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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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아침,

#. 구월, 느낌부터 참 가을스럽다. #. 아침마다 다시 심어 놓은 윗 밭의 배추 안부 여쭙기, #. 배추가 김장으로 치장하여 밥상에 오르기까지 #. 마당쇠 노릇 참 만만치 않다. #. 아장걸음을 걷던 당랑이 제법 의젓해졌으므로 초록은 다소 수척해 보이는 아침, #. 여전히 비 오시는데도 저 아래 너른 바다에서는 힘쎈 태풍 하나 열심히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 #. 산골 뜨락에 물 마를 날이 없다. #. 어쨌거나 세월 가는 대로 하늘은 푸르고 가을은 맘껏 물들어서 다시 이 가슴조차 알록달록 물들 테니 #. 그저 작은 일상들에 성실할 일, #. 허공이 꼬옥 움켜쥔 밤송이들, #. 가을이 온통 토실하겠다.

소토골 일기 2022.09.05

눈을 위한 말투,

#. 비 그치기를 목 빼어 기다리던 8월의 서른 하루, #. 손 흔들어 보내야 할 끝날에 조차 씻김굿 같은 비가 내린다. #. 이제 그만 내 글씨를 쓰리라고 집안에 들어앉은 한 달새 파지만 수북하다. #. 누군가 그랬었다. 남자의 손으로 여자의 글씨를 쓴다고, #. 쓰고 있는 붓이 여성용 인가?^^ #. 아무리 써 봐도 써 놓은 글씨가 맘에 들지 않으니 병 중의 병이다. #. 앞 선 이들의 글씨를 흉내내기보다는 이제 내 손으로 내 글씨를 써야겠다. #. 눈으로 들을 수 있는 말투를 위해, #. 다듬고 또 다듬어봐도 #. 파지 또 파지, #. 그렇거니 또, #. 변변찮은 재주에 끈기라도 있어야지, #. 팔월이 다 젖도록 내린 비는 팔월 건너 구월의 날들까지 질척하게 이어질 모양이다. #. 하늘이 조금 가벼..

풍경소리 2022.08.31

그렇게 가을,

#. 아침 운동 길이 춥다. #. 조금 늦었거니 온몸에 통증이 생기도록 심은 배추 모종이 이제 뿌리를 내렸으려나... 올라가 보니 고라니 께서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 먹었더라 #. 올 김장은 고라니 절여서 해야겠다. #. 다시 뽑아 먹은 만큼의 배추 모종을 심은 뒤에 전기울타리를 손질해서 가동하고도 밭가에 밤새워 수다스러운 라디오를 켜 두기로 한다. #. 해마다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수세적 노고와 허탈을 어찌해야 하나? #. 인도 여행 후에 서로가 서로를 엮어 놓은 모임 하나, 이 여름 다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고 염불에 염불을 하다가 결국 내 집에서 만두 모임이 되었다. #. 막내인 숙 선생조차 흰머리가 성성하니 장차 어느 날 또 갠지스 강가에서 시바를 뵈올꼬? #. 본격 시골살이 전 답사를 위해 들..

소토골 일기 2022.08.29

비와 번개 사이,

#. 어떻게든 비를 뿌리기로 작정한건지 찔끔 비가 내리기도 하다가 요란스런 뇌우를 퍼 붓기도 하더니 #. 모처럼 햇빛, #. 그래 봤자 고추 널기 좋겠다는 생각뿐, #. 줄에 묶인 강아지처럼 내 의식의 고갱이조차 산골 일상에 묶이고 만 것, #. 비 속에 함부로 젖어 있던 홍화가 제 몸 가장 높은 자리에 꽃 한 송이 받들어 평화로운 한 낮, #. 금빛 햇살 꽃으로 피어 온통 향기, #. 생일이었다. 한 해 가족 모두의 기억해야 할 날들을 빼곡히 정리하면서 정작 나를 위한 날들은 빈칸으로 두었었다. #. 발병과 재발을 거친 십 년, 주변의 의아한 시선 속에서 아주 가끔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 있어도 되나 싶었었다. #. 치료하는 동안과 치료 후의 후유증까지 이런저런 통증들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건 내 몸에 ..

소토골 일기 2022.08.19

징검 비,

#. 내리다가 쉬다가 더러는 햇볕 이기도 했다가 그렇게 징검징검 비가 내렸으므로 #. 해바라기는 마땅히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그만 땅에 눕고 말았다. #. 이도 저도 해법이 없을 때 발라당 디비지는 거 간혹 사람살이 중에 있다고는 들었으나, #. 비 오는 날 마다 가심팍조차 질척해 지는 증세, 자가 진단 결과 우(雨)울증 전조 증상이 분명해 보인다. #. 백수의 단순다망 하신 일들 조차 심드렁하여 그 틈새 풀들만 한 발도 넘게 산발, #. 아이들이 묶음으로 코로나에 걸려 제 집 안에 위리안치된 지 수일째, 먹고 싶다는 것들을 대략 카트에 담아 종합 배송을 했다. #. 꼭 안아 뽈떼기를 비벼도 시원찮은 예쁜 녀석들을 그저 현관문 사이로 멀뚱히 바라만 보고 돌아서야 하는 일, #. 꿈속에 본 듯하다. #..

풍경소리 2022.08.14

가을 예감,

#. 잠 깨인 새벽 누옥의 낮은 추녀 끝에 헝클어져 쏟아지는 낙숫물과 환청 같은 빗소리, #. 문득 온몸으로 느껴지는 깊은 고립감, #. 가뭄 건너 장마, 그리고 폭우, #. 이 몸 어딘가에 아가미 하나 생길 것 같은 질척한 물기 그렇게 입추가 지났으니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불쑥 가을이 될 것이다. #. 풀들은 산발하여 허공 춤을 추다가 제 풀에 누워 버렸고 햇볕 담아 익어야 할 작물들 조차 물에 잠긴 듯 볼 품이 없다. #. 첫새벽 잠길에 소슬한 추위가 느껴지니 이제 긴 옷을 입어야겠다. #. 윤기나는 건물들이 마천의 높이로 솟아 있는 도시의 피해 소식, 밤마다 불빛 휘황하던 거리는 함부로 젖고 구겨진 채 망가져 버렸으니, 문화 또는 문명으로 이름 지어진 사람의 일들은 얼마나 표피적 인가? #. 반지하..

소토골 일기 2022.08.11

서울 쥐,시골 쥐,

#. 기차안에 가득 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지만 그저 너른 바닷물에 물 한잔 더한 듯 도시는 여전한 흐름으로 도도하다. #. 도시의 내장을 흐르는 지하철 안에는 모두들 스마트 경전에 이마를 묻은 채 경건하게 묵도 중, #. 오륙 년쯤 지났나? 세월의 무게 위에 노쇠의 덕지가 더 해진 기억은 기어이 인사동 거리를 세 번쯤 헤매게 한 뒤 겨우 겨우 단골 필방을 찾아 주었다. #. 그리고 탑골 공원, 그늘마다 무리 지어 시국을 성토하거나 바둑 장기의 훈수에 여념없던 분위기는 간데없고 #. 비둘기 똥구멍을 모두 꿰매어 버린건지 아니면 꽁 꽁 얼어붙은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으로 강제 이주를 한 건지 비둘기 똥을 피해 유리 막 안에 갇혀 있던 탑과 동상은 이제 햇볕 아래 늠름 하시다. #. 공원 안에 가득했..

풍경소리 2022.08.08

백수연가,

#. 서실 정리 일상 정리 백수의 날들이 조금 더 헐렁해지도록, #. 그렇게 비워진 시간에 엉금엉금 고추를 땄다. #. 둘이 땀 흘려 열 넘어 나눔이 되는 부등가적 시골살이, #. 결혼한 아이가 도시에 살 때 그 아파트 안에서 가끔 이고 진 시골 노인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되어 있었고 #. 이른 오전에 시골 버스에 듬성하게 앉아 병원을 찾아가는 노인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지만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되어 있었다. #. 저 아래 마을 길에 이제 막 손주를 본 누구 아버지가 백일 지난 아이를 등에 업고 느릿느릿 걷고 있다. #.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지난날 우리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 흐린 하늘이 여전히 비 뿌리는 새볔..

풍경소리 2022.08.04

태풍 8월,

#. 두 개의 태풍이 비와 바람을 몰고 올라온다는 풍문에 앞 서 #. 다시 비 오시는 새벽, #. 그렇게 태풍 더불어 8월이 당도했다. #. 태풍이 세월 같기도 세월이 태풍 같기도, #. 서실 나다니는 일을 정리했다. 이제 산 중에 가만히 들어앉아 저기 산 아래 저자를 관조하면서 가만히 마음 수양을 하기로 한다. #. 정해진 틀 안에 갇혀 필사처럼 글을 쓰는 일에서 이제 정도에 매이지 않는 내 글을 쓰고 싶다. #. 몽골의 초원 이거나 히말라야의 척박한 마을을 찾아 한 동안 떠돌았으면 좋겠으나 여전히 코로나, #. 제사를 모셔야 할 형님 댁이 온통 코로나에 갇히는 바람에 어머니 기제사 마저 포기해야 했다. #. 제상 앞에 엎드리지 못하는 이 서운한 마음마저 귀신같이 아시겠거니··· #. 비 그치면 홀로 ..

풍경소리 2022.08.01

가을로 가는 길,

#. 서가의 책들은 곰팡이 냄새가 풀풀 나고 성냥갑 만한 제습기 한대가 연일 비짓 땀을 흘려 가며 집안 구석구석을 쥐어짜 봐도 온갖 것들이 여전히 눅눅 질척한데 영상으로 건너온 이제 열 달짜리 걸음걸이만 제법 뽀송해졌다 #. 겹겹의 푸른 껍데기를 끌어안고 붉고 선연했던 꽃술은 시름없이 늘어져서 이제 옥수수의 치열이 오동통 정연해졌으므로 육칠월 건너온 푼수떼기 풋날들을 나날이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빈대궁은 전리품으로 모아 모아 추운 훗날까지 보존하기로, #. 유리 조각 같은 햇살 속에 매미들은 다시 날카롭게 울고 하늘 가득 허공보다 가벼운 잠자리, 들, 제 아무리 더워도 어쩔 수 없이 가을로 가는 길이다. #. 중복이 지난날, 개발 괴발 전지 한 장의 붓글씨 끝에 지난해부터 벼르기만 하던 부채 꾸밈을 마..

소토골 일기 2022.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