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완장 마을,

햇꿈둥지 2020. 12. 24. 15:31

 

 

 

#.

초딩이 시절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며 완장을 차는 주번이란 것이 있었다.

조금 일찍 등교하여

교실 주전자의 물을 떠 오거나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에 칠판지우개를 털거나

선생님의 소소한 도움일로

수업 시간에 조차 잠시 교실 밖 출입이 허용되는

잠시 헛끝발을 날릴 수 있는 기회였다.

 

#.

모두의 머릿속에

그 노무 완장이 주홍글씨처럼 각인되어 있는 건지,

 

#.

이 코딱지 마을에

이장을 하겠다고 나선 이가 둘이나 되었으므로

우선

스스로 손을 들어 선거관리위원장이란 것이 만들어졌고

그 아래 사무장과

세명의 선거관리 위원과

다시 세명의 참관인이 만들어졌으며

안과 밖의 안내요원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

절차와 의전이 하도 엄숙하여

숨 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는 뒷 얘기들,

 

#.

국민의례는 했느냐고

물었다.

 

#.

안 해도 될 일을 벌여

완장 찬 이가 십여 명인데

정작 투표할 사람 수는 서른 명 남짓이니

소금 물에 간장 부은듯

그 물이 그 물,

그 놈이 그 놈,

 

#.

것뿐인가

이장, 반장, 노인회장에

사무장 총무에 대동회장이며 감사며

일마다 무신무신 위원장과 위원과 감사와 총무와...

마을에 신발 있는 사람 모두 모여

감투에 완장 하나씩을 차고도 남아 돌 지경이다.

 

#.

나는 그저 환장이나 일 인분 하고 말지

마을 일에 마음 식어버린지 한참,

 

#.

다툼도 나섬도 없이

물처럼

바람처럼

그저 어깨 겯고 오손도손 살자니까

 

#.

오장 뒤집어지네 그려~

 

#.

그렇거나 말거나

오늘은 성탄 전야

모든님들 손잡아 평화와 사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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