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7

티격과 태격,

#. 딸 가족이 재넘어 도시로 옮겨오고 부터 백수의 일상이 제법 쫀쫀해져서 #. 딸아이 집에 들러 아내가 주방을 정리하는 사이 가끔은 청소 돕기, #. 먼 도시의 친구 녀석은 늘그막에 그 무슨 고생이냐고 했지만 철없는 소리, #. 바쁜 사람 도울 수 있으니 좋고 온통 아내의 수고로움이 될 일을 나누어 덜어 줄 수 있으니 좋고, #. 두 번의 행복이 한방에 해결되는 일 일 뿐더러 #. 헐렁하게 늘어졌던 백수의 일상이 제법 쫄깃 탱탱해지는 효과도 있다. #. 정해진 시간에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 맞이하기와 #. 아이를 학원에 두고 돌아서는 길, 길 건널 때 손 들어야 돼~ 아이는 어른스럽고 나는 아이스럽고, #. 아주 잠깐이지만 두 아이의 예쁘고 따듯한 손을 잡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의 행복, #. 갑작스러..

풍경소리 2021.02.07

새벽 일기,

#. 철없는 시절 연애질 10년 끝에 가시와 버시되어 마흔한 해의 날, #. 나이 탓인가? 이제 서로 특별한 감동조차 없는 맹숭한 마음들이거니 #. 그저 꼭 끌어 안고 "고맙습니다" 했다. #. 살아온 날들 곳곳에 전설 같은 얘기들이 묻혀 있고 그 끝에 푸르고 예쁜 아이들이 자라고 있으니 됐고 말고, #. 시원찮은 재주에 입춘첩 나눔을 했다. #. 정작 내 집에 붙일 방은 따로 마련함 없이 마음속에 "연두" 하나 새겨 두기로, #. 겨울에 지친 이쯤에 봄 기다리는 성급함으로 2월의 이틀을 똑 떼어 버린 건 아닐까? #. 차들로 미어터지는 길 열심히 가고 있는 중인데 또르륵 전화 어디야? 123모 1234 차 뒤에 있어~ #. 무료한 산골 한낮 또르륵 전화가 오길래 받았더니 -뉘기네 집이지요 -아닙니다 잘..

풍경소리 2021.02.02

겨울 비,

#. 대설 지난날 밤비 오시고 #. 비 그친 새벽 안개 그윽하여 팽팽하던 허공이 한결 너그럽고도 몽환적이다. #. 비 덕분에 겨울의 각질이 한 겹 벗겨졌으므로 #. 다소 명랑해진 산새들, #. 날카롭던 겨울과는 기어이 화해를 할 것이다. #. 입춘첩을 써 달라는 앞 마을 아우의 전화, #. 벌써 그러한가? 게으른 하품을 문다. #. 재 넘어 시내로 들어가는 꼬물딱지 버스에는 꼬물딱지 노인들만 가득 앉아서 모두들 병원 가시는 중, # 건강이란 내 안의 병을 안고 스스로 이겨나가는 일, #. 동행이다. 세상 만물이 세월 따라 낡아가는 일이니 더욱 그러하다. #. 밤 동안 산짐승이 내려오는지 밤새 그악스러운 개 짖음 소리에 툭하면 잠을 깬다 손님 대접도 할 줄 모르는 녀석들, #. 모서리 날카로운 서리가 무성..

풍경소리 2021.01.22

넋두리 천오백,

#. 출근 이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미로 같은 도시의 길들은 언제든지 미어터질 준비를 마치고 있어서 #. 자본의 암수에 홀려 내 차를 갖게 된 우리들은 앞으로는 물론 뒤와 옆으로도 비상구를 찾지 못한 채 외통수의 길바닥에서 핸들을 부여안고 몸부림을 치다가 그러다가, #. 문화와 복지는 국가적 시혜가 아닌 개별적 선택의 몫이라고 결론 지었기에 #. 어느 날 홀연히 서식처를 옮겼다. #. 등짝이 아주 큰 산 품 이었다. #. 차 소리와 사람의 소요 대신 바람과 산 새들 그리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내리는, #. 푸른 허공을 재단한 뒤 팔뚝 굵은 아내와 힘을 합쳐 뚝딱 흙집 한 칸을 어렸다. #. 산 속 오두막은 도시의 아파트보다 꿈을 꾸기에 좋았다. #. 둥지를 이소한 아이들은 별 보다 예쁜 아이들을 낳아..

풍경소리 2021.01.17

낙수 겨울,

#. 도시 왕복 달리기 정기적인 병원 진료였다. #. 주차장부터 넘쳐나는 차들과 사람들과... #. 병원에 오는 일로 치유와 건강이 보정된다고 믿는 사람들, #. 출입하는 일은 여전히 번거롭고 까다롭다. #. 여덟 명의 병든 사람들이 신약에 대한 임상 치료를 시작했었다. #. 예후 관찰 5년째, 일곱 명이 리커런트 되었다고 했다. #. 유일하게 멀쩡하고도 전체적인 상태가 호전되었음을 축하한다고 했으나 #. 사실은 매일매일을 임종의 마음으로 살아왔다. #. 그러므로 그들이 얘기하는 섣부른 관해를 유예로 받아 담는다. 그래야 한다. #. 그리고 다시 병상에 누워야 하는 일곱 명의 아픈 곳을 일일이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 변덕처럼 허공이 느슨해진 틈새 두껍게 얼어있던 지붕의 눈이 낙숫물로 ..

풍경소리 2021.01.16

1+1=9

#. 중학교 2학년의 쬐끄만 기지배는 산골 공기가 맑아서 별이 많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 우리 눈이 맑아져서 별도 많이 보이는 거라고 했었다. #. 그 아이 일찌감치 신부 되어 별 보다 더 예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므로 #.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투자된 돈은 별 보다 더 예쁜 현물로 변제되었다. #. 못 갈 수는 있어도 안 갈 수는 없는 군대를 버틸 만큼 버티다가 갔던 아들 녀석은 늙다리 예비군이 되어 돌아온 날부터 영 영 홀로의 독신 선언을 했으므로 #. 제기럴! 우리 집은 이제 씨가 마르는구나 조상님 영전에 면목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 그게 어디 즤맘대로 되나? 낡은 총각 세월의 어느 끝날 비슷한 연식으로 낡아가던 암 콩깍지 하나가 눈에 씌워지는 통에 #. 눈에다 불을 켠 채 장가를 ..

풍경소리 2021.01.13

오리와 겨울

#. 산 꼬댕이 온도계의 수은주가 영하 20도쯤에서 얼어 죽어 있는 새벽, #. 추녀 끝 고드름이 겨울의 송곳니로 자라고 있었다. #. 나는 오리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오리 조끼 위에 오리 외투를 입은 채 오리 duck으로 겨우 겨우 겨울을 건너는 중, #. 어둔 새벽부터 종일토록 거만한 몸짓으로 간이역을 지나가던 기차와 기찻길은 이제 전설이 되어서 #. 햇살이 빗살무늬로 쏟아져 내리는 가을날 산 속 따비밭에서 잠시 허리를 펴는 사이 차갑고 둔중한 마찰음으로 멀어지던 기차는 아련한 그리움 속으로 떠나버렸다. #. 사람들 모두 서울이 가까워졌다고 그리하여 획기적인 지역 발전이 이루어질 거라고 환호했지만 #. 발전은 개뿔, 조금 더 큰 빨대 하나 꽂은 거겠지, #. 올봄 포대 거름을 몇 개나 신청하겠느냐는 ..

풍경소리 2021.01.06

고맙습니다

#. 벽에 걸린 일력의 삼백예순세번째 장을 떼어 낸 새벽, #. 달력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묵지근하고 #. 아랫집 영감님 창문이 덩치 큰 앞산의 창으로 밝았다. #. 늘 같은 시간 우린 서로의 창을 밝혀 고요히 마주한다, #. 무선의 시대에 광선과 시선을 질기게 엮은 유선의 방식, #. 한 해가 다 비워져 간다. 한 살을 더 먹었다는 것 #. 내 안에 옹근 나이테 더 함 없이 껍데기의 각질만 두꺼워진듯 하니 #. 홀로 부끄러워라, #. 전지 한장의 글씨 끝에 남은 먹물로 환을 치고는 새해 인사로 두 손 모은다. #. 춥고 먼 겨울길로 다시 아이들 온다는 기별, #. 나는 따듯한 구심점인가? #. 이 마음 조금 가벼워질 때까지 꼭 끌어안고 변덕 같은 사랑이라도 한없이 베풀 일이다. #. 가는 세월로는 한 해..

풍경소리 2020.12.28

완장 마을,

#. 초딩이 시절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며 완장을 차는 주번이란 것이 있었다. 조금 일찍 등교하여 교실 주전자의 물을 떠 오거나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에 칠판지우개를 털거나 선생님의 소소한 도움일로 수업 시간에 조차 잠시 교실 밖 출입이 허용되는 잠시 헛끝발을 날릴 수 있는 기회였다. #. 모두의 머릿속에 그 노무 완장이 주홍글씨처럼 각인되어 있는 건지, #. 이 코딱지 마을에 이장을 하겠다고 나선 이가 둘이나 되었으므로 우선 스스로 손을 들어 선거관리위원장이란 것이 만들어졌고 그 아래 사무장과 세명의 선거관리 위원과 다시 세명의 참관인이 만들어졌으며 안과 밖의 안내요원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 절차와 의전이 하도 엄숙하여 숨 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는 뒷 얘기들, #. 국민의례는 했느냐고 물었다. #...

풍경소리 2020.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