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뒷 산 능선이 헐렁해져서
산 너머 갈기 세운 바람이 맘 놓고 넘나드는 날들,
나날이
표창 같은 서리가 내리고 있으니
두서없는 일들에 발만 동동 거리다가
#.
일탈이다.
마늘 밭을 다독이고
고추를 다듬어 김장 준비가 여전히 진행 중 임에도
흙 묻은 손을 씻고
잠시 바람의 길을 오른다.
#.
긴 세월
땅 속에 묻혀 세상을 관조하시던 오백나한을
기어이 햇볕 아래로 모셔 놓고는
천상의 표정으로 여전히 온화한 석상 사이로
철없는 관람객들만 분주했다.
#.
오로지 먹고사는 일 하나를 위해
온몸으로 성실해야 했던 민초들의 삶을
굳이 속(俗)으로 구분하면
깨달음은 훨씬 더 성스러운 경지가 되는 걸까?
#.
그 무의미한 경계,
#.
석상의 표정마다 스며들어 있는
오랜 시간 석공의 공력은
신앙보다 거룩하다.
#.
때론
격랑이며
아주 안온한 고요이기도 하다가
더러는
용암처럼 들끓기도 하는 세속의 일들,
#.
폐허의 오래전 절터에서
아직도 따듯한 나한의 표정들을 발굴했듯이
다시
김장으로 분주한 거실 한편에 앉아
보쌈 그릇의 굴을 찾아 헤매는 홀로의 식도락,
#.
이 또한
발굴 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