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가을 예감,

햇꿈둥지 2022. 8. 11. 17:53

 

 

#.

잠 깨인 새벽

누옥의 낮은 추녀 끝에 헝클어져 쏟아지는 낙숫물과

환청 같은 빗소리, 

 

#.

문득

온몸으로 느껴지는 깊은 고립감,

 

#. 

가뭄 건너

장마,

그리고 폭우,

 

#.

이 몸 어딘가에 아가미 하나 생길 것 같은 질척한 물기

그렇게 입추가 지났으니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불쑥 가을이 될 것이다.

 

#.

풀들은 산발하여 허공 춤을 추다가

제 풀에 누워 버렸고 

햇볕 담아 익어야 할 작물들 조차

물에 잠긴 듯 볼 품이 없다. 

 

#.

첫새벽 잠길에

소슬한 추위가 느껴지니 이제 긴 옷을 입어야겠다.

 

#.

윤기나는 건물들이 마천의 높이로 솟아 있는

도시의 피해 소식,

밤마다 불빛 휘황하던 거리는

함부로 젖고 구겨진 채 망가져 버렸으니,

문화 또는 문명으로 이름 지어진 사람의 일들은

얼마나 표피적 인가?

 

#.

반지하에 차오른 물로

사람이 죽고 상했다는 풍문들,

세월호의 사회적 확장이다.

 

#.

비 젖은 초록 숲에 옹크린

새들도

매미도

여러날 째 묵언수행 중,

 

#.

비 그친 뒤,

투명한 햇빛이 치렁해져서

허공엔

바람보다 가벼운 잠자리 가득한 날,

 

#.

나는 다시

곱게 밭을 갈아

다독다독 가을을 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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