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6

起死回,秋

#. 앞 산 옆 산 뒷 산으로 온 산 정수리가 붉어타. #. 놀빛도 그러하거니와 단풍빛 또한 마지막 시간들이 이토록 장엄하니 따로 꽃에 홀릴 일 없겠다. #. 산속 누옥의 어지러운 마당까지 슬금슬금 단풍인데 여전히 무채색으로 맹숭한 건달 하나, #. 기습 추위에 온 가을이 그만 얼어 죽었거니 했었는데 하늘빛 푸른 날부터 장하게도 다시 가을, #. 감기를 핑계로 두문불출했던 몇 날을 건너 다시 새벽 걷기, #. 새벽 하늘빛도 계곡 물빛도 도란도란 청량하다. #. 지워져 가는 시월이 아쉬워 코로나 잠시 잊어버리고 모이자고 했다. #. 이 산속 저 산속 그 산속에 애벌레처럼 가만히 들어 살던 몇 사람이 시끌한 도회의 구석을 빌려 그리웠던 마음들 소만큼 먹어서 채우기로 했으니 #. 모처럼 씻고 구루무도 좀 바르..

풍경소리 2021.10.30

가을 나들이

#. 이번 주 며느리의 둘째 출산 전에 응원 차 나선 서울 나들이 길, #. 여기에 얹어 김장 전 젓갈 구입을 해야 한다는 아내의 음모 속에 낑겼다. #. 새우젓 배에 잡혀 가나 새우젓을 위해 잡혀 가나 남자에겐 다 위험하다. #. 짐꾼 역에 물주 역에, #. 다만 위로되기는 출렁이는 물속에서 잡혀 왔다는 눈 맑은 전어와 등 굽은 새우 한 접시, #. 동서의 집에서 낯 선 하룻밤을 보내는 사이 산골에는 한파주의보가 있었기에 되돌아 당도해 보니 이제 막 물들어 가던 가을은 요절해 버렸고 흥건한 추위만 점령군처럼 진주해 있었다. #. 떠나기는 가을 날 돌아 오기는 겨울 날, #. 군집한 아파트와 차들이 미어터지는 수많은 길과 함부로 햇빛을 튕겨내는 윤기 나는 차들과 그 숨 막히는 도시를 차창 밖으로 훔쳐보는..

풍경소리 2021.10.18

가을 엽서

#. 너무 일찍 씨 뿌린 걸까? 비 잦은 가을에 힘 입어 우쭐 키 자란 돌산갓을 모두 뽑아 김치를 담갔다. #. 황소 뒷걸음질에 쥐 밟은 건지 그 맛 환상스틱, #. 가끔 이렇게 놀랄만한 일을 저지르는거 시골살이 또 다른 맛이다. #. 이 엄청난 실수의 결과를 널리 알리고 나누고자 고개 넘어 은사님과 시내의 친구 더불어 신새벽에 도시락 싸들고 충주호 물길로 코로나 소풍길, #. 꼬불 꼬불 돌고 돌다가 워쩐 활석 동굴이 있었으므로 기어이 한 바퀴, #. 나처럼 일 없는 사람들 우르르 모였으니 #. 돌 캐낸 동굴을 알록달록 꾸며서 다시 돈 캐 내기, #. 동굴이야 그까잇 거인데 너른 물길 옆댕이에 아무렇게나 앉아 펼쳐 든 도시락과 그동안 코로나에 묶였던 얘기들로 수다하고 소란하였다. #. 문득 어깨 위의 손..

풍경소리 2021.10.05

기어이 시월,

#. 기어이 시월이 되었구나 바람은 조금 더 냉정하게 갈기를 세울 태세이고 문득 치악 마루는 가을색, #. 등때기에 암자 하나 짊어진 덩치 큰 앞산이 잔뜩 옹크려 있고 #. 마당가 고로쇠나무는 정수리부터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 낙엽 지는 일 조차 참 위계적이다. #. 신 새벽 소란스런 뇌우에 잠이 깼다. #. 가을 물들이기가 아닌 가을 길들이기부터 시작할 모양이다. #. 올 가을 참 요란하게 오신다. #. 홀아비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여 김치찜 한 냄비 들고 마실을 간다. 한 동안의 격조가 제법 짭조롬 얼큰해서 #. 쐬주 한병 비워진 뒤 관절 싱싱했던 젊은 날들이 무너지고 두병 이후 푸르렀던 청춘이 장렬히 전사하더니만 세병쯤의 빈병이 자빠질 무렵 온 생애의 날들이 불콰하게 꽐라 되야부렀다. #. 김장..

풍경소리 2021.10.02

월화관제(月火管制),

#, 군사적 냄새가 다분한 등화관제를 빌려 월화관제라도 해야 겨우 잠들 수 있는 낙망적인 날들, #. 새벽마다 그 치렁한 빛에 시린 이슬 내리고 선잠 깨어 자꾸 뒤척이게 되는 일, #. 그리운, 그리웠던 이들은 이제 모두 세상에 있지 아니하니 기억 속에 압착되어 있는 누군가를 꺼내는 일은 온통 고통스럽다. #. 낮 동안의 햇볕은 셀로판지처럼 투명하고 달빛은 또 치렁하니 그저 그리움을 핑계 삼아 한 삼일 성실하게 앓아도 좋은 가을, #. 뜬금없이 시집 한 권을 신청했다. #. 이 가을에 대한 백수의 예우, #. 더웠던 여름은 세월의 나이테 속에 갇혀 버리고 그토록 수다스럽던 매미들도 폐가의 거미줄에 박제되어 버렸다. #. 하느님 전상서, 엽서 한 장 날려야겠다. #. 저승에 당도한 이들도 이승의 사람들을 ..

풍경소리 2021.09.26

자꾸 하늘,

#. 이틀 비 오고 하루 쨍하고 다시 이틀 흐리고, #. 오늘도 햇볕 날 듯 말 듯, #. 마누라 고추 널 듯 말 듯, #. 요즘 쐬주에는 기억 재생제가 첨가되어 있는 건지 대낮 술에 곤죽이 된 친구넘이 불쑥 전화하여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맥주를 안주 삼아 쐬주를 일용하던 그 시절 얘기를 하고 또 하고 돌리고 또 돌리고, #. 술빨은 미약하되 주정은 창대 하여서 #. 전화기 술 주정까지 받아줘야 하는 스마트 시절, #. 그래 어쨌든 가을이고녀~ 그렇지 않고는 멀쩡하고도 거룩한 대낮에 이런 횡액수가 생길 리 없다. #. 가을 깊은 날에는 전화기 뿌솨 버려야겠다. #. 나뭇잎 하나 떨어질 때마다 하늘을 한 번씩 본다. 별것 아닌 일에 목이 메이고 매양 그렇고 그런 일들에 조차 감사한 마음, #. 올 가을엔 ..

풍경소리 2021.09.07

꽃 진 자리 다시 꽃,

#. 공모전 마감일은 부득부득 다가오는데 쓰고 또 써도 파지 또 파지, 한글 참 만만치 않다. #. 헐렁한 음식점에 앉아 글씨 가방을 내려놓다 보니 손톱 밑이 까맣다. #.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용을 쓰고 있는거다. #. 비 끝 자락을 밟아 어지렁 마당 한 바퀴를 돌다 보니 덩그러니 남겨진 꽃 진 자리가 다시 꽃, #. 눈 비비고 보면 산골짜기 구석구석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 밭가의 엉킨 풀처럼 덥수룩했던 머리를 정연하게 다듬었다. #. 파마를 할 건가요? 아니요 빠마로 해 주세요 #. 가을맞이 빠글빠글 지붕 개량, #. 마을 홀아비 친구의 생일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재 넘어 맛집을 찾아 국민의례 후에 고뿌라면 한 개씩 먹었다. #. 참 애국쩍인 맛이더라, #. 아픈 곳과 아픈 정도와 아픈 횟수가 ..

풍경소리 2021.08.27

새벽 잠꼬대,

#. 블로그 친구 목록의 새 글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던 기능이 파업 중 인가? 고객관리를 어찌 이리 꼴리는 대로 하시는가? 우롸통을 다독이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 우리 모두는 허망한 인터넷 난장판에서 허수아비 놀음을 하는 거다. 스스로 주인공인 줄 알지만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 속에 갇혀 버린 채, #. 먼 남쪽 바다 위를 사납게 지난다는 태풍의 등에 업혀 온 비로 산골짜기 누옥의 지붕이 제법 수선스럽다. #. 갑자기 여자들끼리만 1박 2일의 동해안 여행을 다녀오겠노라는 아내의 일방통보, #. 세상을 하직할 생각이 아니면 웃어야지... 그래야지... #. 백수의 내핍으로 꿍쳐 두었던 구렁이 알 같은 돈 마저 꿈같을 한박 두일 동안 탕진하시라고 기꺼이 헌납해야지... #. 여전히 비, sad rain....

풍경소리 2021.08.24

이미 가을,

#. 어쩌다 보게 된 티븨 속 알록달록 등산복 고운 여인네들이 섬을 걷는 풍경, #. 만삭의 꽃 같은 표정으로 이걸 봐서 힐링 저걸 먹어서 힐링 그 노무 힐링, 힐링, 힐링... 을, #. 다소 헐렁한 표정으로 보다가 듣다가 문득 우리 모두 너무 많이 아프게 사는구나 #. 아재(AZ) 백신의 2차 접종, 병원 대기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 모두의 나이를 합산하면 5 억년쯤 될 것 같다. #. 그 긴장한 표정들이 슬그머니 재미있다. #. 지구가 돌아서인지 살짝 어지러움과 미열 그리고 무기력, #. 붓글씨를 쓰겠노라 시작은 했는데 두 번의 파투 두 백장 쯤의 파지 집중이 안된다. #. 흘림체로 시작했음에도 써 지기는 삐뚤빼뚤의 잘난체, #. 허공의 음영이 훨씬 깊어지고 창가를 기웃 거리는 건달 바람들 #. ..

풍경소리 2021.08.14

갈등 조장,

#. 귀뚜라미, 섬돌 밑에서 우는건지 가심팍에서 우는건지 #. 마음부터 쓸쓸해지고 마니 필경 가을, #. 조선놈 삼세번이라고 음주 운전 삼세번 끝에 그럭저럭 1년 넘어의 시간동안 수인이 되어야 했던 마을 친구 하나, 어찌어찌하여 마지막 복날인 광복 날 출소를 한다는 거다. #. 어차피 홀로 살이이니 출소가 아닌 이감 상황이다. #. 음주 운전 가석방을 기념하여 소주 1000가론쯤 나누어 마신 뒤 1년만의 운전으로 마을 한바퀴 돌아보자고 해야겠다. #. 무얼 어찌 도와주어야 하는지 며칠째 곰 곰 곰 곰··· #. 어느새 새벽엔 이불깃을 끌어 당겨야 한다. #. 지난 여름 혀 빼어 물게 했던 더위쯤이야 다 용서하고 말고, 까짓 거, #. 다시 밭 갈아 무, 배추를 공손하게 심었으니 하늘을 우러러 천일염이 쏟..

풍경소리 2021.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