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봄, 강아지,

햇꿈둥지 2024. 3. 7. 04:17

 

#.
음지에는 여전히 잔설이 옹크려 있고
산골 누옥의 마당에는 꼬마회오리가 어지러운데
여린 햇볕을 공손히 받들어
냇가의 버들강아지 눈을 떴다.

#.
우수 경칩이 지났으니
당연히 봄으로 가는 길 이건만
이런저런 봄 조짐들 앞에
그저 또 놀랍고 감사한
산골짜기,

#.
정우는 4학년이 되고
정환이는 1학년이 되었다.

#.
대견하고 경이로운 아이들의 시간 뒤에서
나는
바람 같은 세월에 덜미 잡혀
무럭무럭 늙어가고 있다.

#.
혼자
비닐하우스 두 동을 정리하는 일,
간간히 산짐승이 지날 뿐인 진공의 적막 속에서
자주 쉬며
간혹 노래했다.

#.
발악도 음악이 되는
적막의 긍휼,

#.
지난 해와 크게 다르지 않게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온몸을 붉고 맵게 물들일 고추를 심어
먼 곳에 사는 지친들과 나누는 일,

#.
시골,
산골짜기 비탈밭을 찾아
그들 곁을 떠나 온
내 선택의 의무이다.

#.
이 나이쯤에
오로지 홀로의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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