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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깨인 새벽
누옥의 낮은 추녀 끝에 헝클어져 쏟아지는 낙숫물과
환청 같은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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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온몸으로 느껴지는 깊은 고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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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건너
장마,
그리고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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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 어딘가에 아가미 하나 생길 것 같은 질척한 물기
그렇게 입추가 지났으니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불쑥 가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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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은 산발하여 허공 춤을 추다가
제 풀에 누워 버렸고
햇볕 담아 익어야 할 작물들 조차
물에 잠긴 듯 볼 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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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새벽 잠길에
소슬한 추위가 느껴지니 이제 긴 옷을 입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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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나는 건물들이 마천의 높이로 솟아 있는
도시의 피해 소식,
밤마다 불빛 휘황하던 거리는
함부로 젖고 구겨진 채 망가져 버렸으니,
문화 또는 문명으로 이름 지어진 사람의 일들은
얼마나 표피적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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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차오른 물로
사람이 죽고 상했다는 풍문들,
세월호의 사회적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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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젖은 초록 숲에 옹크린
새들도
매미도
여러날 째 묵언수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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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뒤,
투명한 햇빛이 치렁해져서
허공엔
바람보다 가벼운 잠자리 가득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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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곱게 밭을 갈아
다독다독 가을을 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