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늙은 고양이를 위하여,

햇꿈둥지 2024. 5. 2. 12:53

 

#.
늙은 친구와 둘이
먼 동쪽 바닷가 찻집에 앉아
오래도록 차 한잔을 마셨다.

#.
그와는 
따로 말을 나누지 않아도
같이 있는 것 만으로 충분한 대화가 된다.

#.
반팔 티에
배꼽을 내놓은 아이들 조차 추워 보이지 않는 날씨임에도
우리는
지나치게 두꺼운 옷을 입고
지나치게 과묵한 시간을 끌어안고 있었다

#.
바다와 하늘의 딱 한가운데 누워 있는 수평선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 같은 오늘을 다독거리고
멀게 지나가 버린 시간의 언어들로
내일의 절망을 위로했다. 

#.
그리고,

#. 
그는 다시
바다를 떠나 설악에 들고
나는 
감자와 옥수수와 온갖 작물들과 풀들과
이제 막 극성을 떨기 시작한 다섯 마리의 강아지와
지난달 귀촌한 늙은 고양이의 집을 짓기 위하여
조금씩 
그러나 아주 왕성하게 풀 밭이 되어 가는
산골짜기로 돌아왔다.

#.
노란 송홧가루가 날리기 시작했다.
고개 넘어 외딴집 눈먼 처녀가
문설주에 기대어 엿듣고 있을 것 같은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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