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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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농사 중,

#. 산 중에 매화가 피었으니 산골의 봄은 절정이다. #. 게을러 터진 농사일이 살짝 내린 봄비를 핑계로 며칠째 휴업 중, #. 힘들어도 죽자고 일에 매달려해야 하는 이유가 연속성의 문제도 그러려니와 게으름의 속성상 누우면 일어나기 싫어지는 것, #. 어슬렁 주변을 기웃거려 냉이도 캐고 씀바귀도 캤으니 봄을 누릴 만큼 누리는 중이다. #. 먼 도시에 사는 친구가 덜컥 병이 났다는 전갈, #. 어느 님의 글 이었는지 멀어서 나를 꽃으로 피게 하는 사람아 그저 향기 되어 다가갈 수밖에, #. 정우의 아홉 번째 생일 친, 외를 불문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탈 탈 털리기, #. 정환이가 말하길 "씨 뿌려보고 싶어~" 이를 위해 거름 펴고 밭 갈아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는 나, #. 사랑도 병인양 하여··· #. ..

소토골 일기 2023.03.25

추운 삼월

#. 설거지 장소를 집 밖의 개수대로 옮겼다. #. 부분적이며 가외적이기는 해도 봄맞이 맞다. #. 작은 도시의 거리에는 아주 가끔 반팔 차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걸 보는 것 만으로 추운 산골짜기에서 금방 내려온 나, #. 이래도 되는건가 싶다. #. 아이들 들어 사는 시내의 아파트에 흰 꽃송이가 조롱조롱한데 그 풍경이 어찌 그리 비현실적으로 보이든지 #. 도시의 시절은 춘삼월 산골의 시절은 추운 삼월, #. 째려보며 마음 다짐 하기를 여러 날 째 #. 포대 거름 200개쯤을 밭에 올리고, 펴고... #. 본격 농사의 준비 작업일 뿐인데 이 부분이 가장 힘든 건 무슨 조화 속일까 #. 시작이 반 이란 마음속 엄두의 선을 넘어서는 일이다. #. 다시 주말, 내려오겠다는 아이들을 겨우 막아 두었더니 애먼..

소토골 일기 2023.03.17

불녁나코~

#. 지난해 첫추위 부터 잠시 쉬기로 했던 걷기 운동은 겨우내 이런저런 핑곗거리로 중무장하여 아직도 춥고 아직도 외롭고 아직도 서러워서 여전히 달팽이처럼 옹크려 있다. #. 겨울 동안 자주색으로 낮게 엎드려 있던 냉이들이 이젠 제법 눈에 띄니 입맛 먼저 봄 이다. #. 깊은 겨울 중에 팔뚝지 걷어 부치고 한번 더 담갔던 동치미가 환장하게 맛있길래 토라진 여인네 눈길처럼 톡 쏘는 국물에 국시를 말아 덜덜 떨어가며 한 그릇 먹은 뒤에 #. 앞동네와 재 넘어 아우를 세트로 불러 놓고는 백 관쯤의 국수를 삶아 소만큼 먹었다. #. 재 넘어 아우가 여전히 입맛 다시며 하는 소리, 다음엔 우리 집에서 할 테니 동치미 항아리를 내 등에 얹어주쇼 #. 평생에 사람다운 이 하나 만나는게 소원 이었건만, #. 아주 오랜만..

소토골 일기 2023.03.05

서울 잠입,

#. 감기 곁에 붙어있던 이런저런 증세들이 어지간하길래 #. 철 지난 책 몇 권을 구 하고자 헌 책방 많은 서울에 잠입했다. #. 미로같은 도시의 내장을 헤매고 헤매다가 히잡을 쓴 이국의 여인네와 세번을 마주쳤다. #. 너도 맴돌고 나도 맴돌고, #. 하여 촌놈의 머쓱함도 털어버릴 겸 경칩 맞은 개구리 처럼 땅 위로 올라섰다. #. 스무해 넘도록 짱박아 살던 내 나라 산꼬댕이는 이제 이국 이거나 외계에 속 하는 것 같다. #. 청계천 옆에서 호시절을 구가하던 헌책방들은 손 꼽아 셀 수 있을 정도로 쇠락해서 쌓인 책들 만큼이나 늙어버린 주인의 표현으로는 독한 것들 몇 만 남았다고 했다. #. 천변을 어슬렁 걸어 동묘 시장 둘러보기, #. 어느 귀신 붙은건지 백동 문진 두 개와 바즈라 하나를 가방에 담았다...

풍경소리 2023.02.28

세미 봄,

#. 시베리아 고기압쯤은 이제 무시하자고 아직 봄볕 이른 날 마을에 신발 있는 사람들 모두 모여 윷놀이를 했다. #. 그저 건성으로 낑겨 일찍 지고 말리라... 의 마음이었는데 어쩌다 1등을 했으므로 복합비료 두 포대나 탔다. #. 역쉬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거시다. #. 그리하여 결국 또 농사다. #. 명절 무렵 독감 후 목의 통증과 콧속의 종기와 다시 입 천정의 화농과 허리 통증과 후렴으로 코감기 까지를 앓는다. #. 내 몸이 연일 항생제 장아찌가 되고 있다. #. 아이들은 한 번씩 아프며 자라고 나는 한번씩 아프며 늙는다. 자연스럽도다. #. 여기에 더 해 구들방 쪽 전등 라인의 차단기가 툭하면 떨어졌으므로 전체적으로 교체를 했음에도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 애쓰고 고생한 이..

소토골 일기 2023.02.24

2월 잠꼬대,

#. 침 뱉다가 뜨끔 허리 통증이 생겼다. #. 낡아 갈수록 툭하면 어딘가가 아파져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 쉬는 날에도 진료하는 한의원을 찾아 침 삼만 개쯤 맞았다 역시 침으로 빚어진 일은 침으로 다스려야 하는 거시다. #. 한방 치료라 하니 한방에 나을 것이라는 나이브한 기대, #. 매양 드나들던 아이들 문 앞에서 현관문 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잠시의 시간을 서성 거렸다. #. 기억의 골다공증, 막연하지만 몸의 안팎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이 자꾸 부서져 내리는 느낌, #. 초딩이 손주가 블로그를 개설했다고 기어이 첫 번째 친구 신청이 되었다. #.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구요~♬ 한 동안 초딩이 처럼 놀아줘야 될 일, #. 정우와 목욕 다녀온 뒤 기어이 정환이도 함께 가겠다고 한다. 난 이제 ..

풍경소리 2023.02.21

줄탁 계절,

#. 책 읽기를 마칠 때면 두 손 모아 공손하게 인사한다. #. 지은이가 더러는 세상에 계시지 아니하니 사숙(私淑)의 감사함을 이렇게라도 드리고자 함이다. #. 뭔 버릇인지 책 속에서 책을 고르는 탓으로 책 한 권 읽기에 우르르 매달아 함께 읽는 책들이 번잡하니 아내의 눈에는 그저 집중 없는 놀이로만 보여서 이것도 저것도 온통 지청구, #. 밤새 하고도 아침까지 눈이 오다가 이내 비 섞인 바람이 불어서 #. 겨우내 얼음 박힌 몸으로 누워 있던 대지의 수혈, 흙빛이 부쩍 부드럽고도 #. 나무들 꽃 눈이 이르게 포동하니 반가움조차 위태롭다. #. 꽃 눈이 봄 눈이고 봄 눈이 꽃 눈이다. #. 제 안에 충일한 기운으로 허공을 더듬고 허공의 사운 거리는 바람이 표피를 두드리니 안팎의 줄탁, #. 꽃 한 송이로 ..

소토골 일기 2023.02.14

허둥지둥 봄 준비,

#. 산꼬댕이 햇살이 홀아비 양지에 쪼그려 앉아 이 잡기 딱 좋을 만큼 나긋나긋 늘어진 한 낮, #. 봄 보다 먼저 거름 포대가 올라왔다. #. 하여 또 자발적 농사가 아닌 등 떠밀린 농사가 될 것, #. 팔삭둥이 2월 이거니 입춘이 있고 우수가 들어 있는데 하늘은 다시 60% 확률의 눈을 예고하고 있었다. #. 대략 마스크를 해제한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기념하여 정우 손 잡고 목욕탕엘 가서는 그 고사리 손에 등을 맡기는 황홀함, #. 평생에 딱 한번 뿐 이라도 그저 황송하고 황홀한 일, 이 무슨 복인지··· #. 마을 안에 또래들 모임을 만든 지 십여 년 처음으로 두 부부가 신입하였다. #. 늙어가는 나이에 선택한 시골살이 질박한 정서에 마음 다치는 일 없었으면, #. 겨우내 덮어 두었던 서예를 다시 시..

소토골 일기 2023.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