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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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게으름,

#.첫눈의 피폭,#.아득한 회색빛 하늘은 하염없이 눈을 퍼부었다.#. 첫새벽에 진주한 순백의 겨울 틈새아직 마무리 하지 못한 가을의 붉은 잎새 하나,#.첫눈 내리는 날,기억의 갈피에 압착되어 있던 사람들의문득 전화,#.아직도비우지 못한 감성이 남아 있어이렇게 눈 오는 날이면쪼금씩 외로워지는걸까?#.오랜만의 전화래봐야여기 저기가 아파서 병원엘 다녔고봄날 산새처럼 명랑했던 어느 친구가 홀로 되었고...#.가을 끄트머리의 여러 날을진공 상태로 끌어안고그저 아무 말 없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의식의 마비 상태,모든 일들이 그저 심드렁 하여꼼짝도달싹도 하기 싫었던 날들,#.몸도 마음도 일으켜 세워야겠다.눈이 내렸으므로,

소토골 일기 2024.11.28

가을 별리,

#.아흔 일곱 생의 끝은요양병원이었다.#.병원으로 떠나는 구급차에서자꾸영안의 그림자를 본다.#.마을에서 제일 먼저 불을 밝히던 할머니의 창은어둠 속의 어둠,다시마을 안 빈집 하나로 남았을 뿐,#.하필이면 바람 불고 추워지는 계절에손 흔들던 모두의 가슴에 찬바람 한줄기 서리서리 감겨든다.#.제 발아래 그늘을 지던 나뭇잎들이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져여름의 전설을 도란거릴 때하늘은 맘껏 푸르고맑은 허공 가득 추위만 빼곡했다.#. 그리하여 나날이맘 놓고 된서리,#.뒷 산에 올라 누워 마른나무 한 짐을 져 내리는 일,#.숲 속 조차 삶과 죽음은수직과 수평으로 구분되었다.사람의 일 또한...#.잎도 가지도 없으니나무 본디의 성품을 알 수 없는 일, 어중 떼기 나무꾼 노릇의 결과로팔과 목에 번진 옻 알레르기를 끌어..

소토골 일기 2024.11.12

단풍 등고선,

#.아침마다 시린 이슬 내리고허공은 셀로판지처럼 투명하다.#. 이슬이 내리고나뭇잎이 떨어지고온갓 것들이 떨어져 내리는 겸손한 계절,#.폐포 가득허공을 담고작은 계곡의 물소리를 담고이제 막 떠 오르는 햇볕을 담고세월을 담고도그저 텅 빈 걸음으로 바람처럼 걸을 뿐인 새벽 운동 길,#.가을 둘러 볼새 없이겨울 준비에 등 떠밀려나날이 동동걸음,#.뒷 산 정수리가 어느새 헐렁해지고고양이 걸음으로 산을 내려오던 단풍은잠시시골 누옥의 마당마저 채색 중,#.얼마 남지 않은 화살촉 홑잎들이태양빛보다 붉다.#. 기대보다 형편 없이 자란 무 배추거니알뜰히 거두어 김장을 하기로 한다.처가 형제들이 우르르 모여밤 깊도록 도란거릴 일이니김치 맛 관계없이 행복할 수 있겠다.#.아궁이 옆에 땔감이 차곡하고사람의 등이 사람으로 따듯할..

소토골 일기 2024.11.06

벗어나다.

#.가을 징검비 탓에비가 새던 창고 지붕 교체 작업은 연기 또 연기를 해야 했었다.#.하필이면병원을 가기 바로 전날앞 동네 뒷 동네 내 동네의 친구들이 우르르 모여하루종일을 뚝딱인 끝에 새 지붕 씌우는 일이 마무리는 됐으나몸은 천근,#.저녁 잠자리에 누우니온몸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다시 1년 만에PET 영상 자료를 한참 훑어보던 의사가 말했다"깨끗합니다 이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습니다""병원에 안 오셔도 됩니다"#.의사의 표현에도 불구하고그 병,내 안 본래의 자리에 가만히 옹크려 있음을 안다#.병도 나도12년 세월은 서로를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으니까#.그럼에도 아내는 기어이1년 후의 검사와 진료를 예약했다 #. 병원에서 병으로 정들었던 이들 중아직도 아프거나더러 세상에 있지 아니한 인연들을..

풍경소리 2024.10.30

변검적 기후,

#.지독히도 덥던 여름은어느 날 비 한 번에 후닥닥~가을이 되었고,#.시월 깊은 날에요란한 뇌우가 내리더니만기온은 곤두박질 하여가을이되 겨울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다.#.듕국 변검술사의휘리릭 한 바퀴에 가면이 바뀌고 색깔이 바뀌는 것 같은#.간절의 날도 완충의 시간도 사라져 버려#.노을빛으로 멀어져 가는 세월과손 잡아 서운한 이별을 할 새 조차 없는어수선한 시절,#.국화꽃이화들짝 피기까지아직 순한 가을의 햇볕이 더 필요할 일인데#.서리 내리고얼음이 얼지도 모른다는서슬 퍼런 풍문들,#.하여산골은 지레 겨울이다.#.벽난로의 나무를 들여 공손하게 쌓아 놓고누옥의 안팎을 둘러온 여름내 열어 두었던북풍의 길을 미리미리 막는 일로종일토록 종종걸음 이지만#.그래봤자어느 날 불쑥 점령군처럼 들이닥치는 겨울이#.노을빛 능..

소토골 일기 2024.10.19

안개 유영,

#.날마다 안개,#.안개 자락을 들춰 밭에 들었다가다시안갯속을 걸어 나오면불끈해가 솟아 오른 한낮이 되었다.#.한로가 지난 날 부터나날이 푸석해지는 나뭇잎 마다겨울만큼 시린 가울이조롱조롱 맺히기 시작하고도#.앞산 능선은맘 놓고붉어타.#.발육 지진의배추와 무 밭을 둘러보며일찌감치 김장에 낙담해 있는데#. 산 아래 저잣거리에서는배추 한 포기에 이만 원쯤이라는 풍문,#.손 전화가 며칠째 치매 증세를 보이더니만결국속내를 알 수 없는 이런 저런 짬뽕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이름은 손전화기 이되전화는 부속 기능이 되어 버려서#.이것과 저것저것과 이것들을 본래대로 옮기는 일로용을 쓰다가 문득 생각 하기를,#.늙어빠진 이 몸에 스스로 빨대를 꽂거나최소한 멱살 잡혀 주기,#.폐기된 손 전화의 기능을십 분의 일도 모른..

소토골 일기 2024.10.13

그리고 시월,

#.바람 모서리가어제보다 조금 더 날카롭다.#.작은 바람결에도팔랑어깨 위로 쏟아져 내리는#.먼 하늘의 별이 된 그니가노을빛 가슴으로 또박또박 써 놓은연서 같은 나뭇잎···들 ···#. 무를 솎아 김치를 담그고고구마 줄거리를 다듬는 일,#.줄거리만 창대하고고구마는 미약한 이런 농사그렇거니가을 햇살에 윤기 나는 줄거리를 아름 넘치게 거두었다.#.열번 백번 손질을 해야입에 넣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되니음식의 손맛이란참 고단한 일이다.#.아내가 만들어내는어머니 맛과 겹쳐지는 음식들은다만 음식으로만이 아니라이승과 저승으로 나뉜 뒤에도 여전히 교감되는영혼의 언어이다. #.혼곤한 새벽잠을 깨우는찌개 냄새 이거나등 푸른 생명 한토막이 꼬숩게 익어가는 냄새 이거나더러는젓국 냄새로 전해지는 언어들,#.엄마의 엄마와다시 엄..

소토골 일기 2024.10.04

가을 안녕?

#. 진작부터 기후 변화라는 말을 들어왔으니이쯤에서계절 변화를 얘기하는 일쯤은다소 늦은 감이 있다.#.며칠 전 늦더위 속 종일 내린 비 끝에기온은 곤두박질을 했고그리고짧은 옷을 긴 옷으로 바꿔 입을 새 없이추웠다.#.꼬맹이 차의 에어컨은망설임 없이히터로 바뀌었다.#.준비할 새 없이 계절이 바뀌니이젠봄이 오기 전에 여름을 걱정하고가을이 오기 전에 겨울준비를 해야 한다.#.이제봄과 가을은멸종위기종이다.#.노을빛에 취해온 산과 들이 불콰해지던 당연한 일들조차전설이 될 것 같은 위태로움,#.허공에서 뛰어내린 밤과 도토리들이 마음 놓고 굴러 다니는이른 아침의 산길을 걸으며#.가을의 안녕을 위해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소토골 일기 2024.09.27

일탈,

#.아내는 아직도친정 설레임을 가지고 산다.#.모 처럼처가 여섯 형제들의1+1 모임,#.늙고 낡기는 했으되빈자리 만든 사람 없으니됐고 말고,#.황소 뒷걸음질에 개구리 밟듯 찾아들어간바닷가 꼬딱지 음식점에서음식맛보다 더 맛있는 사람의 맛에 취해우리 모두는 조금 더 왁자하고 행복했었다.#.해가 뜨는 시간,여전한 모두의 깊은 잠 곁을 조심조심 빠져나와석모도 아침 길을 바람처럼 걷기,#.일탈하여 산골 뜨락을 비웠던 사이기온은 곤두박질하고벼락같은 가을이 뒹굴고 있더라.

풍경소리 2024.09.23

몰더바래,

#.곧명절이 된다고평균 연령 70쯤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풀 베고 청소했다.#.백로 지난 절기에폭염 주의보,#.허수아비 등짝에도땀띠가 솟을 것 같다.#.확률 60%의 비 예보를 건성으로 들었는데이른 새벽부터장맛비만큼의 기세로 비가내리고 있다.#.역천은(亦天恩)이샷다.#.덕분에 자랄똥 말똥 하던 김장 채소들이푸르게 일어서는 아침,#.몰 더 바래,#.가는 일도 막고오는 일도 막았다.#.그래도 · · · 라고 멸종 위기에 놓인 며느리의 의무를 며느리적 자세로 얘기했으나고통 분담?을 위해친정에서 명절을 지내도록 간곡히 일러 두었다.#.그리하여우리는 아무도 모르게캠핑을 떠나기로 했다.#.마을 집들이 송편을 찌고 전을 부치는이른 새벽에살곰살곰 까치발로· · ·

소토골 일기 20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