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구천백스물다섯날들의 의미

햇꿈둥지 2006. 2. 2. 12:53

 

 

단발 머리였던 그 아이와

샤브레 향이 자욱하고 수양버들 늘어진 김포가도를 걷거나

종로2가 학원 뒷골목에서 버스회수권으로 샌드위치를 바꾸어 먹거나

사당동 포장마차에서 오뎅국물을 홀짝 거리거나

남산에 올라서 햄버거 하나를 반으로 쪼개어 나누어 먹거나

인심 사나운 안집 할망구의 감시를 피해 촛불 켜 놓구 수학 공부를 합동으로 하거나

그러다가 슬쩍 자야 한 봉지를 창문으로 넣어 주거나

뭐 이러다가

또 자꾸 이렇게 하다가...

 

결혼 이란 걸 했다

 

처갓집에선 신발있고 다릿심 있는 사람들 몽땅 팔걷어 부치고 쫓아 나와서 반대를 했었다

 

내 반응?

도대체 누구 맘대로 안 된다는 겁니까?...뭐 이거 밖엔 없었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숫놈을 하나 낳고

또 암놈 하나를 낳고

한 놈은 줏어 오고...

 

이렇게 세놈의 아이들과 함께 마징가 제트 집 같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지지고 볶다가

당시 장인 어르신의 표현으로는

지랄염병도 유분수지...뭐 이 정도로 함축되는 노기를 무릅쓰고

강원도 치악산 하구두 소토골로 튀어서는

체력이 쇠잔하여 바퀴벌레 죽을때 처럼 발라당 까지도록...힘을 합하여 흙집 하나를 지었다

 

이 방은 우리꺼

조 방은 큰놈꺼

저~어 쪽은 지지배 방...

 

그러나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집 다 되어 등떼기 눕힐만 하니

애덜은 몽땅 대처의 저잣거리로 튀고 말아서

맨날 맨날

마누라와 나는 훵 하도록 넓어진 집안에서 갖 잡아 놓은 고등어 처럼 눈만 꿈뻑 거리며 지내고 있다

 

어제는 단발머리 그 아이가 내 마누라로 소속을 바꾼지

꼭 구천백스물다섯날이 되어 햇수로는 이십오년이니 은혼식이 된다는 날 이었다

결혼 한 뒤로 알게 된 사실 이지만

아내와는 너무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은 생일의 문제에서

아내는 삼월일일이고 나는 팔월십오일이니 둘다 이  나라 독립과 관련이 있고

아내의 친정집은 하필이면 내 처가와 한 집이고

아내의 친정 부모님은 내 장인,장모와 같은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일치하는 문제들이 많으니

우리 둘이 사랑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 문제는 하늘의 뜻임이 분명 한 것 같다

 

이 땅

이 집에서의 살이로

사랑이 뭐 별거야

손 뻗어 손 잡고 볕 바른 날 씨 뿌려 가꾸며

호~

마늘 쪽 같은 뺨 부비며 소꿉장난이나 하면 됐지... 

 

서울 이라는 곳에서

혜원이 짜식이 택배로 날려 준 케잌 하나 놓고

그윽한 술도 한잔 나누면서

 

이보시게 마누라

내 남은 모든 날들을 선물로 드리리다...

뭐 이따구 맹세식도 해 가며 깊었던 밤,

 

결혼 이십오주년의 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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