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그럴싸하게 농사 계획 이지만
시골살이 십년 넘게 땅을 헤집어 사는 동안 계획대로 된 농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집 오름 길
정화조 귀신한테 놀란 자리에는 벌써 200여포의 퇴비들이 쌓여 있습니다
겨우내 살바람에 등 할퀴어 딱지 앉은 흙을 두드려 깨워 고운 속살로 뒤집고 저 많은 퇴비들을 일용 할 양식으로 드린 다음
딱 그만큼만 거두어 들일 생각 입니다
아내는 벌써부터 앞 마을 루시아 아줌마를 채근해서 고춧모를 키우겠노라는 열의에 차 있습니다만 어쩐지 제 눈에는 벌써부터 바랭이를 시작으로 왼갖 잡초 무성한 밭 꼴만 떠 올려 집니다
치악에 연접해 있는 맨 꼭대기 밭을 올려다 보면
열병식 처럼 도열해서 늠름하게 자라는 옥수수 보다는 횡포에 가까운 멧돼지 발자욱만 어지러히 떠 오르니 이것도 또 무얼 심어야 할지 고민 해야 할 부분 입니다
시골살이의 기본 작목이니
우선은 수수도 심고 감자 심어서...
감자가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면은
마누라와 둘이 밭고랑에 철푸덕 마주 앉아 묵찌빠나 했으면 좋겠지만
꽃이 필 무렵부터 왕성하게 자라기 시작하는 잡초들은 손 쓸 겨를 없이 감자 줄기를 올라 타서 넘치고 마니 아랫 집 제초제 치는 소리만 들려도 회가 동 하지요
그러나
어차피 왕초보 농삿꾼에 게으름에는 달인 지경이니
제초제를 쳐 본들 지금보다 나아 질 것이라는 예상치도 없으므로
그냥 두자
뽑아도 보고 베어도 보다가 안되면 거두어진 만큼만 먹고 말지...
올해는 너른 밭 구석구석에 해바라기를 많이 심으려고 합니다
노랗고 동근 얼굴들을 많이 많이 만들어 여름내 현기증 나도록 치렁한 햇볕을 거두어 들여야 겠습니다
이제
늘 빈자리로 서 있던 비닐하우스 자리를 일찌감치 파헤쳐
열무 이거나
봄배추
또
상추며 아욱까지 골고루 싹 틔워 푸른 잎 너르게 자라거든
주위의 정든 님들께 일일이 나누어 드리며
이렇게 말씀 드려야 겠습니다
치악의 햇살 한자락
이슬 한모금을 나누어 드립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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