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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흥건한 새벽,
바람 불고
번뜩이는 서리 내리더니
입동 앞 세워 겨울이 진주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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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 나무들
여름 지나 가을 깊도록
무성했던 잎들을 속절없이 떨구어 제 발등만 덮고도
추위 앞에 의연해서
사람의 일들을 민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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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짜임이 하도 옹골져서
수 없는 도끼질에도 끄떡없던 고주박 하나를
어르고 달래어 한나절 만에 겨우 땔감으로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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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어진 모두를 아궁이에 넣어
구들이 달구어지면
도끼질로 묵근해진 허리 지짐이나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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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는 게 없으니 억지 부릴 일 아닌데도
어떤 일이든 시작을 하면
끝을 본 뒤에야 손을 털게 되니
이 또한 시골 중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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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해 치우느라고
일이 없으면 어떻게든 일거리를 만드느라고
종종 거리게 되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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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겨울에 덜미를 잡혀
관성적으로 동동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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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추위를 한 아름 몰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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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그러셨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