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봄맞이 손님맞이

햇꿈둥지 2006. 2. 27. 11:37

[2006년 2월 24일 금요일]

 

온 들에 봄빛이 완연하다

음지에 얼어 붙어 있던 켜켜의 눈이 녹아 흐르며 주변은 온통 진 수렁이 되어 가서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지구의 무게를 실감하게 하고 있다

주오일 근무제 때문인지

월요일 부터 금요일 까지의 시간이 달음박질로 느껴지는데

여기에 더해 봄빛 때문이겠지...

주말이 닥아 오는 날쯤 부터 부쩍 안부 전화가 많아진다

 

"별일 없으시지요?"

 

하늘 가득 밤에만 나타나는 별들에 일이 생긴들 나 하고 무슨 상관 이라고...

 

"겨울은 잘 나셨어요?"

 

겡기도 쯤에서 춥다를 연발하면 강원도에서는 얼어 뒈지는 줄 아나?

 

이 정도의 상황이 사실은 방문을 위한 사전 포석 이라는 것을 10여년쯤의 눈치로 직감한다 

 

[2006년 2월 25일 토요일]

 

어찌됐거나 예약된 손님은 약 세팀쯤 된다

내멋대로의 늘어놓고 살기에서 아무래도 손질이 필요하다

치우고

치우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해봐야 티도 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아내의 요구는 전방위적으로 쏟아진다

 

이불을 널수 있도록 철봉 형태의 건조대를 만들어라

구기자 열매가 제대로 거두어 질 수 있도록 넝쿨을 올릴 수 있는 지지대를 만들어라

막장을 담글 수 있도록 메주를 잘게 부수어라

이걸 해라

저걸 해라... 

 

아아아~

우라질 노무 주5일 근무제...

 

나는 어찌하여 이 고된 마당쇠 역을 자청해서 이 골짜기로 왔는고?

 

톱질을 하다가

용접질을 하다가

앞 동네 베드로네 집에 가서 폐목을 실어 나르다가...

 

마당쇠

그것도 인증서 조차 없는 촌동네의 맥가이버급 마당쇠

 

이런 중에도 보자기만한 봄볕에 곁들여지는 맥주 한잔의 새참에 감읍하고 마니

마당쇠면 어떠랴...

 

아내의 은사님께서 올라 오심으로

마누라는 마음 놓고 이 충실한 마당쇠의 비행을 들추어 씹어 댔고

옴짝도 못하는 상황 이었으므로

나는 또 비실비실 비겁한 웃음을 웃어 주므로써 이 모든 억울한 상황을 현실로 끌어 안아 버렸다

 

[2006년 2월 26일 일요일]

 

오늘도

아직도 휴일 이구나

누가

몇명이

언제

들이 닥칠지 알 수가 없고

이런 상황에 마누라는

먼 윗밭의 비닐하우스를 노려 보며 얘기 했었다

 

"올해는 일찌감치 비닐하우스 안에 열무도 갈고 상추도 뿌려야 겠어..."

 

이런 아내의 계획을 들으며

나는

골병을 핑계로 가능한 상사병 진단에 의한 입원을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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