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825

징검 비,

#. 내리다가 쉬다가 더러는 햇볕 이기도 했다가 그렇게 징검징검 비가 내렸으므로 #. 해바라기는 마땅히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그만 땅에 눕고 말았다. #. 이도 저도 해법이 없을 때 발라당 디비지는 거 간혹 사람살이 중에 있다고는 들었으나, #. 비 오는 날 마다 가심팍조차 질척해 지는 증세, 자가 진단 결과 우(雨)울증 전조 증상이 분명해 보인다. #. 백수의 단순다망 하신 일들 조차 심드렁하여 그 틈새 풀들만 한 발도 넘게 산발, #. 아이들이 묶음으로 코로나에 걸려 제 집 안에 위리안치된 지 수일째, 먹고 싶다는 것들을 대략 카트에 담아 종합 배송을 했다. #. 꼭 안아 뽈떼기를 비벼도 시원찮은 예쁜 녀석들을 그저 현관문 사이로 멀뚱히 바라만 보고 돌아서야 하는 일, #. 꿈속에 본 듯하다. #..

풍경소리 2022.08.14

서울 쥐,시골 쥐,

#. 기차안에 가득 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지만 그저 너른 바닷물에 물 한잔 더한 듯 도시는 여전한 흐름으로 도도하다. #. 도시의 내장을 흐르는 지하철 안에는 모두들 스마트 경전에 이마를 묻은 채 경건하게 묵도 중, #. 오륙 년쯤 지났나? 세월의 무게 위에 노쇠의 덕지가 더 해진 기억은 기어이 인사동 거리를 세 번쯤 헤매게 한 뒤 겨우 겨우 단골 필방을 찾아 주었다. #. 그리고 탑골 공원, 그늘마다 무리 지어 시국을 성토하거나 바둑 장기의 훈수에 여념없던 분위기는 간데없고 #. 비둘기 똥구멍을 모두 꿰매어 버린건지 아니면 꽁 꽁 얼어붙은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으로 강제 이주를 한 건지 비둘기 똥을 피해 유리 막 안에 갇혀 있던 탑과 동상은 이제 햇볕 아래 늠름 하시다. #. 공원 안에 가득했..

풍경소리 2022.08.08

백수연가,

#. 서실 정리 일상 정리 백수의 날들이 조금 더 헐렁해지도록, #. 그렇게 비워진 시간에 엉금엉금 고추를 땄다. #. 둘이 땀 흘려 열 넘어 나눔이 되는 부등가적 시골살이, #. 결혼한 아이가 도시에 살 때 그 아파트 안에서 가끔 이고 진 시골 노인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되어 있었고 #. 이른 오전에 시골 버스에 듬성하게 앉아 병원을 찾아가는 노인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지만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되어 있었다. #. 저 아래 마을 길에 이제 막 손주를 본 누구 아버지가 백일 지난 아이를 등에 업고 느릿느릿 걷고 있다. #.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지난날 우리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 흐린 하늘이 여전히 비 뿌리는 새볔..

풍경소리 2022.08.04

태풍 8월,

#. 두 개의 태풍이 비와 바람을 몰고 올라온다는 풍문에 앞 서 #. 다시 비 오시는 새벽, #. 그렇게 태풍 더불어 8월이 당도했다. #. 태풍이 세월 같기도 세월이 태풍 같기도, #. 서실 나다니는 일을 정리했다. 이제 산 중에 가만히 들어앉아 저기 산 아래 저자를 관조하면서 가만히 마음 수양을 하기로 한다. #. 정해진 틀 안에 갇혀 필사처럼 글을 쓰는 일에서 이제 정도에 매이지 않는 내 글을 쓰고 싶다. #. 몽골의 초원 이거나 히말라야의 척박한 마을을 찾아 한 동안 떠돌았으면 좋겠으나 여전히 코로나, #. 제사를 모셔야 할 형님 댁이 온통 코로나에 갇히는 바람에 어머니 기제사 마저 포기해야 했다. #. 제상 앞에 엎드리지 못하는 이 서운한 마음마저 귀신같이 아시겠거니··· #. 비 그치면 홀로 ..

풍경소리 2022.08.01

할머니와 엄마,

#. 본격 방학철, 딸아이의 이러저러 그러한 사정으로 두 아이들과 1박의 일정이 만들어졌다. #. 아랫집 눈치로 발뒷굼치를 들고 다니던 도시의 정숙 보행 의무가 해제된 아이들은 산토끼 처럼 뛰었으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 땀 땀, #. 강아지 더불어 마을 산책, 감자 캐기, 청개구리 붙잡아 손 등에 올려 보기, 벌집 소동, 고양이 놀이,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또 또 또, #. 해넘이 무렵 몸을 씻기던 아내의 놀란 소리, 정환이 엉덩이 아래쪽에 진드기가 붙어 있어 떼었다는 것, #. 전화를 받은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은 조치를 할 것이 없으니 일주일 가량 지켜봐야 한다는 것, #. 그 심란한 시간들, #. 저녁 무렵 퇴근한 엄마가 이 얘기를 듣고 상처 부위를 살펴본 끝에 일갈 하기를, #..

풍경소리 2022.07.21

da絶 이주,

#. 장대비 이거나 빗발 이거나 예기치 않은 소나기 속에 이제 밭의 풀들은 손질할 수 있는 경계를 벗어났으므로 게으르기에 딱 좋은 날들, #. 그 틈새 주말 잠시의 물놀이에 한껏 즐거웠던 아이들은 작은 도시의 친구들을 품 가득 안고 오겠다는 기별, #. 무조건적 애정의 끈을 쥐고 있는 아이들은 언제나 의기양양 하니 좋고 싫고 하고 말고의 선택지는 애초에 내게 없다. #. 내 집인 줄 알았던 블로그는 눈치 없는 더부살이였음을 새롭게 알게 하는 일, #. 몸뚱이는 가되 답글과 방명록을 버려야 한다니 시시껄렁한 본글마다 아기자기하던 답글들을 어이할꼬 #. 꼬리 잘린 도마뱀의 심경이 이러했을까? #. 도마뱀은 자절(自絶)인데 이번 일은 다절(da絶)이다. #. 준비라고 해봤자 특별할 것이 없으니 그저 일없이 지..

풍경소리 2022.07.09

유월 몌별,

#. 엉거주춤 오리걸음으로 느릿느릿 풀을 뽑거나 #. 씨 뿌렸던 초롱무와 얼갈이를 솎아 새소리 버무려 담담한 김치 한 통을 만들고 #. 여기에 더해 봄에 씨 뿌렸던 감자 몇개 배추 부침 한 접시가 비 속의 점심이 되었다. #. 히말라야 유목인 창파족의 삶을 다큐 프로그램으로 잠깐 본 일이 있다. #. 갈색의 주름 깊은 얼굴과 고단해 보이는 그들의 일상 #. 기르는 염소와 양을 끌어 안아 사람과 짐승의 살이가 반듯하게 구분 되지 않는 질박한 삶, #. 곰곰 생각해 보니 그들의 삶이 피폐한 것이 아니라 내 사는 방식이 사람 본연의 굴레 밖에 있는 것, #. 굴레 밖의 일들을 문명 또는 문화라고 이름한 뒤 #. 우리 너무 흥청망청 살고 있는거 아닌지··· #. 평일에 늘 보던 아이들이 엄마의 연수 때문에 휴일..

풍경소리 2022.06.29

세월 중력,

#. 사람의 한 평생 당연한 귀결일까? #. 아니면 우리 살아온 날들이 이제 온통 무게로 얹혀 오기 때문일까? #. 코로나로 생긴 3년쯤 비워졌던 시간을 건너 모두 반갑게 손잡기는 했으나 #. 더러는 조금씩 등 굽고 팔랑 걸음, 또는 걸음의 패턴을 종종 걷기 방식으로 바꾸었거나 계단을 오르 내리는 일에 발 모음이 잦거나, #.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망라된 노인성 퇴행의 몸태, #. 점진, 또는 급진적 늙음에 의한 낡음, #. 총무의 인원 보고가 있었다 총원 00명 사고 0명 사고내용 사망 0명 이 병, 저 병으로 입원 0명 장차 요양원 예약 중 0명 하여 현재원 00명, #. 현재원 00명이 모이기는 했으되 모두들 세월의 피격으로 성한 것들이 없음, #. 빡빡머리 때로 현실을 오인하여 과격한 지뢀을 삼..

풍경소리 2022.06.26

에뮤의 날개,

#. 하늘바라기의 마음으로 매일매일 일기예보 기웃거리기, #. 소나기 조차 청어 떼처럼 종적을 가늠하기 어려워서 #. 하루 종일 흐렸다가 10초쯤 비 뿌리기, #. 베적삼이 다 젖도록 풀 매어 가꾸던 일련의 과정들이 삐그덕 어긋나서 호미는 벽에 걸려 녹슬어 가고 오로지 물 주기, #. 이러다가 제대로 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낮게 엎드려 있던 풀들은 온통 떨쳐 일어나서 허공 춤을 출 것이다. #. 갑작스러운 처가 어르신의 부음이었다. 노인정과 요양원과 그리고 코로나의 카메오 뒤에 홀연히 장례식장, #. 젊은 시절의 권위는 영정 사진 속에 박제되어 버리고 구십의 연세 때문이었을까? 상주도 가족 누구도 특별히 애통함이 보이지 않는다. #. 에뮤의 날개처럼 그 기능을 상실해 가는 우리 안의 것들 또는 일상의 ..

풍경소리 2022.06.11

가뭄 탓,

#. 이 또한 가뭄 탓이겠거니 뜨락의 돌나물도 마당가의 달래도 온 힘을 다해 목마른 꽃을 피웠다. #. 가물거나 말거나 그저 묵묵히 자기 일에 성실한 자연, #. 새벽 자락을 들춰 상추 다섯잎 쑥갓 조금 겨자채 세잎으로 아침 상을 차린다. #. 주린 몸에 매달려 한사코 젖을 빨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중에도 송구한 마음, #. 아침 저녁으로 밭에 물 주는 일이 주요 일과가 되었다. #. 그런 중에도 아침마다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함초롬 이슬들, #. 모두들 이슬 연명체로 진화 중, #. 치매 어머니 간병으로 휴일이 없는 이웃 도시의 친구 둘이 불쑥 들이닥쳤다. 주홍 글씨처럼 가슴 깊이 각인된 효의 주술에 얽혀 더불어 살기를 고집하는 사이 부부는 나날이 날카롭고 스스로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 #..

풍경소리 2022.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