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아기코끼리의 걸음마

햇꿈둥지 2006. 3. 1. 08:08

치아 교정을 위해 보철을 해야겠다는 딸아이의 얘길 듣고는

 

"딸놈한테 갖은 정성 들여봤자 죽 쑤어 개 주는 꼴이다"

 

담담히 듣고 있던 이놈,

 

"그럼 아부지두 죽 먹은 개여?"

 

"..........................."

 

 

공부를 하겠다고 일년여 집 떠나서는

엠티와 술로 개기던 녀석이

1학년 마감 문집을 냈노라고 보여 줍니다

 

더러 글 같은 것이 있어 잠시 올려 놓습니다

 

 

 

[봉숭아 꽃 붉다]

 

너와 동이던 긴 밤은

목소리마져 전하지 못하고

 

쉬이 빻아지지 않던 마음

소복하니 곰팡이 일어

 

꽃이 져도 베어내지 못한 것은

모조리 파 헤쳐도

오로지 남을 주홍반달 때문이었다

 

......서대문구아현삼동삼다시이삼사

아현삼동삼다시이삼사

삼다시이삼사

 

주문처럼

꽃이 열리는 주문처럼

네가 열릴 것만 같아서

 

 

[깨 밭에서]

 

은하에 한가득

깨알들이

 

밤새

죽어버린 어미 개를

그립니다

 

가슴에

돌덩이를 안고

이제

코 속에 들어 찬

숨조차

맵기만 한데

 

싸르륵싸르륵

깨 밭은

조용히

 

 

[정읍행, 171번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버스 안은 떨어진 단풍잎처럼 수선스럽다. 화장이 짙은 등산객과

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장사치, 등산객의 손에서 낙엽대신 등산로

입구에서 산 국산 서리태가 와그르르 쏟아진다.

 

내 옆에 이는 더덕으로 재미를 본당께

 

지친 기색없는 나물장수의 목소리가 길다랗다. 앞으로 돈을 내고 뒤로 사

람을 태우는 만원버스, 문이 열릴 때 마다 내장산이 검은 발을 들여 놓는다.

 

 

[2005년 11월 9일]

 

참기름에 찍어먹을 만큼

싱싱하던 내 장기

 

이제 유통기한 때문에

김나는 솥으로 들어간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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