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916

아기코끼리의 걸음마

치아 교정을 위해 보철을 해야겠다는 딸아이의 얘길 듣고는 "딸놈한테 갖은 정성 들여봤자 죽 쑤어 개 주는 꼴이다" 담담히 듣고 있던 이놈, "그럼 아부지두 죽 먹은 개여?" "..........................." 공부를 하겠다고 일년여 집 떠나서는 엠티와 술로 개기던 녀석이 1학년 마감 문집을 냈노라고 보여 줍니다 더러 글 같은 것이 있어 잠시 올려 놓습니다 [봉숭아 꽃 붉다] 너와 동이던 긴 밤은 목소리마져 전하지 못하고 쉬이 빻아지지 않던 마음 소복하니 곰팡이 일어 꽃이 져도 베어내지 못한 것은 모조리 파 헤쳐도 오로지 남을 주홍반달 때문이었다 ......서대문구아현삼동삼다시이삼사 아현삼동삼다시이삼사 삼다시이삼사 주문처럼 꽃이 열리는 주문처럼 네가 열릴 것만 같아서 [깨 밭에서] 은하에..

소토골 일기 2006.03.01

봄맞이 손님맞이

[2006년 2월 24일 금요일] 온 들에 봄빛이 완연하다 음지에 얼어 붙어 있던 켜켜의 눈이 녹아 흐르며 주변은 온통 진 수렁이 되어 가서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지구의 무게를 실감하게 하고 있다 주오일 근무제 때문인지 월요일 부터 금요일 까지의 시간이 달음박질로 느껴지는데 여기에 더해 봄빛 때문이겠지... 주말이 닥아 오는 날쯤 부터 부쩍 안부 전화가 많아진다 "별일 없으시지요?" 하늘 가득 밤에만 나타나는 별들에 일이 생긴들 나 하고 무슨 상관 이라고... "겨울은 잘 나셨어요?" 겡기도 쯤에서 춥다를 연발하면 강원도에서는 얼어 뒈지는 줄 아나? 이 정도의 상황이 사실은 방문을 위한 사전 포석 이라는 것을 10여년쯤의 눈치로 직감한다 [2006년 2월 25일 토요일] 어찌됐거나 예약된 손님은 약 세..

소토골 일기 2006.02.27

숨어서 오는 봄

온 산이 얼어 붙어 있는 산골 이거니 이제 우수가 지났습니다 전체의 풍광은 이렇게 겨울 깊은 모습이지만 양짓녘에선 숨어 자라는 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볕 좋았던 어제는 날 세웠던 눈들이 이렇게 녹아 골져 흐르고 있습니다 저녘 무렵엔 노을빛 조차 봄을 숨기지 못하고 저토록 순하게 타는 빛이 되었습니다 온통 얼어 붙었던 겨울의 틈을 헤집어 일찌감치 봄 차림이 한창인 순한 초록들 연한 순 만으로도 기꺼운 일인데 이토록 왕성하게 줄기조차 늘이고 있습니다 한 여름엔 손 부르트도록 엉길 잡초건만 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나지는 초록은 온통 반가움 뿐 입니다 아직 봄 으로는 이른 시간들 입니다만, 이토록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초록 성급 하지만 일일이 오신 님들께 드립니다 어쨌든 봄 입니다

소토골 일기 2006.02.20

개똥같은 개통식

산골살이 11년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눈 맞고... 숙명처럼 자연이 주는 모든 조건을 견뎌내며 살았으니 어느 여름 어느 겨울이 특별히 힘겨웠노라고 엉깔꺼 하나도 없으나 20센티가 넘게 내린 눈을 겨우 겨우 치우고 나니 눈 치움을 보복이라도 하듯 밤새 또 그만큼의 눈이 쌓여 버려서 통증 뭉친 허리 어깨만 두드리며 망연자실케 했었다 아이들 없이 초로의 늙은이 둘이 겨울 속에 갇혀 지내는 세월 까짓거 차가 못 오르면 어떠랴~ 견뎌내는 중에도 곤란한 일은 주말이면 불쑥 불쑥 찾아 오는 친지이거나 이런저런 손님들 모질게 맘 먹고 근 세시간의 삽질 끝에 겨우 차 바퀴 닿을 부분만 헤집어 열어 놓았다 농사철에 이토록 열심히 삽질을 해 댔으면 대풍에 대박이 터질게 분명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몇일을 마을회관 옆에 ..

소토골 일기 2006.02.16

또 눈이 왔다

먼저 내린 눈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허긴 입춘은 지났지 얼마나 급한 마음일꼬?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겨우내 하늘이 머금었던 눈을 몽땅 쏟아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리하여 시골의 촌동네는 때 아니게 또 한겹의 겨울에 갇힌채 꽁 꽁 얼어 붙고 말았다 온몸에서 시루떡 같은 김이 피어 오르도록 땀 흘리며 눈을 쓸었으나 올라 오기는 마음도 못 먹을 일, 주말에 오실 손님 맞이 준비로 그 포동한 눈을 치우기만 바빴지 눈썰매는 생각도 못 했다 아까버라~ 어디 한군데 발붙일 곳이 있다구 그 동그란 외등 위에도 이렇게 탐스러운 눈이 얹혀 있다 봄 되면 치우리라던 주변 주변의 손질거리들 마져 온통 흰색, 게으른 생활에 천연 위장으로는 그만이다 장군이 짜식 똥꼬도 안 시린지 의젓하게 앉아서 설경을 즐기고 있다 장독대에는 항아리..

소토골 일기 2006.02.08

농사 계획

제목은 그럴싸하게 농사 계획 이지만 시골살이 십년 넘게 땅을 헤집어 사는 동안 계획대로 된 농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집 오름 길 정화조 귀신한테 놀란 자리에는 벌써 200여포의 퇴비들이 쌓여 있습니다 겨우내 살바람에 등 할퀴어 딱지 앉은 흙을 두드려 깨워 고운 속살로 뒤집고 저 많은 퇴비들을 일용 할 양식으로 드린 다음 딱 그만큼만 거두어 들일 생각 입니다 아내는 벌써부터 앞 마을 루시아 아줌마를 채근해서 고춧모를 키우겠노라는 열의에 차 있습니다만 어쩐지 제 눈에는 벌써부터 바랭이를 시작으로 왼갖 잡초 무성한 밭 꼴만 떠 올려 집니다 치악에 연접해 있는 맨 꼭대기 밭을 올려다 보면 열병식 처럼 도열해서 늠름하게 자라는 옥수수 보다는 횡포에 가까운 멧돼지 발자욱만 어지러히 떠 오르니 이것도 또 무얼 심어야 ..

소토골 일기 200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