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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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새 꽃,

#. 소곤소곤 밤 새 내리고도 봄비가 되지 않는 비가 내리고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잠 깨어 일어나는 황홀의 계절을 건넜다. #. 그런데도 여전히 봄 병인가? 아침잠에서 깨어나고도 다시 졸린 증상, #. 마을 꼬부라진 사람들이 모여 빨강 하양 분홍 그리고 노랑 각각 색색의 꽃을 심었다. #. 삭막한 가심팍에 무지갯빛 바람이 불 것이다. #. 들락과 날락으로 며칠을 바쁘더니 여덟 개의 알을 여덟 심장으로 바꿔 놓은 어미새의 마술, #. 하늘 우러러 입 벌린 아기새들은 기어이 꽃이다. #. 요즘들어 사진을 찍으면 자주 초점이 흐려진다. #. 내 눈도 흐리고 세상도 흐리고, #. 신새벽 뜡국 사극에 빠져 며칠째 선잠 깨어 한 시간 반쯤을 티비에 헌납하고 나면 한낮에도 비몽과 사몽의 경계를 넘나드는 증세, #...

풍경소리 2023.05.15

봉쇄 농법,

#. 운동 길에 마주치는 펭귄 걸음의 할아버지 한 분, 일주일 넘게 인사를 드려도 못 본 척 일관 이시더니만 어제 처음으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셨다. #. 비로소 온 산이 환해졌다. #. 마당 주변으로 돌나물부터 온갖 먹을거리들이 넘쳐 나더니 한 사흘 내린 비로 온통 풀밭, 예초기 돌려 모두 베어 버렸다. #. 부모님 선영 오름 길이 지난해 비로 망가졌으므로 머리를 맞대고 정리와 정비를 도모했으나 모두들 몸의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한 왈가왈부뿐, #. 어느 날 조용히 홀로 가서 팔뚝지 걷어 부치고 해결하고자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 #. 아이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들어 선 새 집 현장 체험을 하겠다고 우르르 몰려 올 기세다. #. 알 낳고 들어앉지 못하도록 일찌감치 쫓아 버릴걸... ..

소토골 일기 2023.05.12

5월은 오월이다.

#. 장하게 일어 선 풀들과 연두와 초록의 숲 사이로 오월이 들어섰다. #. 찔끔의 비 속에 송홧가루가 노랗다. #. 며느리의 생일에 건성의 케잌 하나 보내며 #. 두 사람의 생일을 만든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썼다. #. 5월 햇볕으론 조금 너무하다 싶은 더위 속에 느릿느릿 밭을 간다. 흙 속에 엎드려 있던 게으름조차 정갈하게 경운 하는 일, #. 뒤집어진 흙살 속에서 열심히 벌레를 물어 나르는 딱새들, #. 이제 막 힘을 써야 할 관리기가 고집 센 당나귀 처럼 일어날 기미가 없어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아랫집 관리기를 내 물건처럼 써서 마무리 하고는 #. 사람의 행복 참 별 것 아니지 싶다. #. 700의 옥수수 모종을 심고도 여전히 빈자리가 남은 밭을 노려보며 아내는 또 옥수수 욕심, #. ..

소토골 일기 2023.05.04

산드위치,

#, 가는 비 속에 주변 산들 초록 윤기가 찰랑하다. #. 마당 주변에서 두서없이 얻어지는 먹을거리들, #. 딱 둘이 먹을 만큼만 선을 정 하고도 여전히 남아도니, #. 심뽀 가득 담긴 욕심을 언제쯤 비울 수 있으랴, #. 앞 마을에서 고이 자란 고춧모가 이제 옮겨 심을 때가 되었다는 기별을 진작에 듣고도 이제야 부랴부랴 고추 심을 준비를 한다. #. 고운 흙살을 뒤집어 밭이랑 짓고 물 뿌림 장치를 하고 그 간의 게으름을 걷어내는 일, #. 게으른 사람이 비 오는 날 일 한다더니만··· #. 심고 키우고 거두어 일일이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 #. 음식의 맛은 온통의 과정이 손 맛이고 애쓴 맛이다. #. 산 마다 새소리와 비닐하우스를 두드리는 빗소리와 더러는 바람소리, #. 아직 여린 채소들과 참나물과 민..

소토골 일기 2023.04.29

연두 세상,

#. 올 봄 꽃들은 몹시도 허망했다. #. 변덕의 햇볕에 홀려 화들짝 피었다가 며칠의 된서리에 우르르 얼어 버린 뒤로 #. 주변의 산들이 온통 연두하여 그윽히 푸르다. #. 떨어진 꽃잎처럼 떨어져 누운 사월의 스무날들, #. 눈부시게 하늘을 우러르지 않고 다만 땅을 굽어 피는 꽃, #. 햇볕을 무심한듯 관조하여 조심스럽게 때를 가릴 줄 아는 할미꽃의 내공이다. #. 아침에 서리 내리고 한 낮엔 30도에 육박하는 변덕 무쌍한 날들, #. 낮에 잠깐 비닐하우스 안 모종을 돌보던 중에 땀 바가지가 되어 되돌아 나왔다. #. 꼬맹이 차 에어컨이 나날이 바쁘니 기후 변화 탓만이 아닌 체질 변화의 탓도 또 한 부분이다. #. 몇 달 전 부터 계획한 일이 있어 한 주일째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중, #. 재 너머 시내..

소토골 일기 2023.04.21

빈둥낙도,

#. 비 보다 먼저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추녀 아래 비 젖은 봄바람이 꽃잎 더불어 옹송옹송, #. 하여 이 봄은 또 전설이 될 것이다. #. 지난 1월의 여행은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겨서 한 겨울부터 새기 시작한 수도파이프는 꼼수의 미봉책으로 이날까지 졸 졸 졸 물을 흘리고 있었으므로 #. 재 넘어 도회의 도사님께 문의한 바 더도 덜도 말고 이십오마넌을 내라는 흰소리, #. 일에 비해 터무니 없는 비용도 그렇거니와 '가급적 셀프' 정신에 위배되는 바 #. 인터넷을 뒤지고 뒤진 끝에 제법 만만한 방법 하나를 얻었다. #. 구닥다리 동 파이프를 잘라 버린 뒤 자른 부위를 용접으로 마무으리~ #. 마누라 붙들고 한 삼일 자랑질을 해도 될 일이건만 아침에 집 나간 아내는 여전히 무소식, #. 우선 급..

풍경소리 2023.04.16

우체부님전상서,

#. 겨우 겨우 꽃 피운 토종 목련은 서리 한 방에 우르르 무너져 버렸다. #. 세월은 무상하고 산골의 봄날은 유상(有霜) 하도다 #. 아랫집 할머이가 막내아들 대동하고 허위허위 올라와서는 넓힌 길을 이용하여 집 앞의 밭을 돋우고자 하였으나 마을 이장과 몇몇이 시끄럽고 먼지가 난다는 이유로 브레끼를 걸었다는 거다. #. 그런데 왜? 나한테 오셨댜? #. 어쨌거나 틀니 빠지게 할 말 많으신 할머이의 중재 요청을 오지랖에 감싸 안고 마을회의 끝판에 들어가서는 #. 길은 길이다 길 만드느라고 고생한 이를 포함해서 누구든지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도 길 하나 제대로 만들자고 평생의 시간을 들여 책 보고 공부하는 거다. 이게 뭐냐 씨발~ #. 아랫 집 할머이 다시 공사 시작 했다고 신났다. #. 그래서 다시 ..

소토골 일기 2023.04.11

불변 공식,

#. 토종 목련나무가 통째로 꽃등이 되었다. #. 그 아래 분분한 순백의 향기, #. 따로 화엄을 얘기할 것 없는 아름다움 겹겹의 날들, #. 오늘까지 살아있길 참 잘했다. #. 새들이 분주하다. 왼갖 것 물어다가 사방이 집자리다. #. 기계도 도구도 없이 작은 부리 하나 수고롭게 하여 곡선과 곡선을 잇대어 만들어내는 보금자리, #. 기계와 도구를 사용하여 직선과 직각을 만들어내는 우리 모두 내 몸 받아 주고 다시 이 몸 담아 줄 자연의 품에 대해 조금 더 겸손해져야겠다. #. 겨우 겨우 감자를 넣고 난 다음 날, 아랫집 할머니 말씀처럼 약비가 내렸다. #. 약 감자 싹이 날 것이다. #. 눈개승마가 울울하게 치솟던 날 손님이 오셨고 그들의 환호작약 속에 고운 순들은 모두 베어지는 수난을 당했다. #. ..

소토골 일기 2023.04.07

관성적 농사,

#. 본격 농사 전 경운기와 관리기를 가동하는 일에 온 힘을 다 소진해 버렸다. #. 늙고 순한 소 한 마리 키우는 게 낫겠다. #. 고집 불통의 늙다리 기계뭉치들을 깨우는 일에 구렁이 알 같은 사흘의 날들을 탕진하고 나니 #. 마당가 목련이 팝콘처럼 피어나서 앞뒤 순서 따질 것 없이 우르르 피는 꽃들, #. 낮 동안은 한 여름 땡볕이다. #. 감자 심고 이런저런 채소들의 씨앗을 뿌리거나 #. 느릿느릿 밭을 가는 새 비틀비틀 나비 한 마리, #. 농사란 다분히 관성적 행위이다. #. 그 몽환적 반복, #. 점심엔 연두 순과 초록 잎을 쥐어 뜯어 봄 햇살 한 끼로 받들었다. #. 은총 이거나 기적 말고는 이해도 설명도 불가능한 날들, #. 뒷 산 싸리나무꽃이 포말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소토골 일기 2023.04.02

어쨌든 농사 중,

#. 산 중에 매화가 피었으니 산골의 봄은 절정이다. #. 게을러 터진 농사일이 살짝 내린 봄비를 핑계로 며칠째 휴업 중, #. 힘들어도 죽자고 일에 매달려해야 하는 이유가 연속성의 문제도 그러려니와 게으름의 속성상 누우면 일어나기 싫어지는 것, #. 어슬렁 주변을 기웃거려 냉이도 캐고 씀바귀도 캤으니 봄을 누릴 만큼 누리는 중이다. #. 먼 도시에 사는 친구가 덜컥 병이 났다는 전갈, #. 어느 님의 글 이었는지 멀어서 나를 꽃으로 피게 하는 사람아 그저 향기 되어 다가갈 수밖에, #. 정우의 아홉 번째 생일 친, 외를 불문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탈 탈 털리기, #. 정환이가 말하길 "씨 뿌려보고 싶어~" 이를 위해 거름 펴고 밭 갈아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는 나, #. 사랑도 병인양 하여··· #. ..

소토골 일기 202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