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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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가을,

#. 한 동안 아프다. 자주 아프고 길게 아프다. #. 이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눈이 아프고 종합쩍으로 아프고 복합쩍으로 우울하다. #. 엄마의 줄을 끊어 나를 사람의 세상으로 보내면서 문신같은 꽃 한 송이 몸 가운데 놓아주셨다. #. 그래서인지 몸이 아픈 밤 이면 살곰살곰 배꼽이 아팠다. #. 몸의 통증이 잠시 쉬는 사이 글씨를 쓰고 벌초를 했다. #. 아이들은 서해 바다에서 놀고 또는 수목원의 맨발 걷기를 하며 무럭무럭 자라는 새 #. 나는 무럭무럭 늙었으므로 가을은 제법 소슬한데도 #. 나날이 고추 뒤집어 주기, 얼른 저 홀로 뒹굴 뒹굴 굴러 다니며 마르는 신품종 고추가 나와야 한다 #. 서실을 버리고 홀로 쓰는 글씨, #. 무슨 일이든 매이지 않은 채 소소하여 자유하고 싶다.

소토골 일기 2023.09.11

조우,

#. 바람과 손잡고 이웃 도시 나들이, #. 차와 사람과 음식점마다의 긴 줄과, #. 이제 주거 구성 공간에서 주방은 폐기해야 될 것 같으다. #. 손수 지은 밥과 반찬에서 손수 주문한 배달음식으로 성찬이 되는 식탁, #. 그런데도 오늘 나는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같은 무와 배추를 심었다. #. 꼬맹이 귀뚜라미가 서툴게 우는 저녁, 지난여름 그 뜨겁던 더위에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 별 것 아닌 농사일에 자주 무르팍이 아팠으므로 무릎에 얹힌 짐을 덜어주기로 작정하여 우선 5kg쯤 감량, #. 이제라도 평생의 시간 동안 내 몸 곳곳에 쌓은 미안함을 덜어내야 한다. #. 어젯밤 꿈길에는 예고도 없이 어머니가 오셔서는 이거는 요게 뭐냐 저거는 조게 뭐냐 생전의 잔소리를 엎그레이드 하여 쏟아내시다가 ..

카테고리 없음 2023.09.01

이제 가을입니다.

#. 글 올린게 한 이틀 되었나?... 하고 들여다보면 훌쩍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 호랑이 등 같은 세월의 등짝에 얹혀 있는거다. #. 아내가 절간 스테이를 떠났다 바닷가의 어느 절에 잠시 머물러 도피안을 꿈꿀 모양이다. #. 하여 산 중 절간 같은 집에 홀로 남아 맴 맴 맴, 매미의 독경 소리에 취한 채 혼몽지경의 반가사유, #. 귓 전에 모기 소리가 들렸지만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내버려 두었더니만 이노무 모기, 삐뚤어진 입으로 삐뚜로 물고 달아났으므로 삐뚜로 붓고 삐뚜로 가렵고 삐뚜로 억울하고, #. '어제는 어째 운동을 안 하셨수?' "백수도 일요일엔 쉰다우~" #. 마을 만수무당댁 문간에 붉은색 서낭기가 세워졌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풍경소리 2023.08.28

여름 결산,

#. 장마 뒤의 뒤풀이 장마로 2박 3일 비 오신 후 반짝 해님, #, 고추 백오십근쯤 따서 건조기로 반 햇볕으로 반 말려가는 중, #. 고추가 말라가는 만큼 이 몸도 바삭하게 말라가고 있다. #. 감자를 열다섯 박스쯤 거두고 고추를 따서 말리고 옥수수 거둔 자리에 심은 들깨가 푸르게 자라고 김장 배추 150 모종을 심고 벌에 일곱방 쏘여서 된장 열 사발쯤 바르고 깔따구에 다섯방쯤 물려서 피부과 한 사흘 다니고 감기 앓기에 뒤 늦은 코로나 치레며 안과와 치과 덤으로 한의원 이러다가 산부인과까지 가야 할 지도... #. 올 여름 흘린 땀들이 흐르고 모여 바닷물은 저토록 푸르게 넘실거릴 수 있겠고녀 #. 햇살이 힘을 잃는 칠석이 지나고 풀들이 자라기를 멈춘다는 처서가 지났으므로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를..

소토골 일기 2023.08.25

8월 넋두리,

#. 오로지 걷기를 위한 신발 하나를 샀다. #. 셀프 생일 선물, #. 불쑥 먼 도시에 사는 친구 부부가 들어섰다. 일요일인 오늘 잠시 아이들로부터 벗어났음을 알겠다. #. 장이 고장 나는 바람에 병원 고생을 잠깐 했노라는 하소연과 손주들 돌보는 일로 힘들고 행복한 얘기들이 수다되어 질펀했으므로 #. 뒤늦은 위로 겸, 고개 너머 작은 음식점에 앉아 소만큼 먹었다. #. 병원 일도 아이들 일도 동병상련이 된 셈, #. 다만, 사랑에 빠진 잠시의 게으름이 죄목 되어 은하수 동쪽과 서쪽을 그리움으로 채워야 하는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통을 즈려밟아 만나는 날, #. 견우화라는 이명을 가진 나팔꽃이 울타리에 조롱조롱 매달린 산골 아침, #. 새벽 잠자리에선 이불깃을 당겨 덮어야 했다. #. 그런데도..

소토골 일기 2023.08.21

가을 예감,

#. 정우 정환이와 하룻밤 잠자리 가장 따듯한 생일 선물이었다. #. 여전히 하도 더워서 아무도 오지 말기 아무것도 받기 싫기 그래도 또 축하 한다고 카톡, 아프지 말라고 카톡 여기저기서 카톡 카톡, #. 과연 스마트 세상 이로고, #. 더위를 핑계하여 거르고 거르던 아침 운동길 #. 나뭇잎 새는 조금 헐렁하고 발악 같은 매미 소리들로 문득 가을 예감, #. 나무 아래로 뛰어내린 칡꽃 향기가 달보드레 하다. #. 일곱 권의 책을 열세 번쯤 읽다가 기어이 여섯 권을 다시 사 들였다. #. 새벽 세시에 일어나 책과 글에 빠져 있다 보면 손수건 만한 창문으로 햇 밝음이 물감처럼 번져 들었다. #. 그리하고도 여전히 알듯도 하다가 다시 모를 듯도 한 이노무 주역, #. 길었던 장마가 있었고 태풍이 있었고 잠깐씩..

풍경소리 2023.08.15

입추와 처서 사이,

#. 고추가 맘 놓고 붉었으므로 #. 넋 놓고 고추 따기, #. 사은품으로 비짓 땀 한 동이, #. 태양초는 이제 언감생심, 건조기 반, 뙤약볕 반, #. 하이브리드 짬뽕 태양초가 될 것이다. #. 재 너머 장날 넉넉한 근으로 고추를 팔아 늙은 마담이 창 가 쪽볕 아래 졸고 있는 시골 다방에 들러 도라지 위스키 백만 잔쯤 때려야겠다. #. 일주일 시간 동안 아이들이 난장을 치고 떠난 자리에 쏟아져 있던 감기 1인분, #. 인후부 통증으로 날이 갈수록 예리해지더니 기어이 염증이 되어 항생제 한 사발에 항히스타민제 두 사발, #. 병을 낫게 하는 게 아니라 몸을 항생제 장아찌로 만드는 거다. #. 먼 남쪽 바다에서 지르박에 부르스 스텝으로 맴돌기를 하던 태풍이 기어이 이 나라 전체를 감싸 안을 넉넉한 품으로..

풍경소리 2023.08.10

여름 건너記,

#. 예겸이 가족이 엄마의 휴가에 맞춰 일주일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 아이들의 소동과 일상의 소요를 늘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그저 끌어 안기, #. 데크 위 그늘 막 설치를 위해 끈 묶을 나뭇가지를 헤치던 중 우르르 덤벼 든 벌떼, 대번 손 등이 얼큰하다. #. 이 또한 내 겪음이니 다행, #. 소나기 내리기 전 바람은 에어컨 바람보다 시원했으므로 가만히 나뭇 그늘에 앉아 바람 섞인 비에 몸 적시기, #. 그리하여 어떻게든 여름 건너기, #. 결혼 후 처음 손수 운전으로 내려온 며느리의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막국수를 먹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멱살 잡혀 생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했다. #. 잠시 눈을 감으면 88 청룡 열차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하필이면 구비 많은 영월길을 돌고 돌아 휴가로 집..

소토골 일기 2023.08.06

8월의 바람,

#. 옥수수를 모두 베었다. 한 겹의 여름을 벗겨낸 것, #. 1. 고랑에 잡초억제용 비닐막을 깔지 않았고 2. 옥수수 곁에 들깨를 심었고 3. 옥수수 거둔 후 빈대궁을 삼등분으로 잘라 고랑에 깔았고, #. 날라리 농사꾼의 내공이다. #. 다시 포트에 김장용 배추 씨앗을 넣어야 하느니... #. 떨어진 나뭇잎 속에 봄과 여름과 가을이 뒤엉켜 있었다. #. 앞 마을 아우가 덜커덕 고장이 났다. #. 일주일에 8일, 2월 달력에 조차 31일까지 채워 넣은 뒤 쉴 새 없이 깰 새 없이 술을 마셨으므로 신장이 탈이 나서 의사는 술과 담배를 모두 끊든지 아니면 치료를 끊든지 결정하라고 말 했다는 것이다. #. 나는 거기에 더 해 성당을 끊으라고 권유했다. #. 성당내 이런저런 일로 사람의 모임이 번잡하다 보니 주..

소토골 일기 2023.08.01

뜨락에 신발 넘치나이다.

#. 긴 장마로 호미는 녹슬고 심긴 작물들은 더북한 풀 속에 유기되었다. #. 비 속에 책 몇 권을 들고 올라선 택배 총각에게 시원한 음료 하나를 건네는 일로 마음속 미안함을 덜어낸다. #. 장마 틈새 잠자리 날고 하늘과 땅 사이 잠시 공간이 열렸다 #. 집 주변 밭 주변 더북한 풀을 베려고 예초기 가동, 기계조차 주인 따라 늙어 버려서 힘 안 써도 될 때는 왕왕 돌아가고 힘써야 될 때는 멈춰 버리는 증세 #. 수시로 고쳐야 하는 고행적 노고를 벗기로 하여 새 예초기로 바꾼 뒤 쓰던 예초기를 중고로 사겠다는 이가 있어 전화했더니만 제법 먼 길을 찾아왔다길래 받은 돈 한쪽을 뚝 떼어 기름값 이라고 건네줬다. #. 주말에 몰려온 아이들, 정우 가족과 예겸이 가족과 쌍둥이 가족과, #. 내 뜰에 신발 넘치나이..

소토골 일기 2023.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