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聖, 俗의 무의미한 경계

햇꿈둥지 2020. 11. 11. 07:57

 

 

 

#.

뒷 산 능선이 헐렁해져서

산 너머 갈기 세운 바람이 맘 놓고 넘나드는 날들,

나날이

표창 같은 서리가 내리고 있으니

두서없는 일들에 발만 동동 거리다가

 

#.

일탈이다.

마늘 밭을 다독이고

고추를 다듬어 김장 준비가 여전히 진행 중 임에도

흙 묻은 손을 씻고

잠시 바람의 길을 오른다.

 

#.

긴 세월

땅 속에 묻혀 세상을 관조하시던 오백나한을

기어이 햇볕 아래로 모셔 놓고는

천상의 표정으로 여전히 온화한 석상 사이로

철없는 관람객들만 분주했다.

 

#.

오로지 먹고사는 일 하나를 위해

온몸으로 성실해야 했던 민초들의 삶을

굳이 속(俗)으로 구분하면

깨달음은 훨씬 더 성스러운 경지가 되는 걸까?

 

#.

그 무의미한 경계,

 

#.

석상의 표정마다 스며들어 있는

오랜 시간 석공의 공력은

신앙보다 거룩하다.

 

#.

때론 

격랑이며

아주 안온한 고요이기도 하다가

더러는

용암처럼 들끓기도 하는 세속의 일들,

 

#.

폐허의 오래전 절터에서

아직도 따듯한 나한의 표정들을 발굴했듯이

다시

김장으로 분주한 거실 한편에 앉아

보쌈 그릇의 굴을 찾아 헤매는 홀로의 식도락,

 

#.

이 또한

발굴 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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