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눈 눈 눈~!

햇꿈둥지 2006. 2. 7. 12:47

 

 

꼭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3년전의 겨울처럼 이설삼청(二雪三淸)으로 퍼부어지지는 않으니 견딜만 하다

배 띄우자 순풍 불고

틀니 바꾸자 고기 먹을 일 생긴다더니

몇해를 잘 굴러 다니던 꼬맹이 차가 몇일 전 부터 그렁그렁 동맥경화 증상을 보이길래

카센터를 찾아 갔더니

이곳저곳 저곳이곳을 손 봐야 하는 것 외에

신발도 갈아 신겨야 할 것 같다는 처방에 따라 타이어를 바꾼 하루 뒤였으니 발목이 묻히도록 쌓인 눈에도 믿는 마음이 제법 이었다

 

절반은 주행으로

절반은 미끄럼으로 더듬더듬 눈길을 오면서

문득

산골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이렇게 소담하게 눈이 내린 날이면 평소같지 않게 넉넉한 시간으로 주어진 체육시간을 이용해

뒷산 토끼 몰이를 했던 기억

촌 구석

아침엔 나가고 저녘엔 들어 올 뿐인 버스조차 눈에 갇혀 버린 날이면 70리 길을 걸어 등교를 해야 했고 된 고개를 넘다 보면 손에 잡힐듯한 산등성이에 앉아서 우리들 서툰 걸음을 아득한 시선으로 지켜 보던 승냥이 부부,

눈구덩이에 빠진 노루를 꺼내면서 시린 손을 불던 기억

노루의 눈은 너무 맑아서 하늘 웅덩이 같다고 느꼈었다

사방이 온통 눈 뿐이니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논인지 분간 할 수 없어 가끔은 한길이 넘는 눈구덩이에 빠져 허우적 거리거나

눈에 홀려 요철 감각도 방향감도 상실해 버려 그저 아득해지기만 하던 기억들

그런데도 그놈의 신주단지 같은 가방 하나 어찌 될까봐 부둥켜 안고

수없는 모퉁이 돌고 돌아도 뵈지 않던 학교...

 

밤새 눈을 내리고도

시침이 뚝 뗀 하늘은 유리처럼 맑아 어찌 바람 한점 없이 코끝 찡 하도록 추운 날

사위마져 꼼짝없이 얼어 붙어 있는 날

이런 날

가느다란 철사줄을 휘둘러 허공을 때리면 쨍~ 하고 깨질듯이 보였었다

 

눈이 내린 뒤면 내 발자욱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만큼 걸어서도 되돌아 보면

저어기서 부터 이렇게 저렇게 또박 또박 걸어 온 걸음들이 보여져서 좋았고

온 세상 아무 색감없이 오로지 흰색인 것 만이 경이로웠고

뽀드득 뽀드득 발 아래 고이던 눈 발자국 소리들이 좋았었다

 

아무리 눈 내리고 바람 불어도

이제 어쩔 수 없는 겨울의 끝날들...

 

그저 즐기기만 해도 더러는 서운한 일 이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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