어 하루종일 넘쳐나는 물길도 나눠주고 하는 길에 마음 길 조차 건네 주기로 하여 솥뚜껑 위에 고기 구어가며 밤 늦도록 깔깔대소, #. 창문 열고 부를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거 썩 괜찮은 일이다. #. 초록 틈새를 비집어 7월이 되고도 꽤 여러 날이 지나도록 게으름 더불어 풀들만 무성한데 이걸해야 하고 저것도 하기로 하고... #. 날라리 공염불, #. 비 오는 날을 피하기 위해 미..

풍경소리 2021.07.07

외딴 집,

#. 어릴 쩍 체육시간에 하던 평균대 건너기를 지독히도 못 했었다 3미터쯤의 그 길이를 아슬아슬 건너다가 중간에서 똑 떨어지던 세상 무너지는 것 같은 낙망, #. 사람의 한 생 평균대 건너기 같아서 아슬아슬 비틀비틀 걷다가 기어이 평균대 위의 펭귄 걸음, #. 그런데 왜? 이름이 평균대일까? #. 게딱지 같은 집들이 옹송옹송 모여 사는 마을에서 뚝 떨어져 형벌처럼 옹크려 살던 이들이 있었지 #. 내 집이 그러했다 막 다른 길 위의 외딴집이었다. #. 하루 종일 사람의 기척보다는 산짐승 기척이 더 빈번했고 늘 고요했으므로 수다스러운 새소리들, #. 해 끄고 별 켜고 #. 은둔이었다. #. 집 오름 길이 열리고 난 뒤 사람의 일도 열려서 이런저런 소요가 소요를 일구더니만 기어이 집 아래에 이웃이 생겼다. #..

풍경소리 2021.06.26

유월 다정,

#. 나물이가 그토록 목 빼어 기다리던 딸이라는 소식에 모두들 이름 짓기로 분분한데 이름도 시대성이 우선하는 건지 예쁘게 예쁘게만 지어서 #. 낯선이를 만나 통성명 끝에 항렬을 짚어내던 시절은 폐기되었다. #. 오늘 저녁엔 카레를 해줄께 이 말은 들은 정환이가 전하기를 "형 오늘 저녁에 카레 나온대~" #. 아이는 집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게 아니고 유치원에서 집에를 다니고 있다. #. 고추밭에 지지대를 세워 주기 위해? 우르르 모이겠다는 일방 기별, #. 고춧대 세우는 노고가 음식 준비와 아이들 치다꺼리의 노고로 치환되는 것뿐, #. 눈물겨운 유월의 효심, #. 붓글씨 두장을 쓰다가 덜커덕 어깨 아래 담이 들었다. #. 몸을 움직이는 일도 말도 블로그 글도 조금조금 줄여야 할 때?

풍경소리 2021.06.07

일상 건망,

#. 정말로 5월 장마인지 툭하면 비 오시는 통에 툭하면 계획한 일들이 늦춰져서 이 일 저 일 몽땅 에헤라 만고강산~ #. 그렇거니 늦 뿌려 늦 자란 쌈채들을 뜯어 서실 식구들과 쌈밥질, 늙어가는 나이들 다 잊어버리고 한나절을 깔깔대소 했으니 그까짓 글씨 되거나 말거나, #. 아내의 주문대로 두부 세 개를 샀다 두 개는 손에 들고 하나는 정우의 신발주머니에 넣고는 #. 잊어 버렸다. 다만 두 개만 산 줄 알았다. #. 학교 다녀온 정우가 말했다 -엄마 내 신발주머니가 요술 주머닌가 봐 주머니 안에 두부가 생겼어~ #. 백신 주사 후유증으로 된통 몸살을 앓고 난 뒤에 허파에 몸살 나도록 웃었다. #. 억세고 고집 센 아이들과 씨름 중에도 이런 재미, 참 고맙고 행복하다. #. 쉰 목소리로 산비둘기 울고 초..

풍경소리 2021.06.01

오월 거둠,

#. 비 끝에 초록 바람이 불고 제법 칼칼한 아침 공기, 뭔 오월이 이 모양이신지, #. 커튼 새를 비집고 들어 온 햇살이 투명하게 따듯하다. #. 비 온 뒤 뒷짐 지은채 뒷 산에 들어 딱 한 옹큼쯤의 고사리를 꺾어 나오는 일, #. 그것도 대단한 부지런 이라야지 조금 늦다 싶으면 앞서 다녀간 이의 발자국 따라 고사리 꺾인 자리만 볼 수 있을 뿐, #. 누군가 내 땅의 것임을 분명히 하여 팻말을 세워두라 하였지만 #. 너 나 할 것 없이 기대어 사는 품 너른 산 뭘 그렇게까지, #. 오월의 햇살로 살찌고 키 자란 고사리를 다시 오월의 햇살로 말려 거두는 일, #. 적막한 중에도 제법 어깨가 우쭐해지는 山中道樂 이다. #. 어느 추운 날 조상님 제상에서 김 오르면 이승과 저승이 함께 나눌 성찬이 되겠다.

풍경소리 202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