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봉쇄 농법,

햇꿈둥지 2023. 5. 12. 04:01

 

#. 
운동 길에 마주치는
펭귄 걸음의 할아버지 한 분,
일주일 넘게 인사를 드려도 
못 본 척 일관 이시더니만 어제 처음으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셨다.

#.
비로소
온 산이 환해졌다.

#.
마당 주변으로 
돌나물부터 온갖 먹을거리들이 넘쳐 나더니
한 사흘 내린 비로 온통 풀밭,
예초기 돌려 모두 베어 버렸다.

#.
부모님 선영 오름 길이 
지난해 비로 망가졌으므로
머리를 맞대고 정리와 정비를 도모했으나
모두들 몸의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한 왈가왈부뿐, 

#.
어느 날 조용히 홀로 가서
팔뚝지 걷어 부치고 해결하고자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

#.
아이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들어 선
새 집 현장 체험을 하겠다고
우르르 몰려 올 기세다.

#. 
알 낳고 들어앉지 못하도록
일찌감치 쫓아 버릴걸...

#. 
코딱지 비닐하우스에
쑥갓을 뿌리고
상추 모종을 심고
얼갈이를 뿌리고
뿌리고 했으므로
우르르 치솟기 시작한 날부터

#.
밥상은
온통 
초록 초록,

#.
하여
몸 안팎도 온통
초록 초록,

#.
하늘과 땅이 주는 건
언제나 넘쳐나는 것임을,

#. 
'티베트사자의 서'를 읽은 뒤에 구 해든 책이
밍규르린포체의 '우리는 날마다 죽는다'이다.
살아내는 일이
쪼오끔 가벼워질 것 같다.

#. 
어딜 가든
껄렁망태기 같은 가방 속에
두세 권쯤의 책을 넣어 다닌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내 유일한 놀이를 책 읽기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 
학교 끝내고
학원으로 가기 전 한 시간쯤의 빈 시간에
아이가 연락 두절,
애 태움 끝에 찾아보니
학교 옆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는 얘기,

#.
책 읽기 조차
전염되는 건지,

#. 
지난가을 김장 배추 500 모종쯤을
고라니에게 빼앗긴 뒤로
올봄에는 고민 끝에 50 모종 정도를 심고는
펜스용 망으로 꽁 꽁 씌워 버렸다.

#.
여러 궁리 끝에 고라니 만행을
원천 봉쇄해 버린 것,

#.
낙담한 고라니가
헛 입맛 다시며 돌아 설 생각을 하니
왜 일케 꼬소한지^^

#.
참 여러 일을 하는 동안
푸른 오월도 어느새 열이틀,
뿌릴 것 뿌리고 심을 것 심었으니
이제 밤 기차를 타고
어디 낯선 곳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어도 좋을 것 같은
여전히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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